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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421화 (421/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21화

421화. 마지막, 재(12)

재는 바로 전장으로 진입하지 않았다. 먼저 샨 강을 도강해 근처 성을 찾았다.

“소면 팔아요! 우육면 팔아요!”

“장인이 벼른 검과 칼 팝니다! 이 칼이면 야만스러운 이족도 단칼에 꽥! 나를 지킬 무기를 사세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닙니다!”

“갓 짠 우유 팔아요! 끓인 우유도 있어요!”

“광목천 사세요! 사일 공방에서 만든 광목천 사세요!”

성에 들어서자, 이곳은 다른 세상이었다.

샨 강에서 오 일 거리에 있는 성은 아래에서는 전쟁이 한창인데, 이곳은 이다지도 평화롭다. 극과 극의 세상. 재는 그래도 동요하지 않았다. 이전의 자기였다면 분명 이런 거리의 모습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학소양에게 평정, 부동심을 단련하는 법을 배운 이후 이 정도로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재는 주변을 여유롭게 둘러보며 객잔을 찾았다.

객잔.

모든 정보가 모이는 장소다.

큰 객잔일수록 당연히 많은 정보가 모인다. 그러니 가야 할 곳은 일단 정해졌다. 하지만 이 성은 초행이라 어느 객잔이 가장 큰지를 몰라, 군것질을 파는 한 소녀의 앞에 섰다. 소녀는 재가 앞에 서자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곧 크게 심호흡을 하며 뭔가를 각오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다다다! 쏟아냈다.

“어, 어! 어서 오세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으로 만든 꼬치예요! 정말 맛있어요!”

“그래, 맛있어 보인다. 그럼 두 개만 줄래?”

“네!”

말하는 꼴을 보니 노점을 펼친 건 오늘이 처음이거나,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이제 열다섯? 여섯? 그 정도 된 소녀가 피워놓은 숯에 꼬치를 데웠다. 숯에 올라간 꼬치는 곧 제법 괜찮은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사실 학미의 솜씨가 좋아 꼬치는 물리게 먹었다. 하지만 며칠 지났다고, 벌써 학미의 꼬치가 그리웠다. 그래서 정한 게 꼬치였다. 그리고 아직 어린 소녀라 경계심이 많지 않을 것 같단 점도 앞에 선 이유 중 하나였다.

“하나는 지금 줄래?”

“아, 여기요!”

얼른 냉큼 꼬치를 내미는 소녀.

재는 값을 치르고 꼬치를 받아 한입 베어 먹었다.

“오.”

“맛있죠?”

“그래, 맛있네.”

거짓말이 아니라 제법 맛이 괜찮았다.

재는 순식간에 하나를 해치워서, 소녀의 경계심을 아예 녹여 없앴다. 그런 다음 물었다.

“내가 이곳엔 초행이라 그런데, 가장 큰 객잔이 어디니?”

“아, 객잔이요? 저기 큰 대로를 따라 쭉 가다 보면 길이 두 개로 나뉘거든요? 거기서 왼쪽으로 다시 쭉 가다 보면 상서 객잔이라고 있어요! 거기가 상서성에서 가장 큰 객잔이에요!”

상서성에서 가장 큰 상서 객잔이라, 단순해서 기억하기 좋았다.

마저 하나를 더 받아서 값을 치른 재는 꼬치를 먹으며 소녀가 알려준 길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사람 부대끼는 곳에 온 것도 사실 오랜만이었다. 재는 제도에서 태어났고, 제도에서 사고를 치며 컸다.

양부의 눈에 들기 전까지 재는 골목길의 무법자였다.

살기 위해 악착같이 자기 영역을 지켜야 했다. 몇 살 많은 거지 패와도 치열하게 치고받았다. 오롯이 전부 살기 위해서 그랬다. 양부에게 거둬지고 나서는 굳이 제도란 곳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익숙한 곳이기에, 의미를 두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가 역모 때문에 제국을 탈출했고, 제도는커녕 제도의 십 분의 일에 비견될 만한 성에도 못 가봤다.

그러다가 몇 년이나 지나서, 제도의 오 분의 일 정도 되는 큰 성인 상서성에 들어왔다. 감회가 정말 새로웠다. 문화라는 것이, 발전한 형태로 존재하는 곳. 원시적이지 않고, 문명을 엿볼 수 있는 곳.

상서성은 그 정도 느낌은 재에게 줬다.

나쁘지 않았다.

휘적휘적.

초행이지만, 초행 같지 않게.

누가 힐끔 보고 경계심을 갖지 않게. 느긋하게 걸었다. 그런 재의 의도대로 지나는 사람들은 칼을 찬 재를 굳이 흘겨보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이나 제도나, 칼을 찬 무사는 발에 차이도록 많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칼을 차도, 특별한 게 아니었다.

오죽하면 길거리서 도검을 팔까. 그런 곳이니 칼을 찬 재도 별로 특별하지 않았다. 아, 하나 있긴 했다.

바로, 빛이 나는 외모.

길을 가던 여염집 규슈와 몸종들의 시선이 훅 달려들어, 스쳐 지나갈 때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대충 가릴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가, 그러면 괜히 의심을 살 것 같아서 굳이 그러지 않았더니 이렇게 시선이 붙는다.

재는 그렇게 특정 인물들의 시선을 받으며 꼬치를 팔던 소녀가 말해준 객잔에 도착했다. 컸다. 웅장했다. 재는 객잔에 들어가기 전에, 근처에서 잡화점을 찾아 챙겨 온 호피를 석 장 중 하나를 팔기로 했다.

호피는 고가다.

그것도 매우 고가다.

“오오! 상한 곳도 거의 없고, 이걸 어떻게 잡았소?”

“독사에 물려 죽었던 걸 운 좋게 발견했습니다.”

“오오, 오호? 그렇소?”

피식.

눈빛에 깃드는 감정이 이렇게 적나라해서야.

“적당한 가격에 팔 테니까,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서 재는 나직하게 경고했다.

귀찮은 일은 사양이다. 성문 근처나 방이 붙는 곳곳에 재의 용모파기가 방에 붙어 있진 않았었지만, 그래도 혹시 알아보는 놈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재는 가볍게 경고를 했다. 그런데 이미 탐욕을 먹기 시작한 놈에게 과연 먹힐까? 먹혔다.

서늘하게 가라앉은 재의 눈빛에,

“힉! 끅, 히끅!”

느닷없이 터진 살기에 주인장은 딸꾹질을 시작했다. 전장에서 구르고 구른 재의 살기는 일반인이 감당할 만한 게 절대로 아니었다. 그러나 재는 웃고 있었다. 여전히 입가에 작게 미소까지 짓고 있었는데, 주인장은 깨달았다.

“저, 절대로! 허튼 생각은 안 하겠습니다요! 헤헤!”

“그러기를 바랍니다. 대신, 무례를 범했으니 호피값은 적당히 받겠습니다. 음, 원가에 삼 할은 빼고.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거래가 될 듯합니다만. 주인장은 어떠신지?”

“아휴! 그럼 저야 너무 감사하지요! 허, 허허!”

채찍과 당근을 같이 제시했다.

이렇게 했는데도 딴생각을 하면?

별수 있나.

오밤중에 사신을 만나는 수밖에.

되도록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지만,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어쩔 수 없었다. 치는 수밖에. 그래도 재는 부디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호피를 처분하고, 재는 상서 객잔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손님! 혼자세요?”

객잔은 보통 10살이 조금 넘은 소동을 점원으로 쓴다. 임금이 낮고, 이 나이대에 일하는 애들은 절박해서 말을 잘 듣기 때문이었다. 재도 처음엔 점소이 일을 했었다. 하지만 곧 쫓겨났다. 눈치 빠른 재가 일을 잘하자, 그걸 샘낸 두 살 많은 거지 출신 점소이가 돈을 훔치고 재가 그랬다고 고자질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재는 다시 골목으로 돌아갔고, 생존을 위해 안 한 일이 없었다.

옛날 생각이 나자, 절로 웃음이 났다.

이제는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됐다는 점에 감사하며, 점소이의 말을 받았다.

“응, 혼자. 자리가 있니?”

“네, 그럼요! 이 층도 있고! 삼 층도 있어요! 그런데 층마다 가격이 달라요!”

“음, 이 층이 좋겠는데?”

“넵! 저를 따라오셔요!”

“…….”

밝다.

주인이나 다른 점원에게 구박받으면 이런 표정은 절대 안 나온다. 억지로 짓는 미소는 한계가 명확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세상 맑다. 너무 맑고 밝아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날 정도로. 가장 큰 객잔이라더니, 대우도 잘해주는 것 같았다.

‘하긴, 점원을 막 대하는 객잔치고 오래가는 것도 못 봤지.’

주인이나, 그 점포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놈이 쓰레기면 오래 유지되는 경우를 재는 거의 보지 못했다. 어떻게든 윗물이 맑아야, 아래도 제대로 돌아간다. 악독한 주인 밑에 있으면 점원도 악독해지던가, 아니면 악독한 주인 때문에 일할 의욕이 없으니 접대에도 힘이 나질 않는다.

그럼 당연히 다른 객잔들과 비교가 되기 시작하고, 사람인 이상 당연히 더 밝고 친절한 곳을 찾게 된다. 그럼 그렇게 천천히 망하기 시작한다. 재가 양부에게 거둬진 이후로도 질리게 봤었다.

물론 가끔 나쁜 쪽으로도 난 놈이 있긴 한데, 그 경우는 제국의 철퇴를 얻어맞았다.

안내해 준 곳은 제법 좋은 자리였다.

난간 근처라서 지나다니는 자리. 하지만 누가 알아볼 수 있어 좀 안쪽의 자리를 굳이 찾아 앉았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난간이 인기가 많은데.”

“그러니? 그래도 나는 이곳이 좋구나.”

“손님이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죠, 뭐! 헤헤.”

“하하, 그래. 여긴 뭘 잘하니?”

“저흰 다 잘해요! 주방장님이 제도에서 오셨거든요!”

“오, 그래? 그럼 계육면과 소채 볶음, 죽엽주 하나 주문할게. 그리고 오늘 이곳에서 묶을 예정이니 적당한 방도 하나 예약하고 싶은데.”

“네! 계육면과 소채 볶음! 그리고 죽엽주! 숙소는 바로 옆 건물이거든요? 식사 다 하시고 그리로 가시면 돼요!”

두 채나 쓴다?

확실히 큰 객잔이긴 한 것 같았다. 잘 때 술 먹고 시끄럽게 하는 소리를 안 들어도 될 테니, 이 또한 나쁘지 않았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재는 철전 몇 개를 챙겨줬다. 그러자 환히 웃으며 넙죽 인사한 소동이 얼른 주문하러 아래로 내려갔다.

재는 소동이 사라지고 나서야 귀를 활짝 열었다. 이 층의 자리는 스무 개. 대낮인데도 그중 절반 이상이 차 있었고, 그곳에서 들리는 모든 대화가 재는 필요했다.

일단.

바로 옆자리.

“성주가 바뀐다고?”

“그래, 그렇다니까? 벌써 신임 성주가 제도에서 출발했다는구만?”

“누가 오는디?”

“제학이라던디?”

“……청백리?”

“그려, 유일한 청백리가 이곳으로 온다는구먼?”

“아이고, 큰일 났네, 큰일 났어!”

“청백리가 오는데 웬 큰일? 좋은 거 아녀?”

“이 인간아! 그럼 제도에는 이제 제대로 된 이가 없다는 소리 아녀! 그럼 제국이 어떻게 흘러가겠어!”

“아…….”

청백리, 제학.

재도 아는 사람이다.

알아도 너무 잘 아는 사람이다.

양부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올곧고 우직한 사람이었다. 그런 제학이 이 시점에 제도를 떠나 이곳, 전장 근방인 상서성으로 온다?

‘좌천이지. 아니, 잠깐만. 이건 좌천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전장이 코앞이다.

평범한 도보로 오 일 거리에 있는 샨 강 너머는 지금도 전쟁터다. 오 일이면 먼 거리인 것 같지만, 그게 또 그렇지도 않았다. 느긋한 걸음으로야 오 일이지, 재 정도면 삼 일이면 충분하다. 게다가 이곳은 병참기지의 역할도 하고 있었다.

전장으로 물자를 조달할 때, 가장 마지막 관문이 이곳 상서성이다.

이런 상서성의 중요성?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니 없는 문제도 만들어낼 수 있지.’

예를 들어.

물자를 보냈는데, 그게 전장에는 도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중간에서 누가 탈취해 갔다는 뜻인데, 이족은 강을 넘지 못한다. 그렇다면 제국군만 가능하다는 소리다.

‘후, 그놈의 입장에서 본다면 청백리인 제학 선생님이 눈에 가시겠지.’

옳은 말. 바른말만 하는 제학 선생이다.

그러니 역적 후의 입장에서는, 목을 치고 싶은 일 순위가 제학 선생일 거다. 그런데 제학 선생은 쉽게 처단할 수 있는 이가 아니다. 왜? 명망이 높아도 정말 높기 때문이었다. 양부는 그날 황궁에 있었으니 황제와 같이 유명을 달리하셨다. 그땐 이미 혼란 그 자체이니 양부를 죽이기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반란이 끝난 이후엔?

뒷수습을 해야 하는데, 이때는 관리들이 당연히 전부 모인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서 제학 선생님을 쳐낸다? 그건 모든 학사를 적으로 돌리는 행위다. 역사에 길이 남을 천재 후라고 할지라도, 제국 학사들의 도움 없이 제국을 운용하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뭔 수를 내자니, 이후로는 곧장 전쟁이 시작됐다.

그러니 당시 제도에 없던 제학 선생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다. 그런데 지금 전쟁은 확실히 규모가 줄어들었다. 소강상태라는 뜻이고, 소강상태이니 뭘 꾸밀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생각하면…….

‘제학 선생님.’

양부께서 가장 아끼셨던 제자 또한, 양부와 같은 길을 걷기 직전이란 뜻이었다. 하지만 아직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정보가 좀 더 필요했다. 단순한 좌전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상서성을 제학 선생께 맡길 의도일 수도 있었다.

“어이! 비켜! 비키라고!”

“거기 길 막지 말라니까!”

하지만 그런 재의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거대한 군수물자 행렬이 눈에 딱 들어왔다.

“…….”

단순한 추론이자 의심이, 확신으로 굳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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