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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420화 (420/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20화

420화. 마지막, 재(11)

재는 생각했다.

아니, 고민했다. 나는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고 싶은가?

“흠…….”

여전히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휘영청 떠 있는 달에 답을 구해볼까? 재는 학미가 숲에서 과실을 따다 만든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달을 향해 물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너는 답을 알고 있나?

이곳에서 이대로, 전장에서 멀어진 삶을 그대로 사는 게 좋은지. 아니면 반년간의 재활 끝에 이제는 이전보다 더 완벽하고, 단단해진 육체를 이끌고 전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좋을지. 너는 답을 알고 있어?

뭐, 미약하게 올라온 술기운 때문에 그냥 분위기를 낸 거지, 답을 줄 거란 생각은 감히 하지도 않았다.

재는 재활에 성공했다.

학미의 재활 훈련을 견뎠고, 이어진 학소양의 고된 훈련 또한 소화했다. 그 과정에서 굳었던 뼈도 전부 제대로 다시 되돌렸다. 아니, 오히려 더욱 좋아졌다. 학소양의 훈련은 고됐지만, 그 하나하나가 마쳤을 때 확실한 육체 성능의 상승을 불러왔다. 그 결과 이전보다 날래졌고, 이전보다 힘도 늘었다. 또한 이전보다 유연해졌고, 근육의 폭발력과 지구력 또한 확실하게 얻었다.

기술 또한 정교해졌다. 그렇게 자기의 신체 능력이 향상되자, 반대로 여유를 얻었다.

오늘 재는 호랑이를 잡았다.

이 술은 호랑이를 잡은 대가로 학미가 내준 거였다. 그렇다면 호랑이를, 밀림의 제왕이라는 호랑이를 어떻게 잡았을까?

쉬웠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정말로 쉬웠다.

호랑이가 덤벼드는 모든 것이 느린 흐름으로 보였다. 아가리를 벌리고, 누런 이를 드러내며 목덜미를 향해 달려들었을 때 재는 옆으로 슬쩍 피하며 호랑이의 동맥을 베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밀림의 제왕은 재가 가볍게 벤 일격에 과다출혈을 일으켰고, 잠시 뒤 죽음을 맞이했다.

물론 바로 죽은 건 아니었다.

이어서 몇 번 더 덤벼들었지만 재는 여유 있게 피했고, 그 몇 번의 달려듦이 동맥에서 뿜어지는 피의 양을 늘려 오래 지나지 않아 호랑이는 동작을 멈췄다. 그래서 난도질하지 않은, 아주 깔끔한 호피를 얻었다고 학미가 상으로 술을 하나 내준 게, 지금 재의 손에 들린 술병이었다. 그렇다면 이전의 재였다면?

그때도 호랑이는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단 일격에 잡긴 힘들었다. 실제로 재는 잡아본 경험도 있었다. 그때 물릴 뻔한 위기만 서너 번이었다. 상처 없이 잡긴 했지만, 식은땀이 흐르는 격전 끝에 잡은 거였다. 그러나 이번엔 그저 일격이었다.

고작 반년간의 수련이, 학소양의 조언과 수련법이 재를 또 다른 영역으로 인도했다.

그렇게 이전보다 단단해진 재는, 여전히 고민했다.

전장.

멀지 않을 것이다.

학소양이 자리 잡은 이곳은 오지 중의 오지고, 미로 같은 숲길을 따라오지 않으면 숲의 독충과 맹수에게 하루 열두 시진을 위협당하는 곳이다. 그런 이곳에서 전장은 사실상 가깝다. 첨병단조차 찾지 못한 곳이지만, 학미의 인도로 숲을 나서면 며칠 내로 전장에 합류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아마 지금도…….

‘전선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겠지.’

그가 아는 연은, 결코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휴전? 화친? 온전한 제국의 황제가 되고 싶은 후와 그런 제국을 다시 찾고 싶은 연은 절대로 휴전 따위는 맺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전장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게…… 이게 문제였다.

전쟁에서 졌다면? 그렇다면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패전했다면, 연은 이미 죽었을 것이고, 자신과 연을 맺은 모두가 아마 살아 있지 못할 테니까. 그러면 나중에…… 후가 안심할 때, 그때를 혼자서 노리면 된다.

하지만 전쟁은 아직 지지 않았다.

샨 강은 내줬지만, 전선은 초소전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얼마 전에 샨 강 너머 제국의 도시로 생필품을 사러 나갔던 학소양과 학미의 전황을 수집해 알려줬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여전히 전쟁은 한창이다.

그러니 여전히 자신의 지인들은,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다.

그런데 나만…….

‘이렇게 평화로워도 되는 걸까?’

이 마음이 문제였다.

번뇌처럼 하루에 몇 번씩 찾아오는 이 마음이, 재를 너무나 괴롭혔다. 그리고 훈련이 시작되기도 전에도 혼란스러웠던 마음이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랬다.

인기척이 났다.

사뿐사뿐, 가볍지만 그래도 풀 밟는 소리가 난다. 아직은 소리를 완전히 죽이지 못했으니 학미다. 학소양은 풀을 밟아도 아무런 소리가 안 난다. 무소음으로, 기척도 없이 다가온다. 전대 제국제일검과 일전을 치르고도 살아남았을 만한 실력이 수십 년 전에도 있었는데, 지금의 학소양은 재가 보기에는 아예 괴물이었다.

그러니 논외.

죽을 때까지 수련한다고 해도 학소양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봤던 재는 고개를 저었다.

왜?

장담할 수 없기에.

어쨌든 학미가 사뿐사뿐 다가왔다.

“무얼 고민해요?”

털썩, 옆에 앉으며 학미가 한 질문에 재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아직도 그 고민해요? 전장으로 돌아갈지 말지?”

“응.”

“왜요?”

학미의 순진무구한 질문에 재는 이번에도 솔직히 답했다.

“그야…… 그곳에 동료가 있으니까.”

“동료가 걱정돼요?”

“걱정되지. 동료니까.”

몇 해를 같이 살을 부대끼며 살았다.

이족에게 제국식의 훈련을 도입시켜 훈련을 시켰고, 직접 상대해 주기도 했다. 이족은 타고난 사냥꾼이었다. 숲에서의 이족은, 재조차 긴장해야 하는 암살자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각 개인이 숲에서는 악몽일지 몰라도, 집단전은 역시 약했다. 특히 사냥꾼의 저격은, 제국 동부군에게는 쥐약이었다. 제국의 동부군은 커다란 방패를 드는데, 그 직사각형 형태의 방패를 세워서 들면 몸 전체를 가릴 정도로 컸다. 그런 동부군을 상대하면, 이족은 전멸이다. 그래서 집단전과 난전을 가르쳤다.

그렇게 같이 훈련하다 보면 당연히 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을 땐 슬퍼했고, 이겨나갔을 땐 같이 좋아했다. 그런 전우가, 동료가 전부 전장에 있었다.

그러니 고민이 된다.

가슴을 가른 제국제일검의 일검이 족쇄를 전부 끊어버리지 못한 것을, 재는 지금 다시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매우 느슨해졌으나, 여전히 족쇄는 남아 있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말이다. 이렇게라도 고민하는 거 보니, 그래도 정말 희미하게만 남아 있는 것 같았고.

“그럼 돌아가요. 돌아가면 되잖아요?”

학미의 순진한 말에, 재는 쓴웃음을 짓고는 술병을 입가에 대고 기울였다. 달콤한 과실주가 식도를 타고 들어가며, 사르르 올라오는 술기운을 좀 더 자극했다.

“그러고 싶지. 그러고 싶은데…… 그러기 싫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학미 네게 내 얘기를 해준 적이 있었던가?”

“아니요? 한 번도.”

도리도리.

고개를 젓고 난 학미의 눈빛이, 위험할 정도로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학미는 아직은 소녀. 소녀의 호기심이 폭발한 것 같았다. 재는 그런 학미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자신의 과거를 짧게 간추려 설명해 줬다.

제도에서 태어난 재는 철이 일찍 들었다.

그리고 철이 들었을 때도 재는 고아였다. 골목을 휘젓고 다니다가 양부의 눈에 띄어 거둬지고, 그런 양부를 위해 아주 어렸을 적에 검을 쥐었다. 재는 재능이 있었다. 빠르게 성장했고, 양부의 지원을 받아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을 모아 먹이고, 재웠다.

그렇게 백적파의 단주가 되었다.

백적파가 정식으로 제국으로 인정된 집단이 되자, 재는 그때부터 전장을 떠돌았다. 양부는 그러지 않기를 바랐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제국의 평화와 안녕에 이바지하는 게, 양부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작 열여섯, 열일곱, 그때부터 전장을 돌았다.

백적파는 제국의 적을 무수히 깨부쉈다. 그게 벌써 10년이 훨씬 넘었다. 재의 인생은 그렇게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히잉…….”

초롱초롱했던 눈빛은 어느새 죽었고, 울상이 된 학미. 재의 얘기는 어떻게 들어도 재밌는 얘기는 아니었다.

“불쌍해요. 재는, 그런데도 전장으로 가는 걸 고민해요?”

“말했잖아. 동료가 있다고.”

“동료만 있어요?”

“응?”

“사랑하는 사람이나, 이런 사람은 없어요?”

“…….”

있지.

있다.

선고라는 연인이.

아마 자신의 죽음에 그 누구보다 슬퍼했을 연인이, 그곳에 있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재는 선고를 떠올리는 걸 막아왔다. 선고의 존재는 이제는 연보다 커져서, 오히려 다른 족쇄가 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선고를 떠올리는 걸 의식적으로 피해왔다. 그러나 학미의 말로 선고가 떠올랐다.

휘영청 뜬 달이, 선고의 웃는 낯으로 점점 변해갔다.

“있나 보네요?”

“응. 있어.”

“에이! 그럼 가야죠! 연인이 기다리는데!”

“…….”

이렇게 될까 봐.

피했던 거다. 선고를 떠올리면 분명 자신은 칼을 다시 쥘 테니까. 어렵게 얻은 안식, 평화가 그대로 날아갈까 봐. 그래서 피했던 건데.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달에 비친 선고의 웃는 낯이, 슬프게 변했다. 그랬다가 다시 분노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런 표정은 나중엔 다시 무표정으로 변했다.

나찰이 된 것이다.

얼굴에 피를 잔뜩 묻히고. 자신의 복수를 감행할 게 빤한 선고의 모습이 떠오르자 재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재는 나쁘다! 연인이 있는데도 고민하고!”

학미는 등을 떠밀었다.

팡팡! 호랑이도 짊어질 정도로 힘이 장사인 학미가 등을 치자 몸이 휘청했다. 학미는 그렇게 재의 등을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는 바보.”

“…….”

그러곤 자리를 뜨는 학미.

찰나 간 아쉬운, 아픈 눈빛을 보긴 봤지만, 재는 그저 달에 시선을 뒀다. 선고의 모습은 여전히 달에 떠 있었다.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전에…….

“더, 더 강해진다.”

이걸로는 부족하다.

학소양이란 기인의 모든 것을 전수받아 이전보다 훨씬 압도적인 자신이 되는 게 먼저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 어떻게든 버티고 있을 거라 믿을게.”

달을 보며 중얼거린 재의 다짐은, 세월을 꿀꺽 잡아먹었다.

* * *

“이제 더 가르칠 것도 없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흐흐, 그래도 내 말년에 제자를 두게 되었구나. 그 스승이란 단어가 이리 달콤한데, 왜 이제야 들였을꼬? 클클.”

학소양의 말에 재는 피식 웃었다.

다짐한 날, 재는 학소양을 찾아갔다. 그리고 스승에게 올리는 예를 다짜고짜 올렸다. 그런 재의 모습에 허! 하고 헛웃음을 지은 학소양은 그 예를 받아들였다. 관계가 그 순간 변했다. 구명을 베푼 선배님에서, 스승으로.

스승이 된 학소양은 재에게 장착되어 있던 불필요한 움직인 전체를 뜯어고쳤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스승도 없이 홀로 칼을 쥐고, 스스로 독자적인 전투법을 익힌 천재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불필요한 움직임. 그게 많았다.

회피.

특히 이 부분에서.

학소양은 안법과 심력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칼날이 눈앞에서 쉭! 지나가도 눈을 깜빡이지 않는 부동심을 가르쳤다. 육체는 한계 이상으로 이미 단련된 상태라서, 학소양은 그런 부동심을 포함한 내적인 기술을 가르쳤다. 그걸 깨닫는 데 이렇게 오래 걸렸다.

하루 이틀?

그걸로는 정말 어림도 없었다. 그래도 재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학소양의 훈련을 탐했고, 끝끝내 이뤄냈다. 그렇게 걸린 시간이 무려 1년하고, 반이다. 여름에 구해졌는데, 한 해가 후루룩 지나고, 다시 반년이 지나 겨울의 초입에서야 학소양은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모든 훈련이 끝났다.

학소양은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 칼 한 자루와 봇짐을 들고나왔다.

“네가 쓰던 것과 같은 놈이다. 실력 좋은 장인이 좋은 철로 정련했으니, 너의 힘을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게다.”

“……감사합니다.”

재는 거절하지 않고, 공손히 양손을 내밀어 학소양이 건넨 칼을 받았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아주 익숙했다. 평소 쓰던 검과 아주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재는 무기에 정을 주지 않는 편이었다. 전장에서 내 무기를 고집하는 건 아주 미련한 짓이었다. 필요하면 칼을 던져서라도 적을 맞추고, 근처에 있던 다른 무기를 들고 다시 싸워야 한다. 집단 난전일수록 그러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런 재는, 이 무기에는 정을 줘야 할 것 같았다.

의미가 남다른 칼이기 때문이었다.

첫 스승에게 하사받은, 아주 큰 의미가 있는.

그러니 남다르다.

“됐다. 이제 가거라. 너의 전장으로.”

“……그간 정말, 감사했습니다. 전장 일이 마무리되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겠습니다.”

“허허, 그러려무나. 기다리고 있으마.”

“……네.”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재는 깊게 읍을 하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더 있고 싶다.

정이 너무 들어서.

그래서 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곳에서 멀어지기로 했다. 학미에게 새겨 넣은 표식을 따라가기를 한참, 숲을 빠져나오자마자 들려오는 거대한 외침.

“재! 꼭 살아 돌아와!”

“…….”

저 높은 산의 절벽에서 학미가 외친 말에 재는 고개를 돌렸다.

손을 흔드는 학미가 보였다.

재는 학미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주고, 그대로 다시 몸을 돌렸다.

돌아선 재의 눈빛은 변해 있었다.

훈련받는 제자의 눈빛이 아니라, 무사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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