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07화
407화. 짧은 휴가(4)
일어나요. 일, 어나!
으음.
누가 몸을 흔들어서 지영은 천천히 잠에서 깼다. 흐릿한 시야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양유진이었다. 앞치마를 맨.
“으음, 몇 시예요?”
“9시!”
“아, 9시.”
일어날 시간이긴 했다. 몸을 일으킨 지영은 고개를 털고는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잠에서 깨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루틴. 지영의 하루는 스트레칭으로 시작되어, 스트레칭으로 끝났다.
“아침 가볍게 차렸어요. 스트레칭하고 나와요?”
“네…….”
양유진이 나가자, 지영은 잠이 덜 깬 몽롱한 정신으로 스트레칭을 이어갔다. 발끝부터 머리까지. 기다리고 있을 양유진을 위해 10분만 단축했다. 아침은 정말 가볍게 차려져 있었다. 샐러드에 우유. 그리고 냉장고에 있었을 닭가슴살 한 조각.
“누나 건 안 차렸어요?”
“같이 먹을 건데요?”
“어, 이거 먹으면 배고플 텐데?”
“괜찮아요! 같이 이거 먹어요, 그냥!”
그렇게까지 말하니 지영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우리 오늘은 뭐 해요?”
“뭐 하고 싶은데요?”
“음, 같이 그냥? 아! 저 낚시 해보고 싶어요!”
“낚시?”
뜬금없이?
근데 이유가 있었다.
“전에 지원이가 한결 씨랑 캠핑 갔다가 낚시란 걸 해봤대요. 근데 막 재밌었다고 자랑해가지고…… 헤헤. 저도 해보고 싶어졌어요.”
“아아…….”
강한결 이놈……!
지영은 낚시를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정말, 한 번도. 아니, 애초에 낚시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반대로 강한결은 물이 있고, 낚시가 허용되면 꼭 낚시를 하곤 했다.
캠핑도 그렇지만, 강한결은 생각보다 취향 자체가 올드했다.
요즘은 옛날과는 다르게 낚시란 취미가 대중적으로 변했고, 남자가 가지는 취미 중에 웬만한 것들보단 돈도 덜 들고, 안전하고, 믿을 만하단 생각에 이해해 주는 아내가 늘어 취미로 낚시를 선택하는 남자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건 남 얘기였다.
“그래요, 가봐요. 우리.”
“진짜요?”
“네. 저도 안 해봤는데……. 뭐 어떻게든 되겠죠?”
“어, 안 해봤어요?”
“네. 근데, 해보고 싶어졌어요. 저도.”
아니, 이건 살짝 거짓말.
그냥 양유진이 해보고 싶다고 하니까, 같이 해주기 위해서 하는 선의의 거짓말, 이었다. 그래서 양심의 가책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지영은 짧은 휴가 동안 그녀가 하고 싶은 건 다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에 보면 최소한 한 달은 못 보니까.’
그러니까 하고 싶다는 건 다 같이 해주고 싶었다.
아침을 먹고, 지영이 알아보는 동안 양유진은 가볍게 도시락을 쌌다.
어느 정도 조사가 끝나자 지영은 어머니한테 나갔다가 온다고 전화를 걸었다.
-어, 아들. 아침은 먹었고?
“지금 막 먹었어요. 저, 이제 나갔다 올게요. 저녁쯤 올 것 같아요.”
-어디 가게?
“유진 누나가 낚시해 보고 싶다고 해서요. 지원이가 해보고 자랑했나 봐요. 하하.”
-그래? 아, 아버지 모신 데 알지? 거기 앞에 저수지 있는데, 거기서 낚시 될 거야.
“안 그래도 거기로 가려고 했어요.”
-그래? 가면, 음, 아니다. 아직은.
“하하, 뭔 말인지 알겠어요. 다음에 정식으로 갈게요. 결정되면.”
-후후, 그래. 물 조심하고?
“네.”
-아, 맞다. 그리고 베란다 보면 텐트 하나 있어. 그거 챙겨가. 전에 아는 분이 안 쓴다면서 주신 건데 버리려다가 베란다에 뒀거든? 그거 가져가서 편하게 있어. 그리고 물가니까 옷 따뜻하게 챙겨입고.
“네, 안 그래도 담요랑 다 챙겼어요.”
-그래, 잘 놀다가 와.
“네.”
전화를 끊은 지영은 베란다로 나가 텐트도 챙겼다. 사이즈가 큰 게 아니라서 크게 무겁지 않았다. 이것저것 챙겨서, 지영은 양유진과 함께 낚시터로 출발했다. 30분쯤 달려 낚시터에 도착한 지영은 바로 앞에 있던 용품점에서 이것저것 장비를 샀다. 어차피 한 번만 해보고 말 수도 있으니 비싼 거 말고, 중저가형을 하나씩 샀다. 가격을 결제하고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사장님에게 지영은 부탁을 꺼냈다.
“저기, 죄송한데요. 저희가 낚시는 처음이라서요. 혹시 장비 세팅? 이걸 어떻게 하는지 도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휴, 그럼요? 그런 부탁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하하!”
지영의 정중한 부탁을 사장님은 흔쾌히 들어줬다.
평일이라 사람이 별로 없어서 나름 명당이라는 곳에서 자리를 잡아주고, 세팅도 도와주신 사장님 덕분에 다행히 어려움 없이 그녀와 함께 나란히 앉아 낚시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음, 지원이가요. 가만히 앉아서 물을 보는 것도 힐링이 된다고 했거든요? 근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그래요?”
“네, 뭔가…… 마음이 편해지고 있어요.”
양유진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듣는 지영의 시선은 건너편, 절에 가 있었다. 산 중간의 절인데, 어머니는 아버지를 저기에 모셨다. 명절에는 어머니랑 항상 들르는 곳이다.
어머니가 아까 하다가 만 말은 인사라도 드리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었을 거다. 하지만 중간에 멈추신 이유는 양유진에게 그 자체가 부담될 수도 있어서였다. 지영도 거기엔 동의했다. 지금 관계는 좋지만, 앞날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다. 그러니 시작부터 부담을 줄 필요는 없었다.
‘다음에는 같이 꼭 인사 갈게요.’
그래서 지영은 속으로 그렇게 인사를 드리곤, 낚시에 집중했다. 낚싯대는 서로 하나씩만 폈다. 두 개나 펴봐야 초짜 중의 생초짜인 두 사람이 그걸 전부 컨트롤하는 건 어려우니 하나만 하는 게 나았다.
“어, 어?”
양유진의 목소리에 지영은 저도 모르게 그녀를 바라봤다. 양유진은 찌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는데, 확실히 찌가 막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푹 들어가니까 아까 사장님이 했던 말을 떠올린 양유진이 에잇! 하면서 낚싯대를 확 잡아당겼다. 여리여리한 몸과 달리 그녀는 힘이 셌다. 대가 휘었다. 딱 봐도 고기가 걸린 것 같았다. 짧은 힘 싸움 뒤에 손바닥 크기의 물고기가 낚여 와서 하늘에서 대롱대롱 흔들렸다.
“와! 우와! 우아아! 저 잡았어요!”
양유진은 흔들리는 물고기를 보며 방방 뛰었다. 그러나 곧 난관에 빠졌으니, 물고기를 낚긴 했는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히.
“어이쿠, 대 던져드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하하, 이거 여자친구분 어복이 장난이 아니신데요?”
근처에서 보고 계시던 사장님이 그렇게 말하며 냉큼 다가오셨다.
그리고 어떻게 고기를 앞으로 오게 하는지, 바늘은 어떻게 빼는지를 알려주셨다. 양유진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경청했다. 배우겠다는 열의가 대단했다. 그리고 다시 대를 던지고, 그녀의 쇼타임이 시작됐다.
초심자의 행운 버프가 함께하는 양유진은 신나게 고기를 낚아 올렸다.
그럼 지영은?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어복은커녕, 초심자의 행운도 비켜 간 지영이었다. 그래서 재밌으면서도, 재미가 없던 지영이었다.
* * *
해가 슬슬 떨어질 때쯤 장비를 역순으로 정리했다. 사장님은 정리할 때도 도와주셨다.
“가서 물기랑 먼지를 마른 수건으로 한 번씩 닦아주는 게 좋아요. 기계처럼, 낚싯대도 정비가 필요하거든요.”
“네, 그렇게 할게요.”
“하하, 사실 그렇게 좋은 제품은 아니라 금이야 옥이야 다룰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인생 첫 낚시 장비인데, 공을 들이는 법을 시작부터 들여놓는다 생각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친절하게 이것저것 알려주셔서.”
“하하, 제가 뭐 한 게 있나요. 그냥 준비하는 것만 알려드린 건데. 그리고 여자친구분이 금방 배우셔서, 다음엔 도움이 딱히 필요할 것 같지도 않던걸요? 저야 이렇게 젊은 커플이 낚시에 흥미 가져주고, 재미를 느끼게 도왔으니 오히려 제가 뿌듯합니다. 하하.”
“그래도 감사하죠. 다음에 또 시간 나면 올게요.”
“그래요. 조심히 가요. 하하.”
좋은 사장님과 인사하고, 지영은 집으로 돌아왔다.
양유진은 한껏 힘을 내서 낚시하더니, 집에 가는 길엔 코오, 잠들었다. 잠든 그녀를 잠시 두고, 지영은 밖으로 나와 전화를 걸었다. 운전 중 부재중 전화가 찍혀서였다.
-네, 임은진입니다.
“누나, 저요.”
-응. 지영아. 휴가 잘 보내고 있지?
“네, 그럼요. 누나랑 낚시도 갔다가 지금 막 들어왔어요.”
-그래, 낚시도 갔어?
“누나가 가보고 싶다고 해서요.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다른 건 아니고, 너 어제 팬 미팅 했니? 소녀 팬들이랑.
“아아, 네. 30분쯤? 무슨 문제 생겼어요?”
-아니 문제는 아니고. 갑자기 기사가 막 올라와서 확인차. 사진이랑 이런 건 없는데 팬 미팅 했다고 하니까.
“아아, 사진은 안 찍었어요. 애들도 정신이 없었는지 찍자는 얘기도 안 했고.”
-그래? 그럼 한 거는 맞다는 거지?
“네.”
-알았어. 그럼 회사에. 맞다고 전해둘게.
“네, 번거롭게 해서 죄송해요.”
-죄송은. 잘했어. 소녀 팬 중 한 명이 별 스타 셀럽인가 봐. 돈 들이지 않는 공부법? 이런 거 알려주는 거로.
“아…….”
누군지 바로 떠올랐다.
희수인가? 걔인가 보다.
민사고 가려다가 일반고 진학했다는 애.
작지만 친구들을 전부 휘어잡을 정도로 매운 애.
“누군지 알겠네요. 친구들 휘어잡는 대장이 있더라고요. 공부 잘하는. 걔인가 봐요.”
-그래? 맞나보다, 그럼. 그 친구가 몇 시간 전에 후기 올려서 기사화가 되기 시작해서, 그래서 확인차 전화한 거야. 그럼 나는 회사에 전달할 테니까 휴가 잘 보내고?
“네, 누나. 들어가세요.”
-응, 휴가 잘 보내고.
“네.”
전화를 끊은 지영은 막 잠에서 깨 기다리고 있던 양유진과 함께 올라갔다.
“엄마, 저희 왔어요!”
“왔니? 낚시는 잘했어?”
“네! 저 엄청 잡았어요!”
“어머, 그랬어?”
“네! 그런데 지영 씨는 한 마리도 못 잡았어요.”
“아이고, 어쩌다가?”
“음, 제가 다 뺏어 잡아서?”
설마, 그럴 리가.
그냥 지영은 실력이 없어서 못 잡은 거다. 반대로 양유진은 그냥 어신이 도운 거고. 딱 그 차이였다.
저녁을 먹고, 잠시 쉬다가 다시 TV 앞에 모였다.
오늘은 노는 언니들 하는 날이었다. 과일을 깎아 오신 어머니가 소파에 앉자 방송이 시작됐다.
오프닝부터 바짝 힘을 줬다.
승리 후, 포효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흑백 슬라이드 형식으로 흘러갔다. 올림픽이 마치 꿈처럼 표현됐다. 울고, 웃는 선수들과 슬퍼하는 선수들, 절망하는 선수들의 모습까지 차례대로 주르륵 흘러갔다.
그리고 다시 화면이 컬러로 전환되며, 현실로 돌아왔다.
장세리를 포함한 멤버들이 모여서 오프닝을 열고, 선수들이 들어섰다. 그리고 골프, 배구 선수 순으로 입장했고 지영과 친구들은 가장 마지막에 등장했다.
“와…… 새삼 보니까 지영 씨 역시 연예인님 같아요. 아니, 연예인님이었어요.”
“하하.”
저 날은 확실히 힘을 빡 줬다.
헤어도 헤어지만, 메이크업을 정말 묘하게 해놔서 중성적 매력이 폭발하는 장면이었다.
“예쁘다…….”
“저보고 한 말은 아니죠?”
“앗, 크음…….”
양유진이 슬그머니 어머니 옆으로 붙었다.
“아들, 저렇게 화장하니까 정말 예쁜데?”
“엄마…… 저 힘들었어요.”
“왜? 뭐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방송 나갈 때 가끔 하는 건데. 엄만 보기 좋아. 아들이 정말 연예인 같고 그래서.”
“하하…….”
연예인 맞습니다. 같고 그런 정도가 아니라…….
지잉, 지잉.
톡이 와서 봤더니 이성진이 방송 중에 바람에 머리가 휘날려 그걸 잡는 자신의 모습을 캡처해 보냈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올, 예쁜데?
“…….”
지영은 뭐라 말할 기운도 안 생겨 그냥 폰을 내려놨다. 카메라 각도가 절묘해서 진짜 자신이 봐도 여자로 순간 봤으니까. 그 뒤로 풀샷이 나오지 않았으면 순간 여자로 착각해도 할 말 없을 정도로 절묘한 각도의 사진이었다. 그러니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아침 먹고, 따로 흩어져서 토크하고, 하는 평범한 내용의 방송이었다.
하지만 시청률은 무려 15%를 넘기며, 노는 언니들 최고 시청률을 찍는 중이란 메시지가 한유진과 장세리에게 거의 동시에 왔다. 배구팀과 골프팀만 해도 대박인데 거기에 황금세대 아이돌까지.
특히, 강지영이란 대어가 출연했기에 어쩌면 당연한 시청률 폭발이었다.
거기에 노는 언니들은 초강수를 뒀다. 무려 한 주에 2부를 전부 내보내는, 화제성을 오늘 하루에 모조리 폭발시키겠다는 의지였다. 그런 장미 PD의 의지로 인해 1부가 끝나고 잠시 광고 뒤, 2부가 곧장 시작됐다.
2부의 시작은, 우정혁의 합류부터였고.
갑작스러운 우정혁의 등장으로, 시청률은 미친 듯이 솟구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