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406화 (406/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06화

406화. 짧은 휴가(3)

훅, 훅!

30분쯤 더 대화를 나눈 뒤 지영은 집 근처 종합운동장을 찾았다. 가을로 접어든 지금은 민간에도 개방되어 있어서 꽤 많은 시민이 나와 각자 건강을 챙기고 있었다. 지영은 마스크와 모자, 후드로 무장하고 천천히 조깅을 시작했다.

몸 컨디션은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다리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신경 썼다.

그렇게 30분쯤 달리자 몸이 확실히 어느 정도 풀리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지영은 무리하지 않았다. 전문가와 함께 재활 겸, 다시 몸 상태를 정상으로 돌리는 작업은 사실 매우 부족한 편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하루아침에 다시 시합 전의 몸으로 돌아오는 건 불가능했다. 수분을 빼는 거야 쉽지만, 오른 살을 빼내는 건 그리 녹록한 작업은 아니었다. 그러니 미국에 가서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했다. 그런 관리가 필요한 상황은 시간적으로도 여유를 두는 게 좋았다. 이는 조급하면 할수록 이제 정상으로 돌아오던 컨디션이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확률이 지극히 높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무리하지 않았다.

30분을 천천히 뛰고, 나머지 30분은 그냥 걸었다. 걷는 것만큼 좋은 운동도 없었다. 총 1시간. 땀에 흠뻑 젖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아까 먹은 저녁은 충분히 태웠을 것이다.

차로 돌아온 지영은 바로 집으로 향했다.

영화를 보러 나간 두 사람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지영은 씻고 나와 집 정리를 시작했다. 나가기 전에 어머니랑 양유진이 어느 정도는 해놓고 나간 것 같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치울 게 눈에 보였다.

집을 정리하던 중에 양유진의 전화가 왔다.

“네, 누나.”

-저…… 힝. 어떡해요?

“네? 뭐가요?”

-엄마랑 영화 보고 카페 왔는데, 저희 갇혔어요…….

“갇혀요? 카페에?”

이건 또 뭔 소리?

지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하자,

-저 알아본 사람이 나와서…….

“아……. 제가 갈게요.”

-미안해요……. 히잉.

“아니에요.”

지영은 양유진을 안심시키고 전화를 끊은 뒤 바로 나갈 준비를 했다. 근데 뭐 준비라고 해봐야 모자에 마스크, 그리고 가볍게 청바지에 후드를 입으면 끝이었다. 차에 오른 지영은 양유진이 보내 놓은 주소로 곧장 출발했다.

그래도 다행히 시내는 아니었다.

그러니 사람이 몰려도 많이 몰린 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10분쯤 달려서 도착한 카페. 지영은 차를 주차하고 일단 안부터 살폈다. 갇혔다고는 하지만, 막 못 나가게 막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어머니와 양유진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한 여섯 명 정도였는데, 양유진의 성격상 거절하지 못하는 상황 같았다.

지영은 일단 잠시 지켜봤다.

“그래도 막 괴롭히는 건 아닌가 보네.”

여성.

여섯 명.

그래도 다행히 표정을 보니까, 마치 연예인을 만난 것처럼 들뜬 얼굴이었다. 그런 표정을 보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확실히 그럴 만도 했다. 사실 양유진은 한 때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했던 신데렐라였다.

무도회장에 놓고 간 유리구두로 왕자와 결혼하는 인생 역전의 스토리. 물론 그 이전에 계모와 새언니들의 괴롭힘이 있어서 좀 더 신데렐라에게 감정이입이 크게 되는 점도 있었다. 양유진은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었다.

아주 평범했던 그녀.

소녀 가장이었던 양유진은 동생의 후원 미팅에서 강지영을 만난다. 그때 강지영은 지금처럼 세계적인 스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와 만나고 오래지 않아 지영은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고, 스캔들이 터지면서 양유진에 관한 모든 게 샅샅이 밝혀졌다.

피겨 선수 양지원의 언니이면서, 엄마.

둘은 아주 어렸을 적에 보육원 앞에 버려졌고, 운동을 시작한 양지원 때문에 양유진은 인생을 포기하고 동생의 뒷바라지를 했다. 헌신과 희생. 그런 점 때문에 그래도 양유진은 세인에게 크게 비난을 받진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없지도 않았다.

시기와 질투는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애초에 SNS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행히 그녀를 향한 비난이 그녀에게 닿는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정말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그녀는 지영만큼은 아니지만, 셀럽처럼 유명해졌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셀럽의 연인인데, 일반인이다. 뭔가 생활 패턴 같은 게 변할 법도 한데, 그녀는 정말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스캔들이 터지고 나서 한창 시끄러울 땐 공장도 나가지 않았지만, 좀 잦아들자 그녀는 다시 공장에 나갔다.

강지영 때문에 자신의 삶 자체를 바꾸지 않는 모습.

이런 모습이 조명되면서 정말 그 남자에 그 여자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양유진의 행동은 팬을 생성했다. 유명세와 시기와 질투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모습에 팬이 생기는 건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 양유진의 얼굴은 당연히 이미 한참 팔린 상태였다.

“그리고 그건 어머니도 별로 다르지 않지.”

아직도 장사를 접지 않으셨지만, 하루에 수십 명씩 지영의 팬이 찾는 곳이 어머니가 장사하는 시장이었다. 심지어 해외에서 온 팬도 가게를 찾을 정도였다. 그런 두 사람이 같이 있으니, 누군지 알아보는 건 그리 어렵지도 않았을 거다.

이런 관심은 연예인에겐 꼭 필요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일반인이었다. 이런 과도한 관심 자체에 면역이 없어서 당혹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차에서 내렸다. 카페 문을 열자, 딸랑하는 풍경 소리에 시선이 훅 달려들었다.

“어?”

그리고 사람들은 금방 지영을 알아봤다. 애초에 두 사람이 있으니 지영이 올 수도 있단 생각 자체를 너무 빤하게 할 수 있기도 했다.

“맞죠? 맞죠?”

앳되어 보이는 한 여성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양유진과 어머니의 곁에 앉았다. 그러곤 마스크를 벗으면서 인사부터 했다.

“안녕하세요.”

“와, 와아! 진짜 강지영이다!”

“반가워요. 근데 부탁이 있어요.”

“어, 벌써 가야 해요?”

쪼르르 모여 있던 팬들의 얼굴에 실망감이 바로 깃들었다. 하지만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작게 팬 미팅할까요, 우리?”

“어, 진짜요? 네! 좋아요!”

“대신 폰으로 누구 부르지 않기. 사람 몰리면 당연히 저 여기 못 있어요. 그건 알죠? 바로 회사에 연락해서 도움받아야 해요. 그럼 팬 미팅은 물 건너가는 거죠.”

“아…….”

“그리고 막 사람 많이 있는 것보다, 이렇게 소소하게 하는 게 더 의미가 있지 않겠어요?”

“어…… 진짜! 네! 그게 좋아요!”

텐션 좋은 소녀가 대표로 대답했는데,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애초에 전부 나이가 많지 않아 보였다. 성인이 있을 거란 예상과는 다르게 전부 중고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들 중학생?”

“아뇨! 저희 이제 고! 다 친구들이에요! 여기는 얘 언니가 하는 곳이라 모여서 공부하려고 온 거구여!”

“아아.”

불행 중 다행이었다.

고1이지만 아직은 순수함이 엿보이는 친구들이었다. 이런 친구들은 잘 대해주면 팬이지만, 조금만 서운하게 하면 대번에 인터넷에 악플을 달 친구들이기도 했다. 그러니 악플을 달기 전에 차라리 잘해주는 게 훨씬 나았다.

“예고? 여고?”

“예고!”

“예고 여기서 가깝지? 아 말 편하게 해도 될까요?”

“네! 완전 괜찮음! 저희 다 이 근처 살거든여! 아, 오빠도 이 근처 살지 않아요?”

“응, 저쪽 단지에 살지.”

“저도저도! 저도 거기 힐스테이트 사는데!”

앞머리에 롤을 말고 있는 소녀의 말에 지영은 오, 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같은 단지 주민이었네? 반가워.”

“와, 와아!”

지영이 손을 내밀자 어쩔 줄 모르던 소녀는 아주 조심스럽게 지영의 손을 잡았다. 부끄러운지 그것도 손만 살짝 대길래, 지영은 잡고 가볍게 흔들어줬다.

“뭐야, 나 손 깨끗해?”

“아니아니, 그, 그게 아니라…….”

“다음에 마주치면 아는 척하기?”

“어…… 네!”

이 대화 자체가 소녀에겐 일생에서 기억에 남을 수도 있는 특별함이 될 것이다. 지영은 자신의 위치를 잘 알았고, 그걸 잘 이용했다. 좋아서 방방 뛰는 소녀를 소녀의 친구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잠시 봤다.

그래서 지영은 다 악수를 해줬다.

아주 기본적인 스킨십이지만 소녀들은 정말 너무나 좋아했다.

“저녁은 먹었어?”

“네네! 아니다. 아직 안 먹은 듯?”

“벌써 9시가 넘었는데 안 먹고 뭐 했어?”

“다이어트!”

합창하듯이 다이어트라고 하는데, 그 모습에 지영은 물론 어머니부터 양유진까지 전부 웃고 말았다.

“다이어트 안 해도 되겠는데요?”

용기 낸 양유진의 말에 소녀들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여자는 한평생 다이어트 해야한다구요!”

“맞아요! 저는 물만 먹어도 살쪄서 평생 해야 해요!”

“남치니가 안 그래도 요즘 살쪘다고 놀려서 안 돼요!”

“언니처럼 축복받은 유전자는 몰라요! 흥!”

반응이 아주 격렬했다.

그 반응에 용기를 내 말을 꺼낸 양유진은 당황해서 어버버했다. 소녀들의 이런 반응을 언제 그녀가 겪어본 적이 있겠나. 그러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톡, 톡톡톡! 가장 키가 작은 소녀가 손날로 친구들의 머리를 한 대씩 쳤다.

신장이 150 중반?

그 정도밖에 안 되는데, 그 친구의 행동에 다들 깨갱했다.

“언니한테 버릇없게.”

“미, 미안…….”

“나 말고 언니한테 해야지?”

“으, 응!”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를 꾸벅 숙이는 걸 보면서 지영은 좀 놀랐다. 아까 방방 뛰는 모습은 같았는데, 지금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게다가 눈치도 빠른지 지영의 눈빛을 읽고는 금방 원하던 대답을 줬다.

“제가 얘들 공부 알려주거든요. 오늘 여기에 온 것도 원래 공부 때문에 온 거예요.”

“아……. 공부 잘하는구나?”

“네! 희수 전국에서도 상위 0.1%! 원래 민사고 가려고 했는데, 그냥 일반 진학한 애예요.”

민사고.

공부 잘한다는 애들만 간다는 학교다.

저 나이 때 공부는 사실 무기이면서도, 약점이었다. 공부 잘하는 애들을 샌님 취급하면서 따돌리고 그러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었다.

“너 멋진 애구나?”

“아니에요. 애들 공부 봐주면서, 친구들 부모님이 저도 도와주니까 괜찮아요. 서로 윈윈?”

“아, 그래?”

“네.”

별거 없다는 듯이 대답했지만, 지영은 거기서 아주 중요한 것을 포착했다.

‘공부를 알려주는 대가를 받는다는 거지?’

그럼 대가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도 고작 고1인 이 애를 과외 선생님처럼 쓰진 않을 테니까, 아마 도와주는 건 다른 방식일 거다. 현금이 오간다고 해도 뭐, 그건 그들의 사정이니 지영이 신경 쓸 건 아니고.

그나마 다행으로 보이는 건 특별한 관계는 분명한 것 같은데, 다른 소녀들이 저 희수라는 애를 무시하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

“언제부터 친구였어?”

“저희 초중고여!”

“오, 초등학교 때부터?”

“네! 다 같은 학교 나왔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친구!”

“멋지네.”

“에이, 오빠도 친구들 있잖아요! 멋진 친구들. 아 맞다. 저는 성진 오빠 팬인데, 사인 힘들겠죠?”

역시 금방 가까워진 것처럼 다가온다. 지영은 이게 그리 부담스럽진 않았다. 아직 여물지 않은 애들이라 의도가 잘 보였고, 그 의도가 불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분간은 아무래도? 대신 나중에 같은 단지에 사는…… 친구는 이름이 뭐야?”

“저요? 저 마리! 임마리! 그래서 애들이 맨날 김말이라고 놀려요!”

“왜, 이름 예쁘기만 한데. 그럼 마리 통해서 전해줄게.”

같은 단지니까 경비실 같은 곳에 맡기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소녀들에게 그 정도 팬 서비스쯤은 충분히 해줄 수 있었다.

“언니, 언니. 언니는 화장품 뭐 써요?”

마리의 질문에 양유진이 잠시 눈을 끔뻑이다가 답했다.

“나?”

“네! 언니 피부 너무 좋아요! 어떻게 저렇게 하얗지? 네? 화장품 뭐 써요?”

“나……. 이거.”

양유진은 폰을 꺼내 자기가 쓰는 화장품을 검색해서 보여줬다.

“어, 이거 써요?”

“응. 왜?”

“저도 이거 쓰는데……. 이 언니 피부도 타고났나 봐. 힝.”

“아, 아냐. 그런 거…….”

티가 나게 풀이 죽는 마리 때문에 또 양유진이 당황해서 손을 파닥였다. 일밖에 몰랐던 그녀는 여고생의 상대가 아니었다. 지영은 마리가 양유진을 놀리려고 한 말이라는 걸 알지만 나서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히, 여기엔 중재자가 한 명 있었다.

“자, 이제 여기까지. 공부해야지.”

“어? 희수야. 오늘 그냥 넘어가는 거 아니었어?”

“누가 그래? 난 받은 만큼 할 건데?”

“와…… 희수, 독하다, 독해.”

“칭찬 고마워.”

칭찬 아니거든!

합창하듯이 빽! 하지만 희수란 애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냥 일어나서 지영을 보더니 꾸벅, 고개를 숙였다.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불편하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했어요.”

예의도 제법 좋았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어머니는 물론 양유진도 얼굴에 가득 미소를 지었다. 지영과 더 있고 싶은 티가 역력했던 소녀들이지만, 저 작은 희수에게 깨갱, 반항도 하지 못하고 다시 자리로 끌려갔다.

“작은 애가 대단하네.”

“그러게요. 희수 재는 타고난 리더예요. 한결이 같은.”

“그지? 엄마도 그렇게 느꼈어. 자, 가자. 이제.”

소녀들이 마실 음료와 비스킷, 케이크 등을 대신 계산해준 지영은 바로 집으로 넘어왔다. 휴가 첫날이 그렇게 작은 이벤트 몇 개와 함께 저물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