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99화
399화. 천상계(14)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사실 지영이 양유진과 어떻게 만났는지, 강한결이 양지원을 어떻게 만났는지는 이미 세상 파다하게 소문이 난 상태였다. 이 얘기는 예전에 지영의 스캔들 이전에 양지원과 강한결 스캔들 때 이미 아예 연희 스포츠 차원에서 보도 자료를 만들어서 언론사에 뿌렸다.
양지원 선수 후원 건으로 처음 만났고, 서로 호감을 가지고 연락하다 연인으로 발전했다.
처음엔 강한결과 양지원만 저렇게 밝혔었지만, 사실은 지영도 저기에 끼어 있었다. 다른 게 있다면 강한결은 처음 양지원의 영상과 프로필을 보고 이미 마음을 빼앗긴 상태였다. 반대로 지영은 후원을 결정할지 말지, 양지원을 직접 보고 판단하려고 갔다가 양유진을 만났고, 마음을 빼앗겼다.
이러한 스토리는 이미 인터넷에 파다하게 돌아다녔다.
20년대 신데렐라 스토리 중 하나로 말이다.
그런데도 제작진이 물어보는 건, 풀스토리가 궁금했던 것 같았다. 아직은 어리다. 결혼할 사이도 아닌 아직 앞날이 창창한 청년이다. 아니, 창창한 정도를 넘어서서 진짜 어마어마한 인기를 구가하는 청년이다. 그런 청년이 선택한 짝은 지극히 평범했다.
도대체 왜?
라는 의문은 스캔들이 터지고 지영이 인정한 날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온라인 곳곳에서 일어났다.
양유진은 객관적으로 본다면. 그래, 미인은 미인이다.
소박한 그녀의 행동거지와 외모, 옷을 보면 다들 별론데? 하기 바쁘지만, 전문가들은 알고 있었다. 양유진이 꾸미지 않아서일 뿐이지, 꾸미면 분명 다를 거라고. 하지만 그런 거야 상관이 없었다.
양유진은 한동안 파파라치가 엄청 따라다녔다.
그리고 그녀가 정말 꾸미지 않는다는 게 밝혀졌다. 아니, 꾸미지 않는 게 아니라, 꾸미지 못했다. 화장도 해본 적이 없어서 할 줄도 모르는, 그런 편이었다.
“지영아?”
“아, 네.”
“혼자 실실 웃어서, 나 너 순간 얘가 드디어 미쳤구나. 했잖아?”
“하하, 죄송해요. 언제 처음 만났냐고 물어보셨죠?”
“응. 궁금해, 궁금해! 은하계 대스타 강지영의 러브 스토리!”
“하하. 근데 은하계는 뭐예요?”
“너 지금 인터넷에서 그렇게 부른대. 아까 일 때문에.”
“아하.”
한유진이 어깨춤을 추며 한 대답에 지영은 대충 수긍하고는 말을 이었다. 아니, 이어가려고 했다.
“아 잠깐만요. 이거 말하려면 필연적으로 한결이 의견을 들어봐야 하거든요? 잠깐 전화 좀 해볼게요?”
“어, 그래? 얼른, 얼른 해봐 그럼!”
“네.”
지영은 폰을 꺼내 강한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지영아.
강한결이 전화를 받자 바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곤 허락을 구했다.
“그래서 네 얘기 좀 해도 돼?”
-어, 물론이지. 해. 괜찮아.
“지원이는? 혹시 안 물어봤지?”
-물어보고 왔어. 괜찮아. 말해도 돼.
“정말?”
-응. 지원이도 뭐 종종 방송 나가면 내 얘기 하는데. 서로 어느 정도는 오픈하기로 했어. 걱정하지 말고 해.
“그래, 고맙다.”
-고맙기는. 나도 할 건데, 네 얘기. 하하.
피식.
“그래라.”
-응, 어 음식 나왔다. 끊는다. 이따 봐.
“어, 잘 놀다가 와.”
-응.
강한결과의 통화를 끝낸 지영은 자신을 반짝이는 눈으로 지켜보는 청중 여섯, 아니, 열댓 명에게 스토리를 얘기해 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양지원 선수는 알죠?”
“응, 알지. 잘 알지. 우리 피겨 유망주.”
“네. 그리고 제가 연희 스포츠에서 선수들 후원하는 것도 아시죠?”
“어! 그것도! 아 맞다. 그건 밤에 하기로 했지. 일단 그것도 알지. 그래서그래서?”
“하하, 그만 보채요. 알아서 얘기해 줄 테니까.”
지영은 청중의 기다림에 충실히 보답하지 않았다.
일단 차로 목을 축이고, 주변을 슥 둘러보고, 그렇게 시간을 끌었다. 이렇게 하면 아마 편집할 때 PD는 어깨춤을 출 것이다. 자막 넣기도 좋고, 지영의 모습을 이렇게, 저렇게 연출하기도 좋고.
뜸을 들인 지영은,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한유진의 스파이크가 날아올 것 같아서 얼른 본론을 꺼냈다.
“아는 분을 통해서 양지원 선수 프로필을 먼저 받았어요. 영상과 장래의 유망성 등등, 이런 걸 종합적으로 정리해서 보내준 정보였어요. 이걸 통해서 저랑 한결이는 양지원 선수를 후원할지 말지를 정하면 되는 거였거든요. 실력이야 뭐 잘 아시다시피, 엄청 잘하잖아요. 전성기가 지나갈 때쯤에 후원을 받아서 뒤늦게 세계 대회에 섰는데, 벌써 탑 수준인 걸 보면. 그런데 그런 재능이 보인다고 해도 문제가 있었어요.”
“어? 문제? 무슨 문제?”
“저희가 재능만 있다고, 아무나 막 지원하진 않거든요.”
“그럼? 아, 너희 인성 엄청 본다고 했지?”
“네. 인성을 제일 중요하게 봐요. 솔직히 훈련하는 모습만 보면 싹이 보이잖아요? 성질 드러운 것들, 이런 것들이 저도 모르게 나오니까.”
지영의 말에 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고난 성질, 후천적으로 비뚤어진 성격 등은 감추고 싶어도 오래 감출 수 없었다. 훈련하다 보면, 거의 본능적으로 그런 모습이 툭툭 튀어나올 때가 있었다.
“음, 천성이 양아치인 것들은, 훈련 중에도 양아치 짓을 하게 되어 있어요. 저나 한결이나, 여기 석이나. 제 친구들이나. 그리고 운동계에 오래 계셨던 선배님들도 그건 잘 아시잖아요. 그리고 비단 이게 운동계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도 관찰된다는 것도.”
마지막엔 작가와 VJ, 지영을 따라온 조연출 등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양아치는 티가 난다.
특히, 지가 위에 서게 되는 순간부터 더더욱 진하게 난다. 그건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된 인간은 제대로 된 품행을 보이고, 양아치는 그냥 양아치인 티가 난다. 운동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지영은 그걸 초, 중, 고등학교 운동을 하며 질리게 겪었다.
시기와 질투. 그게 일단 기반으로 깔리면 상대는 지영의 발을 차고, 이상한 반칙을 하고, 제 마음대로 풀리지 않으면 욕을 하고, 이런 식이었다.
지영이 그런 걸 겪었으니, 다른 친구들은?
다들 질리게 겪었다. 정말로 지긋지긋하게 말이다. 그래서 후원하기 전에 누군가는 가서 인성을 확인했다. 양유진을 만나러 간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아 뭐야, 얘기가 왜 그쪽으로 세?”
“하하, 들어봐요. 연관이 있거든요.”
“아 그래?”
“네, 어쨌든 저는 그런 인성을 보러 간 건데, 한결이는 아니었어요.”
“응? 아니었다니?”
“한결이는 이미 영상과 프로필을 보고, 어느 정도 마음이 가던 상태였던 거죠.”
“어머!”
제일 좋아하는 얘기가 나왔다.
강한결이 먼저 반했다는 얘기가 나오자 꺄아아! 하면서 나이에 무색하게 소녀처럼 굴며 좋아하는 배구팀을 보며 지영은 방송 분량 좀 나오겠단 생각을 저도 모르게 해버렸다. 다른 친구들이 들었으면 이 시청률의 귀신! 이러면서 놀렸겠단 생각도 연이어 들었다.
“그래서그래서?”
다들 눈이 아주 그냥, 미치도록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서 양지원 선수 훈련하는 모습 보고, 훈련이 끝나고 미팅을 하게 됐죠. 그때 한결이는 이미 양지원 선수한테 어느 정도 반해 있었어요.”
“와…… 첫눈에 반한 거네?”
“네.”
“그럼 너는?”
“저요? 저도 뭐…….”
하하.
여기도 스토리가 있었다.
“저도 비슷했죠. 유진 누나는. 음, 아. 양유진 누나요. 한유진 말고.”
“야 이씨! 맥 끊어지게!”
한유진이 주먹을 들으며 때리는 시늉이 아니라, 진짜 퍽 소리가 나게 때렸다.
“어 이거, 되게 민망하네요. 민망해서 그래요.”
“좀 그렇지? 근데 너 한결이 얘기는 다 했다? 여기서 네 얘기만 안 하면 진짜 좀 그럴걸?”
“아…….”
이런, 그녀의 말이 맞았다. 한결이 얘기는 고주알미주알 부는 것처럼 다 입을 털어놓고, 자기 얘기만 부끄럽다고 쏙 뺀다? 욕먹기 딱 좋았다. 그런데 확실히 양유진 얘기를 꺼내는 건 좀 쑥스럽긴 했다.
그리고 이런 지영의 상태를 파악한 작가 둘이, 대화를 잠시 멈췄다.
“잠깐, 잠깐 쉬었다가 갈게요!”
“어? 왜요?”
“지영 씨 좀 도와주려고요. 5분이면 되니까, 잠시만요. 리얼이라고 하지만, 이럴 때 일하라고 저희 작가진이 있는 거니까요. 후후.”
작가들은 그렇게 말하고 5분 만에 정말 후다닥 질문을 뽑아냈다. 그래도 방송 짬이 되는 한유진이 작가들이 뽑아준 질문으로 지영을 편하게 만들어줬다.
“그럼 너도 첫눈에 여자친구한테 반했어?”
“네, 뭐 저도 비슷했던 것 같아요.”
“어떤 모습에? 유진이. 아, 한유진 말고 양유진. 흐흐. 유진이 어떤 모습이 좋았어? 수수한 모습?”
“음…… 그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양유진의 모습은 많이 해진 가방에 카키색 외투, 통이 컸던 청바지 차림이었다. 어떻게 봐도 패션으로 봤을 때는 정말 꽝이었다. 수수하기도 했지만, 그런 모습에 호감이 갔던 건 아니었다.
“그럼?”
“너무 대조적인 모습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대조적?”
“네. 지원이와 유진 누나의 모습이, 정말 달랐거든요. 이런 말 하면 좀 그런데…… 저는 거기서 헌신과 희생을 봤어요.”
“아…….”
“그래서 저절로 엄마가 떠올랐어요. 왜 남자는 엄마 같은 여자가 이상형이고, 여자는 아빠 같은 남자가 이상형일 때가 많다고 하잖아요? 제가 딱 그랬나 봐요.”
“아아, 그래. 그런 경우 많지. 나도 아빠 같은 남자가 처음엔 이상형이었어.”
나도, 나도나도.
배구팀 선배들이 지영의 말에 호응을 해줬다. 실제로 지금 한 말에 거짓은 거의 없었다. 양유진도 아는 얘기인데, 지영은 양유진의 희생과 헌신에서 어머니가 떠올랐고, 그래서 반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러자 양유진은 오히려 좋아했다.
‘자기가 살아온 길이, 여타 엄마들과 같다면 그래도 틀리진 않았다는 뜻이니까 좋다고 했지.’
살아온 환경 때문에 그녀의 사고방식은 확실히 일반적이진 않았다. 이제는 지영을 만나 그래도 좀 나아지고 있긴 했다. 지영은 그녀가 평범한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역시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유진이가 진짜, 진국이긴 하지.”
“어, 언니 얘기?”
“아니, 나 말고. 왜 내가 유진이랑 밥도 먹고 한댔잖아? 현정이 제자 지원이랑 같이. 그때 보면, 얘가 맹한데. 묘하게 단단해. 그러면서 중심이 흩어지지 않아. 아 맞다. 전에 내가 그렇게 물었던 적이 있거든. 지영이 연예인이고, 세계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남자인데. 안 불안하냐고.”
어?
그런 얘기는 못 들었는데?
지영의 눈빛이 홱 변하자, 한유진이 씩 웃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궁금하지?”
“네. 뭐죠? 어, 이건 내가 못 들었던 얘긴데?”
“후후, 뭐 다 알려고 그래? 서로 모르는 얘기도 있는 거지.”
“아니, 그래도요. 그래서요? 그래서 유진 누나가 뭐라고 했는데요?”
지영의 달라진 반응에 배구팀 선배들이 재밌다는 듯이 쿡쿡 웃었다.
“지영 씨. 연기 티 나요!”
“아……. 지금 예능 중인데, 안 도와주시네요?”
지영의 말에 양효선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언니 의기양양한 건 못 보겠어서요!”
“야아! 넌 누구 편이야!”
“은하계 대스타 편!”
“야이 씨!”
투닥투닥!
아 언니 아퍼여!
저렇게 투덕거리는 한유진과 양효선, 그리고 그걸 보며 낄낄거리는 배구팀을 보자 참 부럽단 생각이 들었다.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데도 선후배 사이가 저렇게 좋았다. 순간 지영은 올림픽 금메달 따고, 축하한다고 연락해준 선배는 손에 꼽았다.
안호진, 구혁을 포함한 셋.
이우진은 선배가 아니니 패스고.
그런데 배구팀은 정말 선후배 관계가 끈끈해 보였다. 그게 보기 좋아 보여서, 괜히 부러웠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선배는 없는 대신, 지영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이 부러움을 일시에 없앴다.
“그래서 언니, 유, 진, 이가 뭐라고 대답했어요?”
“어? 뭐지? 왜 유, 진에 악센트를 주지?”
“넘어가요. 넘어가. 그래서 뭐라고 그랬냐고요.”
“믿는데. 그냥.”
“네?”
“그냥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래. 그렇게 대답하는데 눈빛이 조금도 흔들림이 없더라. 맹하던 애가, 단호하고 다부져지더라. 지영이 얘기하니까. 놀랐어. 그 흔들림 없는 신뢰에. 그리고 그 신뢰를 줬을 지영이한테도 놀랐고.”
한유진의 말에 오오, 하며 다들 지영을 보며 대견하단 눈빛을 보냈다.
지영은 그 눈빛에 좀 쑥스러워지긴 했다. 확실히 연인 얘기를 하는 건 천하의 지영이라고 해도 무덤덤하게 받아넘기기는 힘들었다.
“자! 그럼 궁금한 건 어느 정도 풀렸을 테니까 지영이 얘기는 이제 그만!”
“아 왜요!”
“그만그만! 지영이도 이제 좀 쉬어야지. 이제 너네도 좀 떠들어라. 놀러 왔어?”
“엥? 아니, 지영이 얘기하게 시킨 건 언닌데요?”
“나 아닌데? 저기 제작진이 시킨 건데? 제작진이 시켰어요! 지영이 쥐어짜라고!”
도리도리.
자기들은 절대 아니라며 하얗게 질려 손과 고개를 격하게 젓는 조연출과 작가들의 모습에 다들 빵 터졌다.
제작진은 깨달았거든.
오늘 일로, 강지영은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래서 제작진 단톡방엔 이미 공지가 하나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절대, 강지영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 것!
그래서 작가들은 사실 지영의 얘기를 더 뽑아내고 싶은데, 한유진이 저렇게 지영의 편의를 봐주는 것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존재.
지영은 진정한 의미의 언터처블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