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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98화 (398/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98화

398화. 천상계(13)

목발을 쓰는 지영을 배려해서 한유진은 노천카페를 가려고 했다. 그러나 지영은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어, 왜?”

“저 많이 움직여야 해요.”

“움직여야 한다고? 아픈데? 아아, 살 빼려고 그래?”

한유진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 출국 얼마 남지 않아서 슬슬 몸 관리도 해야 해요. 먹는 것도 노는 언니들이 마지막.”

“아…… 그래. 힘들겠다. 그럼 어디로 가지? 가고 싶은 곳 있어?”

“이쪽에 편한 트래킹 장소는 없죠?”

목발을 짚고 움직여야 하니, 가능하면 길이 평평한 곳이 좋았다.

지영이 고개를 돌려 이쪽으로 붙은 작가에게 묻자, 작가는 얼른 자료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다 산이나 분지, 이런 곳이에요.”

“이런.”

“시장은 힘들겠죠?”

“시장은 간 팀 많지 않아요?”

“네. 그렇긴 한데…….”

시장은 이미 우정혁과 장세리 팀이 출발했다. 마침 오늘 장이 서는 날이라서 한 팀은 장서는 곳으로, 한 팀은 시장으로 향했다. 지영까지 그쪽으로 가면, 한곳에 너무 팀이 몰린다. 그러면 사람들도 몰릴 거고, 상인들에게 폐를 끼칠 가능성이 매우 농후했다.

“아 그럼 어디로 가지?”

한유진은 폰을 꺼내 이곳저곳 검색하더니, 한 곳을 보여줬다.

“야야, 여기 어때? 노천카페는 카펜데. 근처에 이렇게 걷기 좋게 해놨는데.”

“어, 좋네요.”

이 정도면 확실히 나쁘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야 하는 것도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어떻게 됐든 지금은 몸을 좀 써야 했다.

“그럼 우리 팀은…… 뭐야, 배구팀 전부 같이 가는 거야? 우느님이랑 세리 언니 따라서 시장으로 아무도 안 갔어?”

“언니, 우린 슈퍼스타랑 있을 거예요.”

대표로 양효선이 한 말에 같이 온 배구팀 선수들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한유진은 그냥 피식 웃고 말았고, 지영을 챙기려고 남은 황석까지 총 8인이 차 두 대로 나눠서 카페로 이동했다.

카페는 현 위치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렸다.

시장 팀과는 반대로 달려서 도착한 곳은 확실히 손님에게 친절한 곳은 아니었다. 주차장에서 살짝 경사가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야 하는데, 평범하게 올라가면 10분이면 되는 길은 지영은 20분이 훌쩍 넘게 걸려서 걸었다.

“괜찮아?”

한유진의 물음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별로 힘들지는 않았다. 목발도 익숙해져서 그다지 힘들진 않았다. 그러나 그래도 운동은 제대로 됐다. 평소에는 잘 쓰지 않던 근육들이 쓰이니까, 운동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움직이고 나니까 아침에 먹었던 게 조금은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영이랑 석인 뭐 마실래? 누나가 살게.”

“저는 음, 티 종류로요.”

“저도 똑같이요.”

지영이랑 황석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한유진이 일어나자 양효선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언니! 우리는요!”

“야! 너넨 나보다 잘 벌잖아!”

“아니 그렇게 따지면 지영이도 잖아요!”

“아 그러네? 아 몰라! 그냥 따라와 니들은. 이것저것 막 사게.”

“넵!”

양효선과 배구팀이 일어나 한유진을 따라 들어갔다. 확실히 뭔가 남자들과는 텐션 자체가 달랐다. 특히 양효선과 김이진 등은 나이가 제법 있는데도 굉장히 젊은 느낌이 났다.

“아 오늘 진 좀 빠지겠는데?”

“누님들 텐션이 높긴 높다.”

“잘못 끌려 온 느낌이 팍팍 든다.”

지영의 말에 황석이 빙그레 웃었다. 황석의 입장에선 지영이 이렇게 곤란한 모습을 보는 것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지영은 그런 기색을 눈치챘지만, 그냥 아무런 말도 안 했다. 10분 뒤, 한유진이 빵과 떡을 가득 챙겨서 나왔다.

“자, 먹자!”

“어, 음. 그림의 떡인데요?”

“아하? 맞네. 그럼 우리만 먹자!”

한유진은 그런 거 눈치 보는 성격이 아니었다. 아니면 일부로 지영이 못 먹는 그림을 만들거나, 아니면 체중 빼기는 내일부터란 말을 실행하기를 바랐거나. 아니면 대본상 이런 그림이든가.

잘도 먹었다.

산은 아니어도 언덕처럼 쌓여 있던 빵과 떡이 배로 사라지는 데 걸린 시간은 딱 10분 정도였다. 운동선수이다 보니, 이 정도 열량은 가볍게 운동 한 번이면 태워질 정도니 먹는 데 주저함도 없었다.

그렇게 간식을 태우고 나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시작했다.

“야야, 효선아. 저녁에 얘기할 거 빼고 뭐 스토리 좀 없어?”

“스토리요? 에이, 언니 우리랑 뭐 거의 계속 붙어 있었잖아요?”

“엉, 그러긴 했지. 그럼 없어?”

“저는 뭐…… 야, 너희 뭐 없어?”

양효선의 질문에 정지은이나 김이진 등이 잠시 고민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있으면 지영이가 응원 온 것 정도? 시합 스토리는 어차피 저녁에 할 거라면서요.”

“에이, 그럼 지은이 너 남친 얘기는?”

“앗, 안 돼여! 일반인이라서…….”

“야아! 그럼 아무것도 없어? 야 배구 왜 이래? 언제부터 이렇게 고요한 스포츠였어? 야 라떼는!”

“아 언니 라떼는보다 인경 언니 라떼는 더 셌거든요?”

“하, 그건 그랬지. 아 됐어. 석아. 넌 여자친구 있지?”

어, 네에?

훅, 급커브로 휘어 들어온 질문에 황석이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황석은 용케 금방 평정을 되찾았다.

“네, 저는 있습니다.”

“소꿉친구라며?”

“부모님끼리도 알고 지내던 사이셨어요. 그래서 어릴 적에 거의 같이 붙어 다녔거든요. 그러다가 제가 운동하면서 좀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반짝반짝.

작가들은 물론 연애 얘기는 사족을 못 쓰는 게 또 여자라서, 눈을 빛내며 황석의 얘기에 몰입했다. 그리고 황석도 눈치가 있어서 방송을 위해서 어느 정도 오픈할 생각인 것 같았다.

“떨어지면 언제? 초등학교 때?”

“아니요. 중학교 때요. 그땐 합숙을 시작했으니까요.”

“아하? 그래서그래서?”

“하하, 은정이가 갑자기 숙소 앞으로 나오더니 대뜸 편지를 내밀더라고요.”

“헐! 연애편지?”

꺄아아!

그러나 그건 또 아니다.

“아니요. 자기가 연애편지를 받은 걸, 저한테 내민 거예요.”

“아니, 왜? 왜왜?”

반짝반짝.

눈빛들이 아주 그냥…… 오늘 하루 중에 가장 초롱초롱했다.

“자기, 이거 뜯어서 보냐고. 저한테 묻더라고요.”

황석이 뒤통수를 긁으며 순진하게 말하자 다들 꺄아아! 하면서 소란을 떨었다. 저기엔 한점 거짓말이 없었다. 한은정은 굉장히 진취적인 성격이었다. 원하는 것은 스스로 쟁취하는 스타일, 그게 한은정이었다.

“꺄아아! 여자친구가 그랬어? 그래서그래서?”

“저도 눈치가 있으니까요. 뜯지 말라고 그랬죠. 아니, 확 뺏어서 쫙쫙 찢어서 돌려줬어요.”

“와 상남자! 이야, 석이 남자였네?”

“하, 아하하.”

황석이 어색하게 웃자 동생 보듯 뿌듯하게 보던 한유진의 시선이 이번엔 지영에게 넘어왔다. 그러면서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으로 변했는데, 지영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니 그런데, 우리만 얘기해요? 누나들은요?”

“야! 여기 셋은 결혼했고, 나 포함 셋은…… 남친 없거든?”

“썸은 있을 거 아니에요?”

“어…….”

어?

지영이 툭 던진 말인데, 그냥 던진 돌인데, 왜 갑자기 미혼 누님 셋이 고개를 푹 숙이는 건데? 왜, 손톱으로 테이블을 북북 긁는 건데?

“아…….”

“아……? 와, 지영이 탄식 들었어? 지는 사랑하는 사람 있다 이거지!”

한유진의 말에 지영은 그냥 하하 웃고 말았다.

사실 지영은 예능에 나오면서 양유진에게 미리 허락을 맡았다. 아마 분명 자기 얘기를 물어볼 건데, 얘기해도 되냐고. 실제로 작가진과 인터뷰할 때 여자친구 얘기를 조금 해줄 수 있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래서 물어봤고, 양유진은 흔쾌히 수락했다.

그녀는 강한 여성이었다.

숨어서는 답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기의 일은 물론, 자신의 현실에 언제나 당당했다. 하는 행동 보면 비 맞은 강아지가 생각날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안 그랬다. 생활력도 생활력이지만, 그녀는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결정적인 상황에선 항상 다부지게 행동했다. 그래서 특정 상황에서만큼은 정말 억척스럽고, 강철같이 강했다.

그녀는 지영과 연애를 시작하면, 자신의 처지가 언젠가 들켜서 전부 밝혀지게 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각오하고, 지영과의 연애를 시작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지영이 평소 안 나가던 예능에 나가면 자신에 관한 질문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괜찮아요! 저는 떳떳하니까!’

양유진이 했던 대답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어느 정도는 얘기할 생각이었다.

“표정 뭐야? 왜 막 웃어?”

한유진의 물음에 지영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별거 아니에요.”

“그래? 그럼 진짜, 내가 딱 물어본다. 유진이 얘기해도 돼?”

한유진은 양유진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성은 다르지만 이름은 같은 것도 있었고, 지영의 연인에 친한 동생 곽현정의 제자가 양지원이라서 지영 없이 몇 번 만나서 밥도 먹고 그랬다고 했다. 이미 둘은 상당한 친분이 있었다. 하지만 방송에서 대놓고 얘기하는 건 당연히 예의가 아니었다.

그래서 말하기 전에 지영에게 허락을 구했고,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 나오면서 유진 누나한테 연락 안 했어요?”

“어, 깜빡했어. 얘네랑 연락할 것도 많고 해서. 지금이라도 해볼까?”

“아니요. 유진 누나가 해도 된댔어요.”

“어 진짜?”

“네.”

“어디까지?”

“어…… 아니, 어디까지 알고 싶은 건데요?”

지영의 말에 흐흐, 하고 웃는 한유진.

그런 한유진의 음흉한 표정을 카메라 세 대가 찍었다. 예고편에 쓰이든지, 본방에 쓰이든지, 어딘가에 저 표정은 반드시 쓰일 것이다.

“솔직히, 현대판 신데렐라로 최고가 현재 유진이잖아. 아, 한유진 말고 양유진. 히히. 그러니까 궁금해하는 사람도 정말 많거든.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마음으로 좋아하게 됐는지, 만나면 어떻게 데이트하는지, 이런 거? 솔직히 궁금해하는 사람 천지잖아. 그러니까 조금만 말해주라. 응?”

“아니, 말해도 된다고 했다니까요?”

“그러니까 어디까지?”

“누나가 말한 것 정도는 뭐…….”

“정말 괜찮대?”

“네.”

지영은 차로 목을 축이고, 양유진 얘기를 조금씩 풀어놨다.

“유진 누나,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에요. 누나가 어떤 사람인지야 뭐…… 예전에 스캔들 났을 때 탈탈 털려서 다들 알고 계실 거예요. 그런데 누나 그런 자기 현실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에요.”

“아 정말?”

“네. 지원이 알죠? 누나는 지원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제가 만났을 때부터. 그런 각오가 가능한 사람이, 약한 사람일 수는 없잖아요.”

“아…….”

그럼,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어요?

파바바박!

작가가 휘갈겨 쓰다시피 한 문장이 적힌 스케치북을 듣자, 한유진이 툭 양효선을 쳤다. 그리곤 작가의 스케치북을 보란 신호를 보냈다. 슬슬 양효선도 은퇴할 시기인데, 아무래도 방송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럼, 여자친구는 언제 처음 만났어요?”

어색하지 않은 질문.

지영은 그 질문을 받고 양유진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늦게 도착해 헐레벌떡 들어온 양유진. 정말 어디 하나 특별한 모습은 없었다. 화장은커녕, 오히려 먼지가 살짝 묻어있었다. 그래서 양지원이 휴지로 닦아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자리에 앉아 있던 양유진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초조한 모습이었다.

후원이 안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했었던 건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는데, 지영은 그때를 잊지 못했다. 관리가 조금도 안 된 손가락. 그녀의 나이는 이제 막 성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한창 꾸며도 부족할 때인데, 수수하다 못해 관리 자체가 안 된 그녀의 모습은 그 자체로도 충격이었다.

희생.

가족을 위해, 나를 갈아 넣는 희생.

그 희생은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고.

지영은 그 모습에 그냥, 반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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