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80화 (380/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80화

380화. 휴식(1)

올림픽 유도 레이스는 끝났지만, 올림픽 전체가 끝난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귀국 일정도 아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지영은 불편해도, 다른 선수들 응원가기로 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났기 때문에 마음이 편했다.

개인행동은 힘들지만, 그래도 팀 스태프들이 붙어 가족끼리 같이 움직일 수 있게 전기정 감독은 배려를 해줬다. 대신 연락은 유기적으로 시간마다 해주는 걸로. 이렇게 융통성을 발휘해 주신 건데, 사실 이는 당연했다.

황금세대다.

전원 금메달이라는 거대한 업적을 세운.

이런 애들이 전부 뭉쳐 다니면? 그럼 뭘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사인 요청도 요청이지만, 구름처럼 팬덤을 몰고 다니는지라 다른 선수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그냥 찢어놓는 게 나았다.

“은진 씨. 경호 업체와는 확실히 계약된 겁니까?”

“네, 감독님. 팀당 전부 붙을 거예요. 그리고 다른 대표팀 분들도 당연히 붙을 거고요. 가이드도 붙으니까, 이틀간 축제 즐기는 데 무리 없으실 겁니다.”

“어후, 역시 확실하시네요. 하하. 그럼, 애들은 부탁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고마워요.”

“고맙긴요. 이게 제 일인데요. 아이들은 네, 맡겨두세요.”

미리 언질을 받은 임은진은 당연히 현지 경호 업체를 섭외했다. 병원에서 지영의 경호는 신경 써주니, 나머지는 전부 따로 경호가 붙었다. 이것도 임은진으로서는 당연한 결정이었다. 지영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다른 넷은?

지영만큼은 아니어도, 재능 자체로만 따지면 다들 타고났다.

이성진은 예능과 잘 어울리고, 임효중은 춤과 노래를 타고났다. 강한결과 황석은 지영처럼 연기를 타고났다.

각자 결이 다르지만, 분명 연기적 재능은 임은진이 보기에도 군계일학이었다.

다만 그게 강지영이란 거대한 인물에 가로막혀 잘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이런 아이들이 나중에 서른이 넘을 때까지 연기를 계속 공부하고, 접하면서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면? 적어도 장르를 대표하는 배우가 되리라, 임은진은 확신했다.

그러니 이 정도 케어는 매우 지극히, 당연했다.

그런 당연한 케어를 보면 또 다른 선수들이 박탈감을 느낄 수 있으니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 정도 서비스는 아이들의 명성을 생각해서라도 당연한 일이었다.

대표팀이 먼저 숙소를 나섰다.

지영도 병원을 나와, 차 안에서 부모님과 양유진을 만났다. 지영은 오늘 갈 곳이 있었다. 어머니도 당연히 같이 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어? 어머니는 수영 경기장 가고 싶으세요?”

“응. 유진이랑 그쪽으로 가려고. 안되니?”

“아니요. 안 되긴요. 당연히 되죠.”

그렇게 대답한 지영은 양유진을 바라봤다. 그녀는 차분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언제나 한결같던 양유진의 모습이었다.

“미안해요. 헤헤.”

“미안은요. 어머니 잘 부탁드려요.”

“넵!”

양유진은 지영과 데이트……를 당연히 못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했다. 왜? 강지영의 연인이다. 현실판 신데렐라. 정말로 드문 케이스였다. 그런 만큼 질투도 많이 받았다. 그녀가 SNS를 안 해 계정조차 없어 다행이지, 만약 있었으면 진짜 욕으로 점철됐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그래도 지영과 아직은 함께 다니기는 힘들었다.

그걸 생각하면 어머니랑 함께 가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도 지영의 인기가 부담스러운 기색이었고. 지영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임은진은 미리 알고 있었는지, 티켓을 두 사람에게 건네줬다.

“무슨 일 생기면 꼭 연락해 주세요?”

“알았어, 아들. 아들도 구경 잘하고!”

“네.”

수영 경기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어머니와 양유진을 내려주고, 지영은 잠시 경기장을 향해 가는 어머니와 양유진을 바라보다가 배구 경기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수영 경기장에서 배구 경기장은 크게 멀지 않았다.

경기장에 도착한 지영은 지하 주차장에서, 목발을 짚고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도쿄에서도 역사를 썼던 여자 배구.

결과보다 과정이 빛난 정말 특수한 상황을 겪은 게 여자 배구다. 그 중심에는 물론 배구계의 메시라 불리는 김인경 선수가 있었다.

캡틴.

그 의미에 온전히 부합되는 배구의 천재. 지영보다는 한참 선배님이고, 선배라서가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존경하는 사람이다. 지영과는 전혀 다른 길을, 묵직하고 우직하게 걸어 대표팀을 4강까지 끌고 간,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레전드 선수였다.

지영은 마침 오늘 경기가 있는 여자 배구 경기장을 찾았다. 그런데 사실, 올만 한 곳이 여기밖에 없었다. 지영이 유일하게 연관이 있는 종목은 몇 안 된다. 양지원의 피겨, 장세리 대표님의 골프, 그리고 한유진의 배구. 이렇게가 전부였다.

그중 골프는 아직 시작 안 했고, 피겨는 동계 올림픽 종목이다.

따라서 일정이 맞는 건 배구밖에 없었다. 마침 다행히 오늘 1회전 경기가 열린다. 심지어, 상대는 일본이다.

1라운드 격돌.

그런 중요한 경기이기에 응원할 겸 지영은 배구 경기장을 찾았다.

중계석과 제법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은 지영은, 폰으로 한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지영아!

“누나 중계석에 없네요?”

-어? 너 경기장 왔어?

“네, 지금 막 도착.”

-아! 나 지금 메컵 중이야! 빨리하고 갈게!

“아니요, 천천히 와요.”

아직 경기는 시작할 기미조차 안 보였다. 선수들이 나와서 몸이라도 풀면 그걸 보면서 중계해야 하는데, 지금은 다른 팀 경기가 한창이었다. 도쿄에서 한국을 박살 냈던 브라질이, 그때 자신들을 박살 냈던 미국에게 이번에도 여지없이 찢겨나가고 있었다. 미국은 올림픽 2연패를 노리는 팀으로, 애초에 세계에서 적수가 없는 절대 강자였다.

그런 미국이 브라질을 갈치조림 살 바르듯, 빠르게 확실하게 발라버리고 있었다. 이미 세트 스코어는 2대0이고, 점수도 20대 10으로, 미국의 승리가 확실해 보였다. 지영은 그런 경기를 가만히 구경했다.

운동에 종사하는 인간이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지만.

‘역시 난 운동이랑은 참 안 어울려…….’

보통 운동선수는 자기 종목이 아니더라도, 운동 자체에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스포츠란 것에 진심이지 않은 이상은 대성 자체가 힘들다. 하지만 지영은 정말, 딱 유도 한정이었다.

지금 구경 중인 경기가 다른 나라 경기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종목 자체에 매력은 크게 느낄 수 없는 지영이었다. 구기 한정 정말 몸치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는데, 태극마크가 수놓아진 체육복을 입고 나와 선수단이 나와 몸을 풀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리시브, 토스? 그런 연습을 잠시 보고 있는데, 따각, 따각! 굽 소리가 거칠게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정장에 풀메로 무장한 한유진이 보였다.

“누나는 가뜩이나 크면서, 굽까지 높은 걸 신었어요?”

“이게!”

주먹을 쥐었다가, 다시 팔을 활짝 벌리고 오는 한유진. 행동에 담긴 뜻이 너무 명확해서 지영은 군말 없이 그걸 받아줬다. 지영도 작은 키가 아닌데, 워낙 커서 얼굴이 목에 닿았다.

토닥토닥.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역시 선수였기에, 위로 자체에 담긴 울림이 달랐다. 가볍게 포옹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 그녀는 건강부터 물었다.

“발은 어때? 방송에선 너 막 수술할 수도 있고 뭐 그렇게 떠들던데.”

“수술은 했어요.”

“어? 진짜?”

“네, 근데 뼛조각 작게 떨어져 나온 거 카테터? 그거로 빼는 수술이라 진짜 얼마 안 걸렸어요. 짧게 수술했으니 수술이 아니라 시술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수술은 수술이지. 그런 그거 빼고 괜찮고?”

“네, 발목 인대도 한 달 정도 잘 쉬면 괜찮아질 거래요.”

“후아, 다행이다.”

한유진은 가슴에 손을 얹고는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걱정했었다는 마음이 정말 잘 느껴져서, 지영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회귀 이후 지영은 몇 안 되는 인연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인연들이 정말 전부,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다.

“맞다. 금메달은? 가져왔어?”

“네. 여기요.”

혹시 몰라 챙겨왔다.

“야, 나 이거 들고 애들한테 잠깐 갔다 와도 돼?”

“네?”

“금메달 기운 나눠주려고. 왜 우리 도쿄 때도 그랬거든. 그땐 양궁 애들!”

“아하, 맞다. 네, 그러세요.”

“고마워! 나 금방 갔다 올게!”

금메달은 소중한 거지만, 오늘 한일전보다 중요할 수는 없었다. 지영은 종목에 관한 관심보다 한일전이 더 중요했다. 운동선수는 그래야 했다. 한국 선수들은 말이다. 이는 아마, 스포츠가 사라지기 전까진 변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벌떡 일어난 한유진은 거의 달려서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간 한유진은 곧장 감독에게 갔고, 금메달을 보이며 자신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고개를 돌리는 감독. 지영은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인사했다. 그러자 곧장 지영을 알아보고 고개를 끄덕인 감독이 허락했는지, 한유진은 메달 케이스를 들고 연습 중인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몸을 예열하던 선수들이 금메달을 보더니 반색했고, 그리고 한유진의 손짓에 이쪽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일주일 조금 안 되게 지난 지금도 아직도 화제성 1위를 수성 중인 강지영의 등장이다. 그러니 선수들은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지영은 기왕 이렇게 된 거, 일어나 아예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마스크를 벗진 않았지만 다들 지영이야. 하고 보니 알아보는 것 같았다.

방방 뛰는 선수들도 있고, 부끄러워 몸을 꼬는 선수도 있고, 손을 막 흔드는 선수도 있고. 지영은 그냥 마주 손만 흔들어줬다. 그리고 전부 메달을 슥슥 만지며 금메달의 기운을 받아 갔다.

한유진은 5분간 그렇게 기운을 돌리고는 다시 관중석으로 올라왔다. 안경을 닦는 천을 꺼내 깨끗하게 닦아서 다시 돌려주는 한유진.

“땡큐! 고마워!”

“고맙기는요. 대신 꼭 이겨달라고 해주세요.”

“잘할 거야. 잘…….”

한일전.

한유진도 조금씩 긴장하는 것 같았다.

“참, 사진 찍자.”

“네. 근데 바로 올리진 마시고요. 알아보면…… 아시죠?”

“알았어. 끝나고 올릴게. 그건 괜찮지?”

“물론이죠.”

지영은 지금 중무장 상태였다.

본래 이동할 때는 대표팀 단복을 입는 게 국룰이지만, 지영은 그마저도 입지 않았다. 그래서 간단한 평상복 차림이었다. 긴 머리는 질끈 묶었고, 마스크에 안경까지. 정말 제대로 보지 않는 이상은 지영이란 걸 알기는 힘들 거다. 몸을 푸는 배구 선수들이 알리면 또 모르지만, 시합을 앞둔 선수가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찰칵, 찰칵!

파바바바박!

사진을 수없이 찍고 나서야 한유진은 일어났다.

“한국은 언제 가?”

“모레요. 배구는 늦게 들어오죠?”

“아무래도? 그래도 가서 밥이라도 먹자. 시간 되지?”

“그럼요. 맛있는 거 사주세요.”

“오케이!”

“중계 잘하세요.”

“응! 고마워! 진짜…… 진짜 고마워.”

지영이 와준 게 고마운지, 살짝 눈시울도 붉어진 것 같다. 한유진은 다시 지영을 안아주고는 중계석으로 복귀했다. 그녀는 복귀 뒤, 곧장 중계를 시작했다.

흔히 짬이 찬다고 한다.

한유진도 이제 짬이 차서, 중계는 매우 매끄러웠다. 그리고 잠시 뒤, 여자 배구 1라운드가 시작됐다.

한일전.

한국은 붉은 유니폼. 일본은 푸른 유니폼.

경기는 일진일퇴였다.

1세트부터 듀스 접전까지 가더니, 아깝게 세트를 빼앗겼다. 하지만 이를 갈고, 2세트를 따냈다.

그리고 다시 3세트를 내줬고, 악착같이 달려들어 4세트를 다시 듀스 끝에 따냈다.

대망의 5세트.

박진감이 넘쳤다. 남자 배구는 너무 강력해서, 경직된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여자 배구는 유연한 느낌이 있다. 그런 유연함이 인기의 비결이란 생각이 드는 지영이었다. 손에 절로 땀이 고이는 접전이 이어졌고, 대망의 5세트.

역시 일진일퇴였다.

코트를 바꿀 때까지도 7-6이었다.

지영의 금메달 기운이 그래도 통하기 시작하는지, 후반부에 조금씩 격차가 벌어졌다.

14-12.

한국 우세.

매치 포인트.

“대한민국 파이팅!”

쩌렁!

난간에서 지른 지영의 응원에 힘입었는지, 극적인 서브 에이스가 터졌다.

한일전 승리.

이 경기는 당연히 대서특필됐다.

지영의 응원 또한 같이.

이틀 뒤, 지영은 귀국길에 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