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75화 (375/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75화

375화. 라이벌(6)

경기는 어느덧 15분째 접어들었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이제 지쳐서 탈진할 시간 때였다. 선수들은? 선수들은 괜찮으냐고? 설마, 그럴 리가.

힘들었다.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과 시청자도 힘들지만, 경기를 뛰고 있는 선수들도 당연히 힘들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영의 체력은 황금세대 전체에서도 가장 좋은 축에 속했다. 숫자로 수치화하면, 아마 유도 체력만큼은 국대 중에서도 단연 넘버원이었다. 허세가 아니라, 진짜로. 그런데 그건 신지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술 담배도 안 하고, 체력훈련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라, 체력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다. 그래서 소아다리를 시켜도 가장 잘 버텼다. 그런 훈련만큼은 신지나 지영이나, 서로 다르지 않게 해왔다.

“후우, 후우.”

“후우…….”

그래서 15분이나 지났는데도 괜찮았다.

괜찮았지만, 그게 또 완전히 괜찮다고 할 수는 없었다. 탈진해서 쓰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숨이 턱 근처까지 올라와 주인을 괴롭히는 수준까지는 왔다. 일반 선수들이라면 이미 퍼져도 진즉 퍼졌을 시간대에 여전히 허리를 숙이지 않은 것만 해도 매우 용했다.

하지만 그래도 지치긴 지쳤다.

심판이 그쳐를 선언한 짧은 틈을 이용해 최대한 숨을 되돌리기 위해 호흡을 정리했다. 그건 지영도 그렇고, 신지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체력의 한계선도 비슷했다.

그걸 보면서 관중들은 조금은, 질린 기색이 됐다.

[강지영 선수, 지친 기색이 이제 보입니다. 아아…….]

[지친 것도 지친 거지만, 지영 선수 이제 발을 저는 모습이 확연히 눈에 들어옵니다. 부상도 한계에 도달한 것처럼 보이네요.]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는 저 정신은 정말…….]

[의지,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자랑스럽습니다. 정말…….]

중계진의 말에, 채팅창도 그에 동의하듯이 글을 우르르 달았다.

-아 그쳐 하고 시간 좀 줬으면 좋겠다…….

-나 현기증 벌써 세 번째 느낌. 하…….

-와 강지영도 이제 힘들어 보인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임. 둘 다 지금 지쳐가긴 함. 그런데 비슷하게 가네 저것도…… ㅎㅎ 진짜 말이 안나오네;;

-ㅠㅠ 절룩이는 거 너무 마음 아파요 ㅠㅠ

-발목은 진짜 아작 날 수도 있겠는데요;; 저렇게 혹사시킨 거면 잘못하면 수술해야 할지도…….

-진짜 고장 났으면 저렇게 못 움직여요

-ㅇㅇ 윗분 말이 맞음. 진짜 심각하게 고장나면 저렇게 서 있지도 못함. 인대 늘어난 거나, 아예 똑 부러진 거랑은 고통부터 차원이 다른 것처럼 제대로 상했으면 저 발을 매트에 대고 있지도 못함

-그럼 괜찮은 거예요?

-그건 아니죠. 안 좋은 상태는 맞음. 그게 임계점을 넘지 않았을 뿐…….

-아…… ㅠㅠ

-그래도 진짜 대단하긴 하네요. 저 다리로 저렇게까지 하는 건…….

시청자는 답답함, 갑갑함을 느꼈고, 팬들은 마음이 아팠다.

지영이 확실히 처음과는 다르게 다리를 저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본래도 표정이 크게 없는 지영의 표정이 순간순간 일그러지는 게 카메라에 잡힐 때면, 다들 같이 아파했다.

15분.

이 15분이 얼마나 긴 건지 제대로 체감을 못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땀에 절고, 지쳐서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보면 점점 한계에 도달해 간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지쳤어도.

-눈빛 살아 있는 것 봐라…….

-와 진짜…… 조인선 해설이 왜 라떼 시절 들먹이며 깠는지 알겠다;; 저게 진짜 투지지…….

-나 지금 이 경기랑 옆에 옛날 국대들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 띄워놓고 보는데, 확실히 진짜 뭔가 다르긴 함…….

-뭐가 다름?

-1. 일단 절박함은 사실 크게 차이가 안 느껴짐.

-2. 근데 반드시 이기겠단 투지는 확실히 차이가 남.

-누가, 강지영이 큼?

-ㅇㅇ 압도적

-그것만 해도 대단한 거지 ㄷㄷ

-그래서 이길 거 같음?

-음…… 모르겠음. 강지영이 이겼으면 좋겠지만…… 저 강지영한테 조금도 밀리지 않고 지금까지 경기를 끌고 온 게 저 미야모토 신지임;;

-진짜 천재가 뭔지 보여주고 있는 건 신지도 만만치 않죠;

-솔직히 강지영이 발 절기 시작한 순간 승패가 조금씩 기울고 있긴 하죠……. 저 다리면 언제 파탄 나도 이상하지 않음

-그렇긴 한데…… 그래도 강지영이니까;

-ㅇㅇ 강지영이니까;;

-ㅠㅠ

경기를 예측하는 이들은 회의적이었다.

강지영의 투지가 절절하게 느껴지는 건 맞았다. 강지영은 강지영이다! 왜 저 선수를 천재라고 하는지도 알겠고, 왜 조인선 교수가 저 투지를 칭찬했는지도 알겠다! 알겠다지만…… 상대가 너무 좋지 않았다.

미야모토 신지.

또 다른, 불세출의 천재.

유도를 잘 모르는 팬들이 보기에도 미야모토 신지는 정말 지영과 비교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점점, 승기는 그에게 넘어가고 있다는 생각들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시합 중인 본인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흐르는 땀을 닦아낸 강지영은, 이어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 모습에 팬들과 관중은 안타까운 탄성을 흘렸다.

경기 시간 17분.

결국,

맛테!

시도!

지영에게 지도가 하나 들어가며, 승리의 여신이 기지개를 켜며 잠에서 깨어났다.

* * *

“후우…….”

숨을 내쉬며 심판의 지도를 받아들인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반칙을 받을 만했다. 신지는 지영의 다친 오른발을 건드리진 않았다. 하지만 작정하고 기술을 걸었고, 유효 기술이 두 개나 쌓였다.

연장 17분.

팽팽했지만, 위태위태하기도 했던 승부의 추가 결국 기울었다.

‘아직 안 끝났어…….’

하지만 지영의 눈빛엔 여전히 냉정한 빛이 머물고 있었다. 체념? 그건 레전드 그룹의 노래 제목이고. 포기? 그건 배추를 셀 때 쓴다. 하지만 포기는…… 남다른 감정이 든다. 왜?

‘전생에 지긋지긋하게 도전하고, 포기했었지…….’

다시 일어서기 위해.

너무나 당연하게 가지고 있었던 유도. 타고난 천재성으로 인해 지영은 그 세계에서만큼은 최고였다. 그러나 그걸 빼앗기고 나자, 초기엔 거의 애증이 아니라 강렬하게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강지영 파이팅!

목이 터져라 응원 중인 내 친구의 죽음까지 겹쳤기에 포기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영은 결국엔 포기했다. 인류의 과학은 고장 난 지영의 육신을 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밖에 고치지 못했고, 그걸로는 복귀는 불가능했다.

그나마 부상의 정도가 가장 덜했던 강한결도 한국, 일본, 미국, 독일까지 돌아다니며 재활과 수술을 거쳤지만, 결국엔 포기했었다. 임효중도, 황석도 전부, 전부……. 그래서 그 친구들의 염원을 대신 이루기 위해 수도 없이 두들겼다.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

하지만 지영은 회귀 직전까지도 중학교 선수를 겨우 상대할 정도로밖에 회복하지 못했다. 그마저도 메달권 선수면 시원하게 하늘을 날았다. 애초에 낙법을 치는 것만으로도 짜르르 울리는 통증이 느껴졌으니, 도전을 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짓이었다.

그러나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

그래서 수도 없이 실패하고, 포기했다.

포기?

‘지긋지긋해, 진짜…….’

그런 마음은 당연히 누구도 모른다. 누구한테 말한다고 해도, 이해해 주지 않을 거고. 오직 혼자만 품고 가야 하니 참 입이 근질근질하기도 하고.

하지메!

‘집중!’

심판이 시간을 좀 더 준 뒤, 경기를 재개했다. 지영은 하지메 사인과 동시에 잡생각을 털어냈다. 잡생각을 하면서 눈앞의 천재를 상대하는 건 미친 짓이었다. 지영의 머릿속에 떠올랐던 잡생각이, 돌변한 눈빛에 찢겨 나간 것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그런 지영을 보며 신지는 아주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타고난 천재라는 족속이라서, 지영은 저 미소를 이해했다.

기꺼울 것이다.

지영의 이 투지가.

고마울 것이다.

자신이 도달한 세계에서, 홀로 쓸쓸하게 있지 않아도 되니까.

회귀 전엔 차세대 천재라 불리던 이우진도, 이전의 제왕이던 안호진도 결국 신지가 올라선 세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전패. 안호진도 그렇고 이우진도 아마 전패했을 것이다. 그럴만했다.

신지는 진짜 유도를 위해 신이 내린 인간이니까.

평범한. 혹은 조금 뛰어난 인간이 상대하기란 매우, 매우매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반칙 같은 존재는 지영에게 세 번이나 잡혔으면서도, 그래도 좋아했다.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구나.’

지영은 잡기 싸움에 들어서기 전, 미야모토 신지의 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신지는 승패가 중요하지 않았다. 1위? 중요하다. 하지만 신지는 유도를 ‘하는’ 즐거움이 먼저였다. 지영처럼 강자와의 경기, 땀 흘리고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단계까지 가는 그 고단한 경기가, 신지에게는 성적보다 먼저였다.

그렇게 느껴졌고, 그건 틀린 생각이 아닐 것 같단 직감이 뒤따랐다.

툭, 툭툭.

연장 10분이 조금 넘은 순간부터 사실 잡기 싸움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두 선수 다, 잡기로 경기를 끝낼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체력을 비축하는 편으로 자연스럽게 갈아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잡기 싸움이라고 할 수도 없는 짧은 공방 뒤에 지영은 항상 잡던 어깨 깃을 잡았고, 신지는 가슴 깃을 잡았다. 이렇게 잡으면 보통은 안쪽을 잡은 사람이 조금은 유리하다. 안쪽에서 잡은 게 당기는 것도 그렇고, 방어하는 것도 좀 더 낫기 때문이었다.

특히 업어치기 선수들은 기를 쓰고 안으로 잡으려고 한다.

그래야 팔꿈치를 겨드랑이로 파 넣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건 양깃 한정이고, 밖으로 잡아도 충분히 업어치기는 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걸 다 차지하고라도, 안으로 잡는 게 유리하긴 유리했다.

그걸 모르는 지영이 아니다.

그런데도 지영은 굳이 안쪽 깃을 사수하지 않았다. 왜? 유리하게 잡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지영이 슬쩍 던져둔 미끼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미끼는 정말 먹음직스럽다. 공간이 나면 일단 업고 보는 업어치기 선수들을 유인할 때는, 정말 최고였다.

던져둔다.

원래 낚시라는 게 그런 거다.

던져두면, 미끼가 떨어져 나가지만 않았으면, 미끼의 값어치를 상실하지만 않았다면 언제고 달려드는 고기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꽝이다.

지영이 신지에 대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석했듯이, 신지 또한 지영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석해 자신만의 데이터를 만들어 뒀다. 미야모토 신지는 단순히 동물적인 감각만 갖춘 선수가 절대 아니었다.

머리도 비상했다.

쌍팔년도 이전의 옛날이라면 모를까, 현대 스포츠에서 지능이 떨어져서는 절대 대성할 수 없었다. 팀 분석관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따로 분석할 줄도 알아야 하는 건 기본이었다. 자신만의 직감적인 데이터는 필수로 갖춰야 한단 뜻이었다.

지영은 개인적으로 선수의 분석만큼은 분석관보다도 더 확실했다. 실제로 그래서 대표팀 전체의 분석을 따로 시간을 내 해주기도 했다. 여자팀도 전부. 그런 지영만큼이나 신지도 뛰어났다. 신지는 애초에 지영이 잡기 자체를 즐기지 않는 것 자체가 함정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노련한 낚시꾼.

신지는 절대 그 미끼를 물지 않았다.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어설프게 몸에 익은 대로 잡았으니까 일단 건다.

하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게 지영이 던져준 미끼를 대놓고 덥석, 와앙-! 하고 무는 짓이라는 걸 아는 탓이다. 그래서 신지는 기술 한 번을 걸더라도 전력으로 걸었다. 그래야 기술에 힘이 들어가고, 그 힘으로 지영의 카운터에 저항할 수 있으니까.

신지는 지영을 정말 많이 분석했다.

다른 국대들이 개인훈련 할 때에도, 지영의 경기 영상만 계속 돌려봤다.

마치 열병에 빠진 소년처럼. 계속해서 영상만 봤다. 그만큼 분석하고 또 분석했기에, 지금 이렇게 경기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신지는 기가 막히기도 했다.

지영의 다리가 정상이 아니다. 그런데도 강지영이란 선수는 여기까지 왔다. 최선을 다해 경기를 풀어나가는데도, 아직도 꺾이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만약 다리가 정상이었다면?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답은 빤했다.

그게 어처구니가 없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지영에게 지도 두 개를 먹였다. 여기까지는 생각했던 그대로 풀렸다. 그러나 신지는 방심하지 않았다.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강지영이었다.

천재를 잡아먹는, 악마적 재능의 소유자.

심판이 와자리, 잇폰을 외치거나 지영에게 지도를 하나 더 주기 전까지는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됐다.

하지만 방심하지 않아도, 위험은 찾아온다.

신지는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시리게 눈을 빛내며, 각오로 범벅된 눈빛을 보며 순간 소름이 돋았다.

급히 자세를 방어적으로 돌리는 순간, 강지영의 신형이 벼락처럼 들어와 찍고, 허벅다리를 차올렸다.

파앙-!

찍어, 허벅다리 후리기가 빗살처럼 작렬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