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74화
374화. 라이벌(5)
어어어!
관중석에서 기함이 터져 나올 때, 지영은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틀며 다친 오른발을 쭉 뻗어 매트를 강하게 찍었다. 그 뒤 힘을 강하게 줘서, 신지가 기술을 마무리하기 전에 힘으로 먼저 밀어내며 버텼다.
기술은 분명 제대로 쓸렸고, 실렸다.
하지만 지영은 그래도 명색이 방어유도의 대가라 불리는 선수였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지영은 이 기술을 자주 당해봤다. 누구한테? 업어치기의 귀재 이성진한테. 이성진의 주특기가 지금 신지가 구사한 업어치기였다. 마치 몸으로 하체를 쓸 듯이 스악! 들어와 중심을 무너뜨린 다음 등에 실어, 그대로 몸 전체의 탄성을 이용해 던지는.
이성진이 거는 이 기술은 제대로 걸리면 지영도 날아갔다. 하지만 걸린다고 전부 날아가진 않았다. 이성진이 지극히 공격적인 스타일이라면, 지영은 지극히 방어적인 스타일이다. 방어는 기술에 아예 걸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걸리고 난 뒤의 방어도 당연히 중요했다. 지영은 후자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 하체를 써서 방어 포지션을 완성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적잖이 컸다.
순간적으로 뇌리로 벼락이 쾅! 하고 치는 것 같은 통증이 일순간 척추를 타고 전신을 내달렸다.
[아! 신지 선수의 업어치기! 막았습니다! 강지영 선수 제대로 걸렸지만 그래도 방어해 냈습니다!]
[이야, 대단하네요! 제대로 업혔다고 생각했는데, 넘어가기 직전 발을 뻗어 매트를 강하게 지탱하며 방어해 냅니다!]
해설도 놀랐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기술을 막아낸 지영도, 제대로 기술을 걸었다고 생각한 신지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렇게 제대로 건 기술 한 번에 이길 수 있었다면, 사실 결과는 이미 연장으로 오기 전에 났을 것이다.
정규 시간에도 이미 충분히 제대로 걸릴 정도로 기술을 걸었었고, 서로는 그 기술을 전부 방어해 냈다.
단순히 제대로 걸어서는, 상대를 넘길 수 없다.
그리고 그건 누구보다 현재 경기 중인 두 사람이 가장 잘 알았다. 신지가 몸을 써서 끝까지 밀고 오는 걸 버텨낸 지영은 심판의 그쳐 소리를 듣고 나서야 힘을 풀었다. 동시에 힘을 풀고 일어난 신지가 지영을 보며 혀로 마른 입술을 핥았다. 아쉽다는 뜻이었다. 조금만, 정말 조금만 지영이 방어를 하는 게 늦었거나, 아니면 반대로 신지의 기울이기가 조금만 빠르거나 혹은 힘이 조금만 더 좋았거나. 이랬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백중세를 무너뜨리는 건, 아주 미묘한 차이다. 50 대 50이, 51 대 49가 되는 순간 균형은 무너지고, 한쪽으로 서서히 기울게 된다. 그걸 유도에 적용하면? 단숨에 꺾여 바닥에 처박힌다.
좀 전의 기술은 그랬다.
자리에서 일어난 지영은 찌릿한 발의 통증을 느끼며 신지처럼 혀로 입술을 축였다. 결국 신호가 왔다. 뇌가 통증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천천히 걸어 자리로 돌아가는 그 몇 걸음에서 이미 확인이 끝나 버렸다.
후.
지영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헝클어진 도복을 고쳤다.
시간이 필요했다.
띠를 풀러 천천히 고쳐 매는 지영. 전형적인 시간 끌기 행동이지만 심판은 이 정도로는 봐줄 심산인지 재촉하지 않았다. 물론 지영도 너무 티 나게 묶지는 않았다. 적당히 도복을 고치고 다시 신지를 바라보자, 심판은 곧장 경기를 시작시켰다.
하지메!
‘유효 공격 하나…….’
를 먼저 허용했다.
여기서 신지가 공세를 펼치면 최소 99%의 확률로 자신에게 지도가 주어질 게 분명하다는 걸 아는 지영은, 먼저 공세를 걸었다.
[아 역시! 강지영 선수,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공세를 취하죠?]
[저게 강지영 선수의 대단함입니다. 잘 알아요, 저 선수는. 저렇게 급박한 경기 중에도 상황을 아주 냉철하게 파악하고 있어요. 맞아요. 밀리면 지도입니다. 지도가 하나뿐이니 경기가 끝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불리해지는 거거든요? 지도가 2개니, 괜히 조급해지고 말이죠. 우리 지영 선수가 예선, 준결승에서 반칙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잘 보여줬었습니다. 그걸 이용할 정도니, 역시 그 상황에 처하지 않게 먼저 공세로 나갑니다. 잘하고 있습니다!]
조인선 해설의 말처럼, 지도 하나가 더 주어진다고 경기가 끝나지는 않는다. 정규 시간 동안 스코어는 서로 지도 하나씩이다. 그러니 지도 하나를 받는다고 반칙패를 받진 않는다. 하지만 불리해진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하나와 두 개는 심적인 부담감 자체가 다르다.
그리고 그 부담감으로 인해 경기는 확실히 이전과는 다르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지영이 그렇게 운영으로 상대에게 반칙을 먹이는 이유가, 그 부담감 자체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반칙패를 당하지 않기 위해 반사적으로 밀고 오는 상대를 이용하는 전법. 그게 지영의 운영 중 하나였다.
그러니 지영은 반칙 하나를 더 받으면, 역으로 이번 경기는 거의 승부가 난다는 걸 알았다. 신지의 운영은 지영만큼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 이점을 살리지 못할 선수도 아니었다. 작정하고 서로 반칙 하나씩 더 받는 방향으로 지영을 끌고 가면, 반칙패는 정해진 순서처럼 찾아올 게 분명했다.
그러니 공세가 필요했다.
신지의 유효 기술을 지워 버릴 만큼의 공세가.
파악, 파팍!
시리도록 차분한 눈빛을 빛내며, 지영은 잡기를 걸었다. 잡기는 지영이 조금 유리했다. 좀 더 긴 리치는 불리하고 싶어도 불리할 수가 없게 만들어줬다. 그렇게 먼저 잡기를 걸자, 신지도 대번에 지영의 의도를 파악하고는 공세로 맞섰다.
재미난 건.
여기서 신지가 밀리지 않아도 지영에게 지도가 들어올 확률이 70% 이상이다. 왜? 유효 기술이 신지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신지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고, 그러니 당연히 밀고 왔다.
툭, 손을 쭉 넣어 등깃을 잡았다.
타이밍을 제대로 잡고 쭉 들어가며 잡자, 신지는 대번에 격렬하게 저항하며 등깃을 뜯어냈다. 여유? 멋? 준결승까지 천재의 오만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여유와 멋을 지금도 부렸다간, 지영에게 단방에 날아간다는 걸 모르지 않는 신지였다.
그래서 마치 경기를 일으키는 것처럼 팔을 뜯어내며 물러났다.
보통은 저런 모습에 또 지도를 주기도 하는데, 심판은 미동도 없었다. 지영도 심판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해서 이걸로 반칙을 줄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게 두 번, 세 번 쌓이면 또 모르는 거다.
‘반칙을 주진 않겠지만.’
적어도 신지의 유효 기술은 심판의 뇌리에서 어느 정도 지워질 게 분명했다. 그럼 흐름은 다시 백중세로 돌아간다. 지금은 신지 쪽으로 기울어진 상태니, 지영은 이 중심추부터 정상으로 돌리기로 했다.
어차피 장기간 경기가 이어질 거다.
10분 안에 끝나면 다행일 거고, 적어도 그 두 배는 갈 것이다. 이는 그냥 직감이었다. 하지만 두 선수의 실력을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하기도 했다. 정말 백중세. 지영의 발이 괜찮았다면 아주 조금, 정말 아주 미세하게 조금은 지영이 우세했을 거다. 하지만 부상으로 인해 진짜 백중세가 됐다.
박빙의 승부.
그런 승부는 한 방에 끝날 테지만, 그 한 방이 나오기까지 아주 오래 걸릴 거다. 그러니 중심이 중요하다.
지영은 그쳐가 나오기 전에 신지의 유효를 지워버릴 작정으로 강력하게 푸시를 넣었다. 뻗고, 쳐내면 또 뻗고. 아주 리드미컬하게, 마치 복서의 원투 잽, 쓰리 스트레이트처럼,
[아, 강지영 선수. 마치 복서 같아요. 타이밍을 재는 인파이터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대단하네요. 정말. 저 정도의 모습은 확실히 공, 격, 적, 이라고 심판이 보거든요? 아주 미세하지만, 현재 미야모토 신지 선수가 뒤로 밀러는 모양새입니다. 이건 두 선수의 위치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아! 그렇군요! 확실히 강지영 선수가 신지 선수를 코너로 모는 모습입니다! 심판이 이것도 봐주겠죠?]
[오늘 심판들은 작정하고 공정하게 보려고 애쓰니, 충분히 전달될 것 같네요.]
[다행입니다. 정규 경기 시간 4분이 다 지났고, 연장전은 현재 2분이 막 지나고…… 허벅다리!]
[아!]
와아-!
쩌렁쩌렁한 탄성이 경기장을 울렸다.
지영이 자신이 지금 밀린다는 사실에 탱크처럼 쭉 밀고 온 신지의 그 돌진을 받아 허벅다리를 찼다. 하지만 역시 깃을 제대로 잡지 못해서인지 마지막 기울이기에 실패했고, 신지는 앞으로 떨어졌다.
이처럼, 정말 순간이다.
반사적으로 치고 나온 걸 그대로 받아서 허벅다리를 쳤지만, 아쉽게도 점수로 이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지영은 아쉽지 않았다. 애초에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서였다. 고작 이 정도 기술에 넘어갔을 것 같으면, 아예 결승전에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미야모토 신지는 천재다.
어떻게 넘겨야 하나, 아직은 감도 잡히지 않는.
맛테!
심판이 그쳐를 선언했다.
후.
지영은 자리로 돌아갔다. 경기장은 고요했다. 간간이 들려오던 응원마저 지금은 멎어 있었다. 마치 자신의 숨소리가 경기 중인 두 선수에게 방해가 될까 봐, 숨 쉬는 것조차 몰래 하는 것처럼 고요했다.
지영은 이런 적막도 좋았다.
언젠가부터 자신이 연예인이란 자각을 했기에, 응원도 감사하게 받아들였지만 역시 이런 고요함이 경기에 집중하는 데 더 도움이 됐다. 팬들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마음은 그랬다.
스윽.
지영은 손으로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유도선수라고?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긴 장발이 손가락 사이에 걸려 사르륵 미끄러졌다. 지영이 머리를 그렇게 다듬자, 심판이 다가왔다.
그러곤 주머니에서 머리끈을 꺼내 내밀었다.
그걸 잠시 보던 지영은 받아서 머리를 묶었다. 심판이 준 거니 크게 문제는 없었다. 원래 머리끈을 하는 게 반칙도 아니었고.
젖은 머리칼을 당겨 묶은 다음 심판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이런 배려를 얼마 만에 받아봤더라?
‘아, 없구나.’
배려는커녕,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적이 대부분이었다.
편파 판정만 안 해줘도 감지덕지였다. 생각해 보니까 진짜 살벌한 환경에서 경기를 치러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메!
경기가 다시 시작됐다.
좀 전의 기술로 백중세의 추는 다시금 평평하게 돌아갔다. 경기는 계속 그렇게 이어졌다. 신지의 날카로운 기술, 강지영의 반격, 다시 신지의 기술, 강지영의 카운터, 경기는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연장 5분이 지났다.
5분이 지났음에도 조금도 지치지 않은 두 선수. 보통 이 정도 되면 어느 한 쪽은 반칙을 두 개쯤 받게 마련인데 두 선수는 최초 지도 하나씩에서, 그대로 지금까지 유지해왔다.
주륵!
맛테!
지영이 움직이다가 땀에 미끄러져 휘청이자, 심판은 즉시 경기를 중지시켰다. 그러곤 진행요원을 불렀다. 진행요원은 눈치 빠르게 마대 걸레를 들고 와 얼른 두 선수가 흘린 땀을 닦아냈다.
진행요원이 나가고, 경기는 다시 시작됐다.
그 틈에 호흡을 최대한 가라앉힌 지영은 길게 숨을 내쉬며 신지를 상대하기 위해 발을 뗐다.
지릿.
그리고 올라오는 통증에 저도 모르게 눈매가 찡그려졌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히 심하지 않았다. 아니, 실제로는 심한 통증이겠지만, 워낙에 몸에 열기가 가득 돌고 있고, 경기에 집중한 탓에 통증의 강도가 확 줄어들어 있었다.
‘최소 두 달짜리겠는데 이건…….’
하지만 그 정도는 이미 각오했다.
그 각오가 끝나지 않았으면 애초에 경기 자체를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영은 경기에 나왔다. 이 기회를 포기할 생각이 지영은 조금도 없기 때문이었다. 끝나고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겠지만, 지금은 시합이 먼저였다.
후욱.
호흡을 다듬은 두 선수는 다시 부딪쳤다.
경기는 10분을 넘어, 11분, 12분, 하염없이 흘러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승부의 추는 아직도 기울지 않았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이 슬슬 뒤척이며 잠에서 깨어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