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73화
373화. 라이벌(4)
고작 2분밖에 안 지났지만.
10분은 지난 것처럼 피로감이 엄청났다.
누가?
관중과 시청자와 팬들이.
강지영과 미야모토 신지의 경기는 확실히 뭔가 달랐다. 단순하게 잡기 싸움만 했고, 기술은 서로 한 번씩 주고받은 게 전부인데도 박진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화려한 기술의 향연이 펼쳐진 게 아닌데도, 지켜보는 관중과 시청자들은 대다수가 하나의 생각을 떠올렸다.
-와…… 수준이 다르다는 게 이런 건가?
-인정. 진짜 뭐 특별하게 치고받는 것 같지도 않은데, 그냥 고수의 향기가 절로 느껴짐…….
-강지영도 강지영인데, 미야모토 신지 저 선수도 정말 잘하네요. 확실히 뭔가 급이 다르다는 게 딱 느껴짐…….
-되게 웃긴 게, 질투도 안 나네요.
-음?
-현역인데, 내 시합 영상 옆에 틀어놓고 같이 비교하면서 보는데…… 질투가 안 남 ㅎㅎ
-어허! 얼른 시합 영상 끄지 못할까!
-껐음요. 하.
-이해합니다. 그런데 쟤들은 그냥 논외니까, 너무 마음 상해 마세요 ^^
질투와 시기, 위로도 없을 수는 없었다.
현역선수들이 보기에도 지영은 역시 특별했다. 그리고 그 특별한 선수와 붙는 미야모토 신지 역시…… 특별했다.
거칠게 붙는 것도 아닌데, 역시 다르긴 다르다는 느낌을 사정없이 풍겼다.
-그런데 강지영 잘 버티네요. 발목 진통 주사라도 맞았나?
-진통 주사 그거 잘못 맞음 도핑에 걸릴걸요?
-그 정도는 병원에서 알아서 걸러주지 않을까요?
-모르는 거임. 나중에 갑자기 약물 추가해서 피해줄 수도 있고.
-헐……?
-일본 무시함? ㅋㅋㅋ 일본뿐만이 아니라 지영이 싫어하는 나라 많음 ㅎㅎ
-아ㅠㅠㅠㅠ
-강지영도 그거 알아서, 아예 진통 효과 있는 약은 아예 먹지도 않았다잖아요. 그런 애가 이제 와 진통제를 맞는다? 그럴 리 없죠…….
-와…… 그런데 저렇게 움직여요? 미쳤네, 진짜…….
-왜요?
-발목 아작나죠, 보통 저러면……. 아무리 테이핑했어도 부하가 만만치 않게 걸릴 건데.
-인대부터 근육 다 박살 날 건데…… ㅠㅠ 선수 생활 끝장날지도 모름…….
일부 팬들의 말에, 이쪽으로는 지식이 거의 없는 순수한 강지영의 팬덤은 대번에 충격받았다. 그저 강지영이 열심히 시합하는구나. 이런 생각만 하고 있던 거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미 1회전부터 준결승까지 거치면서 지영은 발목을 상당히 혹사하고 있었다. 그걸 미친 밸런스로 막아주고 있었지만,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파탄이 날 확률이 매우 컸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애초에 발목은 많이 낫지 않았다.
최소 한 달은 정양했어야 할 부상이었다. 그런 부상을 고작 2주 안 되는 시간 만에 털고 일어나 쓰기 시작했으니, 무리가 안 갈 수가 없었다.
특히 지영의 중심은 부상 당한 쪽 발로 지탱해야 했다.
계속해서 체중이 실리고, 그 상태로 눌리고, 눌린 채로 버티고 하다 보니 정상일 리가 없었다.
-아 근데 독하다……. 부상의 정도를 생각하면 지금쯤 제대로 걷지도 못해야 하는데, 표정 변화 없이 저렇게 경기에 임하네 ㄷㄷ
-저거 보고 조인선 교수가 작정하고 후배들 맹비난……
-저걸 투지로 보면 진짜 대박인거임……. 발목 다쳐본 사람은 알잖아요. 인대만 늘어나도 제대로 걷기 힘든 거
-ㅇㅇ 근데 강지영은 저 발로 결승 진출……. 심지어 결승전에서도 안 밀리네 와…….
학창 시절에. 특히 남학생들은 한두 번쯤은 삐고, 인대도 늘어나고 하는 경험쯤은 전부 있었다. 딱히 남학생뿐만이 아니더라도, 여자들도 처음 하이힐처럼 굽 높은 구두를 신다가 발목 돌아가고 한 경험들이 있었다.
한 번 발목이 돌아가면, 최소 2주다.
제대로 돌아가면 그 이상도 정양해야 한다. 그런 상태에서 걸어 다니는 거? 하기야 한다. 깁스하고, 목발 짚고. 그래야 겨우 움직일 수 있다. 특히 부상 초반엔 발을 바닥에 데기만 해도 앗 뜨거! 하고 뗄 정도로 화끈거리는 통증을 유발한다.
염좌?
별거 아닌 부상 같지만, 경험자들은 그게 얼마나 아픈지 잘 아는 부상이었다. 일반인이 어깨가 탈구되거나, 유도 선수들이 자주 입는 부상을 입지는 않으니 다른 건 공감하기 힘들어도 이런 염좌 같은 부상은 일상에서도 충분히 당할 수도 있기에, 극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대단해 보였다.
촤악-!
-와 씨……. 저 발로 찍어 허벅다리를 차네 ㄷㄷ
-근데 확실히 안 아픈 건 아닌 듯요. 인상 찡그리네…….
-아프죠 당근 ㅠㅠ
-아마 저도 모르게 찡그린 듯…….
-그러게요. 바로 표정 수습하는 거봐…… 짠하네 ㅠㅠ
-ㅠㅠ
-우리 지영이 아프면 안 되는데 ㅠㅠ
-맞아요ㅠㅠ 그냥 지고 얼른 치료했으면 좋겠네요 ㅠㅠ
-힘들게 경기하는 거 보는 진짜 맴찢 ㅠㅠ
금메달을 바라는 팬도 있지만, 그러지 않은 팬도 있었다.
유도 선수 강지영이 아닌, 배우 강지영의 팬인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에게는 강지영이 금메달을 따는 것도 좋지만, 그냥 건강하게 대회를 마무리하고 다음 작품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편이었다.
그게 드라마든 영화든, 이런 스포츠 말고 영상매체를 통해 지영을 만나길 바라는 팬도 많았다. 아니, 그런 팬이 더 많았다. 금방 채팅창이 점령당했다. 올림픽 금메달이 먼저지! 라고 외치기엔, 팬덤이 너무 많기에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그냥 경기만 감상했다.
경기는 치열했다. 벌써 3분이 지났고, 서로 반칙 하나씩 받은 상태.
백중세.
박빙.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팽팽한 승부의 추는 여전했다. 그리고 어느 한쪽으로 기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기도 했다.
너무 팽팽하다 보니.
-어후…….
-아 현기증 억!
-와 씨……!
-ㅠㅠ
지켜보는 사람이 괴로웠다.
과호흡?
순간적으로 너무 과몰입으로 긴장했다가, 풀렸다가를 반복해 현기증을 느끼는 이들이 속출했다.
그런 팬과 관중이 겨우 숨을 한 차례 내쉰 건. 삐이-! 4분 경기가 지난 뒤였다.
* * *
후욱, 후욱.
4분 경기가 끝났다. 서로 반칙 하나에, 유효 공격 두 번씩. 스코어라고 할 것도 없이 일단은 그게 전부였다. 박빙, 미야모토 신지는 역시 강했다.
‘방어를 많이 연구했어…….’
지영은 성장했다.
피지컬로는 이미 끝에 도달했지만, 경기 운영이나 기술이 계속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조율을 거치며 좀 더 날카로운 각을 가지게 됐다. 체력의 안배나 이런 것도 확실히 예전보다 나아졌다.
그렇게 지영이 성장하는 동안, 신지도 성장했다.
그런데 신지의 성장은 지영과는 반대였다. 지영은 좀 더 공격적으로 변했다. 기술을 가다듬고, 좀 더 날카롭게 꽂아 넣을 수 있는 방향으로 성장했다면, 신지는 중심이동과 방어 쪽으로 성장했다.
이건 사실 처음 잡았을 때 바로 느꼈다.
신지는 안 그래도 다부진 느낌이었다. 그런데 잡는 순간 묵직한 게, 웬만한 손목 채기로는 상체 중심을 끌고 오는 것조차 어림도 없었다. 지영은 그걸 몇 번 테스트를 통해 확인했다.
중심이 이렇게 단단해졌으니, 이제 웬만한 발기술로는 저 중심을 터는 건 어림도 없을 것이다.
“후우…….”
어떻게 한다?
방법을 떠올려야 하나? 아니면 지금처럼 본능에 맡긴 경기에 임해야 할까. 지영은 도복을 고치다가, 띠가 거슬려서 아예 도복을 풀어헤치며 연장전에 나아갈 방향성을 궁리했다. 그러나 곧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신지도 전술을 굳이 준비했다가 한번 망했던 만큼, 웬만한 수는 통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좀 전의 생각은, 이미 경기 시작 초기에도 했었다.
천천히 도복을 고쳐 입으며, 지영은 호흡을 조절했다. 숨이 조금 거칠어지긴 했지만 힘들 정도는 아니었다. 10일이 넘도록 유산소를 못 해 몸이 좀 무겁긴 했었지만, 그 무거움은 1회전부터 준결승까지 치르며 모두 산뜻하게, 날아갔다.
덕분에 지금 체력은 문제없었다.
문제가 있는 게 있다면…….
‘얼마나 버티려나.’
발목이었다.
발목은 확실히 좋지 않은 느낌이 났다. 아니, 좋지 않은 정도의 느낌이 아니라 그냥 이제 좀 그만하라고! 악을 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끈거리는 통증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통증이 뇌리에 박히는 순간부터, 뇌는 그 통증을 의식해 움직임 자체를 통제하려 들 게 분명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경험자이기 때문이었다.
이전의 삶에서, 매번 그랬다. 아예 의식을 다른 데로 돌리지 않으면 걷는 것도 힘이 들 때가 많았다. 특히 재활을 막 시작했을 때, 지긋지긋하게 겪었었다.
그런 지긋지긋함 속에서 지영이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고, 그렇게 찾은 게 뇌를 속이는 거였다.
아프다.
아픈데, 아예 다른 쪽에 집중해 통증 자체를 무시했었다. 그럼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어서, 그래도 어느 정도는 괜찮았다. 그걸 의식적으로 하려고 노력까지 했을 때가 재활 초기였다. 물론 나중엔 그런 노력이 없어도 부상 자체는 나아서, 불편함만 남아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나 지영은 알고 있었다.
통증이 상당해서 이걸 언제까지고 속일 수는 없다는 걸.
지금은 온몸을 휘감고 있는 시합의 열기와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의 폭발로 인해 통증이 아주 경미하게 느껴지고 있긴 했다. 그러나 이게 고삐가 풀리고 통증이 치고 올라오는 순간, 반드시 뇌는 그 통증을 인지하고 육체에 제동을 걸기 시작할 게 분명했다.
문제는 그때가 언제 오냐는 것.
지영은 자신처럼 천천히 도복을 고치고 있는 신지를 보며 오늘 경기는 적어도 10분 이상이 될 거로 생각했다.
‘아니, 10분이 뭐야. 20분까지 갈 수도 있지.’
오늘 신지의 콘셉트는 방어다.
자신의 방어 유도와 매우 흡사한 형태 같고, 체력으로 보면 아마도 10분은 우습게 지나갈 것 같았다.
지영은 부디, 그때까지 발목이 버텨주길 바랐다.
시간을 끌던 도복 고치기가 끝나고, 점수판도 새로 세팅됐다. 하지만 부심과 뭔가를 상의 중인 주심이 아직 들어오지 않아 잠시 여유가 생겨 지영은 숨을 고르며 김재정 코치를 바라봤다. 김재정 코치는 여전히 지영에게 딱히 무언가를 코칭하지 않았다.
잘하는 중인 지영이, 괜히 코칭 때문에 무너질까 봐 염려해서였다. 솔직히 직무 유기지만, 이건 예전부터 이래왔다. 정말 중요한 게 아니면 김재정 코치는 지영의 멘탈만을 살펴왔다. 그리고 결승전인 지금도, 김재정 코치는 지영을 믿고 별다른 조언을 넣지 않았다.
그런 김재정 코치의 뒤로 긴장이 가득한 친구들의 얼굴이 보였다. 관중석 1열. 나란히 선 친구들의 얼굴은 정말 세상 심각했다. 거기엔 내일 시합인 임효중도 있었고, 모레 시합인 강한결도 있고, 글피 시합인 황석도 있었다.
그래서 미안했다.
컨디션 관리를 해야 할 상황에, 이렇게 만들어서.
친구들의 옆엔 임은진과 그 옆으로 다시 양유진과 양지원이 있었다. 둘은 마스크를 썼지만 지영은 한눈에 알아봤다. 그리고 그 옆으로 어머니가 계셨다.
손을 꼭 쥐고 기도 중인 어머니.
심장이 떨린다며 시합은 못 보고, 커다란 환호성에 눈을 떴더니 경기가 끝났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는 오늘은 기도하면서도, 지영을 똑바로 바라보고 계셨다.
감상적인 생각이 더 들기 전에 지영은 그쪽에서 시선을 뗐다.
주심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했고, 더 보고 있으면 감성적인 생각이 경기력을 망칠 것 같아서였다.
심판이 자리에 섰다.
하지메!
양 선수를 한 번씩 바라본 심판의 외침에 악! 다시 기합을 넣고 지영은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지금부터 진짜다.
이전의 4분을 그냥 통째로 탐색전에 넣어도 되는 게, 신지도 신지지만 지영도 눈빛과 표정이 모두 변했다.
여기서부터는 진짜 백척간두라, 밀리면 게임이 끝난다는 걸 알아서였다.
시작은 역시 잡기 싸움이었다.
유도의 시작과 끝이라 할 수 있는 잡기 싸움은 이전보다 훨씬 더 치열했다. 잡고 뜯고, 잡음과 동시에 안뒤축을 후려 중심을 깨기 위한 발기술이 작렬하기 시작했다. 발기술은 확실히 신지가 더 날카로웠다.
지영은 그래도 허리기술 베이스고, 신지는 좀 더 주력으로 쓰는 게 업어치기라, 업어치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발기술이 지영보다는 역시 좀 더 날카로웠다. 안뒤축을 막은 순간, 신지가 소매 끝을 말아쥐었다. 지영은 반사적으로 이 뒤로 날아들 기술이 뭘지 예상이 갔다.
말아업어치기.
예상은 했는데, 뒤가 문제였다.
각도가…… 더럽게 날카로웠다.
‘아 젠장…….’
지면을 쓸 듯이 파고들어 온 업어치기에 지영의 몸이 허벅지부터 쓸리며 신지의 등에 업혀 두둥실,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