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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72화 (372/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72화

372화. 라이벌(3)

하지메!

준결승에 들어왔던 심판과는 다른, 독일 국적의 심판이 시합의 시작을 알렸다.

하!

짧게 기합을 넣은 지영은 짓던 미소를 지운 채,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빠르게 접근하는 신지를 바라봤다. 하지만 신지는 거기까지 접근한 뒤, 신중해졌다. 무턱대고 밀어붙이기엔, 아무리 부상자라고 해도 지영의 카운터가 걸렸다.

그렇기에 잡기 싸움의 거리까지 와서 보이는 신중함.

지영은 탐색전을 생각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신지에게 탐색전? 애초에 의미가 없었다. 탐색전이라는 건 보통 상대의 실력이나 힘, 반응속도, 기술 등을 좀 살펴보고, 나아가 어떤 전술을 들고 나왔을지 간을 보는 게 목적인데, 신지에겐 그 모든 게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전술을 들고 나왔다가 한 차례 시원하게 박살 난 적도 있지.’

세계 선수권인가 그랬을 거다.

그때 신지의 전술을 뒤늦게 파악한 지영은 딱 한 번 제대로 잡고 들어오는 걸 받아서 카운터를 쳤다. 그리고 경기는 그걸로 끝났다. 파악하지 못했으면 지영의 패배였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영은 간파했고, 결국엔 카운터를 쳤다.

그런 전적이 있으니 신지는 아마 특별한 전술을 준비하지 않고 나왔을 확률이 높았다.

서로가 서로를 전술로 어떻게 해볼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력으로 붙을 수밖에. 그러나 지금은 사실 전술이 먹힐 상태였다. 왜? 지영이 부상 중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지영의 약점을 공략하면, 신지의 실력을 생각하면 지영이 막기는 솔직히 버거웠다.

하지만 지영은 알았다.

신지의 성격상 지영의 약점을 공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신지는 자존심이 강한 선수였다.

상대의 약점을 때려서 승리했단 오명을 뒤집어쓰느니, 차라리 스스로에게 반칙패를 주고 퇴장당하는 걸 택할 인간이었다. 이런 성향 자체가 지영과 매우 흡사했다.

그래서 둘은.

동색이었다.

같은 색.

기질과 실력, 기세 같은 걸 유형화하면 두 선수에겐 짙푸른 기세가 감돌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성적이고, 냉정한, 시리도록 차가우나 공정한.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자유로움까지. 일본 코치진이 아마 신지에게 지영의 약점을 노리라고 귀가 닳도록 얘기했겠지만, 신지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을 거다.

상황 자체가 자신에게 유리하지만, 그 유리함을 어느 정도는 포기했다는 뜻이다. 그런 걸 그냥 알 수 있었다.

라이벌.

나쁘게 말하면 앙숙이고, 숙적이나.

좋게 말하면 같이 성장하는 동료다.

신지는 후자였다.

미야모토 신지라는 선수에게 지영은 개인적인 원한, 감정은 조금도 없었다. 그리고 신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대회에서 만나지 않을 때는 가끔 연락해 서로 안부를 묻기도 하고 그랬다. 유도에 관해서는 적이면서도 동지다.

그런 선수가 일본 국적이지만, 이것만큼은 지영은 개의치 않았다.

그런 미야모토 신지가 시간을 슬쩍 봤다.

벌써 10초가 지났다. 슥, 반보 앞으로, 어깨를 말아서 잡기 쉽게 내줬다. 그 모습에 지영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잡았다. 잡는 순간 손이 쭉 들어와 지영의 가슴 깃을 잡았다. 서로 원하는 방향으로 잡았다.

툭, 팔로 지영의 팔을 슬그머니 밀쳐 올린 신지는, 정말 귀신처럼 업어치기를 파고들어 왔다. 이성진의 업어치기에 필적할 정도로 날카롭지만, 또한 그만큼 부드러운 자세로 들어온 앉아 업어치기였다.

하지만 지영은 몸을 슬쩍 빼서, 발을 신지의 옆구리 쪽으로 넣어 기술을 막았다.

충분히 날카로운 외깃 앉아 업어치기였지만, 외깃이기 때문에 기울이기가 충분하지 않아 넘어갈 정도로 위협적인 기술은 아니었다.

그렇게 기술을 막은 지영은 상체를 숙여 신지의 가슴 깃을 잡고 쭉 당겨 그의 상체를 허벅지에 붙였다. 그리고 모션을 주자, 신지는 잽싸게 바닥에 엎드렸다. 지영은 바닥에 엎드린 신지에게 굳히기를 걸지 않았다.

신지가 자신보다 윗줄에 있는 실력자라, 굳히기를 거는 건 매우 무모한 짓이었다.

맛테!

심판의 그쳐 사인에 자리로 돌아온 지영은 슬쩍 사이드를 바라봤다. 김재정 코치는 손바닥이 아래로 가도록 해놓고 천천히 눌렀다. 차분하게 경기를 보라는 신호다. 그에 비해 일본 코치는? 손바닥으로 팍팍 쓸어댔다.

저게 뭘 뜻하는지야 당연히 빤했다.

하지만 신지는 그쪽은 아예 바라보지도 않았다. 코치의 지시 따위는 듣지 않겠다는 의지가 아주, 철철 넘쳤다.

하지메!

다시 시작 사인.

경기 시간은 이제 3분 30초.

지영은 남은 시간은 머릿속에서 지웠다. 신지와의 경기는 시간이 상관이 없었다. 심판만 제대로 된 심판이라면 10분이고 20분이고 이어질 수 있었고.

‘1분 만에 끝날 수도 있지.’

한 방이다.

지영은 신지와의 경기는 점수가 많이 나지 않고, 한 방으로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두 선수의 실력을 생각하면 결국엔 그렇게 끝날 확률이 최소 90% 이상이었다.

잡기 싸움을 안 했던 좀 전과는 다르게, 신지는 이번엔 잡기 싸움을 강하게 걸었다. 어깨를 잡은 손을 툭 밀어서 끊고, 다시 손을 뻗어 유리한 포지션으로 잡기를 걸어오는 신지. 지영은 역시 잡기도 쉽게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신지는 힘도 좋았다.

지영과 비교해서도 조금도 꿀리지 않는 근력을 갖췄다. 애초에 밸런스 자체는 신지가 더 좋았다. 지영은 밸런스를 최대한 맞췄으나 신장 때문에 신체 구조상, 근력이 조금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부족한 상체 근력을 하체 근력으로 커버했다.

하지만 신지는 상체부터 하체까지, 전부 밸런스가 올곧았다.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진짜 유도인의 아주 이상적인 밸런스였다. 이런 밸런스는 일견 특징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기준치 위로 올라가면 특별 중에서도 특별한 게 된다. 신지는 딱 그 레벨이었다.

‘천재가 저 정도로 노력을 했다는 게 놀라운 거지…….’

전생의 기억이 있는 지영이야 이 모든 걸 참고 견뎌온 거지, 신지는 그것도 아닌데 지극히 어려운 훈련. 아니, 고난을 이겨내고 저 육체를 손에 넣었다. 그것만 봐도 하여간 괴물이었다.

파바박!

먼저 가슴 깃을 잡은 신지가 강하게 도복을 털었다. 업어치기 선수들의 기본 털기였다. 지영은 그걸 뜯어내기 위해 두 손으로 잡아 밀면서, 반보 전진했다. 그다음 뜯어내는 척, 모두걸기를 강하게 쓸었다.

퍼억-!

제대로 밀려, 쓸렸다.

하지만 신지는 쓰러지지 않았다. 분명 몸이 붕 떴는데, 그 마지막 순간에 용케도 중심을 도로 잡고 본인이 손을 놓고 물러섰다.

아-!

관중석에서 탄성이 크게 났다. 신지의 휘청거림을 보고 넘어가나 싶었는데, 넘어가지 않아 생긴 안타까움 가득한 탄성이었다.

하지만 지영은 안타깝지 않았다. 이 정도로 신지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다른 선수였다면 제대로 쓸려서 절반이라도 딸 수 있었겠지만, 신지는 붕 떴던 순간에도 신형을 바로잡을 수 있을 정도로 중심이 좋았다.

지영도 한 중심 하지만, 신지도 만만치 않았다.

심판의 그쳐 없이, 경기는 계속 이어졌다.

잡기 싸움이 다시 시작됐다. 치열했다. 지영은 기존의 스타일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전술까지는 아니지만, 신지가 잡기 싸움을 걸어온 건 분명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잡기 싸움은 그 자체로 공세다. 잡고 뜯고, 밀고, 잡고 뜯고 밀고. 이 과정을 반복하는 건 딱 준결승에서 지영이 했던 공격이었다.

이 노림수는 두 가지의 이점이 있다.

제대로 잡으면 기술을 먼저 걸 수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공세를 취하고 있다. 심판에게 어필할 수 있다.

반칙의 중요성은 이전 판에 지영이 이미 차다 못해 넘치게 이용해 먹었다.

신지는 그걸 똑같이 지영에게 걸고 있었다. 조잡하다고? 절대. 이걸 알면서도 못 막는다는 건, 그 자체가 애초에 실력 차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영은 이 잡기 싸움을 아주 적극적으로 받았다.

파박!

파바바박!

공방.

흔히 공방을 주고받다, 라고 할 때의 그 느낌이 물씬 났다.

잡고 당기고, 뜯고, 다시 잡고의 무한 반복이다. 그런데 두 선수는 아예 머리까지 서로 맞대고 잡기를 했다가 당기고, 끊어내고를 반복했다.

별것 없는 잡기다.

하지만 이는 일반인의 눈에는 복싱의 잽과 스트레이트의 난타처럼 보였다. 특히 결승전이라는 것과 그 대상이 세계 제일의 셀럽 강지영이고, 그의 상대가 세계에서 알아주는 천재 유도가라는 사실이 경기장의 열기를 급속도로 끌어올렸다.

우와-!

휘이익!

열광적인 관객들은 휘파람까지 불어가며 경기를 응원했다. 비록 그 응원이 너무 한쪽으로 편향되어 있었지만, 한차례 공방을 진하게 주고받은 뒤 서로 물러난 두 선수는 그 열기를 느끼지 못했다.

들려오는 모든 소리가 조금씩 멎는 기분.

소피를 구했을 때처럼 어떤 신비한 영역에 들어선 건 아니다. 하지만 그에 준할 정도로 강하게 지영은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했다.

“후우…….”

신지가 내쉬는 한숨마저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극한의 집중 상태였다.

맛테.

심판은 그런 둘의 상태를 못 봤는지 시합을 중지시켰다. 그리고 도복을 고치라는 신호를 보냈다. 누군가에게 반칙을 주긴 모호한 상황이니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고, 그냥 도복이 너무 풀어져서 그쳐를 시킨 것 같았다.

그리고 역시 그게 맞았다.

도복을 고쳐 입자.

하지메! 경기 재개의 신호와 함께 빠르게 다시 몰입하는 지영은 바짝 붙은 신지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잡기 싸움을 시작했다. 먼저 유리한 자세를 내주면, 반드시 기술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신지의 실력을 생각하면 지영도 편하게 방어는 못 할 거고, 그게 쌓이면 대번에 지도가 들어올 수도 있었다.

유도는 매우 공정해 보이는 룰을 가졌으면서도, 공정하지 않은 룰이 있었다.

특히 심판의 특성에 따라 반칙을 주는 방식에도 미묘하게 차이가 났다. 어떤 심판은 소강상태에 바로 지도를 주는 반면, 어떤 심판은 경고성 그쳐를 한번 하기도 하는, 그런 차이였다. 이 차이는 그리고 시합에 아주 지대한 영향을 미칠 때가 있었다.

서로 박빙의 승부 중에 어느 한쪽이 기세에서 딱 한 번 밀렸는데, 그걸 보고 곧장 지도를 주기도 하는 영향이었다.

그리고 그 자체가 시합을 아예 뒤집기도 했다.

이 심판은 아직 어떤 스타일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천하의 지영이라고 해도, 심판의 배정을 모르는 이상 이들의 특성까지 이용하는 전술을 짜기는 무리였다.

경기는 박빙이었다.

아직 서로 기술은 딱 한 번씩만 주고받은 상태였고, 보이는 건 잡기밖에 없지만 그래도 관중을 포함한 모두가 이 경기의 주도권이 아직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2분이 지났다.

맛테!

시도! 시도!

심판이 그쳐를 외치고는 양쪽에 지도를 줬다. 잡기 싸움이 과해지자, 당연히 들어오는 제제였다. 사실 이쯤에서 지도를 받겠다는 건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큰 불만은 없었다. 그리고 그건 신지도 마찬가지라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시간은 2분.

서로 지도 하나씩.

승패가 양각된 결과가 천천히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은 깊숙한 곳에 있어서, 확인 불가능했다.

후우.

한숨을 내쉰 지영은 반사적으로 김재정 코치를 바라봤다. 전담 코치인 그는 이제 어떤 코칭도 하지 않았다. 그저 믿는다는 눈빛으로 지영을 보고 있었다. 반대로 일본 코치는 여전했다. 그는 간절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세워 바닥을 쓰는 제스처를 계속해서 신지에게 보냈다.

그 제스처의 뜻은 명백했다.

쓸어라.

모두걸기.

쓸면, 이길지니.

한순간만 양심을 버리면.

금메달이 목에 걸린다.

이런 뜻이었다.

그러나 역시 신지는 힐끔 보곤 인상을 찌푸리며 띠를 천천히 고쳐 맸다. 심판은 재촉하지 않았다. 이게 신지의 숨 고르기라는 걸 알지만, 이 정도는 기다릴 줄 아는 아량은 당연히 있어야 했다. 가뜩이나 경기 시간도 짧은데, 이 정도 융통성도 없으면 유도는 스포츠가 아니라 차라리 형벌이라 부르는 게 나았다. 천천히 띠를 두른 신지가 다시 지영을 보는 순간, 하지메! 심판은 즉시 경기를 재개했다.

2분이나 지난 지금도, 승리의 여신은 아직 기지개를 켜기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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