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66화
366화. 함부르크 올림픽(12)
준결승까지 대진이 결정되면, 마치 브레이크타임처럼 잠시 휴식 시간을 준다.
도쿄 올림픽 이전에는 그냥 되는 대로 경기를 진행시켰다. 그땐 하루에 남녀 합쳐서 두 체급 이상을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쉬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도쿄 올림픽 당시, 일본은 유도 경기를 아예 ‘쇼’처럼 바꿨다.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올림픽에서 유도를 대하는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경기 일정을 아주 길게 짰다.
그렇게 했더니 당연히 시합이 빨리 끝날 수밖에 없었다. 유도 경기는 그쳐를 포함해도 연장을 가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10분이면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은 하루하루 경기를 좀 더 쇼처럼 꾸몄다.
이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감량을 많이 하는 선수는 부담이 있겠지만, 그래도 시합에 온전히 좀 더 집중할 수 있다. 이는 코칭스태프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루하루 시합에 참가하는 선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이는 선수나 팀이나 전부 나쁘지 않았다. 길게 10일이나 이어지지만, 올림픽 기간 내에 어차피 끝나는 거니 문제도 없었다.
하나 문제가 있는 건, 이렇게 경기를 풀어나가니 중간에 시간이 빈다는 점이었다.
시합마다 다르지만, 오늘은 2시부터 시간이 비기 시작했다. 본래 하이라이트는 항상 해가 지고 나서 풀어나간다.
유도도 마찬가지였다.
해가 슬슬 떨어질 때쯤인 오후 늦게부터 패자 준결승, 승자 준결승, 패자 결승, 승자 결승전 순으로 경기를 푼다.
경기 수가 적지 않기에, 보통 4시부터 해도 7시나 8시가 되어야 경기가 끝났다.
하지만 한 게임 한 게임 집중하기 때문에, 오히려 관중에게도 좋고, 선수에게도 좋았다. 이런 경기 운영은 독일에서도 이어졌다.
덕분에 지영은 2시간 정도 시간이 생겼다.
몸을 정비하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었다. 대기실로 돌아온 지영은 일단 테이핑을 다 떼어냈다.
“종아리랑 어깨는 어때?”
팀닥터 김정안의 말에 지영은 어깨와 종아리 상태를 곰곰이 생각했다가 대답했다.
“괜찮아요. 걸리는 건 없었어요.”
“진짜? 확실하지?”
“네.”
지영의 부상은 이곳저곳이었다.
정말 말 그대로 여기저기 다쳤는데, 그중에는 종아리와 어깨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병원에서 치료받으며 휴식한 결과 거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영은 솔직히 어깨 부상이 아주 적은 레벨이었다는 것에 정말 감사했다.
발목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게 어깨다.
어깨가 전반적으로 기술 70% 이상은 날아간다고 보면 된다. 유도는 웬만해선 두 손으로 깃을 잡고 기울이기와 지읏기가 이어져야 하는데, 이게 한 손으로는 정말 힘들다. 보통 한 손으로 잡고 거는 기술이 제대로 걸려도 상대가 바닥을 짚으며 대부분 빠지는 걸 생각하면, 어깨 부상으로 팔 하나가 봉인되는 건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아니, 애초에 어깨가 그 정도로 고장 났다면 지영은 시합을 뛴다는 것 자체를 다시 생각했을 거다. 발목도 안 좋은데, 어깨까지 발목 수준으로 고장 났다? 그럼 솔직히 경기를 포기하는 게 맞았다.
천하의 지영이라도 발목과 어깨가 고장 난 상태로는, 답이 없었다.
그건 이전 삶의 기억이 있는 지영이 가장 잘 알았다.
하지만 다행히 발목을 제외하고는 거의 정상이었다.
그런데 선수들은 사실 이 정도 부상쯤은 달고 산다. 지금 지영이 당한 부상보다 조금 덜한 정도면 훈련까지 소화하는 선수들이 수두룩했다.
사실 지영은 정말 부상이 없는 편이었다.
부상에 극심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훈련 때 조심하는 것도 있었고, 뭔가 통증이 느껴지고 하면 곧장 치료받기 위해 훈련도 쉴 정도였다. 까다롭다 이상인 지영의 이런 행동을 유난 떤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걸 겉으로 드러내진 못했다.
유난이고 나발이고, 성적이 일단 최상으로 나온다.
유난 떠는 거로 성적이 떨어지면 그건 불만으로 이어지겠지만, 지영은 모든 대회에서 최고의 성적을 냈다. 그게 모든 불만을 잠재웠다.
“그렇게 몸 관리에 철저하더니, 역시 올림픽은 어쩔 수 없네?”
팀닥터의 말에 지영은 부정하지 않을 생각에 그냥 웃었다.
김정안도 그냥 피식 웃고는 지영의 테이핑을 갈아줬다. 지영은 테이핑을 감고, 몸을 계속 조금씩 움직이며 상태를 체크했다.
이 과정은 매우 중요했다.
잘못 붙은 테이핑은 몸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아니면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할 때가 있다. 거기에 지영은 상당히 까다로운 신체 조율을 거친다. 그걸 생각하면 대충 감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된 거 같아요.”
“그래?”
“네.”
30분이나 걸려 테이핑을 끝내고, 지영은 곧장 노트북을 펼쳐 준결승 상대인 아쉬빌리 알레코 폴더를 열었다. 수십 개나 되는 영상이 있었는데, 지영은 가장 최근 것들만 다시 살피기로 했다.
알레코의 신장은 사실 그리 크지 않았다.
지영보다는 작은 170 초중반이다. 체격 자체만 본다면 또 그렇게 탱크처럼 다부져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힘이 진짜 장사다.
‘게다가 왼쪽.’
자세 또한 지영이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 왼쪽 틀어잡기다.
힘을 베이스로 한, 허리기술을 구사하는데 저게 기술인지 솔직히 의문이 들 정도였다. 투박하다 못해 거칠었는데, 거친 만큼 걸리면 일단 날아간다. 버틴다? 그런 개념으로 상대가 받아주는 순간, 힘으로 방어를 부수고 상대를 내던졌다.
이긴 게임은 전부 그렇게 이겼다.
그렇다면 패배한 경기는?
자폭이다.
유도가 유술이라 불리는 건,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기술 자체가 상당히 많아서였다. 되치기라 불리는 기술 자체가 상대가 기술을 거는 힘을 이용해 던진다. 아니면 기술을 걸 때의 허점을 노리든가.
패배한 경기의 90%가 다 그렇게 끝났다.
알레코의 저 무지막지한 힘을 이용한 되치기.
‘제대로 친 카운터가 정답이라는 건데…….’
카운터야 말로 지영의 특기이고, 강지영이란 선수의 유도 정수라 할 수 있었다. 지영은 자신이 있었다. 되치기, 카운터를 치는 그 찰나의 틈을 누구보다 잘 포착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카운터가 거의 봉인 당했다.
1회전 임쩌민이야 그렇게 밀고 오니 카운터고 뭐고 그냥 슥 피해서 발만 가져다 대도 넘어갈 수준이었다.
빈첸조와 할 때도, 제대로 카운터는 걸지도 못했다.
타이밍 포착이 문제가 된 게, 포착을 해도 몸이 따라가지를 못했다. 생각과 동시에 몸이 즉시 따라가야 하는데, 그게 되질 않았다. 그래서 빈틈을 노려 굳히기로 끌고 간 거다. 지영은 그 차이를 솔직히 인정했다.
‘근육이 못 따라가…….’
인지 속도가 늦어진 게 아닌데, 근육의 반응 자체가 늦어버렸다. 유도는 투박해 보여도, 기술을 거는 타이밍이 정확히 톱니처럼 맞물리지 않으면 걸어도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업어치기를 걸 때도 제대로 업을 수 있는 순간의 타이밍이 존재하는 거지, 틈을 만들어 놓으면 그때부터 그 틈이 무한한 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틈을 만들면 상대는 반사적으로 그 틈을 죽인다.
그게 기본이다.
어느 틈이 어느 기술에 취약하고 이런 건, 그간의 훈련으로 이미 몸에 완벽히 체득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적어도 올림픽에 나올 실력자들이라면. 빈틈이 있어도 그건 일 초 내로 닫을 수 있겠지.’
그걸 이용할 수도 있을 거고.
순간적으로 틈을 보여도, 그걸 거의 본능적으로 도로 닫는 게 올림픽까지 온 실력자들이라고 보면 된다. 지영도 다르지 않고, 이따가 붙을 아쉬빌리 알레코도 다르지 않을 거다. 지영은 그런 실력자들에게도 거침없이 카운터를 쳐왔다.
회귀라는 반칙으로 그 누구보다 이성적인 경기 운영이 가능해서였다. 순간의 틈, 그 찰나를 노리는데 이골이 났던 자신인데, 오늘은 그 타이밍을 전부 놓쳤다.
머리는 타이밍을 인지하고 움찔하는데, 근육이 따라가지 못하는.
확실히 이전보다 좀 느려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영은 이러한 문제점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라, 카운터는 사실상 반쯤은 봉인 당한 거다.
그렇기에 상성에서 알레코는 최악이었다. 가뜩이나 중심축이 좋지 못한데 힘으로 흔들면 과부하가 걸릴 거고, 그 자체로 지영의 약점은 조금씩 더 강하게 드러날 거다. 이건 지영이 아무리 연기를 잘한다고 해도 감추기 힘든 약점이었다.
아니 연기를 해도 결국에는 알아서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이제 와 따로 상대법을 바꿀 수도 없어.’
독일에 오기 전에도 알레코의 데이터는 충분했지만, 자기가 아픈 상황을 상정하고 훈련을 하지는 않았다. 사실 누구도 그런 훈련은 하지 않는다. 베스트 컨드션을 염두에 두고 훈련을 하기 때문이었다. 지영도 그랬고, 그래서 알레코의 상대법은 역시나 카운터에 의지한 한 방이었다.
힘이 좋은 선수니, 그를 자폭시킬 타이밍이 오면, 자폭시킬 생각이었다.
그게 본래의 상대법이었다. 다치고 나서는? 이후에는 솔직히…… 다른 선수가 올라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고, 알레코가 지영이 예상했던 것처럼 준결승에 올라왔다.
이제 와 대진을 바꿔주세요!
이럴 수는 없으니 지영은 당연히 알레코 전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방법이 없으면 또 뭐 어때.’
반드시 공략법을 만들어 시합에 임하는 편은 또 아니었다. 당장 지영은 신지와의 일전은 아무런 공략법도 만들지 않았다. 경기 스타일이 변한 게 있나 확인만 했을 뿐, 그 어떤 방도도 마련하지 않았다.
어차피 먹히지 않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 예로, 이전에 신지가 지영을 상대로 공략법을 들고 왔다가 완벽하게 역으로 당한 적이 있었다. 그걸 사전에 지영이 눈치채서 나온 결과였지만, 그걸 빼더라도 제대로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어차피 컸다.
둘의 경기는 정말 말 그대로, 실력을 중심으로 한 본능에 맡겨야 하는 경기가 될 거다.
그런 전적이 있는 만큼, 이번에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조심해야 할 건 당연히 단단히 머릿속에 박아 넣었다.
‘한 번에 안아 오며 뒤로 덧걸이. 어깨 밖으로 잡고 허리기술.’
힘이 좋으니 이렇게 제대로 잡아 찍는 순간, 대부분 절반 이상은 땄다. 초기에는 그걸 모르니 많이 먹혔고, 좀 더 현재로 가까이 올수록 상대도 아는지 방어하는 경우가 더 많이 나왔지만 그래도 찍히면 반드시 점수로 이어졌다.
하지만 반대로.
‘이것만 조심하면 별거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
힘을 이용한 잡기, 기술만 막으면 알레코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선수로 전락했다. 힘은 그 모든 순간에서 유리하게 작용해 주지만, 절대적이지 않았다. 유도의 긴 역사에서 힘과 피지컬이 그 모든 걸 압도했던 시기는 유도가 만들어지고 얼마 되지 않았던, 그 시기밖에 없었다.
음, 세계대전의 시대? 그쯤 될 거다.
그러다가 다시 현대로 들어오며 힘을 제압하는 기술 유도의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그 시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피지컬로 반란을 꿈꾸던 시대를, 룰 변경으로 지워버렸으니까. 그래서 알레코는 유리하면서도 불리했다.
저 힘만 봉인하면, 허수아비를 본뜬 종잇장이다.
힘이 좋으면 방어에도 유리하긴 하다.
힘으로 그냥 버티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힘이 좋은 만큼 중심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경직된 통나무를 좌우로 흔들면 빳빳한 느낌으로 흔들리고, 어느 정도를 넘으면 똑! 부러지듯 넘어간다. 피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냥 쿵! 하고 넘어간다.
‘발기술.’
정답은 아니지만, 지영은 최대한 하체를 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영은 영상을 보고, 또 봤다. 보면서도 신지의 영상은 보지 않았다. 결승전에 올라올 게 뭐 거의 분명한 신지는 이미 완벽하게 머릿속에 있었다. 그래서 굳이 영상을 볼 필요도 없었다.
똑똑.
노크 뒤 문이 열리고 스태프 한 명이 들어왔다.
“패자전 시작한대요!”
“벌써? 아, 시간 됐구나.”
김재정이 시간을 확인하곤 지영을 바라봤다.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도복을 입었다. 여자 패자 준결승 2게임, 승자 준결승 2게임 뒤 남자고, 남자 패자전 두 게임 뒤에 바로 지영의 경기였다.
그리고 그 뒤가 신지의 경기고.
그러니 길게 잡아봐야 1시간 안에 경기에 들어가게 될 것이니 몸을 좀 풀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역시 시작은 스트레칭이었다. 통증을 참고 몸을 풀어 열을 후끈 올렸을 때, 차례는 거의 다가와 있었다.
지영은 다시 열의와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