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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61화 (361/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61화

361화. 함부르크 올림픽(7)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영은 그래도 좀 익숙했다. 이들 전체를 그냥 자신에게 열광해 주는 팬이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했다. 팬들을 반길 때는, 특정 누구만 챙겨줘선 안 된다. 그 자체가 질투로 변해 큰일이 날 수 있다고 교육받은 탓이었다.

그러니 누구 한 명만 특혜를 주지 않았다.

담담한 표정으로 정면을 보며 걸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선글라스를 챙길 걸 그랬나?’

표정을. 특히 눈빛을 감추는 데 선글라스만 한 게 없는데 말이다. 질문이 날아들었다. 엄청나게 날아들었다. 지영은 올림픽이란 이 특별한 축제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다.

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 보여주었던 그의 희생정신.

천운이 따라줬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그저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사고를 당했을지도 몰랐다. 그날의 사고는, 전 세계로 즉시 타전됐다. 특히 소피가 가진 스토리까지 밝혀지며 강지영이란 인간은 정말 단어 그대로 ‘영웅’이 되었다.

몸이 약해 태어난 순간부터 얼마 전까지 병원에서 살던 소피.

천운이 닿아 이식을 통해 세상의 공기를 맡으며 살게 된 소녀에게 닥친 사고. 그런데 그때 지영이 등장해 그 사고를 막아줬다. 소피의 스토리와 강지영이 가진 스토리가 합쳐지며 온 지구가 떠들썩해졌다.

그러나 강지영은 올림픽을 구경 온 관광객이 아니고, 축제에 참가하러 온 선수였다.

적지 않은 부상을 입었다는 발표가 있었고, 그런데도 시합을 뛰겠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지만, 솔직히 모두 반신반의했다. 병원 측에서 내놓은 부상의 정도와 영상을 봤을 때 힘들지 않겠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사고 이후부터 오늘까지, 모두가 기다리면서도 사실 부정적이었다.

그래서 이런 판이 깔렸다.

일본에 의해서.

의도는 명확했다.

강지영이 나타나지 않으면 ‘도망자’가 되는 거고, 등장했어도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면 목소리만 큰 허풍쟁이가 되는 거였다.

그래서 판을 크게 벌였다.

대외적으로는 ‘강지영’을 띄우는 그림이지만.

‘진짜는 나를 굳이 강조해서…….’

떨어질 때의 충격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한. 지영은 신기하게도 이 판에 깔린 속내가 뭔지를 걷는 그 순간 깨달아버렸다. 물론 자기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째 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안으로 들어가는 지영에게는 별의별 질문이 다 쏟아졌다.

몸 상태를 묻는 질문은 기본이었고, 다음 작품에 관한 질문을 하는 기자도 있었다. 그런 질문을 묵묵히 들으며 그냥 안으로 들어가는데,

“강지영 씨! 왜 위험을 무릎 쓰고 그 소녀를 구한 겁니까!”

하고 어떤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지영은 자신이 지금 제대로 들은 건가 싶어 걸음을 멈추고 눈을 끔뻑거렸다. 왜 구했냐니?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어디 있지? 지영은 자신이 지금 들은 게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었다. 얼마나 어이가 없었으면, 그 질문을 던진 기자의 주변에 있던 이들이 뜨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영은 천천히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양계.

영어로 외친 질문인데, 억양을 보니 무조건 일본계다.

맥도날드. 맥도나루도! 하는 느낌의 억양이 강했으니 일본계가 아닐 수가 없었다. 지영은 천천히 그 기자 앞으로 걸어가서 고개를 모로 틀었다.

“기자님, 어떻게 그런 질문이 나올 수가 있어요?”

“어, 그……?”

그 기자는 당황했다.

자신이 질문을 던져 놓고도, 설마 지영이 반응할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 어버버하고 있는 기자에게 지영은 재차 질문을 던졌다.

“기자님. 결혼했어요?”

“네, 아, 네…….”

“애는 있어요?”

“……네.”

“만약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아이가 기자님 아이라는 걸 안다면 나는 안 구했을 겁니다.”

“…….”

기자는 놀라서 입을 벌렸고, 영어로 적의 가득한 대답을 던진 지영의 질문을 들은 기자들은 뜨악한 표정이지만, 이해한 표정이 됐다. 그러는 동안에도 손은 쉬지 않았다.

“아이가 무슨 죄가 있어요. 그 아이가 거기서 사고를 당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어요? 말 그대로 사고였고, 나는 그 사고에서 우리의 ‘미래’를 구한 겁니다.”

“…….”

데굴데굴.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다는 걸 깨달은 기자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굴러다녔다. 사태를 벗어나고 싶은 것 같은데, 지영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딴 기자는 놔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기자님 아이는, ‘미래’라고 해도 안 구할 거예요. 자기 핏줄이 아니라고 사고에서 왜 아이를 구하라고 하는 기자님이니까, 이해해 줄 거죠? 나는 기자님 아이랑 아무런 상관이 없잖아요.”

“하지만 조, 좀 전에 미래라고…….”

“기자님이란 죄를 가졌잖아요. 그 애는?”

“…….”

지영의 말도 안 되는 대답에 기자는 입을 쩍 벌렸다. 이름도 모르는 일본 기자에게 지금 자신이 하는 말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 대답인지는 지금 말을 쏟아내는 지영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아, 이건 너무 나갔다. 싶은 생각이 분명 들었다.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은 분명 들었는데, 순간적으로 치솟은 분노가 지영은 제어되지 않았다.

‘왜 구했냐니…….’

그게 대체 말이야, 똥이야?

지영은 소피를 구한 행동에 대해 조금도 후회가 없었다. 소피를 구한 결과는 분명 지금 전신으로 올라오는 통증이다. 오늘 경기를 생각하면 분명 무모한 짓이었고, 처음으로 강한결에게 멱살을 잡혔을 정도의 미친 짓이었다는 건 지영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솔직히 조건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인 거라서, 자신은 앞으로 영원히 그 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겠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기도 했다.

이런 모든 걸 후회하지 않았다.

그래서 저 기자가 던진 질문이 화가 났다.

마치 자기의 행동을 머저리 등신 같다고 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저 기자의 질문은 선을 넘어도 너무 세게 넘었다. 경멸하는 표정으로 그 기자를 노려보는 다른 기자들을 보면, 답은 딱 나왔다. 그 기자를 노려본 지영은 다시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화가 났지만, 여기까지였다. 이 이상 감정을 폭발시키는 건 경기에 악영향을 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영은 계단을 올라가다가.

“아. 이미 망친 거구나.”

씁.

짜증이 팍 올라왔다.

하지만 지영은 이내 고개를 털어 짜증을 날렸다. 경기 중에는 지극히 예민해지는 거야 거의 모든 선수가 그렇다. 당연히 지영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영이 다른 선수들과 다른 게 하나 있다면, 이런 일을 정말 너무 많이 겪어봤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신기하게도 확 솟구치던 짜증은 금방 가라앉았다.

대기실에 도착한 지영을 보며 다들 조심조심하는 게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터뜨린 분노였는데, 이런 반응 때문에 잘못한 건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뭐야, 표정이 왜 그래? 잘했어.”

“들었어?”

“어, 벌써 기사로 떴던데?”

“아 진짜?”

“응.”

이제 고작 20분쯤 지났는데, 대단하다.

그래도 내일모레 시합이 있는 강한결이 들어오며 나눈 짧은 대화에 지영은 그제야 좀 안심이 됐다. 지영이 웃자 강한결도 씩 웃으며 옆으로 와 앉았다.

“컨디션은 어때?”

“좋아. 다리도 별로 안 아프고.”

“다행이다. 몸은 어떻게 할래? 부딪치기 받아줘?”

“야, 넌 내일모레 시합이면서 무슨?”

“어차피 몸 풀어야 해. 받아줘?”

“아니.”

마음은 고맙다만, 지영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솔직히 첫판은 누구나 힘들어하는 게임이다. 제대로 몸을 풀지 않으면 지영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지영은 오늘 거대한 약점을 안고 경기를 풀어나가야 했다. 그 약점은 제대로 몸을 푸는 것도 솔직히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이게 지영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첫 게임은 첫 바늘이다. 잘못 꿰면 진짜, 그 뒤가 제대로 폭망한다.

“그럼 몸은 어떻게 풀려고?”

“다른 걸로 풀어야지.”

지영은 매트를 깔고 앉아서, 복근을 준비했다. 이 자세라고 다리에 부담을 주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발을 쓰지 않고 몸을 푸는 데 가장 적합했다. 코어 훈련. 근육을 한계까지 찢기도 하는 필라테스도 좋지만, 지금 지영에게는 필라테스도 솔직히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간단한 코어 훈련을 반복하는 거로 몸에 열을 지폈다.

하지만 역시 한계는 있었다.

너무 코어에 부하를 줄 수도 없으니 땀이 맺히는 정도가 끝이었다.

“지영아, 이쯤 하자. 복근에 무리 오면 큰일 나니까.”

“네.”

김재정 코치의 말에 지영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곤 길게 숨을 내쉬었다. 평소 경기를 준비할 때의 십 분의 일도 준비하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몸을 푼 지영은 시합 준비에 들어갔다.

본격적인 마인드 컨트롤. 정신을 완전히 바꿔놓는, 지영이 정신을 다잡기 시작하자 스태프들은 조용히 대기실에서 빠져나갔다. 선수마다 다르지만, 지영은 아무도 없을 때 집중을 잘하는 편이었다. 그 정도는 이미 몇 번의 대회를 같이 하며 충분히 데이터가 쌓인 대표팀이었다.

조용해진 대기실.

지영은 눈을 감고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첫판 상대를 떠올렸다.

-73체급은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있었다.

오노 쇼헤이의 시대에 살았던 선수들은 뒤에서 올라온 선수들에게 권좌를 내주기도 하며 하나의 역사로 남아 사라져 갔고, 그 자리는 젊은 후계자가 대체하기 시작했다. 일본만 해도 오노 쇼헤이 대신 미야모토 신지가 자리를 이어받았고, 한국은 안호진 대신, 강지영이 자리를 이어받았다.

이런 둘처럼, 다른 나라도 꽤 많은 세대교체가 일어났다.

이게 근 1.2년간 벌어진 일이었다.

지영의 첫판은 중국이었다.

임쩌민.

이제 스무 살.

역시 세대교체를 통해 부상한, 실제 나이는 지영보다 한 살 어린 선수다.

그런데 2년 전부터 무시무시한 기세로 랭킹을 올리더니, 올림픽 출전 티켓을 손에 거머쥐었다. 그의 랭킹은 9위로, 굵직한 대회에서 입상한 전적이 있었다. 우승경험은 없지만, 거의 모든 대회에 출전해 점수를 올린 선수였다.

그래서 나이는 어리지만, 실전 경험은 정말 넘치도록 갖춘 선수가 바로 임쩌민이었다. 이 임쩌민의 경기 영상을 보면서 느낀 감정은 참 중국 선수답다는 느낌이었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중국의 유도는 참 딱딱했다.

기술보단 힘이 먼저이고, 선수의 외모만 봐도 스포츠인보단 군인이란 느낌이 훨씬 강하게 풍겼다.

옛날 홍콩 영화에 나오는 빨간 티셔츠를 입은 군인이나 경찰 같은, 그런 이미지였다.

임쩌민도 딱 그런 느낌이었다. 이제 고작 스무 살인데, 서른의 느낌이 났다. 이는 그만큼 굴렀다는 뜻이었다. 현대의 훈련보단, 옛날처럼 스파르타로 굴리고 굴려 선수를 ‘만들어’ 냈단 뜻이기도 했다.

수십 번 돌려본 임쩌민의 경기 영상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리플레이됐다.

‘오른쪽. 전형적인 힘 유도.’

힘 유도라고 우습게 볼 게 아니다.

상상 이상의 힘은 기술 자체를 막거나, 역으로 들어서 카운터를 쳐버리기도 했다. 임쩌민은 딱 그런 스타일이었다. 굉장히 저돌적인 선수고, 특히 억지 기술을 자주 거는데 이걸 진짜 조심해야 했다.

억지 기술은 솔직히 되치기당하기 딱 좋다.

하지만 여기에 힘이 가미가 되면, 억지로 들어간 기술이 자칫 잘못하면 덫처럼 변한다. 그렇게 일단 걸어 놓고, 힘으로 억지로 넘기는.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제대로 준비도 못 한 상태에서 애매하게 방어하다가 보면 제대로 말려갈 수도 있었다.

깔끔하게 들어가는 기술은 거의 없고, 보통 그랬다.

그럼 그런 임쩌민의 시합 스타일은?

‘음…….’

글쎄, 빈말로도 좋다고는 못할 것 같았다. 굳히기도 더럽게 하는 편이다. 엎드린 상대의 허리를 역으로 그대로 꺾는 짓 같은 건 기본으로 하는, 매우 더티한 스타일이다. 그런 만큼…… 지영은 반드시 다리를 노려올 거로 생각했다.

그러지 않을 가능성?

지영은 장담하는데, 이 선수가 가진 스포츠맨십보다 주입받은 사상이 더 위에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있었다.

임쩌민의 시합을 보면 스포츠가 아니라 전쟁을 보는 것 같았다.

매 순간, 매 경기 전투적으로 임했다. 그건 표정을 봐도 그러한 느낌이 딱 났다.

10시에 경기가 시작되고.

10시 30분쯤 마주 선 임쩌민은 역시 그런 표정이었다.

강지영! 강지영! 강지영!

지영의 입장에 팬들이 보내는 연호 아래, 마치 혼자만 다른 세상에서 온 것처럼 임쩌민은 지영을 보며 적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전의, 적의. 스포츠를 겨루기 위해 나온 게 아니라…… 전투, 전쟁을 치르러 나온 전사의 느낌이었다.

그런 전사를 마주 보며, 지영도 각오를 다졌다.

첫판부터, 쉽지 않은 게임이 될 것 같았다. 그런 냄새가, 진하게 났다.

하지메!

일본 심판의 외침과 동시에 경기가 시작됐다. 그리고 시작과 동시에, 부웅! 임쩌민은 지영의 다리를 노리고 거칠게 모두걸기를 쓸었다.

역시, 시작은 더티플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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