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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60화 (360/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60화

360화. 함부르크 올림픽(6)

금메달.

무려 13년 만에 나온 금메달이었다.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를 끝으로 한국 유도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런던에선 은메달 두 개에, 동메달 한 개인가 그랬고 도쿄는 은 하나에 동 두 개인가 그랬다. 그러니 무려 13년 만이다.

간절했던 금맥을 캐내던 순간, 그 순간을 결정짓던 이성진의 기술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한 번이었다.

두 선수는 노림수를 완전히 갖추고 있었다.

몇 번이나 리플레이로 보여주는 결승전 경기를 전문가들이 분석해 본 결과 경기 초반은 데니스 비에루의 턴이었다, 경기가 실제 그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전혀 예상외의 자세 때문에 이성진은 경기 초반에 혼란에 걸렸고, 그 결과 반칙 두 개를 받는 동안 이렇다 할 공격은 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지도 2개를 받고, 데니스 비에루가 자신이 짠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기존의 전술을 풀고, 앞으로 나오는 그 한순간을 이성진은 기다렸다. 딱 한순간. 자세가 정자세가 아닌, 피지컬의 우위로 이성진을 압박하기 위해 중심을 앞으로 내밀며 손을 뻗던 그 한순간을 이성진은 노렸다. 도복을 제대로 잡은 것도 아니고 소매 끝을 세 손가락으로 고리처럼 걸어, 그대로 파고들어 갔다.

자세도 어마어마하게 낮았다.

앉아 업어치기의 각도였지만, 무릎은 꿇지 않았다. 극단적으로 낮추며 들어와, 업히자마자 허리를 튕기며 몸을 회전시켰다. 데니스 비에루는 반사적으로 손을 뿌리쳤지만 거의 업어치기에 치여 그대로 이성진의 등에 실렸고, 그대로 한 바퀴 돌아갔다. 어떻게 돌아갔는지도 모르게 세차게 돌아갔고, 1초가 채 지나기도 전에 데니스 비에루는 경기장의 천장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허탈하게 웃는 게,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히는 순간 심판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지구 건너편, 한밤중인 나라에서 어마어마한 함성이 터진 것도 그때였다.

압도적인 경기력을 자랑하는 양궁에 이어, 금메달이 또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세상 시원하게, 정말이지 더 이상 화려하지도 못할 정도로 엄청난 각도로 들어간 속이 빵 터지는! 그런 기술로 딴 금메달이었다.

금메달과 동시에 포효하는 이성진의 모습은 거의 새벽인데도,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에 강렬하게 박혔다.

해가 떴을 때, 한국은 금빛 메치기 영상을 돌려보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됐다. 모든 새벽 라디오, 아침 방송에서 이성진의 경기를 내보내며 금메달을 축하해줬다. 하지만 잠시 그렇게 좋지 못한 소식도 함께 떠올랐다.

손가락 부상.

긴급 수술.

가슴이 철렁하는 소식이 다시 한국을 강타했다.

* * *

손가락 수술.

-지금 막 수술 들어갔어.

“네, 누나 고마워요.”

-고맙기는. 1시간이면 끝나는 수술인데, 뭐.

“그래도요.”

-나한테 고맙다는 말 말고, 너 얼른 쉬기나 해. 벌써 시간 꽤 됐다.

“안 그래도 이제 자려고요.”

-그래, 성진이 걱정은 말고. 수술 끝나면 내일 경기장에서 볼 수 있으니까.

“네.”

전화를 끊은 지영의 얼굴엔 큰 근심은 없었다.

통화했던 것처럼 이성진은 수술대에 또 올라갔다. 이유는 막판에 업어치기 때문이었다. 손가락을 고리처럼 구부려 소매 끝을 걸어 그대로 업어치기를 팠다. 그런데 데니스 비에루가 바보도 아니고 가만히 있었겠나? 당연히 반사적으로 뿌리쳤다. 그런데 이성진은 그 뿌리침을 이겨내고 업어치기를 성공시켰다.

이 과정에서 손가락에 과부하가 아주 강력하게 걸리면서 띡! 소리와 함께 힘줄이 끊어졌다. 너무 강한 압력과 순간적인 힘의 집중을 힘줄이 견디지 못한 것이다. 끊어진 손가락 때문에 수지변형증이 곧장 왔고, 시상식이 끝나자 바로 병원을 찾았더니 긴급 수술이 결정되었다. 끊어진 힘줄은 시간이 지나면 안으로 말려 들어가서 다시 이으려면 그걸 쳐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짧아질 수도 있고, 짧아지면 또 손목 쪽 힘줄을 잘라서 이식을 해야 하니 시간을 끌지 말고 곧장 수술하는 게 낫단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성진은 현지 시각으로 좀 전에, 또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큰 수술은 아니고, 부분마취라 크게 걱정할 것도 없어서 지영은 안심하는 중이었다. 지영은 침대에 누워 오늘 이성진의 경기를 다시 한번 복기했다. 사실상 결승까지 제 실력을 충분히 발휘했고, 큰 어려움 없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퇴출당한 아베 히후미가 나왔으면 또 어떻게 될지 몰랐겠지만, 그는 두 번 다시 경기에 나설 수 없으니 논외였다.

이성진.

금메달.

무려.

올림픽 금메달.

친구가 금메달을 땄다는 기분 좋은 현실에 지영은 가슴이 뛰었다. 친구가 최고의 성적을 낸 것이 지영에게 동기를 부여했다.

맡겨 놓은 금메달을 찾아간 친구.

“나도 내일 찾아가야지.”

이성진이 진짜 최고의 스타트를 끊었는데, 자신이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면 파이팅의 의미가 매우 퇴색된다. 그러니 자신도 꼭 금메달을 목에 걸 작정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병원 측에서 매우 신경을 써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병원 측은 도핑에 문제가 되지 않는 약을 최대한 조합하여 지영에게 처방을 해줬다. 주사 같은 거야 지영이 거절했지만, 부상 부위에 바르는 연고와 그 외의 여러 가지 치료로 지영의 몸 상태를 최대한 끌어 올려줬다.

사실 지금도 걸을 때 부하가 오긴 한다.

목발을 짚고 움직이지 않고, 그냥 막 움직이면 곧장 밸런스가 깨져 부하가 제대로 걸릴 정도였다.

하지만 조심하면, 충분히 경기를 뛸 수 있는 레벨이었다.

문제는 이 상태로, 천재라 불리는 선수와 붙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지영은 그 일전을 무조건 승리할 수 있다 장담하지 않았다. 미야모토 신지는 천재다. 존재 자체가 반칙인 지영보다 더 순수한, 아주 순수한 천재였다.

유도 사에 나오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아도 충분한, 그런 천재였다.

그런 천재와의 승부인데 몸 상태도 정상은 아니니, 필승을 장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필승을 장담할 수 없다고 겁을 먹을 지영도 아니었고, 애초에 승부는 원래 알 수가 없는 법이다. 지금 결승전을 고민하는 지영이지만, 첫판에 탈락할 수도 있었다.

그게 스포츠였다.

그런 스포츠라서, 재미가 있는 거고. 지영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이런 잡생각은 내일 경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은 최대한 잠을 자는 게 좋았다. 다행인 점은 지영은 자야지. 하면 잘 수 있는 축복받은 수면 방식을 가졌다는 점이었다.

어느 순간.

번쩍 눈을 뜬 지영은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5시. 이른 시간이었다. 하지만 경기장으로 이동해야 하는 시간 등을 생각하면, 그렇게 이른 시간도 아니었다. 지영은 잠시 침대에 누워 시합 당일의 정신을 무장하기 시작했다. 파라라락! 수십, 수백 번 보았던 상대 선수들의 시합 영상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그리고 그 선수들에게 맞춰 자신이 준비했던 것들을 점검했다.

‘고작 네 게임. 네 게임만 치르면 돼.’

본래 다섯 게임이었다.

하지만 지영의 위에 있던 시드 선수가 계체에서 탈락하면서, 결승전까지 총 네 게임이 됐다. 고작 한 판 준 거지만, 그 자체가 현재 지영에겐 아주 큰 도움이 됐다. 그래서 지영은 네 게임이라고 되뇌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다음은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매트를 깔고 지영은 천천히, 정말 천천히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며칠간 아예 쓰지 않았던 근육이다. 그런데 갑자기 다리를 쫙 찢어 스트레칭을 하면? 재수 없으면 햄스트링이 올 수도 있었다. 그러니 자극을 아주 천천히 주기 시작했다.

지잉.

그런 지영을 보고 있었는지 며칠간 스트레칭을 보조해 주던 전문가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미카엘.”

“좋은 아침입니다, 지영. 스트레칭할 거면 옆에 벨 누르라고, 제가 아마 수십 번은 얘기했던 것 같은데요? 꼭 이렇게 간호사의 연락을 받고 제가 와야 할까요?”

“깜빡했어요.”

“수십 번이나?”

“네. 하하.”

지영의 웃음에 미카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지영의 스트레칭을 돕기 시작했다. 천천히, 발끝부터 시작해 아주 천천히 올라가는 스트레칭. 부상 부위에 자극이 최대한 덜 가게, 정말 땀이 뻘뻘 날 정도로 공을 들여 스트레칭을 한 지영은 이어서 아침을 먹었다.

감량으로 인해 아직도 속이 말이 아닌지라, 지영은 어머니가 해두고 간 죽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그리고 체중계에 올랐다.

73. 90.

매우 안정권이었다.

이어서 샤워를 하고 나온 지영은 도복 바지를 입고, 시합 준비를 시작했다. 옷을 먼저 갖춰 입자, 다시 미카엘이 왔다.

“지영, 테이핑합시다.”

“네.”

지영은 군말 없이 테이핑을 받기 시작했다.

사실 지영은 테이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부상을 많이 안 당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당해도 테이핑을 하고 운동하는 편은 아니었다. 테이핑은 아무리 잘 감아도, 이상하게도 지영은 그게 이질적이라 운동 감각에 방해가 된다 느꼈다. 그래서 손가락이나 발목 테이핑 같은 건 일절 감지 않았다. 훈련할 때도 그랬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다친 곳이 너무 많아서, 근육에 가는 무리를 최대한 잡아주려면 전방위적인 테이핑은 필수였다.

“미카엘. 너무 조여요. 발목.”

“이 정도가요?”

“움직이기 시작하면 수축할 건데, 그럼 피 안 통해서 더 안 좋을걸요.”

“음, 그럼 좀 더 느슨하게 감겠습니다.”

발목을 잡아주기 위해 압박, 탄력 붕대를 같이 써서 감은 다음 테이핑을 감았다. 하지만 적당한 느낌이긴 하나, 이 자체로도 지영은 부담이었다. 이 인위적인 것이 발목을 감고 있으면 몸을 움직일 때 필연적으로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는 곧 감각의 하락으로 이어질 거고, 그 자체가 경기력 하락으로 이어질 거다.

그래서 지영은 감은 듯, 감지 않은 듯. 그런 애매한 레벨로 감아달라고 다시 요청했다. 미카엘은 자신이 지식을 굳이 지영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지영의 부탁대로 최대한 느슨하게 감아줬고, 그렇게 테이핑을 받고 났더니 7시 30분이 훌쩍 넘었다.

경기는 10시부터다.

테이핑을 끝내고 일어나서 발을 디디며 상태를 점검하는 데 문이 열리고 전기정 감독과 김재정 코치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그래. 잠은 잘 잤고? 몸은 어떠냐?”

“좋아요. 베스트 컨디션입니다.”

“어이구, 베스트 컨디션인 놈이 몸에 테이핑을 도배했어?”

“그래도 좋아요.”

육체적으로야, 솔직히 좀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제 이성진의 금메달로 지영의 지금 컨디션은 더 이상 좋아질 수 없는, 저 높고 높은 하이에 도달해 있었다. 이런 정신이면 실력이 부족해도, 몸 상태가 따라주지 못해도 정신력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정신적으로는 좋았다.

좋았는데.

“그럼 슬슬 가자.”

“네.”

밖으로 나오자 이성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손가락에 깁스한 친구. 하지만 표정이 너무 밝아 눈이 부실 정도인 친구. 얼굴은 수척 그 자체지만,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 빛나게 짓는 친구 이성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 너도 금메달 맡겨 놓은 거 찾으러 간다며?”

이성진의 장난에 지영은 웃음을 터트렸다.

“응, 이제 찾으려고. 너무 오래 맡겨둔 듯?”

“흐흐, 얼른 가서 찾아. 찾아오니까, 마음이 그렇게 편하더라.”

“그러려고. 손가락은?”

“그냥 뭐, 수술했으니까 아프지 뭐. 근데 잘 됐대. 딱히 끊어진 거 말고 문제도 없었고.”

“다행이다.”

“다행이지. 오늘 내가 너 옆에 있을 거야. 괜찮지?”

“손가락 아픈데 괜찮겠어?”

“뭐 물 챙겨주고, 수건 챙겨주고 정도가 전부일 건데. 아, 부딪치기는 못 받아준다. 그거 받아주면 상처 부위 울려.”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피식 웃으며 그렇게 대답한 지영은 지하로 내려와 대표팀 차량에 올랐다. 병원에서 협회에 부탁해 얻은 공식 차량이었다. 차에 올라서 체육관에 도착했는데, 경기장 입구 좌우로 만들어 놓은 믹스트존에 기자들이 넘쳐났다. 형형색색의 머리칼, 피부, 인종을 가진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기자들이 지영이 탄 차량이 도착하자, 일제히 눈을 빛내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살벌했다.

마치 전장에 나가는 무사 같은 기세가 차 안에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감독님. 원래 이렇게 들어갔어요?”

“아니. 너니까 이렇게 들어가지. 기자들이 하도 요구해서, 올림픽 위원회도 어쩔 수 없었다더라.”

“…….”

이유가 대충 이해가 갔다.

원래는 그냥 주차장으로 바로 이동해서, 대기실로 이동했다. 어제 이성진도, 그 전날 뛴 현소연도 그렇게 이동했다. 그런데 지영은 마치 무슨 영화제의 레드카펫처럼 길을 열어뒀다.

먼저 도착한 선수들이 들어가며, 자국 언론사 기자들과 인터뷰했다. 그리고 너무 시간이 끌리지 않도록 시간을 통제하는 진행요원도 있었다.

작정하고 깔아둔 판.

이런 건 지영이라고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니, 그냥 조용히 지나기로 했다. 안내를 받아 차가 카펫은 없으나, 카펫이 깔린 것처럼 느껴지는 입구에 도착하자 멈췄다. 문이 열리고, 지영이 내리자 카메라가 일제히 올라와, 미친 듯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 행동에서 흡사, 먹이를 노리는 좀비 같은 광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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