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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62화 (362/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62화

362화. 함부르크 올림픽(8)

빠악-!

발목, 복숭아뼈 위쪽부터 시작된 통증에 지영의 눈매가 절로 꿈틀거렸다. 사실 피하려면 피할 수 있었다. 그냥 발만 쏙 빼면 되니까 어려운 것도 아니다. 서로 잡은 상태도 아니니 자세가 무너져 기술에 걸릴 염려도 없었다.

하지만 지영은 피하지 않았다.

‘피하는 순간, 내 다리가 진짜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고 집요하게 노리겠지.’

피하지 않는다.

지영이 며칠간 시합 전체를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내린 결론이었다. 솔직히 이렇게 발을 걷어차는 선수가 나올 거라는 예상쯤은 너무나 쉽게 나왔고, 그게 첫판부터 시작될 거라는 것도 알았다.

임쩌민은 절대 스포츠맨십이 넘치는 선수가 아니니, 이기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거라는 것쯤은 알아서였다. 본인의 본심이 그게 아니더라도, 임쩌민은 코치진의 지시사항을 아주 충실하게 이행하는 허수아비였다.

그런데 이걸 나쁘게 볼 수도 없었다.

유도가 투기 종목에 들어가는 이유 중 하나가, 이 정도 모두걸기쯤은 그냥 기술로 인정되기 때문이었다. 좀 전은 걷어참과 모두걸기의 딱 중간쯤이었다. 적당히 발목을 틀어 발바닥 안쪽으로 맞기도 했지만, 그 겉의 부분에도 맞았다.

뭔 소리냐고?

아주 애매하단 뜻이다.

이런 애매함은 결국 기술로 인정된다.

그리고 기술로 인정되면, 당연히 반칙은 나가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경기 내내 이런 플레이를 감당해야 했다. 그리고 대놓고 이걸 피하다 보면, 때리는 척하면서 기술을 들어올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건 아무리 지영이 방어를 잘한다고 하더라도 매우 위험했다.

그렇기에 지영은 아예 처음부터 피하지 않는 걸 택했다.

‘지금 이 경기는 전부 보고 있으니까, 그냥 부상 부위를 공략해 봐야 소용없다는 걸 머릿속에 각인시켜야 해.’

아, 발목을 걷어차 봐야 소용없구나.

이 정도는 그 시간 동안 회복했구나. 때려봐야 욕만 먹지, 별로 도움도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머릿속에 박아 넣어줘야 했다. 그리고 그러려면 이 정도는 참아야 했고, 이후 연기는 필수였다.

그래도 다행인 건, 지영이 연기자라는 점이다.

극에서 아픈 척도 해봤고,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 척도 해봤다. 그 연기 경험을 살려 지영은 심리전을 걸었다. 앞에 임쩌민을 포함해, 준결승까지 모든 상대 예정자가 그 대상이었다. 결승전은 걱정하지 않았다. 미야모토 신지가 지영의 부상을 걷어차는 짓은 할 리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전까지의 상대 예정자에게만 그런 인색을 심어둘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임쩌민은 지영이 피하지 않고, 그리고 별반 표정 변화 없이 자세를 풀지 않고 있으니 살짝 당황한 기색이었다.

우우!

우우우!

관중석에서 대번에 날아든 야유를 받으며 임쩌민은 다시 한번 빡! 소리가 나게 지영의 발을 걷어찼다. 하지만 지영은 이번에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저 담담한 표정을 ‘연기’하며 손을 뻗어, 어깨 깃을 잡았다.

우우!

관중석에서 대번에 욕이 날아들었다. 선수와 선수의 나라인 중국을 욕하는 날 선 비판이었다. 그 소리가 하도 커서 지영의 귀에도 들렸고, 영어로 날아들었는데 임쩌민도 알아들었는지 인상을 팍 굳혔다. 시합 중에 저런다는 건, 시합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지영은 그렇게 시합에 집중 못 하는 상대를 봐줄 만큼 성인군자가 아니었다.

휙, 툭, 툭!

지영은 관중석에서 날아든 비난으로 생긴 찬스를 바로 노렸다. 스텝을 밟아 쭉 들어가 허벅다리를 차는 척을 하자, 임쩌민이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착 낮췄다.

고맙게도.

자세를 낮춰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지영이다. 왜? 애초에 허벅다리, 허리후리기 쪽 기술이 아닌 안뒤축을 칠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주저앉듯이 자세를 낮춘 상대에게 허리기술을 거는 것만큼 멍청한 것도 없었다.

툭.

발을 댐과 동시에 지영은 그대로 어깨치기처럼 밀 듯이 쳤다.

그 연결 기술은 방심 및 집중하지 못하고 있던 임쩌민을 그대로 뒤로 날려버렸다. 미끄러지면서 지영의 부딪치기에 중심이 뒤로 밀리니 그대로 무너지듯이 뒤로 쓰러진 임쩌민. 하지만 그 뻣뻣한 몸으로도 그래도 용케 허리를 트는 걸 성공했다.

와자아-릿!

하지만 겨우 한판을 피한 거지, 점수 자체를 뺏기는 건 피하지 못했다. 지영은 심판의 판정을 들으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유도?

올림픽까지 온 선수면 실력에서는 사실 의심할 필요가 없는 세계 정상급이다. 그런 선수끼리 붙으면 승패는 예측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경기 시작 30초 만에 관중들은 물론, 중계를 보던 이들은 누가 이길지 이미 점지를 해버렸다.

누가 이겼으면 좋겠다. 가 아니라.

이건 이변이 없으면 누가 이기겠다. 라는 일종의 확신이었다.

게다가 유도를 좋아하게 된 지 얼마 안 된 사람도 아는 게 있었으니.

-아 강지영 선수! 먼저 절반을 따냈습니다! 강지영 선수의 필승 흐름이 만들어졌어요!

-와우! 강지영이 절반을 먼저 땁니다! 앞서 기술을 받은 걸 보니 부상을 극복한 걸로 보이는군요!

-그리고 그는 절반을 먼저 따고 진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이렇게 승기가 기웁니다!

-과연 이번에도 강지영의 필승 흐름이 이어지는지, 남은 시간은 그걸 확인해 보는 거로 하겠습니다!

여러 국가의 해설들이 열렬히 떠드는 바로 이 내용이다.

강지영이란 선수의 필승 흐름. 사실 절반을 먼저 따내면 어떤 선수나 유리하다. 하지만 유리하긴 유리해도, 대부분이 쫓기게 된다. 지는 선수는 당연히 이기기 위해 강력하게 프레셔를 걸어올 거고, 이기는 쪽은 그 프레셔를 견뎌내야 한다.

그런 구도가 펼쳐지면 지켜보는 제3 자는 이기는 쪽은 도망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보이는 게 실제로 정답이기도 했다. 어떻게든 점수를 지켜 이길 생각인 거니까.

하지만 지영은 그러지 않았다.

지영은 방어유도의 천재였고, 그의 방어유도의 요체는 경기 운영에 있었다. 상대를 완벽하게 말려 죽이는 방어유도. 이걸 일각에서 사냥 유도라고도 불렀다. 그래서 강지영을 사냥꾼, 레인저로 부르기도 한다.

오글거림이 장난 아니지만,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불리고 있는 지영은 여태껏 해왔던 것처럼, 임쩌민을 숲에 풀어놓고 천천히 몰아가기 시작했다. 컹컹! 사냥개를 풀지도 않았는데, 짝! 짝! 지영이 뻗는 손에 맞춰 치는 관중들의 손뼉 소리가 마치 사냥개의 하울링처럼 느껴졌다.

지영의 경기 운영의 요체는 중심에 있었다.

중심이 되는 왼발을 중심으로 좌와 우로 회전하며, 잡기 싸움에서 뒤로 밀리지 않는다. 상대가 밀면 옆으로 흘렸다. 아니면 그 힘을 이용해 발목 받치기를 걸든가. 상대가 물러나면? 급하게 쫓아가지 않는다.

딱, 압박감을 선사할 정도만 전진한다. 상대의 숨통을 조이듯이, 아주 천천히. 아주 조금씩 다가가, 상대를 절벽으로 민다. 이게 지영의 사냥이다. 강지영은 본래 잡기 싸움을 좋아하지 않았다. 굳이 체력 소모를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그걸 알기 때문에 많은 선수가 지영에게 의도적으로 잡기 싸움을 걸었다. 편하게 잡게 해주면 강지영의 턴을 만들어주는 것과 같아서였다. 그게 요즘 강지영을 상대하는 기본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영이 먼저 잡기를 걸었다.

임쩌민은 지영이 본래의 스타일을 버리고 걸어온 잡기 싸움에, 제대로 휘말렸다.

맛테!

하지메!

맛테!

시도!

잠깐 휘말려서 정신 못 차렸을 뿐인데, 두 번의 그쳐 이후 반칙이 임쩌민에게 들어갔다. 경기는 이제 2분을 향해 가는 상태에서 절반 하나를 뺏기고 지도 하나를 받은 임쩌민은 짝! 붉은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자기 뺨을 때렸다.

정신을 차리자는, 스스로를 각성시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 행동 자체는 뭐, 딱히 문제가 될 게 없었다.

그렇게 해서 정신이 차려지면 선수에겐 나쁜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귀신에 홀린 것처럼 끌려다닌 자신이 선 곳 바로 뒤가 낭떠러지라는 것을 잊고 갑자기 덤벼들면…….

홰액!

잇폰!

빗당겨치기에 꽂혀 그냥 날아가는 거다.

우와아!

강지영! 강지영!

지영이 한판을 따내자 관중이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그 연호를 받으며 지영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표정을 다잡았다. 지끈, 발목에서 올라오는 통증이 상당했다. 하지만 지영의 표정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올라오는 통증을 필사적으로 무시하잔 연기를 펼치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아파도 아픈 척을 하는 순간, 아직 결정되지 않은 다음 상대도 지영의 발을 노릴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러니 결승전까지 괜찮은 ‘척’하는 연기는 절대 깨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대기실로 가는 그의 걸음은 무척이나 평온했다.

그런 지영을 스쳐 가는 다음 상대 예정자인 ‘둘’은 슬쩍, 그의 걸음을 살폈다. 경계 대상 1호. 결승까지 가려면 무조건 거쳐야 하는 강지영이란 큰 산. 그 산에 터널을 뚫어 통과할지, 아니면 올라가다가 미끄러져 데굴데굴 굴러떨어질지, 그걸 판가름하기 위해 눈을 빛내고 지영을 살폈다.

하지만 지영은 조금도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걸음으로 대기실로 들어섰다.

“야야! 의자의자! 빨리 의자 가져와!”

“선미야! 아이스 팩!”

“네, 정안 쌤!”

지영이 들어가는 순간, 스태프들도 혹시 소란을 밖에서 들을까 숨죽여 분주히 움직였다. 지영의 도복을 받아주고 수건으로 몸에 흐른 땀을 닦아줬다. 원래 이 정도는 지영 혼자 하지만, 지금 지영의 상태가 상태인 만큼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오늘은 최대한 움직임을 죽여, 아주 조금의 체력이라도 아껴야 했다.

“발목은, 발목은 어때?”

팀닥터 김정안의 물음에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괜찮아요, 하고 싶은데 사실 두 방 걷어차인 게 컸다. 누가 더티플레이의 대가 아니랄까 봐 두 방째는 진짜 우악스럽게 걷어찼다. 그걸 보고 심판이 순간 반칙을 줄까 고민했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세게 쳤는지 그 정도를 알 수 있었다.

그걸 시합 때는 잘 몰랐다.

그땐 그래도 시합의 열기가 몸을 휘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열기가 스르륵 빠져나간 지금은? 아팠다. 찌릿찌릿 정도를 넘어선, 욱신욱신한 통증이 발목부터 서서히 전신으로 퍼지고 있었다.

“테이핑 다시 감아줄까?”

“네, 근데 겉에 지저분해진 건 그대로 재활용해 주세요.”

“어? 왜?”

“그래야 제가 발에 아무런 조치도 안 했다고 믿죠.”

“……아?”

김정안은 물론이고 김재정, 스태프와 이성진까지 입을 쩍 벌렸다. 지영이 하는 말을 이해 못 한 게 아니라, 지영이 신경 쓰는 디테일에 놀란 것이다. 지영이 하는 말은 지극히 간단했다. 테이핑을 새로 교체하고 나가면, 테이핑을 다시 교체해야 할 정도의 문제가 저 발목에 있다! 란 생각을 할 수도 있단 뜻이었다.

그러니 시합으로 좀 헤진 테이핑을 그대로 쓰자고 한 거다. 굳이 큰 문제가 없어서 고치지 않았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이런 디테일.

지영이 배우를 하며 배운 디테일이었다.

‘사극일수록 미술 소품에 목을 매지.’

현대가 아닌 시대극이기에, 현대식의 모든 게 카메라에 담겨서는 안 된다. 퓨전으로 설정 자체가 현대에서 과거로 주인공과 함께 넘어갔다! 하는 설정이 아니라면 나오는 모든 게 옥에 티가 된다.

그리고 그 자체로 조롱거리가 된다.

그래서 사극을 찍을 때는, 미술팀이 진짜 엄청 열일한다.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서 인사동을 싹 뒤지기도 했고, 직접 찍어내기도 했다. 그런 디테일을 지영은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아니, 지영에게도 아주 강력하게 적용됐었다. 정확히는 극 중 재를 말함이었다.

머리를 묶는 끈 하나도 현대를 연상시키는 것이 들어가면 안 되니, 얼마나 깐깐하게 봤겠나. 그걸 직접 겪다 보니 아주 작은 디테일이 상대를 속여 넘긴다는 것을 지영은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그리고 그걸 지금 써먹었다.

연기가, 유도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무식한 철가면을 뒤집어쓴 거지만, 그게 지금은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대단하다, 대단해. 그런데 일단 그건 나중에 하고, 다음 판 상대 시합부터 보자.”

“네.”

김재정 코치의 말에 지영은 한쪽의 스크린으로 몸을 돌렸다.

다음 판 상대가 될 예정자 둘이 이제 막 매트 위로 입장했다. 옆나라 프랑스의 주브코 다니엘과 아랫동네 이탈리아의 필리그라 빈첸조, 이 두 선수였다.

둘 다 도쿄 올림픽 이후 두각을 나타내며 자연스럽게 세대 교체한 차세대 유망주였다. 아니, 유망주는 이제 지났고, 실력을 증명할 나이가 된 선수들이었다. 전형적인 유럽 스타일을 갖췄고, 둘 다 오른쪽 업어치기 스타일이다.

성인 무대 데뷔 후 경험이 쌓이며 설익은 과가 해를 받아 농익어 가듯, 급속도로 실력이 성장한 두 선수는 확실히 얕볼 만한 실력은 아니었다.

지영은 이 두 선수의 영상을 주니어 무대 것까지 싹 뒤져서 봤다.

주니어 때는 진짜 어설펐지만, 지금은 베테랑의 기운이 철철 넘쳤다. 그런 두 선수의 시합은 지지부진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유럽권 대회에서 신물이 나게 만나봤기에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였다. 하지만 유도에 무승부는 없고, 총 10분이 지났을 때 승패가 갈렸다.

승자는 이탈리아의, 빈첸조였다.

그리고 그는 2회전도 승리하며, 지영과의 대결을 확정 지었고, 그는 퇴장하면서 카메라에 대고, 미스터 강? 스윽! 목을 긋고 지나가는 강렬한 퍼포먼스를 감행하고 떠났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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