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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49화 (349/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49화

349화. 운명처럼 그렇게(1)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이기에 사실상 훈련은 없었다.

도복을 입어도 그저 몸풀기가 전부였다.

계체량을 위한 땀 흘리기와 몸을 최대한 움직여 풀어주는 것 정도가 진짜 훈련의 전부다. 그러니 이건 사실상 훈련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뭔가 설렁설렁한 느낌이 강해, 이건 보는 맛이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언이 아닌데…… 그 틈에 강지영이 끼어 있으니 또 달랐다.

-오, 몸 가벼워 보이는데?

-표정들도 밝고, 우리 대표팀 파이팅!

-우리 애기들 너무 말랐다 ㅠㅠ

-애기? 저기 애기가 어딨음?

-냅둬요…….

-강지영 그렇게 설레발 쳤으니 금메달 따겠죠?

-또 나왔네 ㅋㅋ

-그러게요 ㅋㅋ

-왜요? 뭐가요?

-위에 강지영이 설레발 쳤다잖아요 ㅋㅋ

-지영이 마이크 앞에 선 적도 없는데 무슨 ㅋㅋ

-아…… ㅎㅎ

-귀신같이 사라졌네 ㅋㅋ

이 시기에 오면, 대표팀의 훈련 장면은 거의 실시간으로 자국 뉴스에 나오며 중계된다. 단연 인기가 많은 종목은 역시 유도팀이었다. 축구와 배구도 만만치 않았지만 근래에 들어선 압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게 유도였다.

야구는 이미 이전 올림픽에서 신뢰를 잃었고, 이후 시즌을 이어오며 몇몇 문제로 상당수의 팬이 떠났다.

그리고 그 팬을 흡수한 건 여자배구였다.

그러나 여자배구 또한 홍역을 앓았다. 올림픽 이후에도 몇 가지 사건이 있었고, 물 들어올 때 노 저을 타이밍을 잠시나마 잃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건 이전의 캡틴이 나서서 수습했고, 다행히 더 문제가 커지기 전에 잘 봉합해 다시금 인기를 이어갔다.

양대 산맥은 그래서 여자배구와 유도였다. 그리고 그다음이 여자 골프와 남자 축구 순이었다.

이 종목들은 인기종목인 만큼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됐고, 언론을 탔다.

특히, 강지영은 그중에서도 가장 핫한 기삿거리였다.

존재 자체가 일단, 기자들이 물어뜯을 수 있는 최고급 재료였다. 도복을 대충 털어도 그 자체로 기삿거리가 되는 남자, 그게 강지영이었다.

-크, 머리 터는 거 개존멋…….

-근데 유도할 때 저렇게 머리 길면 엄청 불편하지 않음?

-ㅇㅇ 그냥 실생활에서도 머리 저렇게 길면 개불편할 것 같은데…….

-나의 무사님 시즌3 때문에 그렇습니당! 그거, 재 캐릭터가 장발이라 계약서에 장발 유지 명시되어 있대요!

-맞아요. 자르면 위약금 물어요 ㅠㅠ

-아…… 맞네.

-그러고 보니 올림픽 끝나고 바로 나의 무사님 막편 촬영 들간다고 하지 않았나요?

-넵! 휴식 조금 가진 다음 바로 들어간대요!

-와 강지영 개바쁘네. 올림픽 다음 곧바로 드라마 촬영 ㄷㄷ

-저게 인간적으로 가능한 스케줄인가 ㅋㅋ

-뭔가 철인같지 않아요? 얘 표정도 변함이 거의 없고.

-그런 느낌이 있죠 ㅋㅋ

-강지영 로봇설ㅋㅋ

-우리 지영이 파이팅! 꼭 금메달 따자!

팬들은 지영이 훈련하는 모습만 봐도 좋았다.

워낙에 한정된 상황에서만 언론에 나서는 지영이기 때문에, 지영을 사랑하는 팬들은 근황 자체에 매우 목말라 있었다. 황금세대야 종종 라이브 방송도 하거나 SNS를 통해 소통했지만, 강지영은 공식 채널을 제외하곤 모든 소통창구를 닫았다.

아니, 다른 소통창구 자체가 존재하질 않았다.

팬질도 물고 빨 재료가 있어야 하는 거다. 덕질하는데 아무것도 없으면, 열광할 거리 자체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지영은 기이하게 연예인이면서, 셀럽이면서도 그 어떤 재료도 주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지영의 소식이 올라오는, 소속사에서 관리하는 채널과 공식 기사 등등이 전부였다.

보통은 이런저런 이슈가 있으면 소속사 차원에서 보도자료를 뿌리고 한다.

그래야 작은 눈이 구르고 굴러 주먹만 해지고, 더 잘 구르면 축구공만 해지며 이슈나 인기를 끌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영은 그런 게 하나도 없어서, 덕질할 만한 것도 사실상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강지영이란 배우이자 운동선수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렇게 유명한 만큼 당연히 팬도 많았고, 한국에도 정말 적지 않은 팬이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 비록 먼발치에서 찍은 영상이지만, 강지영의 최신 근황은 아주 훌륭한 영양소였다.

한 방송사에서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당연히 임은진이 나서서 일언지하로 거절했다. 올림픽이지만, 그래서 당연히 임은진이 따라왔다. 그녀는 지영의 전담으로서 운동에 관한 것을 빼곤, 모든 것에 개입했다.

까다롭다 못해 어떤 관리자는 당신이 뭔데! 하고 소리치기도 했을 정도로 깐깐하게 개입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뭐라고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지영이다. 언론의 적이자, 언론이 가장 품고 싶은 인간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척지면 피곤한 놈, 명예의 1위이기도 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딱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거기까지 하는 게 좋았다.

자리보전하고 싶다면 말이다.

* * *

아, 거! 더럽게 깐깐하게 구네!

그렇게 말하며 사라지는 한 관계자. 임은진은 그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아니, 만찬 참석을 해달라는 건 말이야 똥이야?”

“아직도 저런 사람이 있다는 게 놀랍네요, 진짜.”

절레절레.

임은진은 치를 떨었다. 그 관리자는 지영에게 저녁에 있을 협회 측 만찬에 참석해 달라고 부탁했다. 무려, 만찬이다. 지영은 감량 중인데, 만찬에 참석해 달라고 한 거다.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 너무 놀라서 네? 하고 한참 동안 다음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마침 임은진이 근처에 있기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넋을 놓은 채 멍한 모습이 카메라에 찍혀 나갈 뻔했다.

종종 세상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더니, 지금이 딱 그랬다.

그 협회 간부는 성을 한차례 내더니 떠났고, 지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짐을 챙겼다. 대회까지는 아직 4일이 남았다. 컨디션 조절에 저런 인간이 끼어드는 걸 가능하면 최대한 막는 게 좋았다.

선수 개인마다 다르긴 하지만 감량이 극한으로 들어가면, 일단 기본적으로 내가 알던 나는 사라진다.

평소에는 허허, 하고 세상 좋은 할아버지 같은 강한결조차 일정 이상 감량하면 짜증이 확 늘어난다.

아니, 이때는 황금세대도 서로 가능하면 건드리지 않는다.

예전에 중학교 때, 감량 중에 서로 장난치다가 한 번 크게 싸운 적이 있어서였다. 그래서 강한결이 감량할 땐 절대 건드리지 말자는 말을 꺼냈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감량 중에는 예민해졌다. 황금세대 중에서는, 당연히 지영이 가장 예민해지고 이번은 이성진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둘이 제일 많이 빼기 때문이었다.

‘후우.’

이 시기의 자신이 얼마나 예민한지는, 사실 본인이 가장 잘 알았다. 그래서 이런 일이 있을 때는 최대한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다. 이런 마인드 컨트롤에 실패하면 순간 훅 치솟은 짜증에 사고가 터져도, 아주 제대로 터질 수 있었다.

짐을 챙겨 밖으로 나오자 팀 전체가 기다리고 있었다.

“뭐래?”

“만찬에 오라던데?”

“……만찬?”

“응. 저녁에 이쪽 교민이랑 협회 사람들이랑 만찬 있는데, 거기 같이 좀 가자고.”

“와…….”

지영의 대답에 기다리고 있던 모두가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말 그대로 감탄이었다. 설마 경기를 앞둔 선수에게, 그것도 10㎏ 가까이 감량한 선수에게 만찬에 나오라고 할 정도로 간 큰 인간이 있을 줄은, 그들도 예상하지 못한 탓이었다. 뭐, 지영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이건 좀, 와아.”

“괜찮지?”

강한결의 물음에 지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화도 안 난다는데, 이게 딱 그랬다. 전기정 감독은 어휴, 미친 양반들. 솔직한 감탄사를 내놓고는 먼저 버스에 탑승했다. 독일 M사의 대형 버스였다. 삼각별 마크가 앞에 딱! 박힌. 새까만 코팅이 척 봐도 고급 버스처럼 보였고 실제로도 안은 매우 고급이었다.

독일이 자랑하는 기업 중 하나가 바로 메르세데스고, 메르세데스는 이번에 전체 선수단의 의전 버스를 후원했다. 자리는 거짓말 조금 보태면 웬만한 퍼스트클래스보다 편안했다. 좌석도 좌석이지만, 승차감이 진짜…… 차원이 달랐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진동 자체가 아예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포드의 운명도 이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새삼 삼각별이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지영이었다.

“지영아. 버스 진짜 죽이지 않냐?”

반대편에 앉은 이성진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이거 축소해서, 세단으로 만들면 솔직히 사고 싶을 정도야. 아니,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

“가능하니까 있겠지?”

“그래, 가능하니까 있겠지. 아, 어, 너 전화.”

“어? 어.”

액정에 뜬 이름을 보니, 이제는 이성진을 받아준 연인이었다. 같은 아픔을 가졌던 친구. 지영이 눈치채지 못했으면 어쩌면 이 세상에 없었을 친구. 고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대시해서, 지금은 연인이 된 정소영이었다.

이성진이 한창 바쁠 때는 잠시 연락 안 했다가, 어떤 아이돌이 더 런닝에 나와 자신에게 몰래 고백한 적이 있는데 그때 웃기게도 머릿속에 정소영의 얼굴이 파박 스치고 지나갔다고 했다. 그 뒤로 다시 연락하더니, 결국엔 연인이 됐다. 그리고 그건 얼마 되지 않았다. 독일로 오기 2주 전인가 그랬으니까 정말 따끈따끈한 커플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좋을 때다.”

억……?

지영이 씩 웃으며 한 말에 이성진은 뜨악한 표정이 됐다. 그런데 곧, 수긍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지영은 연애한 지 제법 오래됐다. 감히 이제 2주 차가 된 이성진이 비벼볼 레벨이 아니었다.

30분쯤 달려 버스는 다시 함부르크 도심으로 들어섰다.

한적한 교외의 모습이 사라지자, 괜히 아쉬워져서 지영은 폰을 꺼냈는데,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어머니였다. 지영은 시간을 확인하곤 바로 전화를 걸었다.

-어, 아들!

“저예요. 전화하셨었어요?”

-으, 응! 아들 별일 없지?

“네, 그럼요. 갑자기 왜요?”

-어? 아니야. 아들 잘 있나 궁금해서 했어.

음?

목소리가…… 뭔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머니는 솔직하신 분이셨다. 거짓말이 맞지 않는 천성이어서, 장사할 때 손해로도 작용했다. 하지만 반대로 그 자체로 신뢰가 되기도 했다. 절대 가격이나 품질을 속여 팔지 않을 거란 얘기기도 됐기 때문이었다.

그런 분이라서.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있죠?”

-아니라니까! 엄마 손님 왔다! 끊을게, 아들!

뚝.

음…… 뭐지?

지금 함부르크는 오후 3시쯤이다. 그럼 한국은 이미 자정에 가까운 시간일 건데, 손님? 핑계였다. 하지만 다시 전화 걸어서 아 뭔데요! 하고 캐내기는 그랬다. 어머니는 아마 들키지 않으려고 한 것 같은데, 눈치가 빠른 지영은 자신에게 얘기하고 싶지 않은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게 본인도 마음이 쓰였는지, 바로 정말 아무 일도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라는 톡이 왔다.

이렇게까지 하니 더더욱 캐묻기 그래서 알겠어요. 하고 답장을 보냈다. 물론 더더욱 신경이 쓰였고.

하지만 지영은 힘들어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게 어머니가 바라는 거기 때문이었다.

잠시 뒤, 버스가 호텔 근처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지하로 내려가기엔 버스가 너무 커서, 야외 주차장에서 설 수밖에 없었다. 짐을 챙겨 내린 지영은 다 같이 움직여 호텔로 돌아갔다. 공원을 빙 돌아서, 도로를 건너면 바로 호텔이니 그렇게 멀지도 않았다.

“아 배고프다. 빨리 시간 좀 갔으면!”

이성진의 ‘밝은’ 투정에 다들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이 시기쯤 되면 선수들이 가장 바라는 건, 얼른 시합 날이 오는 거였다. 그래야 계체를 하고, 2㎏ 내지만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매불망, 시합! 시합! 경기를 뛰게 해달라!

떼를 쓰는 애처럼 앉아서 난리를 부리고 싶을 정도로 이 시기쯤엔 시합이 간절해졌다. 그리고 그렇기에 시간은 더럽게도 늦게 흘러가는 것처럼 체감됐다. 사소한 잡담을 나누며 공원을 빙 돌아, 호텔 앞으로 왔다.

이제 도로만 건너면, 호텔이다.

힐끔.

초록 신호를 기다리며 앞에 선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눈이 간 지영. 볼록 솟은 배. 임산부였다. 그리고 유모차와 그 옆으로 여인의 손과 잡고 선 금발의 꼬마 아가씨. 순간 꼬마 아가씨와 눈이 마주쳤다.

아직 지영을 모르는지, 그냥 말똥말똥 바라보기만 했다.

아이의 눈은 언제나, 어느 순간에나 맑아서 그냥 마주치기만 해도 마음이 정화되는 것처럼 편해졌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웃자, 아이도 방긋 웃었다.

하지만 신호가 떨어져 엄마가 툭 손을 당기자 아이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앞으로 걸어갔다. 아장아장. 보폭이 짧은 아이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걷는 엄마와 남은 한 손으로 인형을 꼭 안은 아이를 지나친 지나치던 지영은 순간적으로 짙은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어, 이거 어디서 겪어봤던…….’

속으로 그런 의문이 드는 순간.

“소피!”

갑작스러운 여인의 외침에 지영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리고 시야 전체에 순간적으로 상황이 들어왔다.

떨어진 인형.

인형을 향해 달려가는 아이.

아이의 앞으로 달려오는…… 새까만 삼각별 버스.

파지칙! 파지직! 어떤 한순간이 흑백사진으로 떨어진 인형을 줍는 아이와 오버랩됐다.

단숨에 그 장면을 이해한 지영의 메마른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아…….”

진짜.

끝까지…….

‘이러기냐?’

지영의 입에서 탄식이 흘렀고, 그 탄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치 영혼에 각인된 프로그램이 작동된 것처럼, 지영의 몸이 쏘아진 살처럼 튀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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