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50화
350화. 운명처럼 그렇게(2)
치직! 치지직!
장면에 쇼트가 온 것처럼 인형을 줍는 아이의 모습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 아이의 위로, 승아의 얼굴이 오버랩됐다. 움찔. 지영의 아킬레스건은 사고다. 특히 지금과 같은 상황은 강지영이란 단단한 철인을 진흙처럼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아주 확실한 약점이었다.
치직!
흑백사진처럼 일그러지며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자.
움찔.
다리에 분명하게 제동이 걸렸다.
허벅지 근육이 꾸물거리며, 나갈 거야? 진짜? 나가면 사고 날지도 모르는데? 또 그때처럼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르는데?
‘정말 구할 거야?’
어? 하는 표정으로 서 있기만 하면 돼. 그러면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을 거야.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을 내면의 악마가 지영의 귓가에 그렇게 속삭였다.
하지만.
‘구해야지.’
그 속삭임을 무시하고, 결정을 내리는 순간 단단하게 키운 하체의 근육이 일시에 폭발했다.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찌릿한 느낌이 올라왔다. 하체에 부하가 온 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무시하고 지영은 강하게 땅을 박찼다.
파바바박!
“야! 야아! 야 이 미친! 강지영!”
뒤에서 강한결이 욕설까지 섞어가며 놀라는 목소리가 들렸고, 부-아아앙!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경적. 대형화물트럭의 경적은 흔히 에어 클랙슨이라고 부르는 놈으로, 공간 자체를 울리는 느낌이 강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소리 때문에 전신에 소름이 파바박 돋았다.
하지만 그래도 지영은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몇 걸음 딛으며 가속도를 받기 시작할 때쯤 지영은 본능에 따라 생각했다.
‘아, 이건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거구나.’
조건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최초의 자신이 이 사고로 망가졌지만, 그렇기에 이 상황 자체가 낙인이 되어버렸다. 회귀란 것을 할 때도 마찬가지. 그때도 지영은 그 불편한 몸으로도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 그리고 치였고, 전신이 깨져 하늘을 날았다.
훨훨.
새처럼.
전신이 바스러져서.
그때의 끔찍한 고통은 잊고 싶지만, 잊히지 않는 낙인이었다. 그래서 가끔, 정말 가끔 그때를 생각하거나 꿈을 꿀 때면 통증이 되살아나 지영의 정신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그런 경우가 많지 않으니 다행이지, 많았다면 지영은 제대로 된 생활조차 하지 못했을 거다.
그런 끔찍한 고통을 느끼고 돌아온 고1.
지영은 돌아온 그 순간 또 구했다. 비록 그땐 삶의 주마등이라 생각했기에 망설임과 부담감이 별로 없었다. 끝까지 이런 장면을 보여주는 것에 대한 분노만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구했다.
또.
지영은 그래도 구했다.
자신을 망가트리고, 끝끝내 자신을 죽인 그 사고에서 지영은 도망치지 않았다. 외면하지 않았다. 꿈이 아니었기에, 승아와 선미 씨, 승주와 뱃속의 승현이까지 전부 살 수 있었다. 그때 부지불식간 내린 선택은 많은 목숨을 구했다. 그렇기에 괴로워도, 후회로 범벅된 기억은 아니었다.
그 이후로는 없었다.
사실 그런 일은 보통의 인간은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않는 일이다. 간단하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인간보다, 당하지 않는 인간이 더욱 많다. 그래서 그런 장면을 경험하지 않는 이들이 훨씬 많다.
지영은 경험한 이였지만, 이후로는 그래도 없었다.
그리고 속으로 사실 빌기도 했다.
이제 제발.
그런 끔찍한 일은.
내 앞에서 일어나지 말아 달라고.
태어나서 지영이 빌었던 소원 중 가장 강렬한 게 있었다면, 아마 그게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신은 매정했다.
신은 지영을 과거로 회귀시켜줬지만, 그 소원은 들어주지 않았다.
부- 아아아앙.
늘어지는 경적.
익숙하나, 익숙하지 않은 세계로의 진입.
‘아…….’
세계가 감속된 것 같은, 아니, 감속됐다.
지영의 그날에 가끔 찾아오는 미지의 세계. 인지에 장애가 온 것처럼 사물의 흐름이 느릿해지는 그 세계. 그 세계가 찾아왔다. 그 세계에서 지영은 아주 많은 것을 확인했다.
화물트럭 운전수.
졸음이 가시지 않은, 아직은 멍한 눈빛.
그러나 그 순간에서도 브레이크를 밟았다. 아니, 시스템이 반응했다? 후자 같았다. 요즘은 전방의 사물을 확인해 교통사고가 날 것 같으면 시스템이 개입해 강력한 브레이크를 밟으니까.
‘이번엔 졸음이네.’
이전엔 음주운전이었는데.
그런데 그거나, 그거나. 다를 게 뭐 있겠나. 사고가 날 위기라는 것은 어차피 똑같은 것을.
지영의 의식은 또 다른 것을 인지해 나갔다.
소피라 불린 아이.
이 가련한 아이야.
소피는 자신이 무슨 상황에 처했는지 모르는 눈빛이었다. 인형을 주었고, 화물트럭을 보았다가 자신을 천천히 돌아보는데, 웃는 건지 놀란 건지, 동그랗게 커진 눈빛이 그저 인상적이었다.
소피의 뒤.
부앙! 경적이 울리면서 호텔 앞 지나가던 시민과 호텔 앞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올림픽 출전 선수들.
그 모든 것이 인지되었고, 지영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구할 수 있을까?’
아슬아슬하다.
세계는 느려졌다.
그러나 그 속에서 자신만 빠르게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그저 사고 흐름만 기이할 정도로 여유가 있는 정도였다. 지금도 아이를 향해 뛰는 자신의 속도는 현실과 같았다.
느려진 것 같으나, 실제로는 나의 움직임도 세계와 같다.
조금 아쉬웠다.
기왕 이런 능력을 줄 거면, 그 속에서 자신만 빠르게 해주지. 하는 아쉬움이 당연히 뒤따랐다. 그러나 이제 와 이런 아쉬움을 느껴봐야 소용없었다. 트럭은 바로 코앞에 있다. 더불어 소피라 불린 아이도. 구하지 못하면?
소피는 물론, 이제 지영도 죽는다.
이미 발을 빼기는 늦었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여기서 자신의 몸에 브레이크를 걸어 멈춰봐야 관성의 법칙을 완전히 이겨낼 수는 없을 거고, 이겨내지 못했으니 트럭의 정면으로 들어서게 될 게 분명했다.
그럼?
쿵. 하고 하늘을 날게 될 거다.
그때처럼.
끔찍한 고통과 함께 육신이 바스러진 채로.
싫다.
그건 정말이지 너무나…… 싫었다.
그래서 지영은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 줬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이 아이와 자신까지 무사하게 살 수 있을까? 트럭이 오는 속도, 자신이 달리는 속도. 이 둘을 비교하면 후자가 압도적으로 빠르다.
자신이 아무리 단련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저 육중하다 못해 거대한 덩치를 가진 트럭보다는 빠를 수 없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그건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살고 싶다. 살아야 해!’
여기서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다시 얻은 기회다.
누가 줬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준 기회를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정상의 육체로 이제 고작 4년, 5년을 살았을 뿐이다. 아직 자신은 목이 말랐다. 더, 더 누리고 싶었다. 여기서 전부 끝내고 싶지 않았다.
이런 마음이 강지영이라 한 인간의 생존 욕구를 폭발시켰다.
지영은 살고 싶었다.
이런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인간이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은 생각일지라도, 그래도 살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머릿속에 넣고, 계산했다. 보통이라면 불가능하니, 기이한 이 감속의 세계라 가능했다.
‘아이는 잡을 수 있어. 잡을 수는…….’
그럼 그다음은?
그때쯤이면 버스와 자신의 몸은 뜨겁게 랑데부를 하게 될 거다. 그럼 모든 게 끝이다. 그러니 그걸 피해야 했다.
끽! 끼기긱!
그런데 그때 귓가로 들려오는 마찰 소리. 지영은 반사적으로 그게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라는 걸 알아챘다. 사실 아까부터 났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제야 인지되기 시작한 소리였다. 이 브레이크 걸리는 소리는 지영의 사고를 전환했다.
‘브레이크. 화물트럭의 브레이크는 상상 이상의 성능을 자랑하지…….’
그건 유도팀에게 배정된 버스에도 달려 있었다.
어제인가?
경기장 연습 배정 시간이 저녁이라서 늦게 몸을 풀고 숙소로 돌아오던 도중, 어두컴컴한 숲에서 갑자기 야생동물이 튀어나와 기사가 급브레이크를 밟은 적이 있었다. 속도가 그렇게 빠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바로 앞으로 튀어나온 동물을 치면, 동물의 육신은 무조건 박살 날 속도였다. 그리고 곧장 브레이크를 밟았어도, 관성의 법칙으로 충돌을 피하는 건 어려운 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상식을 뛰어넘는 브레이크 시스템이 생명체를 인지한 순간 강제적으로 작동했고, 정말 코앞에 있었는데 급속 브레이크를 작동해 사고가 나기 직전 멈췄다.
그런 브레이크 시스템.
그게.
‘저 화물트럭에도 탑재되어 있다면……?’
그렇다면.
광이 번쩍번쩍 나는, 척 봐도 최신기종일 게 분명한 저 삼각별 트럭에 그 브레이크 시스템이 탑재만 되어 있다면.
‘승산이 있다…….’
그러나 곧 회의적인 마음이 들었다.
거리는 지독히도 가깝다. 이 거리면 솔직히, 물리법칙을 벗어나지 않는 한 충돌을 피하긴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속도가 느려지면, 피할 시간 자체가 더 나오지 않을까? 최소…… 1초라도?’
1초면 짧은 시간 같지만, 100m를 9초대에 뛰는 시대다. 트럭 안면의 면적 등을 생각하면 대충…… 각이 나왔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시도하는 게 맞았다. 버스로 뜨겁게 포옹한 뒤 키스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지영은 자세를 낮췄다.
거의 쪼그리고 앉듯이 달리는 자세를 낮춘 다음, 소피를 스쳐 갔다. 그냥 가냐고? 설마. 턱! 손을 뻗어 소피를 배부터 감아 안은 지영은 몸을 틀어, 그대로 두 다리로 모으며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뒤로 뛰려는데…….
끼이이익!
또 다른 브레이크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어보니, 트럭에 가려져 있던 또 다른 경트럭이 보였다. 음, 그래. 한국에서는 흔히 용달차라 부르는 1톤 트럭이었다.
“씨, 이…… 바알!”
씨X! 이런 개!
욕지기가 폭발적으로 그 순간 솟구쳤다. 원래는 뒤로 튕겨 나가려고 했다. 앞으로 점프해 볼까도 했는데, 아이를 안고는 자세가 잘 안 나왔다. 게다가 소피의 뒤통수가 땅바닥에 처박힐 수도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 그걸 계산한 지영은 그대로 안아 가슴으로 당긴 다음, 뒤로 튕겨 나가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최소한 발은 걸려도, 상체는 눕혀질 테니 충돌 면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란 본능적인 계산이 선거다.
그 짧은 틈에.
늦어진 사고의 세계에서 지영은 그 같은 최고의 코스를 찾아냈다. 찾아냈는데…… 변수가 생겼다. 육중한 버스의 동체에 가려져 있던, 그 옆 차선의 트럭이 또 모습을 드러낸 거다. 그 운전자는 졸지 않았다. 다만, 툭 튀어나온 지영을 보고는 기겁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밟았을 브레이크.
시각과 청각을 통해 현 상황 정보가 차례대로 뇌리로 들어왔다.
그 정보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재차 수정되는 동작. 원래 지영은 그 짧은 틈에 뒤로 튕기듯이 뛰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걸로는 답이 나오질 않았다. 새까만 거대 화물트럭은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거기에 가려져 있던 저 용달차를 피하는 건 무리였다.
‘빌어먹을……!’
심지어 마크를 보니 한국산이다.
국산 차에, 그것도 용달차에 포드나 볼보, 벤츠에서 사용하는 급제동 프로그램이 깔렸기를 바라는 건…… 역시 무리였다. 그러니 저건 무조건 자력으로 피해야 했다. 두 트럭 사이로 빼꼼 서면? 통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으나 화물트럭의 운전수가 잠에서 깨어나 핸들을 저도 모르게 트는 바람에 이미 버스의 경로가 재수 없게도 지영 쪽으로 아주 조금 틀어졌다. 이 상태면 틈으로 스쳐 가길 바라며 몸을 날처럼 세워도, 그대로 치고 나갈 게 분명했다.
틈이 없다.
결국, 몸을 빼는 것밖엔 방법이 없다.
이 급박한 순간, 이 모든 사고를 행한 지영은 몸을 통 띄웠다.
건너편에 경악한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다.
‘걱정하지 마.’
반드시 무사히 돌아갈 테니까…….
부디, 제발. 생각한 대로 액션이 이루어지기를.
그렇게 기도한 지영은 몸을 복근에 힘을 빡 주고는 하체를 접었다. 그러자 브레이크를 밟은 화물트럭이 거친 스커드 마크를 내면서 급제동해, 지영이 접은 다리가 있던 공간을 툭 치고 가며 완전히 멈췄다.
그 틈에 트럭이 선 걸 확인한 지영은 응축한 전신의 힘을 폭발시켰다.
다리를 쭉 펴며, 멈춘 트럭의 옆을 발로 강하게 박찼다. 가능하다면 가볍게 댄 다음 수영 선수가 턴 발차기 하는 것처럼 밀어내는 게 좋겠지만 이미 공중에 몸을 띄운 상태로 그냥 밀어 차듯이 나가는 게 최선이었다.
슈악!
다행히 의도는 먹혔다.
지영의 몸은 힘을 받아 날아갔다.
‘재발! 제발!’
브레이크! 더 밟으라고!
지영은 기겁한 다음, 눈을 질끈 감은 용달차 운전수에게 속으로 소리쳤다. 제발, 제발……. 신을 믿으나, 특정 신을 믿지 않는 지영은 존재한다는 모든 신에게 빌었다. 특히 자신을 돌려보낸 신에게는 더욱 간절하게 빌었다.
‘당신도…… 내 삶이 이렇게 끝나기를 바라지 않을 거잖아!’
악을 쓰며 따지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브레이크 시스템이 엄청나게 짧은 공간에서도 멈춘 벤츠의 트럭과는 다르게, 주르륵! 미끄러져 왔다. 지영은 몸을 공중에 띄운 상태에서 다시 복근에 힘을 줘 최대한 다리를 접었다. 서 있을 때처럼 빠르게 접진 못했지만, 그래도 접히긴 했다. 다행히, 정말 조금은 접혔다.
지영의 그 날.
미지의 감속 세계에 들어서지 않았다면 절대적으로 불가능했을 미친 짓을 지영은 겨우겨우 성공…… 했다.
하지만.
성공하긴 했으나.
퍼억-!
아찔한 충격이, 발끝에서 피어났다.
충돌은 끝끝내 완전히 피하지 못했고,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