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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48화 (348/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48화

348화. 올림픽 준비(5)

독일, 함부르크.

8월 말의 함부르크 날씨는 일교차가 조금 있으나 낮에도 밤에도, 활동하기 딱 좋은 온도였다. 도착한 첫날엔 당연히 시차 적응부터였다. 세계 대회를 제법 뛰다 보니 이제 이것도 요령이 생겨서 루틴을 하루 만에 무리 없이 맞출 수 있게 됐다.

지영은 이른 새벽, 호텔 바로 앞의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이른 새벽이고, 마스크를 쓰고 있어 그런지 알아보는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혹시 몰라 대표팀 복이 아닌, 일반 트레이닝복을 입어 더더욱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함부르크.

독일 하면 사실 베를린이나, 뮌헨 같은 곳을 먼저 떠올리나 함부르크는 독일에서도 인구수로는 2번째로 컸고, 유럽 전체로 따졌을 때는 7번째에 해당할 정도로 대도시였다. 그런 대도시는 현대의 멋보단, 올드한 멋이 먼저 다가왔다.

그러나 호텔 앞의 공원은 달랐다.

호수를 끼고 깔아놓은 러닝 코스는 딱 봐도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올림픽 동안 선수들이 몸을 풀 수 있게 마련해 준 공간이란 게 느껴졌다. 거기에 이른 새벽인데도 정복을 입은 경찰이 공원 곳곳에서,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한 배치 같았다.

그래서 안심하고 지영은 러닝에 집중할 수 있었다. 스트레칭부터 한 뒤, 가볍게 일단 걷기 시작했다. 이국의 공원과 호수는 보는 것만으로도 멋이 있었다.

한 바퀴 산책하는 동안, 속속 선수들이 나왔다.

호텔 바로 앞의 공원은 대표팀에서도 안전하다고 판단해서, 언제든 가서 운동해도 좋다고 했기 때문에 나오는 선수들은 상당히 많았다. 지영이 나왔을 때 트기 시작한 동은, 한 바퀴를 걷자 완연히 터서 사라졌다.

“좋은 아침. 잘 잤지?”

“응. 너는?”

스트레칭을 하는 강한결의 안부에 대답하며 도로 묻자, 강한결은 말없이 씩 웃기만 했다.

“좋은가 보네. 애들은?”

“나 내려올 때 다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금방 나올걸?”

“그래? 그럼 난 먼저 뛴다.”

“같이 가.”

강한결은 스트레칭을 하고, 지영처럼 산책 없이 바로 러닝을 시작했다. 둘이 나란히 서서 뛰기 시작할 때쯤엔 주변에 다른 나라의 선수들이 속속 보이기 시작했다. 제각각의 운동복. 그 나라의 대표팀 복을 입은 선수도 있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선수들이 현지에 먼저 와 적응 훈련을 시작한 것이다.

사실 유도는 날씨, 온도, 습도 등등을 많이 타는 종목은 아니다.

그런 걸 많이 타는 종목은 보통 야외에서 경기하는 축구나 골프, 테니스, 이런 종목이었다. 유도는 실내스포츠기 때문에 그런 기후조건은 거의 타지 않는다.

……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경기장 밖의 날씨는, 실내 자체의 공기를 결정했다. 요즘이야 체육관에 시스템이 잘되어 있어서 문제없이 습도와 온도를 맞춘다고 하지만, 그래도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복도와 화장실은 관리가 힘들었다.

이런 미묘한 것에 영향을 받는 선수는 분명 있었다.

물론 지영은 그런 미묘한 것쯤은 그냥 무시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경기 당일 자체의 날씨는 좀 탔다.

특히 비 오는 날.

어두컴컴한 하늘, 짙은 습기, 이런 것들은 선수들의 몸을 무겁게 했다. 이는 지영이라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날, 지영의 컨디션은 베스트가 됐다. 정확히는 멘탈 컨디션이었다. 육체는 조금 무거워져도, 정신적인 컨디션은 최상으로 올라간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번엔 비 좀 왔으면 좋겠다.”

“비? 갑자기? 뭐야. 갑자기 자신 없어졌어?”

강한결의 질문에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 없다니, 왜 이래. 나 강지영이야?”

“하하! 뭐야 갑자기, 진짜?”

지영의 장난에 강한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친구의 모습에 하하! 지영은 소리 내서 웃었다. 친구의 이런 반응이 재밌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이 얼마나 그동안 진지한 모습만 보였으면, 이런 장난 하나에 저렇게 동공 지진이 나나 싶기도 했다.

“그냥 좀 붕 떠서 그런가? 이런 장난도 나오네?”

“어우, 놀라라. 야, 너는 갑자기 그런 장난치지 마. 심장에 안 좋다.”

“내가 그 정도냐?”

“응, 세상 진지한 남자 강지영. 이전에는 몰랐는데 받아보니까 확실하네. 네가 장난치니까 심장이 덜컥거리는 느낌이야.”

“……그렇게 말하니 오리려 내가 서운한데?”

“서운해도 안 돼. 하지 마. 정 그러면 이따 애들한테 해봐. 진짜 기겁할걸?”

“…….”

한 바퀴를 돌고 오자 친구들이 나와 몸을 풀고 있었다. 그래서 거기다 대고 좀 전에 했던 장난과 똑같이 해봤다. 비 좀 왔으면 좋겠는데? 하자 왜? 라고 해서 그냥, 그랬으면 좋겠어. 하고 대답했더니 다들 동공 지진이…….

괜히 시무룩해졌다.

“아 씨…….”

사실 장난이랄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친구들이 이렇게 반응하자, 괜히 서운해졌다. 그런 모습에 또 아하하…… 어색한 웃음으로 달래는 친구들의 행동에 지영은 그냥 웃고 말았다. 가벼운 산책과 러닝, 그리고 한국에서 넘어온 조리장들이 직접 만든 음식으로 아침을 먹고, 잠시 쉰 지영은 도복을 챙겨 경기장으로 향했다. 오전 11시부터 12시 30분까지, 한국팀의 훈련 시간이었다.

유명한 저항 운동가의 이름을 딴 한스 숄(Hans Fritz Scholl) 경기장.

유도 경기장이 열리는 한스 숄 체육관은 이번에 새롭게 건설된 경기장이었다. 원래는 복지 체육관 용도로 이미 시외에 지어지고 있었는데, 올림픽이 개최가 결정되자 급히 노선을 틀어 규모를 좀 더 키웠다.

본래는 7천 석 정도 규모의 공연을 비롯한 경기장을 지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수정이 가능한 정도에 결정이 나서, 최대 2만 오천석으로 규모를 늘렸다. 그리고 여기에 독일 기술력이 아낌없이 투입됐다. 기술이 투입되며 밤낮으로 경기장이 올라가는 동안, 이 경기를 어떤 종목에 할당할 것인가에 관한 회의가 이어졌다.

결정은 파리를 찾은 강지영을 본 뒤에 났다.

유도 경기장.

대규모 팬을 몰고 다니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인물 탑 3위 안에 드는 연예인이자, 셀럽이며, 운동선수가 종사하는 종목으로 결정이 난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은 티켓팅에서 바로 나왔다.

전 좌석 매진. 그것도 채 5분이 지나기 전에 9일 치 티켓 예매가 끝나 버렸다.

유명한 연예인의 콘서트에 버금갈 정도로 엄청난 화력이었다.

그런 스토리를 안고 완공된 한스 숄 경기장에 도착한 지영은 생각보다 큰 경기장에 좀 놀랐다. 큰 경기장에서의 경기 경험이 없는 건 아니지만, 새로 완공된 경기장을 유도에 배정해 줄 정도로 이 종목의 인기가 많이 올랐다는 사실이 가슴을 조금은 뿌듯하게 했다.

“와, 체육관 좋네…….”

먼저 온 미국 팀 훈련이 아직 끝나지 않아 관중석에 앉아 기다리면서 지영은 정말 자신이 올림픽 무대에 왔구나란 생각에, 절로 기분이 오묘해졌다.

‘길게 걸렸나? 아니면 빨리 온 걸까?’

남들은 모르는 자신의 과거.

사실 이 올림픽은 이우진이 나왔다. 그것만 해도 다르지만, 이우진은 심지어 함부르크 올림픽이 아니라 파리 올림픽에 나갔다. 왜냐하면 IOC 스캔들이 원래는 그렇게까지 크게 터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선에서 합의를 보고 봉합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아주 거대하게 터치며 줄줄이 옷을 벗었다. 라인이라 할 만한 위원장과 부위원장 파벌이 완전히 날아가면서, 올림픽을 열 수 있는 능력 자체를 상실해 버렸다.

그래서 결국 중도가 모여 올림픽을 연기시켰고, 새롭게 회의를 거쳐 다시 위원회가 꾸려졌다.

이게, 원래는 없던 일이었다.

그래서 파리 올림픽은 예정대로 열렸다. 작년에. 그리고 73체급엔 이우진이 나갔고, 결승전에서 신지에게 패배하며 은메달을 땄다. 그래도 그 은메달로 잘생긴 얼굴, 재벌 3세 등의 이미지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이우진이었다.

그러나 그 원래의 역사가, 자신 때문에 사라졌다.

‘아니, 그게 원래의 역사라고 할 수는 없겠지.’

원래의 역사가 되려면 일어나야 하지만, 이번에는 아예 일어나지조차 않았다. 그러니 역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 세계가 같은 세계라면, 자신이 회귀라는 걸 하며 과거가 아니라 다른 세계로 날아온 게 아니라면, 지금 자신의 시간이 곧 역사였다. 아니, 역사가 될 예정이었다.

이렇게까지 운명을 바꾸는 데 걸린 시간은 4년 남짓이다.

‘참 많이도 바꿨네…….’

어디서부터 어떻게 변했는지 설명하려면 정말 한도 끝도 없다. 애초에 사고부터 없었던 일이 됐으니까, 거기서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모든 게 변했다고 보면 된다. 누군가는 추락했고, 누군가는 비상했다. 자신의 존재로 인해 이 자리에 선 이들의 역사 또한 매우 변했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여자 대표팀도 많이 변했다. 작년과 올해의 대표팀은 라인업이 달랐다. 고작 1년 사이 세대교체가 일어난 것처럼 변해버린 거다.

강지영이란 한 인간이 일으킨 나비효과는, 가히 태풍처럼 거대해졌다.

지영은 어쩌면 그 태풍이 가장 활발하고, 강력한 시기가 지금이 아닌가 싶었다. 올림픽. 자신이 정한 가장 중요한 대회. 물론 그랜드 슬램을 위해서는 세계 선수권과 아시안 게임을 석권해야 하지만, 그래도 올림픽이 주는 상징성은 무시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다른 대회를 전부 압도하고도 남았다.

축구인에겐 올림픽보다는 챔피언스 리그일 거고, 월드컵일 거다.

야구인에겐 월드 시리즈가 올림픽보단 더 큰 목표이고 영광일 거다.

물론, 이 역시 개인마다 기준이 다르기도 할 거고.

하지만 저런 리그가 없는 종목의 선수에게는 올림픽이 종착지이자, 목표이고, 마지막으로 누울 안식처와 같은 무대였다. 몇 개의 종목을 제외한 전 종목의 선수가 오직 이 올림픽만 보고 달려간다.

아시안 게임도, 세계 선수권도, 그 외의 대회도, 리그가 없는 이들에겐 그 어떤 대회도 올림픽보다 더 우선도가 높을 수는 없었다.

이는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대미의 장식이 이 대회가 아닌 건 솔직히 좀 아쉽긴 했다. 하지만 천하의 지영도, 올림픽은 그 자체로 굉장히 특별하게 다가왔다.

회귀 후, 지영은 삶의 목표나 목적 자체가 유도는 아니었다.

유도는 오히려 애증의 관계였다. 놓고 싶지만 놓을 수 없었고, 그렇기에 가까이 다가갔더니 역으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던 게 유도란 종목이었다.

지금은?

그랬던 과거의 파편 때문에 때때로 갈증을 느낄 때가 있었다.

특히, 강자와의 시합 때 이런 갈증은 폭발했다. 하지만 그 폭발은 한 사람에게서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미야모토 신지.

불세출의 천재.

‘회귀란 반칙이 없었다면…….’

자신도 솔직히 어떻게 될지 몰랐을 실력자다.

아니, 아마 승률 자체가 역전됐을 수도 있었을 거로 생각했다. 그만큼 신지는 타고난 천재였다. 같은 체급의 선수에게는 아마 천재라는 느낌보단, 재앙이라는 느낌이 훨씬 더 와닿을 선수였다.

생각해 보니까.

‘진짜 반칙 같은 선수긴 하네.’

불세출의 천재다.

예전에 73체급에 그 정도로 잘했던 선수가 있긴 했었다. 오노 쇼헤이보다 훨씬 더 임팩트가 컸던 한판승의 달인이 그랬다. 특히 툭툭, 소매를 뿌리치려는 모션 뒤 들어가는 빗당겨치기는 가히 예술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신지는 작금의 유도 이전 세대에서 가장 임팩트가 컸던 그 선수와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았다.

아니, 압도하는 느낌이 있었다.

지영은 그런 천재가 같은 세대에 있는 게, 너무나 감사했다.

“뭐지. 얘 오늘 이상한데?”

“그러게. 혼자 실실 쪼개네?”

“선생님, 웃는데요?”

지영이 웃는 게 이상했는지 친구들이 저마다 놀려댔다. 지영은 그 놀림에 얼른 표정을 수습했다. 그렇게 상념에 빠져 있는 동안 경기장이 비워졌다.

“가자.”

아래에서 내려오라는 손짓에, 강한결이 먼저 일어났고, 지영은 그 뒤를 따라 매트에 발을 디뎠다.

익숙한 감촉.

그런데도 이 익숙한 감촉과 디딘 곳 바로 앞의 함부르크 올림픽 로고에 지영도 이제 정말 올림픽이구나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며 지영은 이곳에 왔다.

꿈의 무대.

정체 모를 희열이, 순간 몸을 엄습하는 걸 지영은 확실히 느꼈다. 그게 ‘기대’라는 것을 알고는 저도 모르게 환히, 미소 지었다. 그런 지영을 본 친구들은, 저마다 피식 웃으며 지영과 비슷한 미소들을 짓기 시작했다.

누가 친구 아니랄까 봐, 다들 같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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