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47화
347화. 올림픽 준비(4)
서서히 열기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올림픽에 관한 기대로 인해서였다. 이 축제는 전 세계를 열광시킨다.
올림픽, 그리고 월드컵.
특정 국가에서 인기 있는 종목 말고,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하는 건 이 두 축제가 유일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축구 말고, 올림픽은 아주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다. 월드컵이야 축구 한정이다.
축구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그냥 분위기에 휩쓸려 우와! 할 뿐, 진짜 좋아하진 않을 수도 있었다.
올림픽도 그건 비슷하지만, 그래도 종목이 많다 보니 취향에 맞는 경기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다양했다. 수영부터 시작해 유도, 축구와 농구, 배구 등등, 하계 올림픽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종목이 총망라되어 있기에, 그만큼 취향에 맞춰 다양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래서 올림픽은 인기가 많았다.
다양한 종목, 다양한 선수. 이 안에서도 인기 종목과 비인기 종목의 순으로 중계가 밀리긴 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지만, 이는 어쩔 수 없었다.
리그가 형성될 정도의 종목이 인기가 많은 건 필연이었다.
이 같은 문제는 애석하게도 어떤 방송사가 손해를 보지 않는 이상은 해결이 불가능했다. 국영방송이라 불리는 곳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가장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 종목은 모두가 예상하듯이 배구와 축구 같은 구기 종목, 그리고 유도였다.
전에 없이 거대한 인기를 구가하는 종목, 유도. 비록 유도라는 종목이 일본의 국기와 같은 운동이라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현재 세계를 휩쓸고 있는 자랑스러운 선수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종목이 유도였다.
특히 운동선수 중에서는 가히 세계에서 첫 번째라 할 수 있었고, 연예인 인지도로 따졌을 때도 그 어떤 할리우드 배우에게도 뒤지지 않는 강지영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유도는 인기 종목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문제가 생겼다.
MBS로 돌아와 요즘은 그래도 평화롭게 생활 중인 이선영이 불려 간 것은, 그 문제 때문이었다. 취재 중에 갑자기 호출당한 그녀는 회의실에서 설명을 듣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러니까 나라별로 중계석은 두 개밖에 못 준다, 이거잖아요?”
“그렇지.”
“두 개밖에 못 주는 이유는 유도의 인기가 지영이 때문에 너무 많아서이고? 그래서 나라별로 중계석을 너무 많이 두려고 해서 제동을 걸었고?”
“그렇지.”
“우리나라도 종편부터 시작해서 공중파 삼사가 전부 중계권 쟁탈에 나섰고? 이게 지금 상황이라는 거죠?”
“그렇지.”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올림픽 중계권은 세계인의 축제니까 무료일 거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아니었다. 중계권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돈을 주고 파는 항목이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중계권료 자체를 엄청 띄우진 않았지만 이미 나라별로 유도 종목 중계권만큼은 절대 사수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원래도 중계권은 이렇게 쪼개 팔지 않았다.
그런데 강지영이란 존재는,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게 만들기 딱 좋았다. 그래서 IOC는 종목을 쪼갰다. 그다음은? 당연히 개별 판매였다. 이 때문에 진짜 개양아치란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이들은 비인기 종목도 중계해 주기를 원한다는 개소리를 변명이랍시고 내놓았다.
누가 봐도 강지영으로 주머니 좀 채우자는 수작이었지만, 어쩌겠나. IOC는 이 무렵 때가 되면 완전히 기관총으로 무장한 갱보다 무서운 것을.
결국, 그 결과 이 중계권을 두고 쟁탈전이 벌어졌다.
특히 유도 종목은 굉장히 과열되기 시작했다. 다른 인기 있는 종목도 쟁탈이 심했지만, 유도는 정말 심했다.
“그걸 지금 뜯어고치겠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원래 종편에서 하기로 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도 어처구니가 없는 거지.”
“아니, 잠깐만. 애초에 중계권은 몇 년 전에 이미 전부 끝나잖아요. 그걸 해지했다고요?”
“그런가 보던데? 그거 계약 해지 못 했으면 이 미친 짓도 못 했을 거 아냐. 위약금이 어마어마할 건데.”
“와…… 진짜 양아치네.”
뭘 어떻게 해야 이미 팔았던 중계권 계약서를 찢고, 다시 할 수 있을까? 애초에 이게 가능한 건가 싶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이선영은 잠깐 생각하다가, 재차 말을 이어갔다.
“선배, 그런데 이런 경우는 내가 뭘 어떻게 못 하잖아요. 제가 돈이 있어요, 아니면 힘이 있어요?”
“넌 인맥이 있잖아.”
“기자 인맥이 거기서 거기…… 지영이? 지영이한테 이거 부탁해 달라고 저 부른 거예요?”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선배의 대답에 이선영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아니, 이제 2주 후에 시합 뛰는 애한테 이런 걸 해결해 달라고 말하는 게 말이 돼요?”
“어후! 그럼 어쩌냐? 위에서는 어떻게든 얻어보라고 지랄하지! 방법은 없지! 염병 돈을 줘서 중계권을 쟁탈에 뛰어들 생각도 없지!”
“그건 선수도 마찬가지죠! 애초에 지영이가 뭔 상관이 있다고 이걸 뒤집어요?”
“아니, 그냥 답답해서 하소연한 거라고!”
“그러니까 하소연을 왜 지영이한테 하려고 했던 거냐고요! 선배도 날아가고 싶어요? 지영이 괜히 건드리면 피 보는 거 몰라서 그래요?”
“야, 말이 심하다?”
스트레스를 극한으로 받았는지, 선배의 표정이 기분 상한 것처럼 변했다. 그게 어이가 없는 이선영은 얼굴에서 표정을 싹 지웠다.
“취재로 바쁜 사람 불러놓고 한다는 소리가 이딴 개소리니까 그렇죠. 선배. 이 문제를 나나 지영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지영이 몰라요? 걔 이런 쪽으로는 아예 눈길조차 안 두잖아요. 선배가 바란 건 지영이가 SNS 같은 곳에 글 올려서 언론전이라도 해달라고 하려 했던 거 같은데, 애초에 시합 얼마 안 남은 애한테 그런 걸 부탁한다는 것 자체가 개념이 없는 거예요, 선배.”
“야, 말이 심하다고. 그냥 푸념이라고 했잖아?”
“푸념은 일기장에 써놓든가! 하, 씨. 짜증 나게.”
드륵!
거칠게 의자를 밀고 일어난 이선영은 야 이 개년아! 하고 쌍욕을 입에 담는 선배를 무시하고, 회의실을 나왔다. 저러는 이유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핫해져도 너무 핫해졌지.”
무려 신제품 하나를 대박을 넘어 초대박 행진을 아직도 이어가고 있었다. 증설한 라인으로도 현재 물량을 감당하지 못하는 게 포드의 운명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동생은 마치 설산의 정상에서 굴린 작은 눈 뭉치처럼 흘러갔다.
처음엔 그래도 그녀가 어느 정도는 뒤에서 받쳐줬었다.
무작정 좋은 기사만 쓰는 성격은 아니었으나, 동생은 좋은 기사만 쓸 수 있는 재료였다. 실수를 하지 않게 조심하는 성격도 아닌데, 극단적으로 실수가 없는 동생이었다. 생각과 행동 그 자체가 매우 좋은 방향과 결과만 끌어내는 아주 신기한 동생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켜보는 게 정말 재미있는 동생이었다.
아슬아슬.
예술가의 문제와 공격당하는 동생을 보자면, 정말 날뛰고 싶긴 했으나 그랬다간 판이 커져서 더욱 고통받을 거고, 지영이 바라지 않아 그만뒀었다.
결국, 그러한 문제들도 강지영이란, 당시 스물도 안 된 청소년을 어떻게 하진 못했다. 오히려 그런 문제들을 이겨내고 더욱더 높은 곳으로 훨훨 날아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인간 자체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아주…… 대견한 아이.
그런 대견한 아이는 이제 올림픽이라는, 제일 큰 무대에 선다. 그 무대에 서는 건 일반적인 무대에 서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올림픽. 운동선수에게 있어서는 꿈의 무대이면서, 최종 종착지와도 같은 무대였다.
선수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명예가 기다리는 곳.
이제 그 무대에 서는 게 얼마 남지도 않았다. 그런 동생에게 이 말도 안 되는 문제에 관해 코멘트를 해달라고? 정신 나간 소리였다. 선배라는 작자가, 시청률에 눈이 먼 상부의 지시 때문에 정신이 나갔구나. 이선영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래서 오랜만에 동생이 보고 싶어졌다.
시간을 보니 막 오후 운동이 끝났을 것 같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메시지를 보냈더니, 바로 전화가 왔다.
“어? 벌써?”
-누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연락했네요? 서운하게.
“호호. 미안.”
말도 가끔, 정말 가끔이지만 이렇게 예쁘게 하는 동생이었다.
-어디세요? 저 지금 서울인데.
“어? 서울?”
-네. 잠깐 회사에 왔어요. 나의 무사님 계약 건으로.
“그래? 어, 음. 그럼 누나가 금방 갈게. 저녁은? 아, 체중 조절 때문에 못 먹지?”
-네, 저녁은 좀 힘들어요.
“에구, 그래. 샐러드 바라도 갈까? 그건 괜찮지?”
-네, 그건 괜찮아요. 마침 안 그래도 그쪽으로 가려고 했어요. 하하.
샐러드 바.
그녀가 가끔, 정말 가끔 중요한 날 다이어트를 위해 찾는 저주받은 장소다. 곧 죽어도 육식파인 그녀에게 샐러드 바는 진심으로…… 지옥과도 같았다. 하지만 지영은 감량 중이다. 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감량 중일 때 정신줄을 놓고 한 끼만 폭식해도 몇 주 치 공이 단방에 날아간다고 들었다.
애초에 수분을 쥐어짜고, 또 쥐어짠 상태이기 때문에 몸에 수분이나 음식물이 들어가면, 몸 안에서 미친 듯이 음식물에 달려들어 수분조차 남기지 않고 분해해 버린다. 정말 아주 소수의 찌꺼기만 장으로 내려가고, 나머지는 진짜 아귀 떼에 물어뜯긴 고기처럼 분해된다. 지영의 지금 상태는 분명 그런 상태일 게 확실했다.
사실 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 건 아니다.
안 되는 건 아닌데.
한 점만 먹고 그만둘 자신이 없어서, 먹지 않는 거였다.
퇴근 시간이겠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바로 회사로 향하자 지영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볼이 홀쭉했다.
“아이고, 얼굴이 반쪽이 됐네?”
“누나, 안녕하세요.”
“인사는 아까 했잖니. 은진이는?”
“일이 있어서요. 저만 나왔어요.”
“혼자 움직여도 돼?”
“제가 앤가요 뭐. 그리고 갈 곳도 바로 코앞인데요. 가요.”
차를 대고, 바로 코앞의 샐러드 바로 이동했다. 돈을 내고, 참 접시에 담기 망설여지는 풀떼기를 겨우겨우 담아 가지고 왔다. 앞에 앉은 지영의 식단은, 더 장난 없었다.
“와……. 그게 끝?”
“네, 아까 차 마셔서요.”
“…….”
대단하다.
다이어트는 세상 모든 여자의 숙명이었다. 너 언제까지 다이어트할래! 하고 물으면 죽을 때까지란 답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만큼 독한 일생을 보내야 유지가 되는 게 여자의 미였다.
한때는 본인도 그랬던 만큼, 다이어트라는 게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여자가 잘 알았다. 그런 자신이 보기에, 지영은 정말 독했다.
그리고 그 독한 걸, 정말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다.
딱 보면 힘든 티가 날 법도 한데, 그런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다만 좀, 지쳐 보이긴 했다.
“시합 준비는 잘돼가?”
“네. 컨디션 좋아요. 느낌도 좋고. 누난요? 기자니까 독일 오죠?”
“가지, 당근. 나 네 전담이다?”
“저요?”
“응. 인터뷰 한 꼭지라도 딸 가능성이 있는 게, 전 세계에 나밖에 없잖니?”
“아…… 하하.”
그렇기도 했다.
지영은 언론을 싫어하다 못해, 배척했다. 아예 상대조차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지영과의 인터뷰는 일단 따내기만 하면, 대박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선영은 어느 순간부터 그런 부탁을 일절 받지 않았고, 자신도 지영에게 부탁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됐는지 이미 전부, 누구보다 가까이서 봤기에 양심이 있다면 절대로 해선 안 되는 행동이라고 그녀 스스로 규정지었다.
그래서 인터뷰 청탁은,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보도국장이 와서 사정사정해도, 사원증을 던지면 던졌지, 절대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끈질겼다. 보도국은 그녀를 유도 전담으로 넣었다. 그리고 말은 안 했으나 은근슬쩍, 가끔은 대놓고 아, 강지영이 인터뷰 하나만 따면 참 대박일 건데. 하고 중얼거리면서 지나다니며 그녀를 압박했다.
물론 들어줄 생각은 지금도 없었다.
“근데 난 그냥 현장만 딱 내보낼 거야. 너는 시합에만 신경 써.”
“당연히 그럴 겁니다.”
“그래. 컨디션은 좋다고 했고. 어때? 이번엔 당연히 우승?”
“그럼요. 금메달이죠.”
“못 따오면 아주, 죽는다?”
“네, 우승할게요. 그리고 누나랑 인터뷰할게요. 우승하면.”
“그래, 우승…… 응?”
“인터뷰요. 금메달 따면, 누나랑 인터뷰할게요.”
“…….”
거절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절하지 않으면 너무 속물처럼 느껴지겠지? 하는 생각도 이어서 들었다.
“됐거든.”
그래서 그녀는 거절했다.
그 거절에, 지영은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독일은 언제 출발해?”
“다음 주요.”
“그래, 얼마 안 남았네?”
“네.”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지영은 저녁을 정말 쥐똥만큼 먹었다. 고작 샐러드 한 접시. 그램으로 따지면 한 100그램쯤 될까? 그 정도만 먹고 포크를 내려놨다. 그리고 차를 마시는 것도 힘들어서 바로 헤어졌다.
일주일 뒤.
온갖 문제로 점철된 유도 중계권을 결국 MBS가 대출혈을 감당하고 따낸 날, 유도팀도 독일로 향했다.
올림픽까지 D-7.
축제가 코앞까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