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44화
344화. 올림픽 준비(1)
7월로 접어들면서 올림픽 레이스는 거의 전 종목에 걸쳐 종료됐다.
지영은 랭킹 10위로 안정권에 들었다. 이후 대회 하나가 더 있긴 하지만, 그 대회에서 누가 1등을 해서 랭킹을 올려도 지영의 점수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대회는 급이 낮아 1위를 해도 점수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지영을 포함한 황금세대는 전원, 안정권에 들어서며 다음 대회에 따로 참가하지 않고 올림픽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7월 말.
올림픽 레이스는 끝났고, 이제 결전의 시간이 코앞으로 왔다.
본래는 작년이었어야 할 올림픽이었지만, 프랑스의 부정부패 때문에 1년 밀렸고, 그 결과 여러 선수가 피해를 봤고, 반대로 수혜를 받기도 했다. 지영은 그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해 늦게 올림픽이 열린 것에 불만은 없었다.
다만, 다른 선수들과는 다르게 지영은 온전히 훈련에만 집중할 수가 없었다.
오후 운동이 끝나고 저녁을 챙겨 먹은 지영은 다시 허락받고 외출했다. 지영이 향한 곳은 이전의 그 카페였다.
“어, 지영아! 어서 와!”
다만 만나는 일행은 달랐다.
임은진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일어나서 지영을 반긴 사람은 요즘 매우 사랑받는 배우, 이연이었다.
지영과는 예인으로 살어리랏다를 시작으로 연을 맺었고, 지금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품 나의 무사님 시즌2까지 함께한 선배이자, 동료인 배우. 지영이 연예계란 곳에서 믿고 무언가를 의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이연이 직접 선수촌 앞까지 행차하셨다.
이유?
당연히 나의 무사님 시즌3 때문이었다. 올림픽이 끝나면, 9월이다. 그럼 지영에게는 다시 여유가 생긴다. 목적한 대회인 세계 선수권도 다음 해에 열리고, 종착점이라 할 수 있는 아시안 게임도 26년 9월에 일본에서 열린다.
그러니 최소 6개월 정도는 시간이 남는 셈이다.
나의 무사님 시즌 3은, 6개월 안에 찍을 예정이었다.
무려 32부작으로. 다만 스케줄 상 안될 것 같으면, 시즌 3도 다시 16부씩 상하로 나뉠 순 있었다. 도저히 시간에 맞추지 못할 것 같으면 말이다.
즉, 대회가 끝난 이후 최소 서너 달은 현장에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겨울 방영이라, 여유가 좀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여유를 좀 더 만들기 위해 사전작업은 필수고, 미팅도 어쩔 수 없이 사전에 해둬야 했다. 그게 오늘 이 미팅의 이유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겨주는 이연과 인사하고, 자리에 앉아서 지영을 반기는 홍진아 감독에게도 인사한 뒤에 지영은 자리에 앉았다. 미팅에 참석한 인원은 단출했다. 정은정 작가와 홍진아 감독. 이연과 이연의 매니저, 지영과 지영의 매니저 임은진까지. 딱 여섯이 전부였다. 제작사나 방송사 쪽 관계자들은 일절 없었다.
괜히 지영을 보고 욕심이 생겨 무리한 부탁이나 말을 할까 걱정해 같이 자리하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해도, 이제는 이름값이 어마어마한 이연과 홍진아 감독, 정은정 작가가 칼같이 차단해 버렸다.
소통창구 자체를 이렇게만 둔 것이다.
보통의 배우들이야 당연히 말도 안 된다. 아무리 탑레벨에 있다고 해도 제작사, 방송사 등과 척을 져서는 절대로 좋은 결과가 나오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영은 아니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파급력 자체로는 단연 압도적인 배우 넘버 원이었다.
강지영이란 이름 자체는 이제는 거의 건드려서는 안 되는 성역화 되어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만들어진 성격은 실수 한 번으로 무너질 거라고 했지만, 누군가는 이 성역이 무너지려면 음주운전 이상의 미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아무리 봐도 지영은 그럴 인간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지영은 한국에서도 이 정도의 이미지를 구축했지만, 미국과 프랑스에서는 더욱 강력한 성을 구축 중이었다.
원래 지영은 유럽 쪽에서 좀 더 사랑받았다.
유럽이나 미국 쪽이나 동양인에게 배타적인 거야 같지만, 예술과 파벨로 사건이 유럽을 기점으로 일어났기에 그쪽에서 더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에 다큐 포드의 운명이 나가면서 미국에서 지영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올라갔다.
특히 조나단이 흑인이어서, 흑인 사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포드의 운명 잘 봤어요. 잘 뽑혔던데요?”
홍진아 감독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답했다.
“사실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한 건데, 조나단의 경우도 그렇고요. 그런데 제시카 감독님이 음…… 편집을 잘해줬다고 해야 하나요?”
“편집도 잘 됐지만, 편집 이전에 인물의 힘이 대단했던 거죠. 그 다큐 덕분에 포드사의 운명? 그 차도 엄청나게 잘 팔리고 있잖아요?”
“네, 뭐…….”
나탈리 포드 씨에게 감사하다는 연락을 몇 번이나 받았다.
포드 정도의 거대한 강철의 제국이 설마 새로운 라인 하나에 진짜 회사의 명운이 걸려 있거나 하진 않는다.
그간 쌓아온 저력도 저력이지만, 애초에 여유 정도는 두는 게 당연했다.
그러니 망했어도 강철의 제국이라 불렸던 포드가 망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회사는 괜찮을 수 있어도, 그 프로젝트의 책임자와 관리자 등은 절대 괜찮을 수 없었다. 개발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이후 마케팅을 책임지게 된 나탈리 포드의 경우는 실패 시 무조건 책임을 져야 했다.
아마 좌천.
혹은.
축출.
성이 포드라는 것은 오너 일가의 일원이란 뜻이다. 포드의 핏줄은 아니지만, 그래도 포드로 시집온 나름 이름있는 집안의 여식인 나탈리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책임을 벗어날 수 없었다. 오너 일가이기에 오히려 더욱 무거운 책임을 지게 할 것이다. 그래야 나탈리 포드 남편의 힘까지 줄일 수 있을 테니까.
이런 사내 정치의 칼날에서 구해준 게 지영이었다.
포드의 운명은 그 다큐가 나감과 동시에 예약을 받기 시작했고, 주문이 폭주해 배정된 라인으로 소화 불가능해 라인 증설에 들어간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리고 그런 기사는 포드의 주가에 당연히 영향을 줬고, 나탈리 포드 개인의 평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나탈리 포드는 지영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했을 정도였다.
재미난 건, 이런 사실을 나탈리 포드는 SNS에 올려 공개한다는 점이었다. 그조차도 사실 지영과의 친분을 스윽 내보이기 위함이었다. 어쨌든, 홍진아 감독의 말처럼 포드의 운명은 지금 대성공 중이었다.
그리고 그 운명은 전형적인, 마케팅의 승부였다.
전기차처럼 성능으로 승패가 갈리는 게 아니라, 그냥 세단이다. 기존의 차량처럼 연료를 퍼먹는. 그렇기에 현재 나온 세단과 비교해 특별하게 좋다! 할 수는 없었다. 그저 포드에서 만들었으니 결함 부분과 튼튼함이 강조되긴 하겠으나, 그래도 그 자체로는 큰 이점은 아니었다.
포드 말고 튼튼한 차량은 다른 회사에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회사에는 없는 게 포드에는 있었다.
바로 미래를 대비하는 감과 그 감으로 끌어들인 배우 강지영. 이렇게 두 개가 있었고 포드의 운명은 여전히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그 중심엔 당연히, 지영이 있었고 말이다.
“지영아, 그거 한국에는 언제 들어온대? 아직 모르나?”
“글쎄요. 왜요?”
“아니, 나도 타고 싶어서. 보니까 잘 빠졌던데? 여자가 타기에도 좋아 보여.”
“어…… 그렇긴 하죠. 그런데 허가 문제는 둘째 치고, 지금 물량이 없을 건데요?”
지영의 그렇게 대답한 건, 포기하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연의 표정을 보니, 조금도 포기한 눈빛이 아니었다. 하아, 이연의 매니저가 고개를 저으며 사정을 얘기했다.
“지영 씨. 연이 얘가 명품에 관심 없는 거 아시죠? 가방이나 옷 같은 것도 협찬으로 받아와 걸어줘야 하지, 제 돈 주고는 안 사는 애예요.”
“어…… 그건 알아요.”
실제로 지금도 이 사람이 연예인 이연이 맞나 싶을 정도의 복장이다. 미팅 자리는 공적인 자리다. 이 자리는 절대 사적인 자리가 아닌데도 정말 수수한 차림이었다. 명품? 하나도 안 보였다. 이연, 명품. 이렇게 키워드를 넣어 검색해도 거의 나오는 게 없긴 했다.
“그런데 얘가 유일하게 사치를 부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 차요?”
“네. 연이 집에 차만 다섯 대예요. 다 억 소리 나는 걸로. 가족 것도 아니고 다 자기 겁니다. 절대 빌려주지도 않는.”
“…….”
그러고 보니, 예전에 학교에 찾아왔을 때도 명품 차를 타고 오긴 했다. 그땐 대놓고 작품 러브콜을 기사화하려고 풀 세팅한 채로 와서, 연예인 이연이다! 싶은 모습이긴 했었다.
“지영아, 지영아. 진짜 미안한데, 한 번만 물어주면 안 될까? 응?”
“……이거 지금 청탁?”
“놉, 부탁!”
“…….”
지영은 그때 새빨간 포르쉐를 타고 와 대본을 건넸을 때보다 더욱 간절한 눈빛을 받았다. 거절하기 쉽지 않은 눈빛. 지영은 잠시 고민 끝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만 봅니다?”
“응! 살살 말고 세게!”
“…….”
하…….
매니저가 고개를 절레절레.
뭔가 드립이 나온 거 같은데. 지영은 그냥 무시했다. 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 시차가 있으나 나탈리 포드가 알려준 연락처는 그녀 게임 폰이 아니라, 지영의 연락만 받는 관리팀 차원의 연락처라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1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전화가 왔다.
심지어 나탈리 포드 개인 번호였다.
-지영 씨?
“어, 죄송합니다. 제가 깨웠어요?”
-아니요. 야근하고 집에 가는 길입니다.
“……거기 지금 새벽 아니에요?”
-훗, 일에 밤낮이 있나요? 호호!
목소리가 조금 잠긴 것 같긴 했다. 그런데 기분은 역시 매우 좋아 보였다. 자신이 책임진 마케팅 덕분에 운명이 지금 불티나게 팔리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지영 씨가 이 시간에 연락을 다 주고?
“어, 음 그게…….”
지영은 한숨과 함께 연락한 이유를 어렵게 설명했다. 이것도 청탁이라면 청탁이다. 솔직히 내키지 않지만, 물어만 보는 거였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이연의 공도 솔직히 상당했으니까. 그런데 지영의 설명을 들은 나탈리의 대답은 의외였다.
-지영 씨. 이미 지영 씨 몫으로 10대가 일단 준비되어 있어요.
“네?”
-이런 일, 저희가 예상 못 했을 것 같으세요?
“아…….”
-우리 쪽에서 먼저 권하지는 않지만, 지영 씨가 만약 이런 부탁을 하면 우선 선별해 주려고 이미 만들어서 대기 중인 애들이 이미 한국으로 들어가 있답니다.
“…….”
와, 와아…….
한국에 벌써?
-이런 부탁, 어려워하지 마세요. 한국의 문화는 또 다르니까 그럴 수 있지만, 사실 저 개인에게도 그렇고 포드에게도 그렇고 지영 씨는 정말 은인이거든요? 그런데 은인이 이런 부탁을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얘기하면, 제가 은인을 핍박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역으로 제가 매우 기분이 나빠요. 저 스스로에게요.
한국에서 근무하는 동안 익힌 유창한 한국어로 나온 나탈리 포드의 말은, 지영의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지영 씨. 지영 씨가 하는 건 절대 불합리한 부탁이 아니에요. 애초에 지영 씨의 마케팅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했으니, 그에 관한 감사의 표시일 뿐이죠. 왜 협찬사에서도 협찬한 제품을 선물하거나 그러잖아요?
“음, 하지만 차는 너무 고가잖아요.”
-명품은 더 비싸요. 크기 대비 가격을 보자면.
아, 하긴.
가방과 차량의 부피, 무게 차이를 생각하면 가히 넘사벽이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무턱대고 선물을 주면 지영 씨가 불편해할 게 빤하고, 지영 씨가 그간 쌓은 이미지가 무너질 수도 있어서 혹시 몰라 준비만 시켜뒀던 거예요. 그러니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음, 네. 그럼 고맙게 받을게요.”
-지영 씨. 이 기회에 그냥 다 받으세요. 지영 씨 친구분들과 지영 씨 가족까지 해서 전부. 그리고 또 필요하면 말해주고요. 10대 정도 더 준비하는 건 일도 아니니까요. 솔직히 선물로 줘도 되는데, 지영 씨 위치는 그걸 선물로 받으면 안 되니까요. 대신 최대한 저희가 서비스해서 전달할게요. 호호.
그럴까?
음, 어머니가 타기에는 좀 그렇다.
하지만 자신이 타기에는? 나쁘지 않단 생각이 들었다. 뭐 롤스로이스처럼 명품도 아니고, 그렇다고 스포츠카도 아니다. 세단이다. 중대형 세단 느낌이라,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일단 물어볼게요. 그런데 한 대는 제가 아는 사람이 살 거라서요.”
-네, 이름 알려주면, 전달해놓을게요.
“이연입니다. 배우 이연.”
-아, 이연 배우!
지영의 작품을 다 봤다고 했으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하긴 했다.
-이연 배우면, 이거 홍보 효과도 좋겠는데요? 솔직히 이건 포드가 웃돈을 주고서라도 부탁할 일이에요.
“그 정도예요?”
-네. 이연 배우가 아시아권에서 지영 씨만큼이나 영향력이 있잖아요? 특히 한국에서는 현재 제일 잘 나가는 배우시고. 한국 판로를 생각하면, 정말 나쁘지 않죠.
“아…….”
스피커 폰은 아니지만, 목소리가 살짝 커진 나탈리의 음성은 모두가 들었다. 그래서 이연은 싱글벙글, 날아가기 일보 직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