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43화
343화. 파리 오픈(11)
아……!
경기를 보고 있던 각 나라 코치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걸 노린 건가?”
“노렸다고 봐야지. 봐. 3분 가까이 서로 기술 한 번이 없었어. 강지영이 그걸 몰랐을 리가 없잖아. 그런데도 안 했어. 상대랑 비슷하게 기다렸어. 철저하게 잡기 싸움으로 이어가면서. 그리고 그 수는 먹혔어. 좀 전에 저 일본 친구 보니까, 호흡이 거칠더라고.”
“그렇군. 가슴 기복이 심해…….”
“저 일본 친구랑 잡아본 선수 말에 따르면, 뭔 마백 선수랑 잡는 것 같았다더군. 힘이 장난이 아닌가 봐. 그러니 강지영이 잡기만 한 거야. 철저하게 잡기로 몰아간 거지.”
“저렇게 체력이. 아니, 호흡이 거칠어질 거라 예상했을까?”
“설마. 시합 중에 그걸 생각하는 인간이 어디 있겠어? 거의 본능이겠지. 승리 DNA에서 나온.”
“그렇다고 쳐도 진짜 대단하군.”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졌다.
그들의 눈에는 강지영이 가진 저 시합 운용이, 정말 믿기지 않았다. 유도는 투기 종목 중에서도 레슬링과 씨름 바로 뒤에 있는 근접 투기 종목이었다. 두 종목처럼, 잡지 않고는 아예 승부 자체가 시작조차 될 수 없는 종목이었다. 그러므로 잡기 전엔 몰라도 잡고 나선 여유라는 게 매우 많이 사라지는 종목이었다. 앞에서 상대가 막 움직이는데, 아 피하고 업어치기 해야지! 탁! 막은 다음 되치기해야지! 이걸 생각할 겨를조차 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예외로 그게 가능할 때가 있는데, 그건 서로 간의 실력 차가 어마어마하게 났을 경우였다. 속된 말로 그냥 쉽게, 가지고 놀 정도로 차이가 나면 그 정도 여유가 난다.
그러나 실력 차가 크게 나지 않으면, 그럴 여유는 없었다.
그저 몸에 익힌 실력으로, 동물처럼 반사적으로 상대의 기술과 행동에 반응해 시합을 풀어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조금의, 조금 더 여유 있고 조금 더 몸에 갖춘 실력이 뛰어난 선수가 승자가 되는 거다.
하지만 그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저 선수, 저기 보이는 선수는 운용이 기가 막혔다.
“시합 중에 전술을 바꿀 정도의 여유라……. 미친 거지.”
“아까 봤나? 안쪽으로 가슴 깃을 잡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곧장 뜯어내고 절대 안쪽으로 잡지 않고 잡기를 이어나가는 거? 그 틈에 전략을 수정한 거야.”
“쉽게 기술을 걸지 않는 걸로 보아 만만치 않은 상대라 생각한 것 같은데, 이거 참. 허허.”
“자네라면, 저걸 어떻게 상대하라고 하겠나?”
“음…….”
그 질문에, 질문을 받은 루마니아 코치는 침음을 흘릴 뿐,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질문을 한 아제르바이잔 코치도 답을 바라고 한 건 아니었다. 애초에 서로 친분은 있지만, 올림픽에서는 상대로 만날 수도 있었다.
그러니 파훼법이 있더라도 솔직히 공유하기는 좀 그랬다.
아, 그걸 알려줘서 오히려 강지영을 이기고 올라와 주는 게 좋으니 있다면 공유가 답이긴 하겠다. 하지만 그 답을 내놓지 못한 건 역시, 답이 없어서였다.
“완벽한 올라운더. 가장 이상적인 유도선수.”
“완벽이라니, 유도에 그런 단어를 쓰게 될 줄은 몰랐군.”
“후후, 가끔 나타나지 않나. 저런…… 말도 안 되는 인간이. 그건 비단 유도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종목에서 나오지.”
“하긴…….”
둘은 거의 동시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의 시선에 갑작스럽게 스타일을 다시 변모시켜, 자세를 한껏 낮춘 뒤 공격적인 자세로 나가는 강지영이란 선수는 그냥…… 괴물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전력 탐색차 체육관을 찾은 다른 팀의 코치들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파훼법?
“그걸 찾는 것보다 저 친구가 올림픽에 안 나오는 걸 비는 게 낫겠군.”
“아니면 스스로 파멸해 주든가.”
쯔…….
물리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답.
그저 전력 분석관이라는 자신의 직책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 * *
압도.
이게 생각보다 쉬운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번엔 먹혔던 게, 마사루는 경험이 없었다. 보편적으로 보면 지도 2개씩 받았다고 이렇게 극단적으로 스타일의 변화를 주진 않는다.
갑자기 달려들면, 그걸 받아서 언제고 업어치기를 팔 수 있는 게 유도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달려들면 그대로 업어라. 이건 업어치기 선수가 아니더라도 수천, 수만 번씩 메치기 연습을 한다.
그래서 달려드는 건 정말,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급하게 덤벼들진 않는다. 시간이 몇 초 남지 않아 어차피 그대로 가면 질 것 같을 때, 그럴 때가 거의 전부다. 아니면 갑자기 덮치듯이 기술을 거는 경우이거나. 그런데 지영은 둘 다 아니었다. 갑자기 번쩍! 하고 다가와 반사적으로 업으려고 했는데, 중심축은 몸을 비트는 순간 이미 낮아져 있었다. 애초에 딱 자기 앞에서 자세를 낮출 수 있는 정도만을 보고 달려든 거다.
마사루의 머릿속에 그 순간 경종이 치기 시작했다.
이대로 밀리면 진다!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고, 밀리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빡 주고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랬더니.
어?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몸을 틀어 툭, 대는 발목 받치기. 앞으로 나가려던 순간에 정확히 맞물렸다. 신장이 작은 마사루라 그 한 방에 홱! 몸이 뒤집히진 않았으나 순간적으로 중심이 흔들리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지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애초에 이 틈을 만들려고 덮치듯이 덤벼들었다. 그렇게 해야, 본능적으로 밀리지 않으려는 마사루가 힘을 주고 앞으로 훅 튀어나올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거리, 영점 조절에 정말 신경 썼다.
지영은 다른 운동은 잘 모르지만, 적어도 복싱이나 태권도 같은 종목에서 거리, 스텝이 얼마나 중요한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킥 전에 스텝이고, 펀치 전에 스텝이라 배웠다.
스텝은 말 그대로 거리다. 내 주먹이, 내 다리가 상대의 복부를, 턱에 닿는가를 가늠하는 것 자체가 스텝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도는?
유도도 기술 전엔 무조건 스텝이었다. 괜히 초심자에게 업어치기를 가르칠 때 업어치기 스텝을 하나, 둘, 셋에 돌아서 업어! 하고 가르치는 게 아니었다. 그만큼 스텝과 거리는 유도에서도 중요했다.
그리고 그걸 노리는 것은, 당연히 실력과 재능에서 나온다.
노림수가 아무리 좋아도, 실력이 뒷받침되어주지 않으면 당연히 그냥 뇌내망상일 뿐이었다. 이상과 현실이 괜히 다른 게 아니었다.
그러나 지영은 그걸, 괴리 없이 맞출 수 있는 실력을 갖추다 못해 넘치도록 지닌 선수였다.
툭, 툭!
흔들렸던 마사루는 즉시 다시 상체를 뺐다. 하지만 그 흔들림을 그냥 봐줄 지영이 아니었다. 물러나는 순간, 쫓아가는 지영.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오는 마사루의 소매 아래를 순간적으로 낚아채며, 모두걸기를 쓸었다.
퍽!
소리가 날 정도로 강력한 쓸기였다.
하지만 정확히 발바닥으로 타격했기에, 절대 반칙은 아니었다. 부웅! 제대로 쓸린 마사루의 신형이 그대로 미끄러지며 공중에 떴다. 하지만 마사루는 왜 자신이 그래도 파리 오픈까지 올 수 있는 실력자인지를 증명했다.
본능적으로 모두걸기를 느꼈는지, 아니면 지영의 동작에서 읽었는지 지읏기를 담당할 소매를 뜯어냈고, 뜯어냄과 동시에 비틀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모두걸기에 쓸리며 몸을 떴다.
쿵!
그리고 매트에 떨어졌다.
심판은 목을 쭉 빼면서 떨어진 마사루를 확인했고, 도로 뺐다. 그러곤 아무런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다. 이건 앞으로 떨어졌다고 봤다는 뜻이다. 지영은 살짝 애매하긴 했지만, 자신이 심판이라도 고민했을 애매함이 있었다.
그래서 아쉬워하지 않았다.
굳히기는 당연히 하지 않았다.
일본은 굳히기 강국이고, 훈련 때 마사루와 굳히기를 하면서 죽다 살아났던 경험이 지금도 생생하니 아예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맛테!
심판의 외침에 지영은 도복을 고치며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후우, 한 번…….’
많이도 필요 없이 딱 한 번이면 된다.
마사루가 심판의 절대적인 비호를 받는 게 아니니까, 한 번만 더 벼랑 끝으로 밀어버리면 마사루는 반칙패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게 먼저 포인트를 땄을 때의 이점이었다. 라떼 시절 유도는 이런 상황에서도 두 번 넘게 봐주는 것도 심판의 재량에 달려 있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매우 공격적인 유도를 추구하게 만들어놔서, 포인트를 한 번 빼앗기고 다시 밀려나면 거의 90% 이상으로 반칙이 들어간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반칙패가 많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이걸 선수들이 잘 알고 있어 포인트를 빼앗기면 필사적으로 공격적인 포지션을 취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경기가 이어지지, 아니면 무조건 반칙패다.
‘그런데 그걸 너도 알고, 나도 안다는 거지.’
지영은 짧은 틈에 이걸 이용하자는 쪽으로 생각이 미쳤다.
상대의 공세는, 여유만 가질 수 있다면 충분히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자신의 스타일을 그런 쪽으로 특화되게끔, 수년에 걸쳐 노력해온 지영이었다.
하지메!
심판의 시작 사인에, 마사루는 역시 공세로 나왔다.
‘신지였다면 알아차렸겠지.’
신지의 감각은 거의 지영과 비슷했다.
감이 좋은 선수를 동물적인 감각을 지닌 선수라고 하는데, 신지나 지영이나 둘 다 그런 소리를 듣는 선수들이었다.
마사루는 그 영역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지영은 그걸, 경험의 부재라고 생각했다.
홰액!
뻗은 손을 아래로 슬그머니 말아 쥔 지영이 그대로 말아 업어치기를 넣었다, 가 멈췄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마사루가 급히 손을 뿌리쳤다. 그런데 그걸 너무 세게 쳐내서 액션이 매우 셌다.
뜯어내는 모션이 이렇게 크면?
100명 중 99명의 심판이 그걸 수비적인 자세로 본다. 그걸 마사루도 아는지 다급하게 심판을 바라봤다. 너무 액션이 커서, 저도 모르게 심장이 오그라들 정도로 놀란 것 같았다. 하지만 심판은 그 시선에 짧게 고개를 저었다.
반칙을 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본래는 심판은 저렇게 답을 주지 않는데, 아마 마사루의 눈빛이 워낙에 다급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답을 준 것 같았다.
마사루는 재밌었다.
그 순간 안도의 미소를 지은 마사루 때문에 지영은 저도 모르게 웃을 뻔했다.
이 소년의 힘은, 경기중인 것을 잊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정을 봐줄 수는 또 없는 거니까.
하!
기합을 넣고 달려드는 마사루.
남은 시간은 30초다.
이 30초를 지킬 생각인 게 딱 보였다.
다만, 포인트는 여전히 뺏긴 채니까 공세로 나가야 했다. 공세를 빼앗기면, 무조건 패배한다는 걸 아는 선수를 요리하는 방법은?
‘이용하면 되지.’
공세를 주려면 필연적으로 밀고 와야 한다. 스모처럼 막 상대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압박을 통해 상대가 뒤로 밀리고 있단 느낌을 줘야만 공세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중심을 앞에 둔 압박이 필수였다.
지영은 그걸 맞받으러 나갔다.
지영이 노리는 의도는 하나였다. 나도 너를 밀어 공세를 취해, 반칙을 받게 할 생각이다. 이렇게 상대가 믿게끔. 그러면 틈은 온다. 이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힘과 힘이 맞붙는다. 그럼 힘이 센 놈이 이기는 거야 당연하지만, 그건 또…… 이용하면 되는 거니까.
툭, 투욱. 가슴 깃을 잡은 마사루가 깃을 세워 댄 다음, 툭툭 밀었다.
힘으로 공간을 두겠다는 뜻이었다. 공간을 이렇게 두면, 남은 건 기술이다. 적어도 이 공간을 이용해 포인트를 따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그리고 지영은 그걸…….
당연히 이용할 생각이었다.
홱!
업어치기!
신기했다.
장내에 있는 아나운서가, 그것도 한국어로 업어치기! 하는 게 들린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걸 인지한 자신은 벌써 돌아 나와 급히 매트에 엎드리려는 마사루를 짧게 끊어쳐 올려 들어, 밭다리를 찍은 다음, 그대로 눌렀다.
쿠웅!
고요한 경기장을 울리는 거친 낙법 소리와 함께 심판의 손이 번쩍 올라갔다.
그렇게 결승전에 올라간 지영은, 30초 만에 깜짝 업어치기 한판으로 올림픽 출전을 확정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