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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40화 (340/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40화

340화. 파리 오픈(8)

파리 오픈 1일째는 완벽하게 성공적이었다.

황석은 그간 연마한 업어치기만으로 우승을 따냈는데, 이 때문에 다른 나라 스태프들의 머릿속에 비상이 걸려 버렸다. 황석의 특기는 틀어잡은 상태에서 나오는 허리기술과 밭다리, 되치기 등등이다.

즉, 허리기술 선수란 뜻이었고, 올림픽을 대비해 허리기술만 틀어막는 방향으로 전략을 짜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나온 게 업어치기다.

사실 업어치기야 모든 유도선수가 다 할 줄 알았다.

유도를 시작하면, 아예 생초보라면 뭐부터 배울까?

답은 낙법이었다.

후방낙법, 전방낙법, 측방낙법, 회전낙법 등을 배운 다음, 어느 정도 낙법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업어치기를 가르친다. 신장에 따라 허리기술이나 밭다리를 가르치기도 하지만, 업어치기가 먼저다. 허리기술을 배워도, 업어치기는 당연히 배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실력자가 되면 굳이 배우지 않고도 따라 할 수 있게 되는 게 업어치기다.

그러니 업어치기는 유도선수라면 그냥 전부 다 할 줄 아는 기술이라고 보면 된다. 과장 조금 보태면, 모든 선수가 말이다. 그러니 업어치기를 할 줄 아는 것 자체는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세계 랭킹 상위권을 선수를 모조리 업어치기로 돌려 버렸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단순히 할 줄 아는 것과 시합 때 상대를 돌리는 건 당연히 완전히 다르다. 첫판이야 그걸 몰랐으니 깜짝 기술에 걸려 넘어갔다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2회전부터는 전부 머릿속에 황석이 업어치기도 할 줄 안다. 하고 경계했을 것이다.

그런데 경계하고도 모조리 날아갔다.

이게 뜻하는 바는 매우 컸다. 방어해도 상대를 넘길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이라는 뜻이니 말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한 가지만 방어하는 게 쉽다. 허리기술이면 허리기술. 사실 이렇게만 해도 허리기술에 기술이 많이 들어가 있으니 한두 개는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업어치기까지 들어가면, 전부 방어해야 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시선이 분산되고, 분산된 만큼 빈틈이 늘어난다. 미친 반사신경으로 카운터를 치는 강지영 정도가 아니라면, 진짜 욕 나오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다.

그래서 첫날은 이것 때문에 매우 시끄러웠다.

이틀째.

올림픽에 나오게 되면 가장 까다로운 선수 중 하나인 강한결과 임효중의 경기가 있는 날이다. 설마 이 둘도 스타일의 변화를 줬나 하고 유심히 봤지만, 그런 느낌은 없었다. 이전의 대회와 똑같은 스타일.

하지만 여전히 강력한 경기력.

두 선수의 특기가 뭐고, 특징이 뭔지 세계 유도인이 전부 아는데, 그래서 그걸 정말 경계했는데, 그 경계를 뚫고 들어와 상대를 제압하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조금씩 변한 유도라는 종목에서, 가장 정석에 가까운 플레이어의 모습이 두 사람에게서 보였다.

변형 스텝을 밟아서 허벅다리를 찰 때도 있지만, 대부분 딱 잡고, 타이밍을 봐서 차올리는 스타일과 정석의 잡기 싸움, 정석의 업어치기와 허리기술, 되치기, 발기술 등을 전부 구사하는 올라운더 스타일은 오랜 시간 변한 유도가 추구하는 가장 정석의 모습과 같았다.

일본이 그렇게도 바라는 선수의 모습과 같았다.

아마, 강지영이라는 이레귤러가 없었으면 두 사람에게 아주 추한 질투를 보냈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두 사람도 우승을 확정 지었고, 점수도 거의 안정권에 들어갔다.

시합이 끝나고, 시상식까지 끝난 뒤 지영은 잠시 경기장에서 대기했다.

기다리는 이유야 당연히 잠시 뒤 경기장 정리가 얼추 끝나면 곧장 이어서 계체가 있기 때문이었다.

라떼 시절엔 당일 새벽 계체였다던데, 그게 바뀌어서 지영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으…….”

감량 중이라 앓는 소리를 내는 이성진을 잠시 봤던 지영은, 패딩과 목도리 사이에 고개를 푹 넣었다. 감량 중이라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서, 이럴 때 오한이라도 느끼면 아주 높은 확률로 감기로 연결되기 때문에 에어컨을 빵빵 튼 경기장 내부에서 중무장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시상식이 전부 끝나고 주변 정리가 어느 정도 되자, 진행석에서 곧장 선수들을 소집했다.

마지막 날 시합은 60부터 73까지, 여자부는 거꾸로 헤비급 두 체급이었다.

관중석에서 대기 중이던 선수들이 전부 경기장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중에는 오랜만에 보는 니카이도 마사루가 있었다.

유도 소년 마사루.

예전엔 순박하게 웃던 그 친구는 여전히 빡빡 민 머리였다. 하지만 확실히 이목구비는 소년의 티를 벗어나고 있었다. 다부진 눈빛. 그러나 소처럼 큰 눈망울은 여전했다. 그런 마사루와 시선이 마주쳤다. 마주치는 순간, 지영은 궁금해졌다.

‘무시할까? 아니면 예전처럼 반갑게 인사할까?’

마사루는 과연 어느 쪽일까?

신지는 시합 때 만나면 경기전엔 일절 아는 척하지 않았다. 시합이 끝나면 편한 친구처럼 대해주지만, 시합 전엔 완벽하게 지영을 무시했다. 그럼 마사루는? 환하게 웃었다.

“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놀랐다가 지영도 금방 웃었다.

지영이 웃자, 마사루는 팀 스태프에게 뭐라고 말을 하더니 바로 다가왔다. 꾸벅. 다가온 마사루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오! 마사루! 오랜만!”

이성진의 인사에 마사루는 씩 웃었다.

“오랜만입니다. 성진 상. 잘 지냈죠?”

“그럼. 근데 한국말 말이 늘었다?”

“가족이 다 K-드라마 팬입니다. 같이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늘었습니다. 여동생이랑 누나가 성진 상의 더 런닝을 매주 챙겨봅니다. 사인 안 받아오면, 죽이겠다고 했어요.”

“오, 해줘야지, 그럼. 마사루가 죽으면 안 되니까. 그런데 괜찮아? 동료들 시선이 별론데?”

이성진의 말처럼 확실히 시선이 곱지 않았다. 선수들도 선수들인데, 스태프들의 눈빛은 뭐, 대놓고 이를 갈고 있었다. 그러는 것도 당연하게 저들에게 지영은 진짜 역적이었다. 몇 번의 수작질을 지영이 완파를 해버리며, 일본 유도의 자존심을 땅바닥에 처박아버린 최악의 빌런이었다.

그리고 마사루의 눈빛에 씁쓸함이 깃들었다.

“저는 마지막에 엔트리에 들었습니다. 정말 갑작스럽게요. 원래 다른 선배가 나올 대회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선수들 시선이 원래 곱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돌아가면 아마, 바로 그만두게 될 겁니다.”

마사루의 대답에 이성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딜 가나, 이런 일은 있었다. 당장 한국팀만 해도 홍역을 치르지 않았나. 일본은 그런 한국보다 더 심한 것 같았다.

게다가 마사루는 신지처럼 지영과 친분이 있었다.

이 친분은 그곳에서 분명 ‘독’으로 작용할 것이다.

“괜찮겠어?”

지영의 말에, 마사루는 환하게 웃었다.

“지영 상.”

“응. 반갑다. 하필이면 이렇게 보네.”

“괜찮습니다. 하하. 지영 상도 사인해 줘야 합니다?”

“당연하지.”

“그리고 지영 상. 저 최선을 다할 겁니다. 어쩌면 이게 제 마지막 세계 대회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마지막?

아주 명백히 의미심장하게 들린 단어였다.

하지만 지영은 묻지 않았다.

신지라는 걸출한 천재가 있다고 해서, 세계 대회 전부를 신지가 나가는 건 아닐 거다. 그런데도 저렇게 말했다는 것은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걸 듣기에는 지금 자리가 너무 좋지 않았다.

“꼭 올라와.”

“하이!”

씩 웃은 마사루가 떠났다.

그런 마사루를 일본 팀은 역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봤다. 하지만 마사루도 깨끗이 그 시선을 무시하고 있었다.

“마지막 대회라니, 무슨 뜻일까?”

그런 마사루의 뒤통수를 보며 이성진이 물은 말에 지영은 고개를 저은 뒤 답했다.

“모르지. 사정이 있는 것 같은데…… 그걸 캐물을 수는 없잖아.”

“그렇긴 하지. 근데 궁금은 하다. 신지한테 밀려서 그만두는 거일 수도?”

“흠…….”

그건 확실히 가능성이 높기는 했다.

신지와 마사루의 나이 차가 엄청나면 모르겠는데, 둘 사이도 나이 차이가 거의 없다. 따지고 보면 신지가 지영보다 한 살 많고, 마사루가 자신보다 하나 어리다. 그러니 거의 동시대다. 신지가 작정하고 오래 해 먹으면 마사루는 세계 대회는 나가도 세계 선수권, 아시안 게임, 아시아 선수권, 올림픽 등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신지가 부상을 입거나, 유도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은 마사루에게 기회가 오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예전에 만났을 때의 실력에서 차근차근 올라왔다면, 세계에서도 충분히 먹힐 실력을 갖췄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사루는 그랬다. 마지막에 엔트리에 합류했다고. 그건 곧, 그 이전에 선발전에서 유의미한 실력을 거두지 못했다는 뜻이다. 일본 73체급 삼인방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긴, 지영이나 잡을 수 있던 거지, 오노 쇼헤이나 미야모토 신지만 해도 세계 최강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선수들이었다.

그 벽. 그 두꺼운 벽이 마사루에게 절망감을 선사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일본은 중간에 그만두고 다른 길로 빠지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은 동네였다.

‘아쉽네.’

친분이 있고, 재능이 있는 선수가 그만둔다는 소식은 솔직히 유쾌하진 않았다. 물론 그런다고 봐줄 생각은 없었다. 상대가 누가 됐든 간에, 지영은 최선을 다해 침몰시킬 생각이었다.

계체량이 시작됐다.

72.40.

딱 적당한 상태로 통과했다. 밖으로 나오니 시상식을 끝내고 기다리는 친구들이 있었다. 시합의 흔적이 가득 남아 있는 얼굴. 손톱에 긁혀 찢어지고, 부딪쳐 터진 입술. 격전을 치른 모습이었다.

경기가 압도적이었다고 해서,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게 우승할 거란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았다.

이 종목은 유도고, 유도는 거칠기로 대표적인 투기 종목이었으니까.

“축하해.”

“하하, 고마워. 계체는?”

“잘 끝났지. 가자.”

씩 웃은 강한결, 임효증, 어제 시합을 끝내서 가장 마음이 편한 황석과 함께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 계체도 끝났기 때문에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지영은 잠시 친구들과 수다로 긴장을 풀었다.

8시.

미팅이 있었다.

상대에 관한 간략한 브리핑과 컨디션 체크를 겸한 미팅이었고, 30분 지나 끝났다. 지영은 숙소로 올라와 잘 준비했다. 원래는 눈 감으면 자는 스타일이지만, 시합 전날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슬슬 올라오는 시합의 긴장감과 기대감.

그리고 자고 싶어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이미지 트레이닝 등이 수면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 지영은 굳이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이미지 트레이닝은 매우 소중했다. 지영의 실력 향상과 시합 준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훈련이기도 했다.

지영이 대회를 준비하며 그렇게 상대의 시합 영상을 살펴보는 건, 바로 이 이미지 트레이닝 때문이었다.

거기서 머릿속에 넣은 상대를, 굉장히 디테일하게 구현시켜 심상에서 자신과 붙는 훈련은 이제는 필수적인 훈련 코스였다.

1회전.

2회전 예상 상대.

3회전 예상 상대.

준결승 예상, 결승까지 한번 싹 리플레이 되고 나서야 지영은 자연스럽게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 5시 30분.

반사적으로 눈을 떠 시간을 확인하니 그 시간이었다. 알람도 울리지 않았는데, 새벽 운동 준비 시간에 거의 정확히 눈을 떴다. 이 시간은 괴롭다. 졸리니까 아 조금만 더 잘까? 하는 유혹에 초당 한 번씩 유혹당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걸 이겨내는 것에도 이골이 난 지영이었다.

“끄응…….”

그리고 같이 이골이 난 이성진도 일어나,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딱 보면 참 뺀질거릴 것 같은데 하는 걸 보면 정반대로 참 부지런했다.

지영도 끙끙거리면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아침 스트레칭은 중요했다. 특히 운동하는 선수들은, 이 스트레칭에 아주 많이 것이 갈리기도 했다. 가장 좋은 점은 당연히 부상 방지였다.

스트레칭하고, 아침을 먹고, 체중계에 올라갔다.

74.30.

안정권이다.

이어서 샤워를 하고, 시합 준비를 했다. 지영은 테이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성진은 테이핑을 많이 감았다. 잡기 싸움을 격렬하게 하니 손가락 부상을 자주 입어 변형이 온 것도 있고, 테이핑을 강하게 감아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것도 있다.

그리고 이쯤 되면, 이건 일종의 징크스와도 같았다.

지영은 그런 이성진의 테이핑을 정성스럽게 감아줬다. 너무 조여도 안 되고, 너무 느슨해도 안 된다. 적당히 조여야 하고, 적당히 느슨해야 하는, 그 중간 지점으로 해줘야 했다. 하지만 자주 해주다 보니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준비를 끝내고 시합장으로 출발했다.

김재정 코치를 잡고 몸을 풀고, 숨이 트이게 만드는 또 힘든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조이고, 또 조여서 겨우 숨을 트이게 만들고 난 뒤에야 예열을 마친 지영은 체온을 보온한 뒤에, 휴식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사이, 눈빛부터 시작해 모든 게 완벽한 시합 모드로 들어갔다.

갈망, 갈증.

지영은 지금 달아오른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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