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37화
337화. 파리 오픈(5)
이 문제에 답이 없는 건, 강한결을 비롯한 황금세대와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도은정이 서로 화해할 생각이 없다는 점에 있었다. 강한결은 잘못한 게 없으니 먼저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할 생각이 일절 없었고, 도은정은 자존심으로 사는 스타일이라 사과할 생각이 없었다.
잘잘못은 명확하다.
하지만 어쩌겠나.
“하여간 그놈의 자존심…….”
지영은 그냥 혀를 찼다.
이건 지영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모여있는 황금세대도 방법이 없었다. 이건 상황이 애매한 게 아니었다. 확실히 한쪽이 잘못한 거였다. 도은정은 병문안을 왔을 때도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았다.
사과를 한 건, 추미소 혼자가 유일했다.
그녀만 몰래 이성진에게 전화를 걸고, 황금세대에게 톡을 보내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럼 나머지는? 그냥 넘어갔다.
“넘어가면 될 줄 알았겠지.”
아마도…… 뭐 큰일이야 나겠어? 하는 마음이었을 거다. 거기에 도은정을 빼면 우린 내려가려고 했어! 정도의 마음도 있었을 거고. 이런 문제들이 그런데 그냥 넘어가 지지 않았다. 아직도 출처는 어딘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그 날의 진실은 결국 여자팀을 서서히 궁지에 몰아넣었다.
그리고 지금은, 낭떠러지 근처까지 밀고가 버렸다.
지금은 상황이 매우 안 좋았다.
이럴 때의 여론은, 무섭다. 일부 자정 능력이 있는 곳을 제외하면 정말 합심해서 한 인간을 죽이려는 모습을 종종 보여준다. 아니, 자주 보여준다. 이건 당장 지영도 아시안 게임 때 정말 차다 못해 넘치게 겪어봤었다.
그리고 지금 모습은 그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다르지만, 그래도 양상 자체는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누나, 다른 선배들은요? 그냥 가만히 있어요?”
“말리고 있지. 소연이 울고불고 난리가 나고. 알잖아. 나도 그렇고, 언니들도 은정이 안 싫어해.”
“저희도 싫어하진 않아요.”
정말 여장부다.
도은정은 타고난 여장부다. 이번의 실수만 아니었으면 정말 팀을 잘 이끌었을 사람이었다. 지영은 이게 솔직히 아쉽긴 했다. 그러나 이건 또 지영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 방법 없을까? 응?”
“…….”
추미소의 말에 지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마치 책임을 떠밀 듯이, 친구를 바라봤다. 지영의 시선을 받은 강한결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역시 냉정한 친구였다.
“선배.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건데, 이건 저희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렇겠지?”
“네. 이건 우리가 우린 괜찮아요. 그러니 비난을 멈춰주세요. 하고 인터뷰를 해도 가라앉지 않을 겁니다. 애초에 이미 심판에 나선 이상, 이미 가속도가 붙어 멈추기 쉽지 않아요. 연료가 재가 될 때까지 타고, 또 타올라야 끝끝내 멈출 겁니다.”
냉정하고, 잔인한 현실을 일깨워 줬다.
저 말이 맞았다.
이미 여론은 도은정을 표적으로 낙점 지었다. 그런 만큼, 자기들이 질릴 때까지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게 분명했다. 특히 얼굴을 가리고 굳이 조용히 잠든 과거까지 끄집어내 살을 파먹는 일부 너튜버들은 도은정을 아주 철저하게 발라먹을 거다.
지영을 올려놓고, 강한결을 올려놓고, 이성진을 올려놓고, 임효중을 올려놓고, 황석을 올려놓은 디너를 즐겼던 것처럼.
아주 철저하게.
오직 조회 수를 위해서 바르고 또 말라서, 살점 하나까지 물어뜯을 게 분명했다. 애초에 이 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이유가 이미 그들이 나서서였다. 강지영이 포함된 황금세대와 엮인 도은정. 그리고 여자 유도팀. 다른 것도 아니고 여기에 일단 강지영이 엮여 있단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대중의 흥미를 잡아끌 만한 요소의 80%는 충족이 되었다고 봐도 좋았다.
그래서 그들은 설산의 정상에서 도은정을 굴렸다.
그리고 지금도 굴러가는 중이었다.
‘이제 산 중턱쯤 왔겠지…….’
산 아래는 어디냐고?
도은정이 처벌을 받았을 때가 멈출 때다. 어떤 방식으로든 여론은 도은정이 상처를 입은 후에야 진정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멈출 때인지, 결국 도은정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를 택했다. 여기서 황금세대가 할 수 있는 건? 정말로 없었다. 괜찮다고 인터뷰해도, 보고 싶은 것과 듣고 싶은 것만 들을 테니 답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최후통첩처럼 강한결이 고개를 숙여 사과하자 추미소는 얼른 손을 저었다.
“아, 아니야! 네가 왜 죄송해! 너희 잘못한 거 하나 없는데. 오히려 우리가 잘못했지. 힝.”
착한 사람.
도은정이 천성이 장부라면, 추미소는 천성이 착한 사람이었다. 조금 못되고 그럴 수도 있는데 조금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라서 이성진도 지키고 싶다고 한 거였다. 결국 추미소는 힘없이 돌아서 유도장을 나섰다.
“답답하네.”
강한결은 쓴웃음을 짓고는,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문제가 터진 건 터진 거고, 운동은 또 별개였다. 이런 일에 하나하나 반응하면 황금세대는 운동도 제대로 못 할 거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은 문제라서 그런지, 운동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안 되겠다. 로프 타고, 밀어 올리기 하고 들어가자.”
정신이 다 딴 데로 가 있는 걸 확인한 강한결은 결국 로프로 운동을 선회했다. 야간 운동을 그렇게 끝낸 지영은 씻고 침대에 누웠다.
‘도은정. 음…….’
도은정의 선택을 지영은 이해했다.
이기적이었지만, 순간적으로 그녀는 자신이 내려가는 걸 막는 게 불합리한 판정을 막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만약 내려왔으면, 어쩌면 진짜 같이 징계위에 올라갔을 수도 있었다.
그건 가능성이 없던 얘기가 절대 아니었다.
실제로 강한결이 난입했을 때 황석만큼은 의료진 쪽으로 움직였기에, 난입하지 않았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황석도 같이 징계위에 올라갔다. 왜? 일행이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한데 묶어서 쳐내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니 여자팀도 내려와서 근처에서 움직였다면, 최소 70% 이상의 확률로 징계위에 같이 올렸을 거다. 그게 가능하냐고? 가능하다. 세상은 때론, 소설이나 드라마보다 더욱 지독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피니시라인을 통과하며 앞서는 상대를 밀치고도 실격 없이 금메달을 따는, 어떤 경우처럼 말이다.
이걸 생각하면 순간적으로 내린 도은정의 선택은 사실, 센스가 넘쳤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후우. 지영은 좀 더 고민해 봐야 답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 날.
여느 날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감독과 코치는 모르는 것 같지만 선수단의 분위기는 역시 달랐다. 러닝도, 인터벌도 따로 하지만 분명하게 느껴지는 뭔가가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 같은 분위기도 났다.
묵직하고, 무거운 분위기.
운동이 끝날 때쯤엔 몇몇 코치가 눈치를 챈 것 같았다. 하지만 완전히 눈치챈 것 같진 않았다. 새벽 운동이 끝나고, 아침 식사 시간. 여자팀은 역시 아무도 식당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영을 포함한 친구들은 얘기를 나눠볼 생각으로 식당 문을 닫을 때까지 기다렸는데,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추미소에게 연락을 하자니, 어째 다 같이 있을 것 같아서 꺼려졌다.
“하…….”
답답한지, 이성진이 한숨과 함께 머리를 거칠게 긁었다.
“진짜, 우리나라는 왜 적당히라는 게 없는 걸까?”
“…….”
임효중의 말에, 당연히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지영은 옆에 앉아 있던 장대호의 옆구리를 툭 쳤다.
“뭐 들은 거 없어?”
“응? 뭐?”
분위기상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았는지 같이 남은 장대호가 지영의 질문에 눈을 뜨며 물었다.
“그냥 이것저것. 그래도 네가 우리보단 선배들이랑 친하잖아.”
“음…….”
지영의 질문에 장대호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아서. 미안하다.”
“아니, 네가 미안할 건 아니지.”
“……근데, 이건 알아.”
“뭐?”
“은정 선배. 절대 너희한테 먼저 사과는 안 할 거야.”
“……그건 나도 안다.”
사과해서 풀릴 일도 아니지만, 여러 번 말했듯이 그녀가 가진 자존심은 고개가 꺾이는 걸 스스로 용납하지 못했다.
“아마 자신은 최선을 선택했다고 생각할 거야. 실제로 그렇게 될 수도 있었지. 그러나 결과는 안 좋았고. 그러니 책임만 지려는 생각일걸.”
“…….”
이런 마인드는 솔직히 전부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에 가끔가다 친구들의 행동과 말투도 이해 못 할 때가 있었다. 하물며 도은정은 여성이다.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사고의 영역이 있을 수 있었다.
식당 문을 닫았다.
결국 끝끝내 오지 않았고, 얼마 뒤 오전 운동이 시작됐다. 부상 치료를 핑계로 도은정이 빠졌다. 분위기는 더욱 엉망이 됐다.
지영은 파트너로 들어온 후배 권지호와 부딪치기를 하면서,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심지에 결국 불이 붙었네.”
“네?”
“요즘 분위기 개판이거든.”
“아, 들었어요. 심각하다고 좀…….”
“응. 오늘 내로 일 터지겠다.”
도은정 같은 스타일은 정하면 끝이다. 웬만해서는 마음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실행력도 남다르다. 그러나 이게 즉흥적으로 결정한 건 절대로 아닐 거다. 오히려 사람을 이끌고, 책임을 지는 위치라는 걸 너무나 잘 아니 오래, 장고 끝에 내린 결정일 거다.
그러니 쉽겠다고 한 지금 분명 심지에 불을 붙일 게 빤했다.
오전 운동이 끝났다.
다행히 뒤숭숭하긴 해도, 다들 대표선수들이다.
“뭐야! 정신들 안 차려! 현소연이 인마! 너! 정신을 어디 다 두고 있는 거야!”
전기정 감독의 호통이 쩌렁쩌렁 울리자, 자동으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평소에 사람 좋은 모습을 보여도 감독은 감독이다. 잘하면 노터치지만, 못하면 코앞에서 터치가 시작된다. 물론 말로.
그건 다들 피하고 싶은 상황이었고, 그걸 피하는 방법은 열심히 훈련하는 방법밖엔 없었다.
그렇게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머릿속에서 도은정이란 존재 자체가 사라졌다.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넘기고, 버티는 것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오전은 그렇게 지나갔다.
땀에 푹 절은 채로 훈련이 끝나자 다들 녹초가 됐다. 그리고 머릿속엔 샤워, 밥. 두 가지만 단순하게 남았다.
하지만 씻고 밥도 먹고 나니, 다시 도은정이 떠올랐다.
“어, 올라왔다…….”
이성진의 말에 지영은 그의 폰을 슬쩍 봤다. 도은정의 SNS였는데, 확실히 짧지 않은 글이 올라와 있었다. 지영은 바로 폰을 꺼내 SNS에 접속했다. 그녀가 남긴 글은 길지도, 짧지도 않았다. 정확히 당시 자신이 어떤 생각으로 팀원을 잡았고,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으니, 팀원을 향한 비난은 멈추어주기를 바랐다.
또한 그 책임을 지기 위해, 국가대표 자리를 반납하겠다는 말도 적혀 있었다. 그것도 아주 확실하게, 강조되어서.
‘이 누나 진짜 끝까지 캐릭터 확실하네…….’
분명 글엔 다 자신의 책임이고, 책임을 지겠다고 적혀 있었지만 구구절절하지 않았고, 비굴하지 않았다.
“드높은 프라이드……. 대박.”
이 정도면 진짜 인정이다.
그리고 신기하게 그게 정말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냥 좀 아쉬울 뿐이었다. 관계만 잘 개선이 됐어도, 아니, 그녀가 먼저 수습하려는 의도만 보였어도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렇기에 지영은.
‘자업자득.’
이 상황을, 이렇게 평가내렸다.
그리고 이렇게 판이 끝나나 했는데…….
드르륵.
“에이 씨!”
짜증 가득한 얼굴로 밥을 먹다 말고 일어나 식당을 뛰쳐나간 이성진을 보며, 지영은 도은정에게 마지막 기회가 주어지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정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