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09화
309화. 세계 선수권(5)
늪에 빠졌다.
그것도 지독한 늪에.
아유브는 그렇게 생각했다.
업어치기 자세로 잡고 툭 채는 순간 이미 상대는 반응해서 방어 자세를 잡았다. 그걸 무시하고 들어가자니 강지영의 카운터가 무서웠다. 그의 영상은 돌리고, 또 돌려봤다. 각이 나왔을 때 치는 카운터는 거의 백발백중이었다.
그 카운터를 보고 스태프들은 딱 이런 말을 내놨다.
-걸리지 마라.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였다.
한 백번쯤 양보해서, 조심할 수는 있다고 치자. 하지만 유도는 기술을 걸지 않을 수가 없는 스포츠다. 그리고 유도의 모든 기술은 되치기를 할 수 있었다.
상대의 힘을 이용해서 칠 수도 있었고,
그냥 힘으로 우악스럽게 칠 수도 있었다.
그게 유도다.
그런데 카운터에 걸리지 말라고?
그럼 기술을 아예 걸지 말란 소린가? 기술을 걸지 않고 강지영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나? 그럼 그 방법은?
-알아서 해라.
아유브는 처음으로 이 무식한 깡통 새끼들을 전부 쳐내고 싶었다. 심지어 어떤 놈은 시베리아의 기상 어쩌구저쩌구를 떠들기까지 했다. 그 말에 아유브는 자신이 뭔 구소련 시절에 태어나 유도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착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정말 등신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궁리하고, 궁리한 끝에 답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강지영과 잡은 아유브는 왜 코칭 스태프들이 그딴 개소리를 늘어놨는지 알 것 같았다.
늪에 빠졌다는 건.
답이 없다는 뜻이었다.
러시아의 스포츠 제도는 만만하지 않았다.
옛날에야 공화국의 정신으로! 이딴 느낌으로 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도핑에 걸려 자국의 이름을 걸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분석관들의 능력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도 찾지 못한 거다.
강지영의 약점을.
방어만 하는 것도 아니고.
공격만 하는 것도 아니다.
피지컬이 약한 것도 아니고.
기술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유도 지능은 현세대 유도선수 중에 탑 클래스이기까지 했다. 냉정하다 못해 냉철하게 경기를 풀어나가는 사냥꾼 스타일의 유도다. 약점을 찾으면 확실하게 물어뜯어 상대의 숨통을 끊을 줄도 알았다.
겉도 화려하지만, 겉멋만 든 것도 아니었다.
이성적이고, 냉철하고, 아주 지독하게 효율적인 유도를 하는 인간.
즉.
스태프들은 이런 답을 내놓은 거다.
-아유브 너로는 강지영을 이길 수 없다.
아유브는 지도 두 개가 되었을 때 그걸 깨달았다. 그리고 하나 더 깨달았다. 자신의 유도 스타일이, 강지영의 스타일에 치명적으로 약하다는 점이었다. 기록경기가 아닌 스포츠는 상성이란 게 존재했다. 흔히 상대성이라고도 했다.
매번 1등을 밥 먹듯이 하는 선수가 있다. 그런데 이런 선수가 웃기게도 1등은커녕 3등도 한 번 해본 적 없는 선수만 만나면 패하는 거다. 왜 그럴까?
1등 선수는 1등을 그렇게 했는데, 왜 3등 한 번 못 해본 선수만 만나면 질까?
져주는 게 아니라면 답은 하나다.
상대성.
익히 알려진 상대성 이론 말고, 그냥 상대에 따라 강하고 약해지는 것을 말하는 거다. 다른 말로는 저격수 정도가 있겠다. 상대성, 혹은 상성. 이런 걸 따졌을 때 아유브는 강지영의 스타일에 완전히 쥐약이었다.
아유브는 왜 그런지도 깨달았다.
피지컬로 압도하지 못하고, 기술이 신지만큼 뛰어난 것도 아니며, 보통 동유럽, 중앙아시아, 유럽권 선수들처럼 힘이 좋지도 못하다. 밸런스는 잘 짜였지만 이건 다른 말로는 전부 어중간하단 뜻이기도 했다.
그 때문이었다.
이 어중간함. 뭐 하나 특출나지 않기에, 그를 압도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생각에 저도 모르게 몸에서 힘이 풀리는 순간. 그 틈을 노린 강지영이 벼락처럼 기술을 걸어왔다.
어?
쿠웅!
움찔하는 순간 이미 반사적으로 그는 낙법을 쳤고, 뭐가 번쩍하더니 체육관의 천장이 보였다.
Блин!
방심, 빈틈을 놓치지 않은 강지영의 업어치기가 1분을 남겨 두고 작렬하며, 2회전이 끝났다.
* * *
후.
짧게 호흡을 내쉰 지영은 자리로 돌아와 도복을 고쳤다. 몸이 제대로 움직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역시 1회전은 몸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아무리 호흡을 터져도, 첫판은 힘들다. 경기 초반에 그렇게 힘든 건 거의 모든 선수가 같았다.
그래서 평소보다 빡세게 몸을 풀어서 그나마 괜찮았긴 했지만, 역시 2회전은 몸놀림이 달랐다.
‘생각한 그대로 몸이 움직이는 느낌.’
사고가 반응하는 순간,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몸이 제대로 풀렸다는 뜻이었다. 이런 상태는 훈련 중에서도 자유 연습 서너 판정도 한 뒤에 몸이 풀렸을 때 보통 이랬다.
신지와의 1회전이 상당히 빡셌기 때문에 그렇게 1시간을 넘게 훈련해야 나오는 컨디션이 2회전부터 나오고 있었다.
승자 선언 뒤에 인사하고, 기가 죽은 아유브와 악수한 뒤에 시합장을 빠져나온 지영은 대기실로 돌아가기 전에, 한쪽에서 다음 경기를 관람했다.
다음 경기 상대가 저 경기로 결정되니 직접 봐두는 게 여러모로 좋았다. 그걸 아니 진행요원도 따로 제지하지 않았다.
선수들이 입장했다.
홈그라운드 버프를 받을 미국과 신흥유도 강국 코소보였다. 2010년 이후 새롭게 떠오른 유도 강국이 둘 있었으니, 바로 코소보와 그루지야였다. 코소보는 사실 남자보단 여자 선수가 강국이고, 그루지야는 남자 선수가 강했다.
코소보는 작은 땅이다.
발칸반도 쪽에 자리 잡은 이 나라의 인구수는 이백만이 채 되지 않는다. 한국으로 따지면 대전광역시보다 조금 더 많은 정도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작은 나라에서 뛰어난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참…… 줄기차게 나왔다.
쿠웅!
와자아릿!
심판의 특이한 절반 구호는 뒤로하고, 지영은 미국의 조나단을 시작과 동시에 업어치기로 절반을 딴 코소보 선수에게 집중했다. 신장은 작았다. 170은커녕, 160 초반대의 선수였다. 그런데 73을 뛴다는 것은 몸집이 정말 다부지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다부졌다.
땅땅한 게, 마치 탱크가 생각나는 몸집이었다. 힘과 속도, 그리고 작은 체구다 보니 발기술과 업어치기를 주력으로 구사하는 스타일이다.
코소보 선수, 마티보에 관한 영상을 이미 충분히 보긴 했다.
하지만 영상과 직접 시합하는 걸 보는 건 또 달랐다. 선수는 스타일을 바꾸기 쉽지 않지만, 바꾼 것처럼 연기는 가능하다. 선수에 따라 전술을 짜오면 본래의 스타일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경기 하나로 스타일 전체를 재단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래서 봐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영은 저 선수가 만약 자신과 붙을 시에, 어떤 전술을 짜올까? 하고 고민해 봤다.
빠르다. 날래다.
발기술이 제법 날카롭게 들어오고, 그렇게 중심을 흔든 다음 소매 끝단을 잡고 업어치기를 양쪽으로 팍팍 꽂아 넣었다.
“체력이 좋은데? 진짜 쉴 틈 없이 움직인다, 야.”
“신장이 작은 약점을 저렇게 커버하는 거죠.”
“그렇지. 소매 잡아 업어치기는 수준급이네. 잘못하면 그냥 업히겠어.”
스아악!
기술 자체를 미끄러지듯이 구사했다.
이런 기술은 조심해야 했다. 기술이 매끄럽다는 건, 잘못 걸리면 그냥 미끄러져 업힌다는 뜻이었으니까.
애초에 업어치기를 매끄럽게 구사한다는 것 자체가 그 선수의 실력이 하이에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이런 선수는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다.
2회전에서 붙은 아유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위험한 선수였다.
그럼 반대로 미국 선수는?
‘겉멋이 많이 들었네.’
운동선수가 거만할 때는 그만한 실력이 있을 때나 가능한 거다. 유도로 예를 든다면 미야모토 신지 정도나, 아니면 오노 쇼헤이 등, 올림픽에서 입상했거나 세계에서도 순위권에 들었던 선수들이라면 거만해도 그건 실력이 기반이 되어 있으니 이해, 수긍하는 이들이 많을 거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별것도 없는 선수가, 여태껏 아무것도 이룩해 본 적이 없는 선수가 거만하면? 목에 힘을 빡 주고, 어깨 뽕 가득 넣었다면? 그런데 그게 연습도 아니고 시합에서 그러고 있다면?
병신 지랄 떤다고 욕할 것이다.
메시와 호날두가 경기에서 세상 거만하게 돌아다녀도,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그만한 모습을 보이면 그건 이해받는다. 오만한 게 아니라, 거만한 게 아니라, 그 실력을 맞는 자존심, 자존심이라고 생각할 거다.
턱 좀 빳빳하면 어떤가, 세계 최고인데.
사람들은 그렇게 이해한다.
그래서 오노 쇼헤이의 저세상 도사 유도를 보고도 사람들은 그냥 이해하는 거다. 그 선수는 그만한 업적을 쌓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저 친구, 조나단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 더 챌린지 아메리카에서 본선 진출권을 따내긴 했다지.’
그가 사는 주에서 3위 안에 들었다는 뜻이다.
그는 미국 랭킹을 따져 시합에 참여하지 않는 것보다, 그걸 포기하고 더 큰 상금을 노리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뭐가 됐든 간에, 그건 ‘쇼’ 정식 대회가 아니었다. 그러니 고작 그거 가지고 저렇게 모가지가 빳빳한 건…… 남이 보면 부끄러워해야 할 모습이었다.
지영은 두 선수의 모습에서, 경기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감을 잡았다.
시합 시작 3분.
남은 시간은 1분인데 코소보의 마티보는 지도 하나 없이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어가고 있었다.
경기는 그렇게 끝났다.
절반 하나 승. 조나단은 하, 뭐 질 수도 있지. 하는 표정이었다. 장담하는데 저 선수는 다음 대회에서 못 볼 것 같았다. 미국 팀이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단 가정하에 말이다. 반대로 승리한 마티보는 경기 중 자신을 봤는지, 정확히 자신을 직시하고 있었다.
사뭇 도전적인 눈빛.
호승심에 화르르 타오르는 눈빛이었다.
좋은 각오였다.
지영은 몸을 돌려서 대기실로 향했다.
다음 경기를 위해서 휴식을 취해두는 게 좋았다. 그리고 자신이 여기서 이렇게 서 있으면, 다른 선수들도 전부 나와서 서 있게 되는데 그건 경기 진행에 차질을 주니, 주최 측에서 마련해 준 대기실로 가는 게 맞았다.
대기실로 돌아온 지영은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아유브와의 경기는 솔직히 별로 힘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스트레칭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몸을 풀고 있는데 주최 측이 따로 마련해둔 연습장에서 땀을 낸 이성진이 들어왔다.
“어, 왔네? 이겼지?”
“그럼. 졌으면 짐 싸고 있었지.”
“흐흐, 맞네. 담판은 어디?”
“코소보. 넌?”
“난 아베.”
“올라왔나 보네?”
“응. 그래도 금메달리스트인데, 아직 안 죽었더라. 끝나고 나 보면서 이를 갈던데?”
그렇게 말하며 씩 웃는 이성진.
아베 히후미.
이미 이성진에게 한 번 패배했던 선수다. 당시 이성진은 지영만큼이나 무명의 선수였다. 그런데 올림픽의 영웅인 아베 히후미는 이성진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 리벤지 매치가 성사됐다.
지영은 이성진이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까불거림이 나날이 늘어나는 이성진이지만, 도복을 입었을 때는 언제나 진지했다. 게다가 유일하게, 고1 전국 체전 이후 패배 경험이 있는 이성진이었다.
말도 안 되는 무패 행진 기록의, 유일한 오점을 가지고 있기에 이성진은 시합 전이면 언제나 각오를 다졌다. 말도 안 되는 방심으로 황금세대의 기록을 깰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각오로 이성진은 이번 대회도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철저하게 분석했고, 머리에 담았다.
자신이 카운터를 맞을 수 있는 모든 경우를 가정해 훈련하며 철저히 대비했다. 아주 유명한 격언이 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운동하는 사람은 저 말을 믿지 않는다.
피, 땀,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려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게 스포츠다. 간절한 노력 끝에도, 결국에는 정상의 근처도 가보지 못하고 끝나는 게 스포츠다. 냉정하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잔인한 현실은, 정상에 있는 인간들에겐 저 말이 통용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매우 냉정하고, 비정하게, 정상을 향해 등반하는 약자를 향해 무자비하게 휘둘러지는 철퇴가 되어버린다. 이성진은 지금 그런 철퇴를 손에 쥔 상태였다. 거기에 그를 비롯한 황금세대 전체가 함께 들었고, 여지없이 자신보다 실력이 부족한 이를 향해 휘둘러지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휘둘러지는 모든 폭력은, 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