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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08화 (308/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08화

308화. 세계 선수권(4)

콰앙!

등짝부터 제대로 떨어진 신지는 그대로 대자로 뻗었고, 지영도 비슷하게 누워버렸다. 심판이 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 게 마치 슬로모션처럼 보였다.

“눈치챘지?”

“응.”

“언제?”

“연장 들어와서.”

“하.”

야레야레.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신지가 먼저 일어나 자리로 돌아갔고, 지영도 비슷하게 일어나 자리로 돌아가 도복을 고쳤다. 도복을 고치는 신지를 보면서 지영은 이번 승리가, 수 싸움의 승리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노림수.

정확히는 지영이 신지의 노림수를 먼저 파악하며, 승부가 결정됐다. 지영은 신지와의 시합에 따로 전술을 준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지라는 선수가 전술을 짠다고 이겨낼 수 있는 선수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자신의 실력만 믿었다.

신지의 스타일을 분석한 건 분석한 대로 조심했고, 나머지는 자신이 그간 노력에서 일신에 갖춰놓은 것을, 올곧게 믿었다. 여기서 승부가 갈렸다. 신지는 신지답지 않게 전술을 짜왔다. 딱 한 번의 기회에서 승부를 끝장낼 생각이었겠지만, 그 전술은 먹히지 않았다.

반대로, 중간에 지영에게 걸리면서 결국 카운터를 허용했다.

승패는 거기서 그렇게 갈렸다.

‘다음에 만날 땐, 더 힘들겠어.’

그때의 신지는 아무것도 준비해 오지 않을 것이다. 지영처럼 오직, 일신의 실력으로 부딪쳐올 것이다. 솔직히 그런 신지가 더욱 매섭고, 위협적이었다. 이번 경기보다 처음, 두 번째 대결이 더욱 힘들었던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심판의 승자 선언에 꾸벅 인사를 하고, 악수하러 앞으로 나갔다.

“올림픽에서 보자.”

“응.”

신지의 말에 지영은 가볍게 대답한 뒤 손을 짧게 잡았다가 떨어졌다. 신지는 패배를 승복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눈빛은 진짜 시합 전보다 더 살벌하게 빛나고 있었다. 올림픽 전까지, 진짜 뼈를 깎는 훈련을 거칠 게 분명했다.

이미 깨어난 사자의 코털을 뽑았다.

하지만 지영은 겁나지 않았다. 그때까지 뼈를 깎는 훈련에 돌입하는 건 자신도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꾸벅,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온 지영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1회전은 무사히 넘겼다.

그렇다고 2회전이 쉬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긴장이 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신지와의 대결은 언제나 심력 소모가 상당했다. 그가 천재라는 걸 알기에, 그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고, 예리하고 날카롭게 만들기 때문에 시합이 끝난 뒤엔 언제나 탈력감이 뒤따랐다.

“얼른 대기실로 가자.”

“네.”

김재정 코치가 준 수건으로 땀을 닦고, 지영은 대기실로 돌아왔다. 1회전인데도 지친 지영을 위해 대기실은 조용했다. 대기실에 도착해 도복을 벗은 지영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땀을 닦고 두꺼운 옷을 입은 뒤 휴식에 들어갔다.

땀이 식자 몸이 뻐근해졌다.

대회 하나를 통째로 끝냈을 때 찾아오는 뻐근함과 똑같았다. 마치, 몇 경기나 뛴 것처럼 말이다. 신지와의 경기는 천하의 지영이 이렇게 될 정도로 힘들었다. 고도의 긴장도 문제였다. 지영은 자신이 만약 신지와의 경기에서 졌을 때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신나게 물어뜯었겠지. 아니, 죽일 각오로 달려들었을 거야.’

지영을 싫어하는 일부 언론은 아직도 존재했다. 엇나간 정신을 계승하는 그들은 언제나 지영의 추락을 바랐다. 그래서 이번 대회 전에도 당연히 좋지 않은 기사를 상당히 올렸다.

미야모토 신지는 이를 갈고 훈련에 임했고, 지영은 허파에 헛바람이 들어 연예인으로 살았으니 둘 사이에 있던 격차는 이미 사라졌고, 어쩌면 추월당했을지도 모른다고. 그게 전부 인기에 목말라 유도를 등한시한 결과라고.

뭐 매번 이름이 바뀌고, 간판 이름도 바뀌지만, 결국엔 지영의 추락을 바라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지영의 추락을 바랐다.

나의 무사님 시즌2가 끝나고 세계대회에서 한차례 우승을 한 적 있지만, 그땐 진짜 실력자들이 나오지 않았다는 게 그들의 논조 중 하나였다.

현 세계랭킹 1위부터, 10위권 안에 있는 실력자들이 실제로 참여 안 하기도 했다. 그들은 이미 점수가 넉넉해서 메이저긴 메이저인 마스터즈라지만, 굳이 나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영의 우승을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달랐다.

무려 세계 선수권 대회다.

종목마다 있는 세계 선수권인 만큼, 그 명예와 역사가 아주 깊은 대회이다. 그래서 이 대회를 무시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실력자들이 전원 출전하니, 지영이 이 대회에서 한계에 부딪힐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란 자신들만의 의견을 내놓았다.

재밌는 건 전부는 아니어도 동조하는 이들이 있단 점이었다.

이제, 지영이 천재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연기는 연기대로 잘하지만, 유도는 오히려 그의 연기보다 훨씬 더 깊고 높은 곳에 실력을 갖춰놨단 것에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세상에 설마, 그 정도 천재가 지영 하나일까?

아니다.

더 있다.

세상은 넓고, 실력자는 진짜 많았다.

그래서 아무리 지영이 천재라고는 해도, 보통의 선수처럼 운동에만 매진한 게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감을 찾기 전에는 세계제패는 힘들 거라고 보는 사람이 분명히 있었다. 그런 그들은 그들만의 의견을 확실히 냈고, 이는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라고 임은진이 알려줬고 지영은 그에 수긍했었다.

그래서 이번 대회는 중요했다.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기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그 정도는 떨쳐내고 싶지만, 지영도 인간인지라, 그러지 못했다. 솔직히 스스로 계속해서 마음을 다잡긴 했지만, 본인의 실력을 살짝 의심한 적도 있기도 했다.

물론 그런 생각이 들수록 더욱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쳤다.

떨어지는 자신감, 자존감은 오직 훈련을 통해서만 메울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늘이 왔고, 신지와의 결전을 끝냈다.

결과는 승리.

그러나 역시 심신의 피로가 무지막지했다.

지영은 고작 첫판이 끝났을 뿐인데, 시간 되면 깨워달라는 말과 함께 눈을 감았다. 지친 육신은 지영을 단숨에 수면의 세계로 인도했다.

자봐야 고작 20분, 30분 정도겠지만, 지금 지영에게는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게 잠이었다.

* * *

그렇게 지영이 피로에 절어 잠들었을 때, 인터넷은 역시 주모를 찾으며 난리가 났다.

-크으! 이거지! 주모오! 샤따 내려어!

-와, 대단하다. 뭐가 슉 하니까 쾅! 하고 끝나네?

-나 영상 계속 다시 돌려보는데, 강지영 진짜 대단하다…….

-저…… 우리 같이 좀 알아요 언니 오빠들 ㅎㅎ

‘언니’와 ‘오빠’란 단어로 인해 생긴 파워는 대단했다.

-큼! 크흠! 이건 영상을 좀 슬로우로 봐야 하는데, 보면 서로의 노림수가 연장전부터 생긴 거임.

-연장전부터요?

-네. 미야모토 신지. 이 친구가 원래는 올라운더입니다. 업어치기랑 허리후리기 다 수준급 이상으로 날카로운데, 오늘은 유독 허리기술 구사가 하나도 없었어요. 자세를 잡고 나서도 허리기술은 쳐다도 안 봤어요.

-왜요?

-이건 뇌피셜인데…… 강지영 머릿속에서 허리기술을 지우려고 한 것 같음. 아닙니까, 슨생님?

-ㅇㅇ 맞아요. 이게 신지의 전술이 맞는 것 같아요. 철저하게 발기술이랑 손기술 위주로 풀어가면서 허리기술 쪽은 방어하지 않게 만드는 거죠. 그리고 실제로 강지영 자세를 보면 허리기술보단 발기술이랑 업어치기 방어를 훨씬 중점에 두고 있어요.

-그리고 연장전에 강지영이 이걸 눈치챘다?

-네, 보니까 깊게 등깃 잡으면서 한번 확인도 해본 것 같음. 물론 이것도 뇌피셜임. 내가 강지영이 아니니 확인할 방도는 없음.

-와, 진짜요?. 오빠 그래서요?

-그걸 확인하고 강지영은 고의로 허리기술 방어를 푼 것처럼 계속 굴잖아요.

-그게 자세에서 보여요?

-아마 선출들은 보면 좀 아는 느낌? 그냥 아, 업어치기를 경계하는구나, 허리기술을 경계하는구나. 이런 건 그냥 느낌적으로 아는 거니까.

-아항. 그렇구나. 그래서요?

-그러다 딱 한 번, 신지가 훅 치고 들어오면서 찍어 허벅다리 찰 때 강지영 반응속도 보면, 기다린 게 확실해요. 다리 찍는 순간 자세 쫙 낮추면서 차는 순간 허리를 감아 안았으니까.

-그럼 다음 백드롭?

-네, 그거죠.

역시, 전문가들은 보면 안다.

-아하…….

-반응 보면, 알고 있던 게 확실해요. 정말 기다렸다는 듯이 허리 감아 안았으니까.

-그렇구나…… 그, 설명 고마워요. 형. 그리고 미안해. 언니 오빠라고 해서.

-……?

-어? 엌ㅋㅋㅋㅋ

-야이 개…….

-궁금한 걸 어떡해 ㅎㅎ

-후우…….

-ㅋㅋㅋㅋㅋㅋ

순진한 사람을 속이는 무서운 일이었지만, 그냥 웃고 넘어갔다.

한바탕 웃음이 지나간 뒤, 다들 다시 경기에 집중했다. 안타깝게도 마이너스 60은 1회전에서 탈락했다. 강지영의 경기처럼 한일전은 아니었지만, 남북전이었다. 한국과 북한.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첫 게임이었는데 승자는 북한이었다.

경기 시작 2분 만에, 모두걸기에 쓸려 그대로 대자로 누웠다.

여지가 없는 한판이었다.

모두가 아쉬워했다.

하지만 거의 곧바로 이어진 66의 이성진이 시원하게 한판승을 따내자 다시 텐션이 올라왔다. 남자부가 끝나고 여자부 예선이 이어졌고, 그 뒤에야 똥통 시드에서 올라온 선수들의 시합이 이어졌다.

지영은 그때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 * *

지영은 2회전이지만, 시드로 보면 1회전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영은 딱히 거기에 불만은 없었다. 우승까지 다섯 판이나, 여섯 판이나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었다. 체력적으로야 문제가 있겠지만 지영은 황금세대 중에서도 알아주는 체력을 가졌기 때문에 한 경기 더 뛴다고 죽겠다고 헉헉거리는 일은 없었다.

거기에 지영은 짧은 수면으로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몸으로 2회전에 나섰다.

상대는 러시아 카잘리예프 아유브였다.

도쿄 올림픽까지만 해도 러시아 73의 2인자였지만, 지금은 세대교체를 통해 정면에 선 러시아의 주전이었다.

당연히 방심해서는 안 되는 상대였다.

애초에 세계랭킹 20위권 안에 있는 선수들은 거의 종이 한두 장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상대성으로 누군가가 좀 더 압도하는 때도 있고, 지영이나 신지처럼 랭킹권 안에 말도 안 되는 괴물이 있을 수 있기는 해도, 그래도 전원 무시할 수 없는 강자였고, 전부 세계에서 유의미한 성적을 낸 선수들이기도 했다.

그걸 아는 지영은 절대 방심하지 않았다.

게다가 유럽권 선수들은 힘이 진짜 말도 안 되게 좋아서, 아차 하면 잡혀서 그대로 하늘을 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독특하게, 아유브는 힘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리고 업어치기를 주특기로 둔 기술 유도를 구사했다. 동유럽 지역이나, 중앙아시아, 그리고 유럽은 그냥 대놓고 힘 유도를 하는 판이다. 왜? 압도적으로 좋은 힘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힘 유도 때문에 현대 유도의 변천사가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만큼, 힘 유도는 위협적이다.

이 미친 힘 때문에 일본이 유도 룰을 뜯어고쳤을 정도로. 실제로 지영 본인도…….

‘기술 유도보단 힘 유도가 더 까다롭지.’

그것도 몇 배나.

힘 유도는 변칙이 너무 강하다.

그래서 그 변칙을 없애기 위해 움직이다 보면 체력소모가 진짜 너무 만만치 않았다. 아귀가 뭉치는 건 예사고, 시합에 이기고도 진이 빠져 대회를 망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그런데 기술 유도는 지영이 상대하기 좋았다.

애초에 지영의 스타일은 방어 유도다.

뭔 짓을 해도 넘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고.

되치기라 하는 카운터는 기가 막히게 잘 쳤으며.

가만히 있으면 슬그머니 먼저 움직여 반칙을 받게 유도하는 것도 도가 텄고.

선공과 잡기도 일가견이 있는.

이런 스타일은, 기술 유도 구사 선수들에게는 그냥…… 재앙이었다.

그런 지영과 맞붙은 아유브는, 경기 시작 2분 만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그게 카메라에 담겨 고스란히 세계에 송출됐다. 그가 고개를 저은 이유는 하나였다. 기술을 걸자니 카운터가 무섭고, 그래서 몸을 좀 사렸더니 기가 막히게 공세로 전환해 자신을 수세로 몰아 지도를 받게 했고, 그렇게 어, 어어? 하다 보니 반칙이 벌써 두 개다.

경기가 안 풀리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말려 구겨져서 바닥에 처박혀버린 상태였다.

그리고 그걸 깨달았기 때문에 나온 제스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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