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10화
310화. 세계 선수권(6)
아주 먼 옛날부터, 폭력은 아주 좋은 쇼였다.
고대 로마 콜로세움만 생각해도 인간이 얼마나 폭력에 취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전쟁이 잦아든 현대에 들어서자 이런 폭력에 관한 갈망은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왔다. 가장 쉽게 예를 들 수 있는 게 옥타곤에서 벌어지는 격투기다.
최소한의 제한만 둔 순수한 폭력.
이 폭력에 인간은 열광한다.
그러나 이런 진짜 주먹질 폭력에만 인간이 열광하는 건 아니었다. 스포츠도 같았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인기가 세계를 떨쳐 울리는 건 괜히 그런 게 아니었다. 특히, 그런 정상급 선수가 엄청난 실력을 내보일 때면 더 열광한다.
그럼 그 선수는 누구를 대상으로 그 실력을 선보일까?
약자다.
자기보다 못하는 약한 선수.
소수를 제외하면 이 두 겨룸에서 당연히 잘하는 선수를 응원한다. 특별한 조건이 약자에게 붙지 않는 이상, 열광적인 환호는 당연히 강자에게 향한다.
복싱의 메이웨더, 격투기의 맥그리거, 축구의 호날두나 메시 등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들의 몸값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이었다.
모든 게 인기가 반영되어서였다.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쇼의 최강자들.
이런 선수들은 팬의 사랑을 받지만, 동종업계 종사자에겐 이를 가는 대상이 된다.
합법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멘탈이 터지도록 두들겨 맞다 보면, 당연히 악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스포츠맨십에서 아득히 벗어난, 말도 안 되는 반칙과 견제에 시달릴 때도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퍼억!
악! 아악!
“저, 저 개X끼가!”
지영은 경기를 지켜보다 말고 욕설과 함께 앞으로 뛰쳐나갔다. 이성진과 아베 히후미의 경기는, 시종일관 이성진의 우세였다. 폼과 피지컬, 실력이 물이 오른 이성진은 이미 한차례 승리했던 아베 히후미에 맞서 완벽한 경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경기 시작 30초 만에 절반을 땄고, 그에 그치지 않고 경기력에서도 우위를 점해 아베 히후미에게 지도 2개를 먹였다. 이변이 없는 한, 이성진이 진짜 하품할 정도로 방심하지 않는 한 질 수가 없는 경기였다.
그리고 경기가 이렇게 흘러간다는 것은, 이성진이 모든 면에서 아베를 압도하고 있다고 봐도 좋았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1분을 남겨놨을 때쯤 굳히기 방어에 들어간 이성진의 목깃을 잡아채면서, 무릎으로 그대로 얼굴을 찍었다. 심지어 다리를 뒤로 빼기까지 했다. 그래서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무조건 고의라고.
굳히기를 잡으려다가 실수로?
말도 안 된다.
일반인의 눈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같이 유도에 종사하는 인간들이 보면 무조건 눈에 보이기 마련이었다. 저건 고의적이었다. 의도적이었다. 예시예종은 물론이고 스포츠맨십 따위는 땅바닥에 처박아 버린 비겁하고 더러운 짓이었다.
후둑, 후두둑.
얼굴을 제대로 맞아 드러누운 이성진의 위로 올라타 누르기를 시도하는 아베 히후미. 멀리서도 모일 정도로 피가 튀었는데, 심판은 누르기를 선언했다. 저 상황에 누르기? 기가 너무 차서, 숨이 턱 막혔다.
“이 X발 진짜! 이 X발 잡것들이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거다.
전기정 감독이 삿대질을 하며 욕을 내뱉었다. 그리고 열이 머리끝까지 돌았는지 경기장에 난입하기까지 했다. 그러자 심판이 엄한 눈빛으로 오지 말라고 막아섰지만, 이미 눈이 돌아갈 대로 돌아간 전기정 감독이 그걸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이 개자식들아! 이럴 거면 옥타곤으로 가! 고의로 얼굴을 무릎으로 쳤는데 이걸 그냥 넘어간다고? 그리고 누르기를 줘? 이 미친 새끼들아! 니들이 하는 게 유도야?! 어! 유도냐고!”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전기정 감독.
부심 쪽에서 뭔 선언이 있었는지, 브라질 출신 심판이 결국 그쳐를 선언했다. 그러자 일어나면서 왜 그쳐를 선언하냐는 제스처를 취하는 아베 히후미. 지영은 거기서 확 돌아버렸다.
쿵!
높지 않은 1층에서 뛰어내린 황석과 임효중이 살벌하다 못해 찢어 죽일 것 같은 눈빛으로 경기장까지 걸어갔다. 뒤이어 내려온 강한결의 얼굴도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언제나 차분한 친구의 눈빛이, 얼음물에 담갔다가 뺀 것처럼 차갑게 굳어 있었다.
아베는 억울하단 표정으로 제자리에 가서 섰지만, 엎드린 이성진은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얼굴 사이로 피가 번졌다. 열 받은 전기정 감독을 경기 진행요원들이 뜯어말렸고, 그런 감독에게 퇴장 명령을 내리는 심판을 보면서 이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사실을 지영은 깨달았다.
‘이건, 이건 아니지.’
설마 세계 선수권이란 큰 메이저 대회에서 이런 미친 짓이 벌어질 것이라는 건 정말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지만, 지영은 직감적으로 이건 이대로 넘어가선 안 된다는 것도 같이 깨달았다.
하지만 그전에, 친구가 먼저였다.
무릎에 맞은 이성진은 고개가 들릴 정도로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턱이 맞았을 수도 있는데 출혈이 저렇게 많은 걸 보니 턱보단 코 쪽 같았다.
으득!
이가 갈렸다.
당장 들어가서 아베 히후미의 얼굴을 짓뭉개 버리고 싶은 욕구가 확 들었다. 선수 생명? 미련은 남겠지. 더럽게 많이 남을 거다. 하지만 친구가 저런 꼴을 당했는데 올림픽 걱정하고, 선수 생명 걱정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지영은 참을 수 없는 미친 짓이었다.
경기장 바로 앞까지 가자, 임효중이 들썩이는 마음으로 친구를 불렀다.
“성진아! 성진아 괜찮아? 어?”
“큭, 크흐…….”
안 괜찮은 것 같았다.
들썩이는 어깨.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신음 등등. 아무리 봐도 상태가 심각한 것 같았다. 심판은 그런 이성진에게 오히려 일어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것만 해도, 상식을 아득히 넘어선 거다. 이건 유도가 아니었다.
더러운 폭력이지.
“의료진! 아 뭐 하냐고!”
임효중이 의료석을 바라봤는데, 그들은 심판의 요청이 없으니 들어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정하지 못해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에, 지영은 반사적으로 강한결을 바라봤다. 이럴 때 본능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친구는, 이 친구밖에 없었다.
징계?
영구 제명?
그걸 걱정하나?
맞았다.
그걸 걱정하는 게.
“이딴 유도계라면, 몸담고 있는 게 오히려 창피한 거지.”
강한결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이내 경기장으로 훌쩍 난입했다. 강한결이 움직였다. 리더가 마음을 정했다는 건, 팀원은 따라가면 된다는 뜻이었다. 유도 외적으로는 지영을 많이 의지하지만, 이런 문제에 앞장서는 건 언제나 든든한 강한결이었다.
강한결이 난입하자 심판이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뭐라 뭐라 씨불였다. 그런데 영어도 아니라서 이해가 가질 않았다.
시합은 중지됐고, 관중은 술렁이고 있었다.
와서 어깨를 건드리자 강한결은 그걸 잡아서 확 뿌리쳤다. 넘어진 심판에게 향하는 싸늘한 눈빛.
그건 이미 심판을 향한 눈빛이 아니었다.
“성진아, 성진아, 괜찮아? 고개 들…… X발!”
임효중과 황석이 이성진의 어깨를 부축해 세웠는데, 처참했다. 코가 완전히 뭉개졌다. 얼마나 세 개 찍혔는지, 짓눌려서 틀어져 버렸다. 무방비 상태에서, 격투기 선수가 파운딩 때 무릎을 뒤로 뺐다가 찍는 것처럼 전력으로 찍혀서, 코가 완전히 망가졌다.
“이 개 X발 새끼가!”
임효중이 고개를 확 틀고는 아베 히후미를 노려봤다. 지영은 그런 임효중을 잡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뒀다. 이미 경기장에 난입한 순간부터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번 난입으로 징계는 피할 수 없을 건데, 아마 잘못하면 제명당할 수도 있었다.
그런 마당에 유도인의 긍지, 자부심, 스포츠맨십 등등을 모조리 내다 버린 선수의 턱을 날려 버린다 한들, 뭐가 큰 문제가 되겠나.
“한결아. 피가 안 멈춘다…….”
“빨리 의료석으로 데려가. 출혈만 막고, 바로 병원으로 가자.”
강한결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심판을 노려보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강한결이다. 그런데 그건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이건, 21세기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판정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피가 이렇게 터졌는데 누르기를 줄 수는 없는 거다. 아니, 그전에 당장 그쳐를 한 다음 아베 히후미에게 반칙패를 주고, 의료진을 불러 이성진을 확인하는 게 맞았다.
이는 아주 당연한 순서였다.
그런데 심판은 엎드린 이성진에게 얼른 일어나란 제스처를 취했다. 피가 얼굴 옆으로 흐르는데 말이다. 피가, 피가…….
상식을 아득하게 벗어난 거다.
지영은 이 상식적이지 않은 모습에, 도대체 25년인 지금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현실성이 너무 없었다. 미친 것도 아니고, 진짜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도무지 사고가 이 상황을 따라잡지 못했다.
쌍팔년도도 아니고, 무려 25년이다.
도대체 이 시대에, 어떻게 이런 판정이 나올 수가 있지?
심판은 악을 썼다.
그리고 자신의 권위에 불복종한다며, 우리를 징계 위원회에 회부할 거라고 악을 써댔다. 그걸 지켜보고 있자니 정말 기가 찼다. 어이가 없다 못해 회의감이 들었다.
“한결아. 네 말이 맞네. 이런 유도계라면, 굳이 발 담그고 있을 필요가 없겠어.”
그랜드 슬램?
올림픽?
회귀한 자신에게 그건 분명 중요한 부분이었다. 유도를 정말 사랑하지만, 애증으로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썩어빠진 정도라면, 이곳에 몸담고 있는 것 자체가 같이 썩어가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끝내나?
힘들게 병행하던 선수 생활을?
지영은 고개를 돌렸다.
이성진의 코에서 터진 피는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제대로 출혈이 터져서 아직도 숙인 고개에서 주룩주룩 흐르고 있었다. 그걸 보자 심판과 아베 히후미의 얼굴도 짓뭉개 버리고 싶단 욕구가 다시 단숨에 올라왔다.
아베 히후미는 이제야 긴장한 얼굴이었다.
앞에서, 자신의 죽이려고 드는 임효중의 살벌한 눈빛에 이미 기가 팍 죽은 모습이었다. 아마 몰랐을 거다. 지영을 포함한 황금세대 전원이 아예 경기장에 난입해 이렇게 개판을 칠 줄은. 솔직히 일반적으로는 이런 부당한 경우에도 나서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아니, 나서지 못했다.
나서는 순간 징계는 피하지 못한다. 반년 경기 출장일 수도 있고, 일 년일 수도 있고, 제명일 수도 있다.
유도에서 심판의 권위는 상당히 강력해서, 판정에 불복해 항의하는 것 이상으로 넘어가면 반드시 크게 문제가 터진다.
그래서 욕은 해도, 이렇게 경기장에 난입하는 경우는 거의, 아니, 아예 없었다. 그런데 황금세대는 대놓고 난입했다. 심판을 죽일 듯이 노려봤고, 선수는 아예 찢어 죽일 것처럼 노려봤다. 그런데 재미난 건, 이렇게 대놓고 터뜨리는데도 다른 심판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경기 진행요원은 와서 막고 있지만, 경비는 오지 않았다.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상황을 보고 있었다.
“효중아. 가자. 성진이 병원 데리고 가야지.”
“후우…….”
어깨를 들썩이며 분노를 참던 임효중이,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풀고 몸을 돌렸다. 얼마나 입술을 세게 깨물며 참고 버텼는지, 터져서 피까지 나고 있었다. 현기증이 팍 올라왔다. 이걸로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거나 마찬가지다 보니, 마음이 오히려 편해졌다.
하지만 반대로 독한 마음이 다시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대로 당한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다.
“지영아.”
“어.”
“성깔 좀 부리자. 네 이름값으로. 이렇게 당하기만 하는 건 억울하잖아.”
“…….”
지영은 강한결의 말에 피식 웃었다.
친구의 생각과 좀 전 자신의 생각이 똑같아서였다. 밖으로 나와 이성진을 보니, 역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눈빛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피도 멎긴 멎었지만 역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번 일! 정식으로 협회에 고소할 겁니다! 내가 당신! 그리고 너 이 새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옷 벗길 거야!”
전기정 감독은 여전히 악을 쓰고 있었고, 한국팀 스태프는 길길이 날뛰는 전기정 감독을 잡느라 여념이 없었다.
“괜찮아?”
“어, 어으…….”
“병원 가자. 조금만 참아.”
“…….”
이성진이 크윽, 퉤! 침을 뱉자 목을 타고 넘어간 피 섞인 침이 한 뭉텅이 나왔다. 그걸 보면서 다들 이를 악물었다. 다시금 끓어오르는 화를 참기 힘들어서였다. 현기증이 나서, 어질어질했다. 장내는 이미 싸하게 굳었다. 대회가 개판 된 거? 그건 이제 알 바가 아니었다.
“석아. 구급차 불렀지?”
“응, 부탁했어.”
“그래, 효중아, 가서 성진이 짐 챙겨와. 지영이 너도.”
“응.”
몸을 움직이려는데, 주최 측에서 다가왔다. 꽤 거만한 걸음걸이. 높으신 양반 같은데 강한결은 그를 그냥 무시했다. 더 다가오자 손을 뻗어 오지 말라는 제스처를 확실히 취했다. 그 모습이 너무 확고하고 살벌해, 거만함은 금방 사라지고 주춤 물러났다.
지영은 대기실로 돌아가 짐을 챙겼다.
“저, 지영아.”
“아무 말도 마세요. 설득을 포함한 아무것도 하지 마시고.”
“…….”
“이런 취급 받으면서 우리한테 시합을 뛰라고 하시면, 정말 실망할 겁니다.”
“후우…….”
코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도 눈이 있으니, 이성진이 당한 반칙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건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래도 나서지 못했다. 뿌리 깊이 각인되어 있는 거다. 심판에게, 협회에게 대들면 안 된다는 것을.
지영은 그걸 문제 삼고 싶지 않았다.
임효중과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이성진을 부축해 체육관을 빠져나가자, 시합장을 찾은 기자들이 마이크를 내밀었다. 본래라면 절대 안 섰을 거고, 무시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후우.
지영은 자신에게 들이대는 마이크 앞에 서서, 숨을 골랐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대충 정리는 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베 히후미 선수는 도저히 선수로서 해서는 안 되는 짓을 저질렀고, 그걸 본 심판은 역시 말도 안 되는…… 하하, 미친. X발……. 판정을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다 너무 당당하게 시합을 이어 나가려는 걸 보고, 더러운 거래가 없이는 절대 저런 모습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서.
힘? 그거 너희들만 있는 게 아니다.
“심판과 일본 유도 협회의 뒷거래를 알아주는 기업의 모델로 서겠습니다.”
응?
뭐?
“이 문제를 해결할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준 국가나 기업의 광고 모델로 서겠습니다. 확실한 증거만 찾아주면, 공익 광고든 상업 광고든, 뭐든 하겠습니다.”
강한결이 부리라고 한 성깔을, 지영은 제대로 부렸다. 문제? 되라면 되라지. 뒷감당? 그걸 걱정했으면, 경기장에 난입도 하지 않았다.
지영이 그렇게 작정하고 던진 폭탄은, 다시 세계를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