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95화 (295/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95화

295화. 유도 챌린지(8)

보통 피가 튄다는 표현은, 경기가 굉장히 치열할 때를 의미했다. 그리고 그렇게 치열한 경기가 나오려면 선수들의 실력이 엇비슷해야 했다. 선수의 실력을 수치화했을 때 비슷한 수치를 갖춘 선수끼리 붙었을 때 피 튀긴다는 표현이 가능했다.

그럼 수치가 벌어졌을 때는?

그땐 압도란 말을 쓴다.

혹은 일방적이라는 말을 쓰든가.

남자부 경기는 후자였다.

16강 대진표가 제대로 역상성이든가, 아니면 선수끼리 실력 차가 나서 여자부처럼 치열한 경기로 계속 이어지진 않았다. 특히 은퇴했던, 동시대에 활동했던 선수들끼리 붙은 경기는 솔직히 재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 선수들은 서로를 너무 잘 알았다.

동시대에 선수 생활했으니 맞붙었던 적도 많았고, 그래서 장단점을 너무 서로 잘 알았다. 그래서 섣부르게 달려들 수 없었다. 저돌적인 느낌이 사라진 유도는 본래 이름처럼, 부드럽게 경기가 흘러갔다.

이게 본래의 유도였다.

여성부 경기가 워낙에 피 튀기는 혈전이어서 그렇지, 본래 이게 기본에 충실한 유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유도 본연의 경기가 나오자, 관객들은 흥미를 조금씩 잃기 시작했다. 당연했다. 서로 치고받는 빡센 경기에서, 조용히 흘러가는 경기로 변했으니 매운맛에서 순한 맛으로 변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매운맛을 일단 먼저 맛봤기 때문에 순한 맛은, 관객들에게 심심했다.

이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경기에 집중하지 못했고, 딴짓하는 관중들이 늘어갔다. 그리고 그런 흐름을 감지한 지영은 솔직히 좀 놀라웠다.

“보통은 남자 경기가 더 인기 많은데…… 남자 경기가 쉬어가는 타임이 되다니, 이건 좀 놀라운데?”

“그러게. 그런데 경기 내용 보면 충분히 그럴만하지. 솔직히 지금 선배들 경기, 너무 고인물 경기 같잖아?”

강한결의 냉정한 평가에 지영은 물론이고, 같이 온 국대들이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부 마이너스 60 체급 16강까지 올라온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죄 아는 얼굴이었다. 10명이 현직 실업팀 선수고, 나머지 넷이 은퇴한 지 얼마 안 된 선수. 나머지 둘은 대학부와 고등부에 있는 선수들이었다.

“예외성이 잘 생기는 여자부는 골고루 올라왔지만 남성부는 진짜 현역들이 거의 다 올라와서 그래. 이건 뭐 흠. 어쩔 수 없지. 남자부는 보통 해 먹던 애들이 계속해서 해 먹으니까.”

국내 랭킹 2위라, 시합에 출전하지 않은 정수원의 말에 이번에도 미어캣처럼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여자부는 세대교체가 조금 빠르다. 물론 혼자 해 먹는 선배들도 있긴 있지만, 남자부에 비하면 확실히 빠른 느낌이다.

이것도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여자부는 고등학생과 성인 선수가 붙어도 크게 차이가 없을 때도 있었다. 피지컬의 완성이 남자들보다 이르게 완성되어서였다. 반대로 남자 선수들은 피지컬의 완성이 늦다. 못해도 대학생까진 가야 완전히 여물었다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때 꽃 피우는 선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자부는 고등학생, 이르면 중학생 때 피지컬의 발전이 끝날 때도 있었다. 이후는 트레이닝을 통한 근력 상승 등을 노려볼 수 있게 되는 거다. 이렇다 보니 피지컬의 차이가 크게 없어서 세대교체가 그래도 좀 빠르게 일어났다.

이런 이유의 차이가 연출이 붙으니, 오히려 정반대의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당장 지영만 해도 남자부 선배들 경기보다 여자부 경기가 훨씬 더 재밌었고, 인상적이었으며, 기억에 오래 남고 있었다.

여운이 있는 경기.

연출이 붙으니 수혜자는 남자보단, 여자였다.

게다가 참 간사하게도, 외모가 제대로 한몫했다. 남자 선수들의 상의 탈의이니 복근도 죽여주게 잘 보이고, 피지컬적인 모습은 최고긴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완성은…… 외모라고 했다. 더 정확하게는 얼굴이라고 했다.

노리고 한 것도 아닌데, 본선 진출자의 외모가 극명하게 갈렸다.

게다가 여자 선수들은 제대로 메이크업까지 받으니, 일단 차이가 너무 났다. 스포츠 스타의 태반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외모에서 결정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더 정확히는 외모도 뛰어난 선수가, 비슷한 기량을 가진 선수보다 훨씬 더 사랑받는다.

같은 기량이라도, 잘생긴 선수가 더 인기가 많다는 이 부분은, 이건 절대적이었다.

그런 외모적인 부분에서 여자부가 압승이었다.

성차별, 뭐 이런 문제 다 떠나서.

‘오늘 한정의 엔터테인먼트 쇼에 여자 선수들이 더 부합한 거지.’

그래서 지금, 이렇게 남자부 경기는 외면받는 거고.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오늘의 쇼를 기획한 이들도 시합이 이렇게 흘러가는 걸 예상할 수는 없었을 거다. 그리고 이걸 알았다고 쳐도, 이미 대진이 정해진 이상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었다.

뭐 어떻게 할 건가.

시합을 더 파이팅 있게 해주세요! 이렇게 강요라도 할 건가?

아니면 대진표에 손대기를 할 건가.

그러니 이건 기획자들이 예상했어도, 해결 방안이 없는 문제였다.

그런 남자부 경기는 1시간 만에 끝났다.

실력자가 있으니 금방 끝난 게 절반이고, 남은 절반은 고인물들의 경기였기 때문에 거의 막바지에 한방으로 끝나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게 8강 진출자들이 가려졌다.

그런데, 주최 측인 사성은 아주 작정했는지 순서를 바꿔버렸다. 다시 30분의 휴식을 준 다음 여자부가 아니라 남자부부터 8강전을 진행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쇼의 세계에서 흥행하는 무대를 뒤에 놓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게 자존심이 좀 상했는지, 남자부 8강전은 제법 나쁘지 않은 경기들이 나왔다. 경량급답게 스피디하게 시합이 치러졌다.

패자와 승자는 속속 가려졌다.

이벤트 대회답게 이 대회는 패자부활전이 없었다. 패자전까지 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4강에서 진 두 명의 선수가 동메달을 따는 기존의 대회 방식을 차용했다.

그렇게 4강에 오른 선수들이 정해지고, 여자부 경기가 시작됐다.

시작은 장한빛과 이연두.

더 챌린지의 흥행의 불을 지핀 두 선수의 대결이었다.

* * *

-세상에……. 스포츠가, 심지어 투기 종목인데 여자 경기보다 남자 경기가 더 재미가 없다?

-ㅋㅋ 8강 올라온 선수들 보니까 다 나이 차이가 하나에서 넷 사이 ㅋㅋ 현역 때 아마 지겹게 붙어봤을 걸요 ㅋㅋ

-아 그래서 저렇게 지루한 거임?

-네, 하도 많이 붙어봤으니 서로 너무 잘 아는 거죠 ㅋㅋ 그러니 뭔 기술을 걸기도 뭐하고. 자연스럽게 저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저게 보통 유도 경기……. 아까 여자부 16강이 미친 경기력을 보여준 거예요, 진짜. 원래는 남자부 경기처럼 보통 다 흘러가요.

-아 진짜요?

-네. 저 현역임. 예선에서 떨어진.

-ㅇㅋㅇㅋ 믿겠음.

-근데 여자부들은 프로필 보니까, 현역이 반도 안 되는데?

-그게 저도 신기하긴 하네요. 오래 쉰 선배가 솔직히 본선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한데, 경기력이 와……. 저랑 제 동기들 보면서 진짜 계속 감탄 중.

-이전에 올림픽 경기보다 훨씬 더 파이팅이 있는 건 둘째 치고, 뭔가 더 있긴 함.

-이연두…… 이름만 들으면 귀염큐티뽀짝할 것 같은데, 시합은…… ㄷㄷ

-연두 언니 청담에서 유명해요.

-이연두 암?

-네, 저 연두 언니 바 단골 ㅎㅎ

-근데 항상 예약 차서 한 달에 한 번 겨우 봄 ㅠㅠ

-그, 그쪽임?

-ㄴㄴ 그냥 언니 보러. 언니 평소에도 저렇거든요. 개시크해. 근데 가서 막 푸념하고, 고민 얘기하면 진짜 솔로몬급으로 해결책 제시해 줌 ㅎㅎ

-……어떤 캐릭터인지 감이 안 잡히는데?

이연두는 바텐더가 직업이다.

그런데 그녀는 이미 그쪽 업계에서는 매우 유명 인사였다. 속속 그녀의 팬이라는 사람들이 채팅창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신기한 건, 태반이 아니라 거의 전부가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특유의 시크함.

-난 언니 시크함이 어디서 나온 건지 진짜 개궁금했는데, 저거였구나…….

-ㅇㅇ 갖춘 자의 여유? 그런 거?

-솔직히 저 정도면 일반인 남자도 제압 가능하지 않나요?

-ㅎㅎ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요?

-ㄴㄴ 저 정도 실력자면 웬만한 남자는 그냥 뼈마디 다 날려버리죠. 유도 우습게 생각하면 곤란해요…….

-맞아요. 힘만 제대로 받으면 그냥 발라버릴 수 있음.

-진짜요? ㅎㅎ 와 우리 언니 짱이었네, 진짜!

-아마조네스에서 연두 언니 영입하려고 이번에 1억 질렀다는데, 이제 1억으론 어림도 없을 듯 ㅎㅎ

-헐, 1억이요?

-네, 그런데 거절했대요. 처음에 자기 받아주고, 가르쳐 준 지금 가게 사장님 고마워서.

-ㄷㄷ 심지어 의리파네?

이미 1억이 넘는다.

상위 바텐더의 몸값이 4천 전후인 걸 생각하면, 그녀는 소위 말하는 업계 1% 안에 드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연두 언니, 이름 본명이었네요?

-명찰에 연두라고 적혀 있어서 예명인가 했는데…….

-본명 맞음. 연두는 싫어하는.

-연두?

-동기예요. 초중고까지 같이 운동한.

-헐!

급기야, 이연두의 동기까지 등장했다.

동기의 등장에 원래도 이연두의 팬이었던 이들의 호기심이 폭발했다.

-언니 옛날에도 저렇게 시크했어요?

-옛날에도 저랬어요. 운동 잠, 운동 잠, 딱 그것만. 동기들이나 후배들이 아이돌이나 드라마 볼 때도 쟤는 개인 훈련하고, 딱 그랬어요.

-헐, 그럼 언니 예전에도 운동 잘했어요?

-그땐 시합 운이 별로 없어서 이상하게 잘하다가 8강이나 16강에 지고 막 그랬어요. 그래서 3등 두 번인가 한 게 전부일걸요.

-헐, 그런데 왜 저렇게 잘해요! 심쿵하게!

-글쎄요 ㅎㅎ

-그런데요. 그럼 대학교까지 운동으로 간 건 아니에요?

-아, 연두 부모님이 좀 그래서…… 대학교는 못 갔어요. 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서울로 상경한 거예요. 바텐더 일도 그때부터 배웠을걸요?

-아…….

한 인간의 인생사가 까발려지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민감한 얘기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냥, 새롭게 스타가 될 자질이 충분한 선수의 스토리를 듣는 게 이들은 좋았다.

이연두.

이 귀엽고 청초한 이름을 가진 선수의 등장을 사람들은 기대하고 또 기대했다.

-나왔다!

이윽고 시작된 여자부 8강전.

첫 게임은 장한빛과 이연두였다. 먼저 백색 도복을 입은 장한빛이 들어왔고, 뒤이어 청색 도복을 입은 이연두가 입장했다.

우와와아!

함성이, 함성이 진짜 어마어마했다.

엄청난 환호성이 자신에게 향하는데 이연두는 역시나 표정의 변화 없이 저벅저벅 걸어 경기장으로 향했다. 찢어진 입술이 부었는지, 살짝 튀어나온 입술을 빼면, 역시나 참 시크한 느낌이 가득했다.

다부진 느낌의 장한빛.

시크한 느낌의 이연두.

솔직히 환호는 이연두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장한빛! 장한빛! 그녀의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경기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직 심판이 등장하기도 전인데, 환호가 장난 아니게 터져 나왔다.

이연두! 이연두!

연두야! 결승 가자!

이번엔 한판으로 이겨요!

언니! 꺄아아!

누가 보면 결승전인 줄 알겠는데? 할 정도였다. 물론, 이 환호성은 오늘 스타가 된 이연두 때문이었다. 당장 그녀 뒤에 등장하는 선수에게는 이 정도의 환호가 나오진 않을 거다. 하지만 나왔다는 게 중요했다.

[아, 이연두 선수가 입장하자 공기가 변했습니다!]

[호호, 새로운 유도 스타가 탄생한 것 같은데요?]

[그런 것 같습니다. 새로운 스타! 오늘 말고 내일, 그리고 다음 주, 또 그다음 주에도 계속 스타가 탄생했으면 좋겠습니다. 아! 심판 입장합니다!]

배영우의 말처럼 심판이 입장했다.

브라질 출신 국제 심판이었다. 심판은 신기한 눈빛으로 관중을 돌아보다가,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는 진중한 눈빛으로 자신의 자리로 걸어가 섰다.

심판이 등장하자 환호가 천천히 가셨다.

하지메!

그리고 경기가 시작됐다.

스포츠엔 이런 말이 있다.

경기를 시작했을 때, 그리고 경기가 곧 끝날 때. 그 순간을 가장 조심하라고.

화악!

이연두가 시작과 동시에 갑작스럽게 달려들어 안기듯이 끌어안으며 건 안다리에 장한빛은 순간 움찔했을 뿐, 그 이상의 반응은 하지 못했다.

쿠웅!

잇폰!

시작과 동시에 승자와 패자가 갈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