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90화
290화. 유도 챌린지(3)
메리 크리스마스!
누군가는 행복하지만, 누군가는 쓸쓸한 크리스마스 당일, 사성 발 기사가 대대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황금세대! 사성 그룹 개최 유도 대회에 나선다!
-시합 참가는 노! 특별 이벤트 매치만 참가!
-드디어 움직인 강지영! 과연 그의 몸값은 얼마?
-이벤트 매치에 나선 유도 국대들의 몸값은?
-강지영, 기존 국대 선수와 똑같은 대우로 결정!
-사성의 띄운, 신의 한 수!
-전략적인 기획이었다.
-CF는 안 된다고? 그럼 유도계를 노리자! 그가 몸담은 유도계 자체를 공략한 것이 주효하게 먹혔다. 사성 마케팅팀의 승리!
-사성, 유도협회와 협업하지 않는다! 왜?
-사성의 기획에 난색 표한 유도협회! 복을 제 발로 걷어차 버렸다.
-사성. 대회 준비는 외주로 진행하겠다. 그래도 강지영의 섭외가 끝났으니, 외주에 돈이 얼마나 들 건 수백 배는 남는 장사다!
다다다!
가히 폭격처럼 쏟아진 기사였다. 네티즌은 드디어 강지영이 한 기업과 손을 잡고 움직인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지영은 그간 그 어느 기업과도 손을 잡지 않았다. 한 해에 무려 백억을 쓰겠다고 한 기업도 있었는데, 강지영은 그걸 거절했다.
그렇기에 지영의 행보는 모두의 관심사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번 마스터즈 대회 전에 레나 파벨로와 만나며 한 차례 다시 화제를 몰았고, 1년 가까이 쉰 와중에 나선 대회에서 강지영은 또 당당히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래서 진짜 대단하다는 인식이 당연히 생겼고, 그렇기에 그런 강지영을 잡으려고 더욱 혈안이 되어들 있었다.
다들 머리를 굴렸다.
강지영을 잡으면, 그 파급효과는 가히 엄청날 거라는 걸 아니까 어떻게 해서든 강지영의 구미가 당길 만한 조건을 찾아내기 위해, 진짜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지영의 CF에만 목을 매는 곳도 있었다.
그랬는데, 그런 와중에, 사성 발 기사가 터진 거다.
비록 이벤트 매치에 참여하는 거지만 지영은 분명하게 한 기업과 손을 잡았다. 그렇다고 몸값을 많이 받은 것도 아니었다. 사성이 밝힌, 이벤트 매치에 나선 유도 국가대표들이 받기로 한 금액은 선수당 오백만 원이었다.
그리고 지영도 딱 이 금액만 받았다.
체급당 네 명의 선수가 나서니, 남녀 다 합쳐보면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었다. 시합 상금까지 있고, 외주를 주는 비용에 홍보 등등을 생각하면 당연히 돈이 줄줄 빨려 나가는 기획이었다. 하지만 사성은 돈에 구애받지 않고 움직였다.
사성그룹인 것도 있지만, 강지영을 포함한 황금세대 전원을 섭외했기 때문에 비용면으로 따져도 무지막지하게 이득이라는 것을 알아서였다.
강지영의 몸값은 엄청나다.
작품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재 이 인기 상승세를 이용해 잘 계약하면 천억대 계약까지 가능하다는 게 업계에서 나도는 얘기였다. CF야 100억을 조금 넘기겠지만, 아예 작품을 하나 통으로 계약하면 그 정도는 나올 거라는 계산이 있었다.
천억?
에이! 하겠지만 할리우드 작품 보면 그 정도 계약이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거기에 지금 한없이 올라가 있는 인기 때문에 잘만 하면 충분히 그 정도 계약이 가능할 거라고들 했다. 그러니 그걸 생각하면 이번에 사성에서 대회에 들이는 모든 비용은, 그저 우스울 따름이었다.
사성의 승리.
강지영 쟁탈전의 승리는 대대적으로 사성의 승리로 돌아갔다고 내외신이 앞다투어 기사화했다. 알아주는 명품 브랜드와 자동차 브랜드를 제치고, 황금세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획 한 방으로 전원 섭외를 해버린 신의 한 수라는 평가가 잇따랐다.
물론 다른 브랜드는 지영을 온전히 잡아서 올린 게 아니니 반쪽짜리 섭외라고 했다. 그리고 그게 맞긴 맞았다. 지영은 분명 이벤트 매치에 나서지만, 그게 지영이 단독으로 움직이는 CF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반쪽의 승리라고 했다.
사성은 쿨하게 인정했다. 대신 비록 절반이지만, 그를 차지했단 말로 비난과 조롱을 당당하게 받아쳤다. 이는 아직 강지영 섭외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설전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아주 빠르게 대회 준비가 시작됐다.
사성은 몇 단계에 걸쳐 외주를 줬다.
참가 신청부터 분류, 경기 진행까지 도맡는 외주와 경기장 전체를 관리하고, 시합장을 만들고 무대를 세팅하는 외주 등등, 철저하게 단계별로 쪼개 외주를 줬다. 인력이 부족하단 소리 따위는 절대로 나오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이틀 뒤부터, 사성의 홈페이지에서 링크를 타고 넘어간 사이트를 통해 온, 오프라인 신청이 시작됐다. 참가 자격은 ‘선수 등록’의 여부에 걸려 있었다. 선수 등록이 되어 있는 선수와 선수 등록이 되었었던 선수들은 모두 참가 자격을 얻었다. 선수 등록을 넣은 건, 아마추어를 걸러내기 위해서였다.
신청자가 파도처럼 밀어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아직 몸 성한 은퇴 선수들 채반이 신청서를 넣었다. 그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천만 원이었다. 무려 천만 원. 백만 원도 아니고, 무려 천만 원. 적은 금액이 절대 아니었다. 우승자 천, 준우승자 삼백, 3위 입상자 2인은 백만 원씩. 이 상금이 선수를 모았다.
게다가 이벤트 대회지만, 당당하게 중계까지 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인기도가 정말 높았다.
때아닌 유행이 되어, 그래도 한국에서 나름대로 유도 좀 했다 하는 은퇴한 선수들은 태반이 참가 신청을 넣었다.
연말은, 오직 유도 대회 얘기였다.
유도에 정말 관심이 없던 일반인도, 강지영에게는 관심이 있어 찾아보게 되는 상황이라 검색 포털 인기 검색어 순위에서 강지영과 황금세대 사성 유도 대회, 유도, 등등의 단어는 내려가지를 않았다. 그렇게 유도에 관한 관심이 다시금 폭발하기 시작하자, 욕을 먹는 곳이 있었다.
대한유도협회.
언제나 똥볼만 쳐대는 유도협회는, 다시 또 언론의 집중포화를 처맞기 시작했다.
* * *
쯔쯔.
올라온 기사를 보면서 이성진이 혀를 찼다.
“그러게 같이하지, 왜 한 번 뻐겨서는. 쯔쯔.”
“협회 몰라? 거기도 공무원들 많아서 귀찮은 건 질색하잖아.”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생각이 없을까?”
“없지. 아니, 생각 자체를 하기 싫어할걸.”
임효중의 대답에 이성진은 씁쓸한 얼굴이 됐다. 그 대화를 듣는 지영의 표정도 비슷했다. 협회는 정말이지…… 너무 멍청했다.
지금 한국을 들썩이게 하는 사성 유도 대회, 가제 ‘더 챌린저’의 인기는 정말 엄청났다. 마치 옛날에 한국을 들었다 놨다 했던 프로듀스 101처럼 흥미가 바짝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협회는 다시금 사성에 슬그머니 연락을 넣었다.
대회 준비를 해주겠다.
뭐 그런 얘기였다. 즉, 발을 걸치겠다는 뜻이었는데 한 번 까였던 사성이, 그걸 들어줄 리가 없었다. 지영의 앞에서나 그렇게 저 자세였던 박정완 팀장은 협회의 고위 간부가 직접 찾아갔는데, 아예 문전박대 해버렸다. 그는 아예 내려가지도 않았다. 나름 협회의 고위 간부였는데, 팀장급에서 까버린 거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유도협회의 60대 고위 간부와 사성그룹의 30대 팀장.
과연 누가 높을까?
직급 자체야 간부가 높겠지만, 사회적인 모든 것을 고려하면 사성그룹 팀장이 압도적이었다. 이 일화는 아예 공개적으로 사성에서 봐주는 언론을 통해 그대로 흘러나갔다. 그리고 이게 흘러나갔을 때 욕을 먹는 건 유도협회였다.
좋은 일이었다.
지들은 대회를 열어봐야 집구석 서랍장에 처박히는 메달과 상장만 겨우 주면서, 1위 상금이 무려 천만 원인 대회를 열겠다는 사성에게 협조는커녕 귀찮다고 난색 해놓고 이제야 발등에 불 떨어진 것처럼 숟가락을 얹으려고 하는 꼬락서니를 보이니, 좋은 시선으로 봐줄 수가 없었다.
“전화 엄청나게 오지?”
강한결의 질문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영은 지금 아예 폰을 꺼놨다. 협회에서 지영의 번호를 알아내는 거야 일도 아니어서, 이번 건이 터진 이후 거의 5분마다 한 번씩 폰이 울렸다. 번호도 돌아가면서 아주 다양하게 걸어왔다.
지영은 그걸 받지 않았다. 아니, 받지 않는 정도를 넘어 그냥 꺼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안타깝기도 안타깝지만, 협회는 한 번 싹 뒤집혀야 했다.
지영은 회귀 직후부터 협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처음엔 돈으로 회장이 된 양반도 문제였지만, 지영은 협회 자체의 문제도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날아가 봐야 회장을 포함한 인사 몇 명이 전부고, 그 내부는 고스란히 남아 그대로 일을 이어받아서 한다.
회장이 날아간다고 뭔 조선 시대 숙청처럼 관련자들 전원의 목을 치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실무를 해줘야 하니, 웬만해서는 전부 살아남는다. 그리고 지영은 그들도 문제라고 봤다. 이미 그들은 또 그들끼리의 카르텔을 만들어서 내부를 장악해 놓은 상태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능력 좋은 임은진과 이선영은 이번 기획의 중간선에서 차단한 게 기존 카르텔의 짓임을 알아냈다.
즉, 회장 선까지 보고는 가지만 이미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쪽으로 다분하게 기울어 있는 보고를 올리는 거다. 이미 그들은 그 정도의 능력이 있었다.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실무직원이다. 쳐 내봐야 자신만 속 좁은 인간이 된다. 보통 그걸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 앉은 양반들은 그런 결정을 내리는 걸 체면 상하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 카르텔은 여전히 공고했다. 그걸 지영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얘기는 친구들도 알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솔직히 말해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여기서 정치적인 발언을 해버리면, 문제는 진짜 급격하게 커질 게 분명했다. 그리고 사실 솔직히 말하면 그것도 귀찮았다.
‘2년 남았으니까…….’
이번 년 세계 선수권과 올림픽, 그리고 내년의 아시안 게임이 마지막이다. 아집과 고집으로 뭉친 집단과는 정말 그땐 안녕이다.
“한결아, 우린 지금처럼 계속?”
“응. 철저하게 중립. 아무런 말도 하지 마. SNS에 올리는 것도 안 돼. 우린 그냥 지금처럼 운동만 하면 돼. 나머지는 그럼,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정리해 줄 거야.”
“가만 보면, 너도 좀 무섭다?”
“뭘 이 정도로.”
강한결은 역시 냉정할 땐 냉정한 친구였다.
지금 강한결이 내린 선택은, 협회만 오지게 욕먹도록 그냥 내버려 두자는 뜻이었다. 도움을 주지도 않을 거지만, 거기에 기름을 끼얹지도 않겠다, 이런 포지션으로 비난에서 완전히 멀어지겠단 뜻이기도 했다.
그렇게 협회는,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25년 새해가 밝았다. 지영의 이번 새해는 작년과는 그래도 좀 달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항상 어머니와 둘이서 보내던 새해였다.
하지만 오늘은?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새해 휴가를 받아, 충주 집에서 일주일간 있다가 가겠다고 선포한 양유진이 그 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그런 선택을 내린 이유 중의 하나가 그녀도 새해를 같이 보내던 동생 양지원이 전지훈련을 가 시간을 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혼자 있어야 하는 양유진을 어머니가 불러들였고, 그녀는 휴가를 쓸 수 있는 만큼 써서 곧장 충주로 내려왔다. 예전엔 그렇게 내려와도 집에만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어머니는 충주에서는 유명인이셨다.
충주사람치고 강지영의 어머니가 시장에서 채소 파는 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얼굴이 많이 팔리셨다. 그런 어머니가 양유진과 함께 돌아다니면? 당연히 누구냐는 얘기가 나올 거고 그럼 대답이 매우 궁색해진다. 그걸 막기 위해 거의 집에만 있었다. 가끔 꽁꽁 싸매고 장을 보러 다니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거의 집에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지영이 공개 연애를 시작한 이후, 그런 제약이 모두 사라졌다. 그래서 시장이며 마트며, 식당이며 거침없이 같이 팔짱을 끼고 돌아다녔다.
지영은 묵묵히 그 뒤에서 수행비서도 아닌, 짐꾼 노릇을 했다.
두 사람이 함께 나가면 자신의 임무가 그것밖에 없음을 지영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영은 별로 불만도 없었다.
어머니도 그렇고, 양유진도 그렇고. 세상 행복한 표정이어서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지영에겐 보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본인이 치유받고 있어서였다.
그렇게 새해가 후루룩, 지나갔다.
1월 첫 주가 지나고, 공문이 떨어졌다.
입촌 공문이었다.
휴가는 끝.
이제는 다시 선수로 돌아갈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