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89화
289화. 유도 챌린지(2)
단순히 그냥 이벤트 대회로 남아서도 곤란하다. 유도의 흥행을 위해서는, 이런 대회가 자리를 잡아주는 게 좋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하다못해 씨름대회도 상금이 있는데…….’
송아지. 차량 등등.
분명 그런데 유도는 생활 체육대회 정도 가야 끽해야 1등 상금 몇십만 원 정도가 끝이었다. 오히려 큰 대회는 그냥 옜다 명예, 하고 끝이다. 명예는 그 순간은 좋지만, 생활을 이어줄 수는 없었다. 아, 경력에 추가는 되겠다. 그런다고 쳐도 이걸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불합리하기 그지없었다.
돈이 안 되는 스포츠.
국가대표가 될 게 아니라면, 선수 생활을 할 게 아니라면, 아니면 지도자의 길을 걸을 게 아니라면 빨리 때려치우는 게 조금이라도 인생에 이득이 되는 게 바로 작금의 유도 같은, 이런 스포츠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우리가 안 나가면 화제성이 확실히 죽잖아. 사성은 애초에 우리의 참가를 염두에 두고 이 대회를 기획한 것 같은데.”
“그러니까, 흠. 곤란하네.”
마케팅 측면에서 황금세대가 출전해 주지 않으면 사실 사성 측은 이런 대회를 굳이 기획할 필요도 없었다. 앙금 없는 찐빵 정도를 떠나서, 의미 자체가 없을 수도 있었다. 이건 마케팅을 잘 모르는 지영도 금방 알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런데 그런 마케팅의 필수 전략인 황금세대가 나가면, 대회 자체의 흥미도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따로 방법이 필요했다.
“음, 이벤트성으로 참가하는 건 어때요?”
“이벤트?”
양지원의 말에 지영은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뭔가 방법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피겨는 갈라쇼 같은 게 있잖아요. 연아 언니도 매해 선수들을 초청해 쇼를 개최하기도 하고.”
“음, 그렇지?”
“그렇게 이벤트 대회를 편성하는 거죠. 오빠들이랑 국대 선수들이랑 대회 입상자들이랑.”
“오…….”
지영은 양지원이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았다.
즉, 우승자와 입상자가 다시 도전자가 되는 거다. 그들이 도전하는 건 황금세대를 포함한 국가대표들이었다. 그럼 황금세대도 경기에 나가고, 기존의 대회는 대회대로 치를 수 있으니 나쁘지 않았다. 문제가 되는 건 시간이었다. 이벤트 대회를 또 여는 거니, 적어도 하루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중요한 건 사성이 이 생각을 받아들이냐, 아니냐겠네?”
“그렇지. 단순 마케팅의 일한으로 대회만 준비해 주고 말 생각일 수도 있으니까.”
심지어 단발성 대회로 끝날 가능성도 컸다.
정말 예상치도 않게 생긴 기회였다. 사성이야 자신들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생각에 낸 기획이겠지만, 지영은 이 자체가 유도계의 큰 기회임을 직감했다.
“참, 이 일 협회도 알겠지?”
“연락 안 온 거 보면 글쎄? 잘 모르겠네?”
“설마.”
강한결이 설마, 모를까. 했는데, 진짜 몰랐다.
지영은 강한결과 함께 이 일을 곧장 추진했다. 새해를 보내고, 1월 중순이면 다시 입촌해야 해서 길게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사성 측에 답신을 넣어 미팅을 잡자는 말을 하기 무섭게 대답이 돌아왔다.
다음 날, 지영은 친구들과 함께 사성 측 관계자들을 만났다.
사성은 이번 마케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팀 전체가 움직였다.
“안녕하세요. 이번 기획을 맡은 박정완 팀장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호호, 영광은요. 안녕하세요. 장세리예요. 앉으세요.”
“네.”
팀장급부터 그 아래로 줄줄이 왔다.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집단에서 나온 이들답게, 이지가 맑아 보였다. 시작은 간단한 PPT였다. 전문가의 깔끔한 기획이다. 당연히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확실히 사성은 지영을 비롯한 황금세대를 이용한 마케팅이 주목적이었다.
그런데 지영은 절대 움직이지 않으니, 차안으로 생각해 낸 게 바로 지금의 대회였다.
이 기회안을 낸 직원은 지영이 요전에 마스터즈에서 우승을 했음에도 상금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저 메달과 랭킹 점수만 주어지는 게 전부였다. 테니스도, 골프도, 하다못해 인프라가 적은 씨름도 우승 상금이 있는데 유도는 세계대회로 나가도 상금이 없었다.
개뿔, 뭣도 없는 명예만 톡 던져 주고 끝이다.
물론 그 명예가 전부인 사람도 있다.
‘올림픽만 해도 실질적으로는 명예가 거의 전부지.’
한국도 메달 상금이 있긴 하다.
각, 종목마다 다르지만, 분명 없지는 않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교하면 진짜…… 짜도 짜도 너무 짠 게 한국 선수들이 받는 상금이었다. 그런데도 올림픽에 목을 매는 건 올림픽 출전과 입상이 주는 명예 때문이었다. 이 명예 때문에 지금도 수천, 수만의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 매일같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명예에다가, 상금까지 더해지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을 사성의 마케팅팀의 누군가가 했다는 점이었다. 그는 지영의 팬이라 대회를 다 챙겨봤고, 우승상금이 없어서 안타까워했으며, 결국 이 기획을 만들어냈다.
본업과 팬심이 합쳐지면서 어쩌다 보니…… 지금의 기획이 탄생한 것이다.
“여기, 장민아 대리가 지영 선수 팬이라서, 이번 기획이 탄생했습니다. 하하.”
팀장은 솔직하게 이 기획이 지영의 팬인 장민아 대리의 작품이라는 걸 말해줬다. 지영의 시선에 장민아 대리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갛게 익었다. 지영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고마웠다. 애증이든 애정이든 자신은 유도인이었고, 이런 대회를 기획해 준 건 정말 감사하고 고마웠다.
그래서 지영은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모든 팬서비스를 해줄 생각이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이번 기획의 핵심은 역시 황금세대입니다. 여러분들의 대회 출전이 확정되지 않으면 대회 자체가 화제성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 부분은 여러분들의 확답이 있어야…….”
팀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끝맺자, 강한결이 나섰다.
“이해합니다. 그런데 저희가 나서면 대회가 재미가 없어질 거예요. 자랑은 아니지만, 일반 선수들과 저희, 일반 선수들과 국대 선수들의 기량 차이는 매우 현격해요. 스포츠의 재미 중 하나가 누가 이길지 모른다는 점입니다. 그게 포인트죠. 승패가 이미 갈려 있는 경기는 흥미를 유발하지 못할 겁니다.”
아…….
급하게 만들어진 기획이었다.
말을 들어보면 마스터즈 대회가 끝난 직후부터니, 한국에 돌아온 지 5일째인 지금을 생각하면 진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진행된 기획일 거다. 그러니 구멍이 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팀장을 비롯한 사성 관계자들은 강한결의 말에 반론을 달지 않았다. 그들도 승패가 결정된 스포츠는 재미가 없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제 강한결의 연인께서 방법을 알려주고 갔다.
“그래서 이건 저희가 따로 생각한 건데, 이벤트 매치를 만들면 어떨까 싶습니다.”
“네? 이벤트 매치요?”
“대회 입상자와 국가대표들의 이벤트 매치요. 간단하게 예를 들면 한국랭킹 4위까지, 대회 입상한 금은동 선수 넷과 경기를 벌이는 겁니다. 당연히 저희도 나가고요. 대신 이벤트 매치니 기존 상금은 다 나가야 합니다.”
“아!”
강한결의 말에 팀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대신 하루 정도 더 대회 시간을 빼야 할 겁니다. 전 체급 이벤트 매치니, 제법 시간이 잡아먹히거든요.”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다른 체급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나서줘야 하는데, 과연 나서줄까요?”
“그걸 설득하는 건 사성의 몫이겠죠? 그런데 선수들도 적당한 상금이면, 움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안 그래도 슬쩍 물어봤는데, 매우 긍정적이었어요.”
“아, 그렇다면…….”
“그리고 한두 명 안 뛴다고 매치가 무산될 일은 없죠. 그 체급에 선수는 그들 빼고도 많으니까요. 은퇴한 레전드 선수들도 계시고.”
유도 자체에 흥미가 생긴 요즘, 옛 레전드들도 방송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선수들도 이벤트 매치에 나가면, 제법 그림이 나오고도 남았다. 현역 선수도 다 나오는 대회를 만들지만, 적어도 나오면 안 되는 선수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이우진 같은 선수다.
성장하고, 또 성장해 지영의 뒷덜미를 잡아챌 수 있는 위치까지 온 이우진이다. 이런 이우진도 대회에 나가면, 여지없이 우승할 테니 이것도 그리 재미가 있는 그림은 아니었다. 이러니 적어도 현역 중에 국대급 선수들은 대회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건 사성의 일이지.’
지영이 고민할 일은 아니었다.
“참, 그런데 이번 기획은 유도협회랑 얘기가 된 건가요? 기사도 나갔는데 너무 조용해서요.”
장세리의 질문에 박정완 팀장이 슬쩍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은, 비웃음에 가까웠다.
“매우 난감해하던데요?”
“네?”
“없던 대회를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게 싫은 눈치였습니다.”
“아……. 허!”
장세리는 어이가 없는지 탄식을 흘렸고, 지영은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참으로 진짜, 협회답다. 이건 기회였다. 현재 황금세대로 인해 불어온 바람을 이용해 더 멀리 유도란 종목을 내보낼 수 있는, 정말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협회는 그게 귀찮은 거다.
없던 대회를 만들면? 그 대회 참가 신청부터 모든 걸 협회가 받아야 한다. 대회 장소를 정해야 하고, 스케줄을 또 짜야 한다. 당연히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그게 귀찮았던 거다. 보통 어느 종목이고 국내 대회 스케줄은 이미 한 해가 시작되기 전에 전부 정해놓고 시작하는 법이었고, 이미 협회는 내년 계획을 전부 짜놓은 상태였다.
거기에 갑자기 사성 배 유도 대회가 생기는 게 탐탁지 않았던 거다.
“진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대단하다니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이성진의 조용한 중얼거림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지영도 동감했다. 공무원들 특유의 고질병은 운동협회에도 버젓이 자리 잡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저희가 누굽니까. 사성입니다.”
그런데 박창완 팀장은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가 한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사성그룹이다.
“참가 신청부터 시작해, 대회 진행까지, 그 정도는 전부 외주 주면 됩니다.”
“아…….”
그러니까, 돈 지랄을 하시겠다는 거다.
“돈이 많이 들지 않을까요?”
장세리가 그렇게 묻자, 박정완 팀장을 비롯한 사성 기획팀의 시선이 지영과 친구들에게 향했다.
“여기, 지영 선수 몸값 자체만 따져보면 이제는 천억도 넘을 거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계산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거절했고, 이번 프랑스에서 레나 파벨로 양과의 만남으로 몸값이 다시 껑충 뛰었죠. 그런 지영 선수를 섭외해, 비록 이벤트 매치지만 함께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대놓고 CF의 효과 정도는 못 보겠지만 그래도 감히 상상하기 힘든 효과가 나올 겁니다. 그러니 외주 고용 비용과 경기 진행, 대관, 중계 비용 등은 솔직히 껌값이나 마찬가집니다.”
“아하. 그런데 중계요?”
“MBS와 tvM 측과 경기 당일 중계를 두고 협의 중입니다. 두 곳 다, 매우 긍정적입니다. 일단 황금세대가 나오니까요. 하하.”
“아, 그렇겠네요.”
“저희는 이걸, 한 달간 이끌어갈 생각도 있습니다.”
“네? 한 달이나요??”
다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박정완 팀장은 씩 웃으며, 다른 UBS를 꺼내 PPT를 이어갔다. 요는 이랬다. 대회는 주말만 치르는 거다. 7체급이니까 남자부 여자부 한 체급씩 올림픽처럼 말이다. 아마 참가 인원이 많아질 테니 남녀 한 체급만으로도 충분히 중계 시간이 나올 거고.
“그렇게 한 주에 남녀 한 체급씩 하면 총 7주입니다. 사실 저희도 왕중왕전, 이런 걸 생각하긴 했습니다. 하하. 유도의 무제한급? 그런 대회를 치르는 거죠.”
“아! 그거 좋은데요?”
이른바 통합 우승 같은 거다.
유도는 체급 경기라 당연히 위로 올라갈수록 유리한 건 맞다. 하지만 무조건 헤비급이 이긴다? 그건 절대로 아니었다. 헤비급이 경량급보다 유리한 건 맞지만, 그게 무조건 헤비급이 이긴다는 말을 하긴 당연히 무리였다.
몇 번 안 되는 무제한 단체전에서, 지영은 졌던 적이 참고로 한 번도 없었다. -90, –100 선수들과도 붙어 이겼던 지영이었다. 이성진도 그랬고, 임효중이나 강한결도 헤비급을 상대로 패한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건 니들이 잘해 그렇고! 라고 한다면 할 말 없겠지만 다른 무제한 경기에서도 경, 중량급이 헤비급을 잡는 건 정말 심심치 않게 나왔다.
그러니 무제한, 왕중왕전도 나쁘지 않은 기획이었다.
“총 8일! 주로 따지면 4주간의 여정을 치른 끝에 마지막 2일은 올림픽 구장 같은 곳에서 대규모 이벤트 매치를 여는 걸로 대미를 장식! 어떻습니까?”
“……정말 쇼네요?”
“네, 스포츠는 원래 쇼 아니겠습니까? 하하!”
본질을 잘 꿰뚫고 있었다.
강한결을 비롯한 친구들이 지영을 바라봤다. 눈빛이 반짝이는 게, 정말 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지영도 하고 싶었다.
협회가 미적지근하니, 더더욱 하고 싶어졌다. 그런 마음에 지영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 사성의 기획팀이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