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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14화 (214/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14화

214화. 가노컵(8)

냉정함.

스포츠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다.

그 어떤 노력도, 그 어떤 다짐도, 반드시 이기겠다는 필승의 의지도, 결국에는 실력 그 이상을 할 수 있게 해주진 못했다.

본래 실력이 10이라면, 노력이나 다짐, 의지가 12까지는 하게 해줘도 그 이상은 불가능했다.

너무나 냉정한 세계.

이런 냉정한 세계에는 심지어, 자연 생태계처럼 천적도 존재했다.

특히 유도는 그런 천적 관계가 더욱 심했다.

이는 선수들이 흔히 상대성이라고 부르는 건데, 선수마다 이 상대성에 따라 강하고 약하고가 확 느껴졌다.

상대성은 보통, 스타일에 따라 갈렸다.

정수원의 스타일은, 타카토 나오히사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정수원에게 전승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번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승자 선언 뒤, 고개를 푹 숙이고 악수하는 정수원은 이번 대회를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아니, 단순히 열심히 했다는 말론 부족했다. 고작 10일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정수원은 정말 자는 시간까지 쪼개서 준비하고, 또 준비했다.

타카토 나오히사와 붙을 경우를 대비해 지영도 당연히 그를 분석해 줬다.

사실, 이길 가능성은 아무리 봐도 높지 않았다.

두 선수가 맞붙는 경기를 아무리 돌려봐도, 승률은 나오히사가 훨씬 높았다. 애초에 나오히사의 실력이 더 월등하기도 했지만, 말했듯이 상대성에서 나오히사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지영은 정수원에게 타이밍을 노리는 발기술이 어떻겠냐고 했었다. 정수원은 알았다고 했고, 짧은 시간이지만 늦게까지 그 타이밍을 노려 모두걸기를 쓰는 걸 연습했다.

그러나 오늘, 나오히사는 그 타이밍 자체를 주지 않았다.

“하아, 노림수 걸렸네.”

“그치?”

“응.”

지영의 말에 다들 안타까운 표정이 됐다.

정수원은 모두걸기를 노렸다. 모두걸기와 연결해서 거는 기술까지가 이번 승부의 포인트였다. 그러나 나오히사는 마치 알고 있던 것 같았다. 거리를 주지 않고 잡기를 하더니 역으로 발기술로 정수원의 중심을 한 번에 무너뜨렸다. 그러곤 급히 중심을 다잡는 정수원에게 쫓아 돌아오며 역으로 말아업어치기를 걸었고, 그대로 한 바퀴를 날려버렸다.

제대로 당했다.

지영이 봤을 때도 여지가 없는 한판이었다.

밖으로 나온 정수원은 이전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왔다. 그러곤 이번에도 그냥 지나치나 했는데, 지영을 향해 잠깐 멈춰 섰다.

“……미안하다.”

“네. 네?”

어? 뭐? 미안하다고?

지영이 놀란 눈으로 보는 순간, 정수원은 다시 몸을 돌려 경기장을 벗어났다. 아직 패자전이 남아서 도복을 갈아입은 건 아닐 거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미안하다고 했다. 아니, 왜?

대체 뭐가?

뭐가 미안해서?

설마 시합에 져서?

아니, 미안한 게 있다고 치자.

근데 그걸 왜 자기한테?

하지만 그것보다 더 놀랐던 건, 짧은 순간 지영이 포착한 물방울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니 그래, 땀일 수도 있었다. 아니, 땀일 거다.

‘땀이겠지. 설마 수원 선배가…….’

그 츤수원 선배가 울음을?

말도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쉽게 받아들이긴 힘들었다. 그래도 그게 그냥 땀방울이라고 해도, 정수원의 행동은 지영의 심장과 정신을 서서히 자극하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은 있었지만, 그래도 평온했다.

정수원의 마음이 이해됐다.

아마 멋지게 이겨서, 지영을 괴롭히는 일본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이고 싶었을 거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거다. 개인의 복수도 하고, 지영의 복수도 하고, 그러고 싶었을 거다. 그러나 실패했다. 정수원은 결국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벽을 넘지 못해, 오히려 지영에게 미안하다 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미안해할 게 아닌데도 말이다.

후우.

지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참 심적으로 안정이 되질 않았다. 고맙고, 미안하기도 했다. 같은 대표팀 선배들에겐 특히 더욱 미안했다. 오늘 선배들의 시합을 보면, 특히 여자부 선배 두 사람은 감량에는 성공했어도 컨디션 관리에는 실패해 정말 힘든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도 그 컨디션으로 준결승까지 꾸역꾸역 올라갔다.

정수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정상 컨디션은 아니었다. 경량급인 이상 감량은 피할 수 없어서, 정수원도 적어도 7㎏ 이상을 빼고 시합에 나왔다. 그러니 분명 정상 컨디션이 아닌데도 최선을 다해 준결승까지 왔다. 이것만 봐도 솔직히 박수받아 마땅했다.

그런데……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솔직히 그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아까, 정수원의 경기 전에 시합을 뛰던 선수들이 떠올랐다. 아니, 대체 왜? 지영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다시 천천히 내리눌렀다.

잠시 후면 자신의 시합이고, 흥분한 상태로는 이길 시합도 질 수 있어서였다.

66 패자전이 시작됐다.

66 패자전. 저 끝에 이성진과 한바탕 붙을 거라 예상을 했던 마루야마 조시로가 있었다. 마루야마 조시로는 패자전으로 들어갔다. 이성진의 건너편 시드에서 제대로 일격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실력으로는 확실하게 앞섰는데. 막판에 거드름을 피우다가 진짜 제대로 날아갔다.

너무 제대로 등판부터 뚝 떨어져서, 심판이 도와주고 싶어도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는, 진짜 완벽한 한판이었다.

그래서 그는 패자전으로 떨어졌다.

아베 히후미와는 다른 성향의 저돌적인 탱크 스타일의 조시로는, 이번에도 그 스타일을 고집했다.

지영은 그런 조시로의 경기를 자세히 살폈다.

패자전이니 괜찮은 거 아니냐고? 아니었다. 이성진이 만약 준결승전에서 지고, 조시로가 패자결승까지 올라가면 둘의 매치가 성사된다. 그러니 아직 안심할 수는 없었다.

탱크.

이성진과는 완전히 다른 체격이다.

신장이 크고 팔다리가 긴 게 이성진이라면, 조시로는 완전히 반대였다. 160 중반대로 보이는 신장에, 팔다리가 짧고 두꺼웠다. 이런 체형은 당연히 힘이 장사일 거란 예상이 가능하고, 그 예상대로 조시로는 힘이 장사였다.

상대의 정면을 막고, 앞으로 밀면서 압박을 가하면서 반칙을 유도하고, 이어서 기술로 끝을 보는. 딱 그런 스타일이다. 힘 유도라고 기술이 없을 거로 생각하는데 사실 이런 메이저 대회에 나오는 선수들은 이미 기술적으로는 전부 완성이 됐다고 봐야 했다.

다만 기술보다 체력을 바탕으로 운영을 선호하거나, 아니면 둘을 섞거나, 아니면 지영처럼 상대에 따라 다르게 대처하거나, 그런 스타일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쿠웅!

와자리!

와아아!

우와아아!

조시로! 조시로!

일본 관중들이 조시로가 업어치기로 절반을 따자 뭔 금메달을 딴 것처럼 이름을 연호했다. 연장전에서 나온 절반이라, 조시로의 승리니 당연히 그럴 만도 했다. 잠시 뒤, 이성진이 들어갔다.

이성진 파이팅!

우우! 우우우우!

관중석 한쪽의 교포분들이 이성진을 응원하자, 대번에 야유소리가 나왔다. 응원도 경기의 일부분이라 생각하면 이 정도 야유에는 흔들려서는 안 됐다. 다행히 이성진의 표정은 단단했다. 멘탈 부분은 황금세대 중에서 가장 약한 편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에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이성진의 앞으로 상대가 들어왔다.

샤밀로프 야곱.

러시아 선수였다.

세계랭킹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였다. 여태껏 이성진이 만나본 적이 없는, 확실한 강자와의 한판 승부였다.

“이성진 파이팅!”

그래서 지영이 크게 응원하자, 이성진은 고개를 돌려 지영을 보곤 씩 웃었다. 그 웃음엔 걱정하지 말라는 기색이 가득 담겨 있어서 지영도 미소로 화답했다. 하지만 그렇게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다.

샤밀로프는 잘하는 선수였다.

러시아 선수 특유의, 아니, 유럽 선수 특유의 힘 유도 베이스인데, 좀 전에 보았던 마루야마 조시로보다도 월등히 센 힘을 가진 장사였다. 그런 샤밀로프의 특기는 뽑아 매치기였다. 여기서 매치기라고 한 건, 업어치기도 서서 뽑고, 허리기술도 허리채기 같은 뽑아 던지는 기술을 선호했다.

그리고 방어도 마찬가지였다.

어설프게 기술을 걸었다간 허리를 잡혀 그대로 뽑힌다. 한 번 제대로 잡히면 아무리 앞으로 엎드려도 그냥 힘으로 뽑아서 홱! 감아쳐 버리니 제대로 거는 게 아니라면 어설픈 기술도 금지였다.

이런 스타일 자체는 힘이 무지막지하지 않은 이상은, 불가능한 시합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정말 조심해야 했다.

사실 이번 판이 마루야마 조시로와 결승에서 맞붙기 전 가장 큰 고비라고 생각했던 이성진이었다.

비록 마루야마 조시로는 떨어졌지만, 경계하던 샤밀로프 야곱은 결국 준결승까지 올라왔다.

그런 둘의 시합이 하지메! 소리에 맞춰 시작됐다.

심판은 일본 주심.

하지만 그나마 정상적으로 심판을 보던 주심이어서 지영은 좀 안심할 수 있었다. 시합이 시작됐다. 악! 크게 기합을 지르고 전진하는 이성진. 야곱은 어깨를 완전히 안으로 좁히고, 천천히 이성진을 향해 다가왔다.

신장 차이로 인해 잡기 자체는 이성진이 유리했다.

하지만 잡기를 유지하는 건, 샤밀로프가 유리했다. 힘이 좋으니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그냥 뜯어내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게 계속 이어지면 다시 반대로 이성진에게 유리하다.

맛테!

시도!

네 번째 샤밀로프가 도복을 뜯어냈을 때 주심은 역시 그쳐를 선언한 뒤 바로 지도를 줬다. 다행히 이성진에게는 들어오지 않았다. 아주 지극히, 정상적인 판정. 그에 지영은 안도했다. 다시 시합이 재개됐다.

시합이 진행되는 걸 보며 지영은 샤밀로프가 뭘 노리고, 뭘 조심하는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업어치기 자세는 절대 안 주겠다는 거네.’

이성진의 업어치기는 이미 정평이 났다.

그가 아시아 선수권에서 보여준 것만 봐도 충분히 경계할 만했다. 그리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도 세 게임 중 두 게임을 업어치기 한판으로 돌려세웠다. 그러니 바보가 아니라면 당연히 업어치기를 가장 조심할 것이다.

지극히 정상인 대응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대응에 막혔다면, 애초에 이성진은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었을 거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을 갖췄다는 건, 상대가 업어치기 각을 주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도 그걸 무너뜨리거나 파고들어 기술을 걸 수 있는 실력이 있다는 뜻이다. 그도 아니면 업어치기만 막는 상대를 다른 기술로 던질 실력이 있다는 뜻이거나.

이성진은?

둘 다였다.

툭.

소매를 뿌리치려는 상대를 가볍게 따라 들어가며 길쭉한 다리로 그대로 안다리를 걸었다. 정말 툭 이었다. 따라 들어가 앉으면서 툭. 딱 그 정도로만 걸었지만 팔을 뿌리치려는 본인의 힘에 걸려, 샤밀로프의 중심이 무너졌다.

이성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허리를 와락 끌어안듯 중심이 무너진 샤밀로프에게 전진, 그대로 뒤로 밀면서 같이 넘어갔다.

쿵!

갑작스럽게 덮쳐온 이성진에게서 샤밀로프는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그대로 안아 돌리기에는 이성진의 중심이 워낙 앞으로 쏠려 있었고,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았기 때문에 뽑기를 포기했는데 그 결과는, 오히려 자신이 밀려서 뒤로 넘어가는 결과를 낳았다.

이성진은 심판을 바라보지도 않고, 곧장 굳히기로 연결했다.

“아냐! 성진아! 굳히기 하지 마!”

와자리!

전기정 감독의 외침과 심판의 점수가 동시에 나왔다. 그리고 이성진은 전기정 감독의 코칭을 들었는지 번개처럼 손을 놓고 일어났다. 지영은 잘했다고 생각했다. 워낙 힘이 좋은 상대라 재수 없으면 누르기를 해놓고도 뒤집혀 역으로 눌릴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니 차라리 지금처럼 굳히기는 아예 하지도 않는 게 좋았다.

시간을 끌기 딱 좋은 굳히기를 포기하는 건 아깝지만, 역으로 눌려서 지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남은 시간 3분.

아직 안심할 시간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좀 더 여유 있게 플레이해도 충분한데…….

샤밀로프는 대번에 태세를 전환해 매우 공격적으로 나왔다.

마치, 흥분한 것처럼.

그런 상대를 넘기는 것처럼 쉬운 것도 없었다.

쿠웅!

“으아!”

달려드는 상대를 소매 끝만 잡아 말아서 업어치기, 그리고 그걸로 그대로 한판을 따낸 이성진이 짧게 포효를 내질렀다. 훌륭히 결승까지 올라간 친구. 지영은 그런 친구에게 진심을 담아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잠시 뒤.

지영의 차례가 됐다.

지영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상대를 바라봤다.

대한민국 국민에겐, 아주 익숙한 국기가 박힌 도복이다.

파란 줄 두 개, 빨간 줄이 중간에 하나.

그리고 그 빨간 줄 왼쪽에 별이 하나 박혀 있는 국기다.

인공기.

북한의 리선호.

지영의 준결승 상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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