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05화
205화. 나의 무사님(19)
몇 번째더라?
한 여섯? 아니, 일곱이 넘었던가?
후우, 숨을 몰아쉬면서 지영은 손에 들고 있던 칼을 툭 던졌다. 지영은 많이 참았다. 정은정 작가와 얘기하고 밖으로 나온 이상익 감독과 잘 풀었는지 알았다. 나오자마자 먼저 예민하게 굴어 미안하네. 이렇게 말해서, 저도 죄송합니다. 하고 깊게 허리까지 숙였다.
그래서 잘 풀렸는지 알았다.
하지만 그건, 지영의 완전한 착각이었다.
이미 삔또가 나간 이상익 감독이 지영의 연기에 태클을 걸기 시작한 건 정확히 이틀 뒤부터였다.
시작은 액션 신이었다.
왕주형 스쿨 관장과 김진우 부관장도 오케이 한 연기를 태클 걸기 시작하더니, 이내 몇 번씩이나 반복시켰다. 그리고 나중에 마지못해 오케이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곤 다음 신으로 넘어갔다.
본래 촬영 B팀에 있던 지영의 신도 전부 자기 앞으로 끌어다 놓더니, 사사건건, 이전에는 전부 오케이 했을 연기를, 사사건건 트집 잡아서 NG로 만들고 재촬영을 시켰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하던 스태프들도, 이제는 둘의 뭔가 있구나란 걸 딱 알 수 있을 정도로 촬영은 난리였다.
그러던 차에, 사고가 터졌다.
안 그래도 위험한 신이었다. 나무 위에서 떨어지는 신인데, 지영이 아래서 그걸 막고, 역으로 옆구리를 베는 신이었다. 처음, 두 번째까지는 그래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 하지만 지영은 그 이상 참지 않았다.
“안 해요? 강 배우.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아요?”
“네.”
지영은 툭, 던진 검을 발로 지그시 밟은 다음, 이상익 감독을 바라봤다. 현장 분위기는 싸늘하다 못해 얼어붙었다. 지영의 행동은 근 몇 년간. 아니, 최소한 여기 있는 현장 스태프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반역’을 일으켰다.
현장에서 연출권을 쥔 감독의 권한은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이 공간에서만큼은 투자자도, 제작사도, 방송국도, 작가도 한 수 접어줬다. 그게 연출. 즉, PD 혹은 감독이라 부르는 직급의 힘이다. 그런데 지영은 지금, 대놓고 그런 절대권력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것도 데뷔 2년 차의 배우가 말이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거다.
그런데 심지어 대놓고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터뜨렸다. 스태프들은 모두 놀랐지만, 함부로 수군거리거나 움직이지도 못했다. 사실상 요 며칠간 지영에게 이상익 감독이 이상할 정도로 막 대한다는 느낌을 분명히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눈치만 살살 봤다.
“강 배우님, 지금 본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요?”
“네, 확실히 알아요.”
“그걸 알면서, 그런다고요?”
“네. 안 될 이유가 있나요? 이렇게 대놓고 저를 괴롭히는데?”
“괴롭히다니요. 연기가 부족하니까 다시 찍자고 한 거지!”
낮게 으르렁거리는 이상익 감독.
그의 얼굴은 모욕받았다고 생각하는지,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이해했다. 지영의 지금 행동은 그의 권위에 도전하는, 충분히 모욕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영은 참아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며칠 전부터 이어진 이런 괴롭힘은, 지영이 제일 싫은 종류의 괴롭힘이었다.
괜한 짓에 체력을 빼는.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얼차려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짓은 이곳보다 더 힘들고 괴롭다고 하는 스포츠계에서도 요즘은 거의 사라진 악습이었다. 그런데 이걸, 연예계에서 당한다? 선수촌에서도, 그 꼬장꼬장한 인간들도 이런 얼차려는 주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들면 안 든다고 그냥 무시했지, 이렇게 얼차려를 주진 않았다.
‘군대에서도 사라진 건데, 그걸 여기서……. 하.’
지영은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었다.
납득은 힘들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참고 넘어가려고 했었다. 그래도 선만 넘지 않으면, 어차피 다음에 안 볼 인연, 참고해 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상익 감독은 선을 넘었다. 이번 신은 스턴트 신이었다.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인데, 나무 높이가 꽤 된다. 그래서 장비를 가슴에 차야 하는데 당연히 이게 꽤 압박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이런 스턴트 도구는 상당히 옛날 거여서, 배우가 뛰어내리면 뒤에서 사람들이 잡아당기는 구조였다. 그래서 가슴과 사타구니 쪽에 압박이 상당히 들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 해도 배우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거기다 그걸 염두에 두고 있었고, 새벽부터 나와 찍는 촬영이라 최대한 빨리 가려고 이미 몇 번이나 합을 맞추고, 제대로 찍었다.
‘그러고 보니 원래 이 신도 일몰 때 찍는 건데, 일출로 바꿨지…….’
덕분에 꼭두새벽에 나와서 합을 맞춰야 했던 지영이었다. 게다가 이 신은 원래 B팀이 찍는 신이다. 본래라면 이상익은 A팀이고, 현재 이연이 가 있는 스튜디오에서 스탠바이 준비를 해야 할 양반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 있다.
이게 우연일까?
‘그럴 리가 없지.’
지금 상황과 함께 생각해 보면 그냥 답이 딱 나오는 얘기였다.
“그럼 정확한 디렉팅을 말해주세요. 뭘 바꿀까요? 장면을 보여주시고, 미진한 부분을 제대로 디렉팅 해주세요. 그냥 다시, 다시. 이러지 마시고요.”
차분한 지영의 말이, 촬영장을 뒤덮었다.
사르륵, 안개처럼 퍼져 나간 말에 다들 이제는 상황을 완전히 알아차렸다. 그리고 이런 지영의 말에, 이상익 감독은 말리기 시작했다.
지영은 바보가 아니었다.
막 나가는 성격은 더더욱 아니어서,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판을 바꾸고 있었다. 그래서 막 움직이려던 임은진도 일단 가만히 지켜보는 중이었고.
“딱 봐도 합이 흩어졌잖아!”
“그래요? 그런데 왜 관장님이랑 부관장님은 보고 잘됐다고 하셨지? 이상하네요? 합을 연구해 오신 두 분은 잘 됐다고 하시는데. 합을 연습한 저나 배우님들도 잘 표현이 됐는데. 대체 어디가 마음에 안 드셨어요? 보여주세요. 딱 찍어서. 그럼 그 장면만 다시 찍으면 되잖아요?”
대놓고 자극하기 시작했다.
지영은 이런 걸 참아주는 성격이 절대로 아니었다. 여기가 만약 시합장이었다면? 시합 중이었다면? 지영은 자신에게 이런 수작을 부린 상대의 팔을 아주 합법적으로 꺾어서, 분질러버렸을 거다.
한 성깔 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럴 때는 성깔이 진짜 더러워지는 게 또 지영이었다.
위에서 뛰어내려 내려치는 걸 막는 게 첫 장면이다.
그런데 말 그대로 위에서 뛰어내리는 거다. 지영은 그걸 아래서 받고. 그럼 아무런 문제도 없을까? 아무리 소품이라지만, 그래도 단단한 쇳덩이를 내려치고, 그걸 쇳덩이로 막는 건데? 합을 맞췄다고 해도 충격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검을 막는 순간 지영은 손목이 순간 시큰거리는 걸 느꼈다. 아주 익숙한 통증이었고, 그 통증이 느껴지자마자 짜증이 팍 올라왔다. 아무리 몸을 제대로 풀었고, 위에서 검을 휘두르는 액션 배우도 최대한 힘을 뺐다지만, 그래도 쇳덩이 소품이었다.
최소 인대에 무리가 왔을 때 느껴지는 통증.
그런데도 지영은 끝까지 참고했다. 그래서 날이 제대로 선 눈빛이었을 테니, 신은 분명 잘 나왔을 거다. 합을 맞추는 배우 형님들도 충분히 열심히 해줘서, 분명 문제가 없을 터였다.
‘애초에 있었다면 보여줬겠지.’
여기가 부족하다.
다시 해보자. 그렇게 했으면 이해했을 거다. 그런데 이상익 감독의 목적은 이미, 지영이었다.
이게 배우 길들이기인지, 아니면 진짜 마음에 안 들어서 괴롭히는 건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걸 이대로 참아줄 생각은 조금도 없는 지영이었다.
“후우, 찾고 말해주세요. 좀 쉬고 있을 테니까.”
“강 배우. 내 얘기 아직 안 끝났어!”
“저는 끝났어요.”
“거기 서!”
썅, 서겠냐?
이미 짜증이 올라올 만큼 올라왔는데.
아예 몸을 돌린 지영의 눈빛은 이미 현장에선 언제나 서글서글하던 강 배우의 눈빛이 아니라, 자신에게 더러운 트래쉬 토크를 건 선수와 막 서로 맞잡기 전의 눈빛이었다. 친구들도 이럴 땐 한 수 접어주는, 그런 눈빛이었다.
이런 지영의 눈빛에 다들 뭐라고 말을 걸려다가 놀라서 물러났다.
지영은 대기실로 들어와,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짜증이 올라왔다.
특히 손목에서 올라오는 시큰한 통증 때문에, 짜증은 배가 됐다.
“괜찮아?”
“아, 누나. 죄송합니다. 저 사고 너무 세게 쳤죠? 하하.”
그래도 임은진의 말에 지영은 표정을 풀었다.
엄한 사람한테 화풀이하는 성격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사고는 무슨. 누나는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손목은 어때? 아까 보니까 다친 것 같던데.”
“시큰거려요. 인대가 놀라거나 했을 정도일 텐데, 이런 부상이 원래 고질병이 되거든요. 가만히 방치하면 오래가기도 하고요.”
“네가 짜증 날 만했네. 어떡할래. 병원부터 갈까?”
“여기서 병원으로 가면 진짜 문제 엄청나게 커지지 않을까요?”
“이미 커졌어. 벌써 이 정도면 대놓고 보이콧인데 뭐. 후후.”
임은진은 그래도 여유로웠다.
아니, 정확히는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올 게 왔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지잉, 지잉.
벌써 소식이 퍼졌나.
B팀과 스튜디오에 있을 이연의 전화였다.
“네, 누나.”
-결국 터졌다며?
“네. 이번엔 선을 넘으셨거든요.”
-선?
“네, 가뜩이나 위험한 신인데, 그걸 계속 다시 하라고 하잖아요. 결국 손목도 좀 나간 것 같고. 아까 보니까 위에서 뛴 형님 가슴에 뭔가 문제도 있어 보이는데 그건 보지도 않고, 저 하나 굴리려고 아주 안달이 났어요. 아마 신 확인도 안 했을걸요? 아, 지금은 하고 있겠네. 제가 보고 고칠 부분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으니.”
-큭큭큭!
이연은 그냥 억눌린 웃음을 흘렸다.
이게 웃기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가 사라졌다. 그걸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그것도 화풀이기 때문이었다.
-휴, 네가 성인이었으면 소주 한잔하면서 신나게 물고 씹고 뜯으면서 속 좀 풀었을 텐데. 아쉽다, 아쉬워.
“몇 달만 참으세요.”
술은 좋아하지 않지만, 아주 적당히 즐기는 거라면 마다하진 않는다.
그리고 이연도 지금 상황이 복잡하고, 그 때문에 힘들다는 걸 돌려서 하는 얘기라서, 지영은 그냥 좋게 받아들였다.
-누나 슬슬 준비해야겠다. 일단, 휴우. 고생해.
“네, 누나도요.”
지영은 전화를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밖으로 나가볼까 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임은진은 바로 이 상황을 보고했고, 장세리 대표님의 전화가 왔다. 그리고 잠시 대화 끝에 지영은 최악이 아니라면, 절대 꺼내지 않을 패를 꺼내기로 결국 결정을 내렸다.
-괜찮지? 지영아. 좋게 생각하자.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가져. 작품을 위한다는 생각만 해. 그리고 선수 입장으로 네 생각만 하고.
“……네.”
-뒤에 언론이나 다른 문제는 회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알았지?
“네, 죄송합니다. 대표님.”
-죄송은 무슨? 이런 일 하려고 매니지먼트가 있는 건데. 말했듯이,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좀 기다리고 있어 봐. 알았지?
지영은 다시 네. 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끝낸 지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어쩔 수 없었다.
작품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하고, 그러나 이렇게 촬영을 이어가는 건 말이 안 되고. 그럼 이런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으론 뭐가 있을까? 아니, 해결보다는 이걸 수습이나. 풀어볼 수 있는 상황으로는 뭐가 있을까?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배우를 바꾸든가, 아니면 감독을 바꾸면 된다.
이렇게 서로 트러블이 일어난 경우, 누구 한 명이 먼저 숙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경우라면, 답은 그것밖에 없었다.
한 명이 그만둬야 하는, 그런 상황.
지영은 솔직히 이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다.
지영이라고 이런 문제를 좋아하겠나? 오히려 반대였다. 지영은 가능한 문제를 키우지 않는 편을 더 좋아했다. 문제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대응하긴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트러블 자체를 자기 손으로 키우는 편은 절대 아니었다.
사실 이 방법은 그때 정은정 작가와 대화 후 결정된 방법이었다.
정은정 작가가 지영을 얼마나 원하는지 알아서, 그걸 옆에서 지켜본 임은진이 최후의, 정말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자고 했던 게 바로 이 방법이었다.
진짜, 정말이지 갑질 중의 갑질이 될 것 같아 쓰고 싶지 않았었지만.
이제는 선택의 순간이었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자기 몸이 망가질 수도 있었고, 아예 작품이 터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지영은 선택하고, 실행했다.
지잉. 지잉.
“네, 작가님.”
-시즌2. 감독님만 바꾸면 정말 하는 거죠?
“……네.”
이상익 감독을, 날려버리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