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06화
206화. 나의 무사님(20)
연출과 배우.
드라마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다.
그런데 그중, 연출이 날아가는 일이 생겼다.
이게 단순히 해프닝으로 끝날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당연히 기사가 와르르 올라갔다. 갑작스러운 PD 교체. tvM에서 작정하고 PD를 쳐냈다는 소식에, 기자들이 눈을 반짝이며 달려드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애초에 이 문제는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현장에 스태프가 워낙에 많았기 때문이었다.
PD와 배우의 문제를 이미 스태프들이 지켜봤기 때문에 어차피 퍼져나갈 일이었다. 하지만 설마, PD 교체로 그 결과가 나올 줄은 예상도 못 했었다. 그렇기에 이 얘기는 결국 상당히 자세하게 기사화됐다. 그래도 애초에 조용히 넘어갈 수 없겠다는 걸 알고 있어서 지영은 크게 놀랍지도 않았다.
언론을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서, 처음부터 예전에 지영의 문제가 터졌을 때와는 달랐다.
이상익 감독이 교체되고, 1주일 결방 공지가 뜬 다음 날 곧장 올라간 기사에는 이상익 감독의 현장 갑질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겸손함 속에 숨기고 있던 인성! 시즌제가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온 본성! 시즌제를 거절하는 배우에게 불이익을 주는 감독! 등등 이상익 감독이 현장에서 지영을 괴롭혔던 일화들이 기사로 담겼다. 그게 어떻게 담기냐고? 임은진이 이미 철저하게 증거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옛날과는 달랐다. 감독에게 밉보이면 배우판을 떠나야 하던 그 시절과는 다르게, 이제는 심판의 칼날 자체를 감독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래서 증거가 필요했다. 칼날에 맞는 일이 없으려면, 증거는 필수였다.
그 증거는 철저하게 배우 강지영의 편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지영을 약자로 조명했다.
그리고 이는 조작된 게 아니었다.
강지영이란 배우가 무리한 감독의 요구에 맞서기 전까지, 불합리를 당하던 건 철저하게 그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기사가 올라오자 이상익 감독은 곧장 반박 기사를 냈지만, 준비가 너무 철저했다. 믿었던 방송국, 제작사 측에서도 손절 쳐버리니 이상익 감독은 그냥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렸다.
PD가 아무리 힘이 세도, 그건 제작사나 방송사가 뒤에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작가부터 시작해 제작, 방송사까지 전부 등을 돌려버리니, 나중에 아차! 하고 급히 지영에게 연락해 사과했지만 이미 늦어버린 상황이 됐다.
그러던 상황에 결국 소방수가 투입되었다.
tvM 드라마 사단 중, 사극 하나만큼은 가장 기가 막히게 뽑는다는 홍진아 PD가 투입됐다.
이런 말 많은 작품은 원래 PD들이 소방수로 투입되길 꺼리는 게 보통이지만, 시청률이 일단 너무 탐났다. 홍진아 PD는 인터뷰를 통해 그 같은 사실을 솔직하게 오픈했다.
‘부담이요? 부담되죠. 그런데 시청률이랑 대본이랑 배우가 너무 탐나잖아요? 제가 언제 또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강지영 배우랑 작품을 해보겠어요? 그것도 시즌제로.’
씩 웃으며 그렇게 인터뷰를 마친 홍진아 PD는 아주 자연스럽게 나의 무사님이 시즌제로 돌입한단 얘기를 꺼내기까지 했다.
그렇게 PD가 바뀌고 다시 시작된 촬영.
드라마나 영화, 작가, 심지어 배우도 자기만의 사단이 있는 경우가 있었다. 정은정 작가가 이연을 사단으로 두고 있다면, 장민주 작가님도 그렇고, 다른 작가나 감독들도 전부 자신만의 배우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홍진아 PD도 자신만의 사단이 있었는데, 배우들은 빼고 중요한 보직은 들어오자마자 칼같이 쳐냈다. 이건 배우가 개입할 수 있는 선이 아니라서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연출, 카메라, 음향에 미술팀이 그렇게 날아가고, 액션 팀은 그대로 남았다.
촬영 당일, 아침 일찍 배우들을 호출한 홍진아 PD는 현장을 둘러보고, 지영을 찾았다.
홍진아 PD는 젊었다.
워낙에 개성이 강하고, 천재성이 있던 PD라 방송사에 입사하자마자 3년 만에 첫 작품을 찍었는데, 그게 대박이 나면서 벌써 7년 차 PD가 된 그녀는 이제 겨우 서른 초중반이었다. 샛노란 탈색 머리에 옛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카고바지, 그 당시 스타일의 모자를 푹 눌러 쓴 홍진아 감독은 마치 2000년대 과거에서 끄집어낸 소품 같았다.
‘레트로 소품 같아, 진짜…….’
패션 감각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현장이라 편하게 대충 입고 온 건지 도무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그런 티는 내지 않았다.
“반가워요. 강지영 배우님.”
“안녕하세요, 감독님. 편하게 대해주세요.”
“후후, 그럴 수 있나요? 감독을 날려버리시는 분인데.”
뼈가 있는 그 말에 지영은 그냥 웃었다.
애초에 그것 때문에 들어와서 인상 쓸 사람이었다면 정은정 작가가 오케이 하지도 않았을 테니, 이건 그냥 농담일 거다. 그냥, 뼈있는 농담 말이다.
“후후, 농담이고요. 그럼 편하게 한다?”
“네.”
“오케이. 좋아. 그럼 일단 이건 내가 작가님한테 허락 맡은 변경 사항이거든? 오늘, 연출 확 다르게 갈 거야. 감독이 변했으니, 신고식 정도는 해도 되잖아?”
“어…… 거기에 저도 포함되나요?”
“그럼. 포함되지. 전 감독이 투박한 선을 좋아했다면, 나는 좀 가느다랗고, 여린 선을 좋아해. 순정만화 본 적은 있지?”
“…….”
순정만화?
홍진아 PD가 그런 취향이었나? 그녀가 연출한 드라마를 떠올려 봤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좀 밝은 느낌이긴 했다. 화사한 꽃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하얗게 메이크업을 발라 찍는 장면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호호. 대번에 표정이 변하네? 걱정하지 마. 그 정도는 아닐 테니까. 다만, 여기서부터 감독이 변했구나! 이런 느낌이 빡 들 정도로 변화를 줄 거야. 그 첫 번째는 메이크업. 헤어스타일 변화고. 그리고 이 변화는 이번 신고식 한정. 이후는 다시 지금처럼 할 거고. 이 정도는 괜찮지?”
아하.
이걸 지영이 이해하기 편한 식으로 말하면, 그냥 한번 조명 세게 틀어놓고 가겠다는 거다. 어두컴컴하진 않아도, 새벽녘의 느낌에서 촬영했다면 지금은 새벽녘인데 뒤에 라이트를 빡! 한번 주고 가겠다는 거다.
지금까지는 그런 느낌의 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상익 감독은 생각보다 현실성,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액션도 그렇고, 대사도 비슷했다.
그런 상황에 홍진아 감독의 스타일이 일순간 한 번 훅 치고 들어왔다가, 다시 가라앉는다. 이미 기사가 나갈 만큼 나갔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아, 여기서부터 홍진아 감독이 편집하고 촬영한 거구나? 느낌상 알게 될 것이다.
“남이 하던 스타일을 그래도 어느 정도 살려서 가야 한다는 게 안 그래도 찝찝했는데 한 번에 오케이해 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제 탓인데요. 이것도 따지고 보면.”
“그 덕분에 내가 연출을 쥐었으니 나는 고맙기만 한데?”
너스레를 넘어, 뻔뻔하기까지.
그래, 차라리 이런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결정된 시즌제다. 시즌2는 아시안 게임이 끝나고 들어가겠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는 한배를 탄 사이였다. 그런 사람의 성격이 그래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너무 빨리 안심하진 말자…….’
이미 한 번 데였다.
괜찮은 사람이구나. 했는데 드라마가 뜨니까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가서, 고개 깁스한 것처럼 구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걸 몰라봤고. 그러니 이번에는 그냥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홍진아 감독은 이연이 도착했단 소리에 곧장 지영의 대기실에서 떠났다.
그녀가 떠나고 나자, 구석에 있던 임은진이 바로 다가왔다.
“맞지? 얘기한 그대로지?”
“네. 똑같네요. 하하.”
섬세한 것 같으면서도, 남성적인 느낌.
아니, 정확하게는 남자가 여자 특유의 섬세함을 갖추면 딱 이 느낌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느낌으로 본다면 일단 나쁘지 않지만, 그 느낌에 한 번 데였기 때문에 지영은 안심하지 않았다.
잠시 뒤, 일주일간 멈춰 있던 촬영이 재개됐다.
* * *
한차례 치른 홍역 덕분일까?
시청률은 더 올랐다. 10화가 방영됐을 땐 거의 20%에 근접한 18% 시청률이었다. 수도권만 집계하면 20%가 실제로 넘었다. 종편 방송사에서 20%의 시청률. 대박도 이런 대박이 없었다. 사실 이 정도 수치는 지영도 정말 예상하지 못한 수치였다.
어느 정도냐면, 솔직히 이 정도 시청률이 왜 나오지? 하는 생각도 했었다.
물론 지영은 이 작품을 정말 재미있게 봤다. 하지만 그건 소설에 가까운 원형이었다.
12화에는 홍진아 PD가 연출한 방법이 갑자기 극 중간에 툭 끼어들면서, 연출의 색이 달라졌다. 하지만 크게 어지럽지 않다는 감상평이 주를 이루며 그녀는 무난하게 나의 무사님 팀에 녹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뜬 공식 오피셜.
나의 무사님의 시즌제 돌입.
기존 완결에서 화수를 줄여 16화로 완결하는 대신 시즌제를 도입하겠다는 기사였다. 그러나 이 기사는 큰 환영을 받진 못했다. 왜? 자연스럽게 주연 배우인 지영의 스케줄이 공개됐기 때문이었다. 사실 공개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유도 선수가 본업인 그가 다음 해의 올림픽, 세계 선수권, 그리고 아시안 게임을 포기할 리가 없다는 것쯤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니 적어도 2년 안에는 시즌2가 나올 일은 없다는 사실이, 시청자들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부분은, 정은정 작가가 ‘계획’이 있다는 인터뷰로 잠재웠다.
실제로 그녀는 계획이 있었다. 시즌제로 돌입하면서 그녀의 상상력은 가히, 대폭발을 시작했다. 그동안 현실의 벽에 걸려 엄두도 내지 못했던 얘기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재창조되며, 하나의 세계로 편입되고 있었다.
밤과 낮을 잊은 사람처럼 진짜 미친 듯이 글을 써서, 지영에게도 보여줬는데 지영은 그걸 보고 이연, 홍진아 감독과 함께 진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의 무사님을 메인으로 두고,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탄생하고, 사라졌다.
조립되고, 흩어졌다가 가능성이 크고, 연결이 가장 자연스러운 이야기들만 남아 나의 무사님 주변으로 모였다.
그녀는 그걸 소설로 썼다.
하나의 긴 흐름으로. 딱 보면 아 메인이 나의 무사님이고, 이 얘기는 어느 얘기고 하는 게 딱 느낌이 올 정도로. 거기에 장르는 전부 달랐다.
어느 건 순수한 사랑 이야기.
어느 건 처절한 궁궐 정치 스릴러.
어느 건 치열한 전쟁 이야기.
어느 건 이족의 모험과 낭만을 담았다.
이걸 굴비처럼 엮어서, 나의 무사님과 봉합했다.
이제 중요한 건 이 얘기들이 재미가 있는가, 시청자에게 먹힐 건가에 대한 판단이었다. 홍진아 감독은, 100% 먹힌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말을 따르면 마블 시리즈가 그렇게 먹히는 것도, 빤한 스토리라고 해도 이미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쌓아 놓은 세계관이 워낙에 탄탄해서라고 했다. 그렇기에 어마어마하게 잘 만들지 않아도, 세계관의 이야기가 궁금한 관객들이 몰리는 거라고. 그 부분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지영만 해도 마블의 작품을 좋아하지만, 취향에 맞지 않는 작품도 있었다.
그런데도 지영은 전부 봤고, 스토리라인을 전부 알고 있었다. 왜?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건너뛰면 메인 스토리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영도 크게 재밌진 않았고, 재밌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가서 봤었다. 특히 그런 걸 챙겨보는 게 이성진인데, 신작이 나오면 이성진 때문에 지금도 다 같이 가서 보곤 했다.
“나의 무사님 끝나고 시작될 다른 작품이, 정말 중요할 거예요.”
홍진아의 얘기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얼마나 잘 연결하느냐가, 나의 무사님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거였다. 스핀오프 격인 그 작품이 망하면, 다른 작품도 줄줄이 날아갈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지영이 넌 걱정하지 마. 시즌2 들어갈 때까지, 내가 잘 풀어놓고 있을게.”
이연의 말에 지영은 피식 웃었다. 괜히 그녀에게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미안했다. 하지만 당장 해줄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에, 지영은 그냥 웃고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지키기 힘든 말은 하지 말라는 임은진의 주의를 따른 대응이었다.
그렇게 한 번 모인 이후, 시간은 다시 빠르게 흘렀다.
13화 14화가 방영됐다.
그때는 이미 촬영이 끝난 시기고, 뒤늦은 선발전으로 선수촌에 입촌할 이들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더 시간이 흘렀다. 12월의 중순, 나의 무사님 시즌1이 완결이 났다. 최종시청률은 22. 7%로 마무리를 했다.
마지막에, ‘재’는 돌아온다.
란, 의미심장한 자막과 함께.
방송사의 이전 최고시청률이 21. 7%였는데, 나의 무사님은 22.7%를 찍었다.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불시착의 아성을 끝끝내 깨트렸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그렇게 방송가가 다들 나의 무사님으로 뜨끈! 후끈! 정신이 없던 그 무렵, 지영은 떨어졌던 폼을 올리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이른 첫눈이 내리는 12월.
지영은 옷을 껴입고 트랙을 달리고 있었다.
눈이 오는데 뛰는 이유는 하나, 폼이 떨어지며 전신에 낀 지방의 제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