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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03화 (203/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03화

203화. 나의 무사님(17)

시즌제 얘기가 나오고 나서 현장의 분위기는 너무 떴고, 계속되는 NG에 결국 감독은 고개를 젓곤 촬영 중지를 선언했다.

시즌제.

6화 만에 벌써 우리 무사님 이렇게 못 보내! 하는 여론이 형성됐다. 거기에 올 초도 그렇고, 작년에도 그렇고, 그전 해에도 그렇고. 시즌제 드라마가 제법 대박을 쳤다. 아니, 제대로 대박을 쳤다.

애초에 잘된 작품만 시즌제로 들어갈 일종의 자격이 생기는 거니, 시즌2의 흥행은 어느 정도 보장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니 방송사도, 제작사도, 홍보사도, 투자사도 전부 나의 무사님이 시즌제로 들어갔으면 하는 얘기를 꺼내 들었다.

그래서 현장이 어수선했다.

촬영 중지를 선언한 이상익 감독이 지영을 따로 불렀다. 정은정 작가가 오고 있으니, 얘기 좀 하자고 해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이상익 감독이 현장 정리를 조연출에게 맡기고는 지영을 찾아왔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강 배우님.”

“아니요. 제게 미안할 게 있나요.”

지영의 솔직한 대답에 이상익 감독은 푸근하게 웃었다. 그가 웃을 때 의상을 편하게 갈아입은 이연도 왔다. 메이크업을 지운 그녀는 뽀송뽀송한 얼굴로 지영의 옆에 앉았다.

“어휴, 내가 드라마를 찍다가 이렇게 시즌제 때문에 촬영을 접어도 보네. 하하.”

“축하드려요, 감독님.”

“하하, 축하는 무슨. 어차피 뜬구름인데. 일단 정 작가님 오기 전에 나 하나만 강 배우한테 물어볼게요. 내년에는 힘들지?”

“네, 죄송합니다.”

이상익 감독의 질문에, 지영의 대답은 아무런 고민도 없이 나갔다.

내년에는 올림픽이 있다. 당연히 그 올림픽을 위해 사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지영의 재능이 천재적이라고 해도, 올림픽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슥 나가서,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는 대회가 절대 아니었다.

지금도 틈틈이 도복을 입고 몸을 풀기 시작하는 이유가, 11월 말에 있을 선발전을 준비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황금세대고, 재능이 천재적이라고 해도 선발전 없이 대표가 된다는 건 세상이 두 쪽이 나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아니, 고민하지도 않았다. 드라마의 주연을 맡은 지금, 이 작품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작품이긴 하다. 하지만 그건 작품 한정이었다. 이 작품에는 최선을 다할 거지만, 그 이상의 책임은 지지 않을 생각이었다.

“역시 올림픽 때문이지요?”

“네.”

이번에도 솔직히 대답했다.

축구나 야구 같은 종목이 아니라면, 올림픽은 스포츠인의 꿈과도 같은 축제였다. 지영은 물론 그랜드 슬램이라는 목적 때문에, 올림픽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거지만 어쨌든 올림픽 때문인 건 맞았다.

“운동선수가 메인입니까, 배우가 메인입니까? 이건 언제고 한번 제대로 들어보고 싶었는데.”

“네?”

“아니, 강 배우님 정체성이 궁금해서.”

음?

뭐지, 이 도발은?

이상익 감독은 경우 없는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물어본다? 지영은 반사적으로 임은진을 돌아보려다가, 겨우 돌아가려는 목을 참았다. 이런 것마저 하나씩 임은진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면, 임은진도 임은진이지만 지영 본인도 애매해질 수가 있었다.

“그때마다 다르죠. 배우일 때는 배우고, 작품이 끝나면 저는 운동선수입니다.”

“그때마다 다르다. 그럼 정체성 자체가 투 트랙인 거네요?”

“그렇긴 합니다만, 왜 그러시는지? 혹시 저 때문에 시즌제가 터질까 봐 그러시는 건가요?”

훅!

이번엔 지영의 입에서 도발적인 질문이 날아갔다. 이연이 흠칫했고, 그녀의 매니저도 놀라 이상익 감독을 돌아봤다. 드라마에서 작가와 함께 가장 절대적인 존재가 바로 감독이었다. 특히 경력이 둘이 합쳐 10년도 안 되는 주연이 출연하는 작품이라면 감독과 작가의 힘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감독님이 갑자기 헛바람이 들었나?’

선택받은 감독에게만 허용된다는 시즌제다.

그것 때문에 사람이 예민해져서, 이미 조정이 끝난 얘기를 다시 들추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는 말이 있다. 이런 말이 괜히 생겼을까? 지영은 속으로 한숨을 흘렸다.

‘작품이 잘되니까 또 이런 문제가 생기는구나.’

아쉬웠다.

실제로 지금 질문에, 이상익 감독의 눈빛은 가히 좋지 않았다. 마치 어린놈이 뭐? 하는 표정이었다. 지영은 아쉬웠다. 그리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저런 눈빛을 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은 절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욕심.

감독님의 눈빛엔, 욕심이 있었다.

이건 지영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일단은 가만히 듣기만 했다.

“강 배우. 말이 심해요.”

“죄송합니다.”

지영은 일단 사과했지만, 느낌이 싸했다.

감독과 틀어지면 작품이 잘 되길 바라는 건 애초에 무리다. 조연이거나, 신이 많지 않은 조연 정도면 아예 쳐내겠지만 지영은 작품의 주연이었다. 신을 어떻게 줄이기도 무리인 게, 애초에 이 작품 자체가 강지영이란 배우가 없으면 진행 자체가 되질 않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이상익 감독은 지영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감독님. 아하하! 왜 이러실까, 우리 감독님! 감독님? 잠깐 저랑 얘기 좀 하실까요?”

임은진이 결국 나섰다.

업계에서 그녀도 명성이 있어서, 이상익 감독도 쉽게 그녀를 무시할 수 없었다.

크흠!

불편한 기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이상익 감독.

“하, 미치겠네.”

이상익 감독을 임은진이 데리고 가고, 이연의 매니저까지 그쪽에 따라붙기 무섭게 그녀의 입에서 짜증스러운 한마디가 나왔다. 그녀도 여배우였다. 가뜩이나 역할 때문에 욕을 먹어서 기분이 안 좋던 판에, 이런 일까지 겹치자 결국 짜증이 확 올라온 것 같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대기실로 돌아갔고, 지영은 하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갑자기?

지영은 진짜, 이 바닥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너무 지금까지 좋은 일만 있었다.

‘그래, 이렇게 좋은 일만 있던 게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였지.’

씁.

지영은 전조도 없이 불쑥 들어온 분란의 씨앗에, 혀를 찼다.

답답했다.

하지만 여기선 지영이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게 지영을 더 답답하게 했다.

* * *

“아니, 감독님. 다 얘기 끝난 문제로 갑자기 왜 그러세요?”

“임 매니저. 다 끝난 얘기긴 하지. 그런데 그래도 아까 그 말은 너무한 거 아니야?”

“에이, 감독님도 끝난 문제로 지영이 긁으셨잖아요.”

“아니, 그런다고 그렇게 말을 해?”

이상익의 말에 임은진은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경우? 종종이 아니라 자주 있었다. 갑자기 잘 지내던 감독과 배우가 서로 틀어져서 현장 분위기가 엉망이 되는 경우는 솔직히 이 바닥에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은 건 다들 쉬쉬하고 있기 때문이었고. 이 바닥에서 오랫동안 맨몸으로 버티고 견뎌오면서 임은진도 들은 것과 실제로 본 것들이 정말 많았다.

이상익 감독은 나쁘지 않은 감독이었다.

연출에 있어서만큼은, 정은정 작가도 오케이 했을 만큼 대단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도 지금, 이 폭발적인 인기와 시즌제에 대한 것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이럴 때는 감독이 나서서 딱 교통정리를 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은근히 시즌제를 하고 싶은데 배우가 딱 잘라 거절하니 거기다가 대고 시비를 걸고 있었다. 그런 건 척 보면 딱 아는 거다. 거기다 눈치 빠른 지영이 그걸 꼬집자, 권위로 찍어 누르려고 했다.

이제 같이 다닌 지 제법 돼서, 그녀는 지영이 그런 걸 정말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이 나오는 순간 곧장 개입해서, 이상익 감독을 이쪽으로 빼낸 참이었다. 하지만 이상익 감독의 표정만 봐도 이미 기분이 상했다는 게 눈에 딱 보였다.

이렇게 표정이 변하면?

당분간은 꼬인 속이 풀릴 일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는 걸 그녀는 잘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냥 가만히 이상익 감독이 하는 말에 맞장구를 쳤다. 이연의 매니저도 눈치껏 합을 맞추어 줬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나자, 정은정 작가가 도착했다.

대본을 쓰던 중이었는지, 피곤한 기색으로 도착한 그녀는 곧장 이연에게 끌려갔다. 인사를 하려던 이상익 감독이 다시 인상을 찌푸렸고, 지영은 그걸 지켜보며 이게 뭔, 하는 심정이 되어버렸다.

“개판이네, 진짜.”

“후후, 그러게. 이야, 이렇게 순항하던 배가 좌초 정도를 넘어서, 잘못하면 침몰하겠어.”

임은진의 말에 지영은 헐, 진짜요? 하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갑자기 이렇게 감정의 골이 생기면, 이거 생각보다 봉합이 쉽지 않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요?”

“뭐 어쩌다가야. 그냥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거지.”

임은진의 조금은 무책임한 말에, 지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오늘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너무 잘 나오는 시청률 때문에 어깨가 무거운 정도가 전부였다. 그리고 도착해서 시즌제에 관한 얘기를 들었지만, 그래도 상황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누나.”

“응?”

“이거 정확하게 진단 내려보면, 대체 뭐가 문제인 거예요?”

“명장병에 걸린 감독?”

“…….”

“이 모든 게, 자기가 잘 나서 잘된 건 줄 아는 거지. 대본이 있고, 배우가 있고, 감독이 있어도 셋 다 중요한 거잖아. 어느 하나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런데 시즌제 얘기까지 나오자 거만한 본성이 툭 튀어나온 거지.”

“…….”

“그동안 왜 몰랐냐고? 간단해. 이 정도까지 폭발적인 작품을 연출해 본 적이 없거든.”

“…….”

임은진의 냉정하다 못해 무서운 평가에 지영은 헐, 하는 소리도 내지 못했다.

본래가 거만한 본성인데, 그게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작품성은 있어도 지금과 같은 폭발적인 시청률을 뽑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란 말에, 지영은 진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우는 유도판에도 있었다.

처음엔 정말 순수하고 겸손한 선수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입상을 시작하더니, 2학년 땐 제멋대로고, 3학년 땐 안하무인이었단 이야기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다.

당장 지영이 본 것만 해도 꽤 됐다.

이상익 감독도 그 케이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요?”

“절대권력께서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달라.”

“절대권력이요? 아아, 정은정 작가님이요?”

“응. 다 중요해도, 작가한테는 솔직히 못 비비지. 괜히 드라마가 작가놀음이란 말이 있는 게 아니거든.”

그건 지영도 들어본 얘기였다.

“이연 배우가 은정 작가님이랑 무슨 얘기를 하고, 어떻게 나오냐에 따라 우리 지영이 남은 촬영이 편해지든가, 아니면 더럽게 불편해지든지가 결정될 거야.”

“끙…….”

절로 앓는 소리가 났다.

천재 정은정 작가.

영화는 연출의 힘이 막강하다. 즉, 감독의 힘이 장난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작가의 힘이 어마어마했다. 천하의 날고 기는 배우들도 성공한 드라마 작가에겐 일단 한 수 접어주고 들어가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출연 자체만으로도 배우의 품격을 끌어 올려주는 작가도 있을 정도였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인지도 S급 드라마 작가가, 인지도 B급 배우를 뽑았다. 그것도 직접. 그럼 그 B급 배우의 격은 알아서 상승세를 탄다. 다른 감독이나 작가들이 그, 인지도 B급 배우에게 뭐가 있는 걸까? 하는 기본적인 의심 정도를 하고 갈 텐데 그 자체가 바로 관심이다. 그리고 그 관심 자체가, 바로 기회였다.

감독이 신선한 마스크를 찾고, 그 신선한 마스크 중에 벼락스타가 많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보통 다 이런 순서를 밟아서였다.

지금 이 안에서는 작가가 그걸 가능하게 만든다.

영화는 연출이 가지는 힘을, 드라마는 작가가 가지고 있다고 보면 이해가 쉬웠다.

피곤했다.

이런 트러블은 정말이지, 정신적으로 사람을 너무 피곤하게 만들었다.

아마, 세트장을 먼저 나선 다른 배우들은 꿈에도 모르고 있을 거다. 지금 현장에서 이런 트러블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들 시즌제라는 소식에 들떠서 삼삼오오 모여 소주를 기울이고 있지 않을까?

지영이 그런 생각을 하는데, 얘기가 끝났는지 이연과 정은정 작가가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지영을 향해 똑바로, 박력 넘치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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