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00화
200화. 나의 무사님(14)
10월.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10월의 첫 주,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나의 무사님 1화가 방영됐다. 금, 토. 주말 황금시간대 편성된 나의 무사님은 1화부터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나의 무사님 1화 시청률 10% 돌파! 어린 독지가 효과 톡톡!]
[믿고 보는 정은정 작가와 이연의 조합은 이번에도 빛났다!]
[1화부터 강렬한 액션! 이상익 감독의 미장센 이번에도 시청자 저격!]
[이연과 강지영! 시작부터 강렬한 조화!]
[연기력에는 물음표가 따라다녔던 ‘배우’ 강지영! 1화로 모든 우려를 지워버렸다.]
[제작 발표회에 불참까지 한 거만함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대로 2023년 최대의 흥행 드라마가 될까?]
[왕주형 액션 감독. 강지영은 천재다. 그의 몸 쓰는 재능은, 하늘이 내려줬다.]
파바바박!
1화가 방영된 금요일 11시경부터 다음날 종일 올라오는 기사들의 제목은 보통, 이랬다.
예인으로 살어리랏다도 나쁘지 않은 시청률로 출발했다.
지금 시청률과 거의 엇비슷했고, 종영할 때까지 시청률은 하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화제성 면에서, 두 작품은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그때의 지영은 연기력에 관한 물음표가 여전히 있는 상태였지만 그걸 빼면 대외적인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한차례 은퇴를 선택했던 강지영이었다.
그리고 다시 복귀한 지금도 언론사 인터뷰는 아예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어린 독지가 기사는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충격을 줬던 기사였다. 돈이 어디서 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돈으로 후원재단을 직접 운영하는 고등학생에 관한 기사이니 화제가 안 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뜨거운 감자였고, 다시 복귀한 이후 본업인 유도 대회에서도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천재.
말 그대로 그냥, 천재.
그런 천재가 찍은 드라마다.
이미 대본 리딩, 제작 발표회부터 화제를 어마어마하게 몰았었다. 그러나 리딩장엔 모습을 드러내도, 주연 배우는 제작 발표회 단상에 서지 않았다. 그래서 솔직히 건방지단 기사도 꽤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작 발표회 같은 중요한 자리엔 나와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논란이 됐었고, 그 논란은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 되어버려 드라마 첫 방 전에도 이미 화제는 엄청났었다.
그렇게 시작된 첫 방은, 시청자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시작부터 솟구치는 궁궐의 불길.
첫 등장부터 시름시름 앓고 있던 제국의 황제는 역적의 손에 죽고, 황자도 죽었다.
강렬한 인트로 이후 시작된 처절한 탈출.
재와 연은 1화 내내 도망쳤다. 쉬는 시간이라고는 잠시 멈춰서 뭘 먹을 때뿐이었다. 그 외에는 전투, 싸움. 전투, 탈출. 다시 탈출로 계속 이어졌다. 보통 1, 2화는 드라마 자체가 가진 설정을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드라마는,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나.
이 드라마는 어떤 목적을 달성 과제로 삼고 있나.
드라마 자체 말고, 드라마 속 내용을 말함이었다.
시청자들은 대개 1, 2화에서 주인공들이 어떤 걸 원하고, 어떤 목표를 세웠고, 그래서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갈지에 대해 스스로 유추한다. 그리고 그 자체가 바로 기대심리의 자극이었다. 여기서 취향이 맞지 않은 이들은 하차하고, 취향에 맞으면 따라간다.
그래서 1, 2화는 부드러울 때도 있고 강렬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설정을 보여주는 것에 쓰인다.
나의 무사님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었다.
제국의 승상은 반란을 일으켜 군권을 잡았고, 유일한 황위 계승자는 탈출한다. 딱 이 정도면 어떤 스토리로 이 작품이 흘러갈지에 관한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걸, 아주 불친절하게 보여줬다.
시작부터 거침없는 정도가 아니라 처절할 정도의 액션을 보여줬다. 피가 확확 튀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죽음 그 자체에 관한 연출은 독할 정도로 세밀하게 잡았다.
죽음에 정의는 있는가?
가치 있는 죽음이란 게 있는가?
대사가 아닌, 연출로 잡아낸 ‘강조’였다.
중구난방이란 느낌이 들었다.
추격, 탈출, 전투, 죽음. 반란, 역모.
이런 부정적인 요소에 우정, 동료애 등이 섞였지만 크게 부각되진 않았다. 그런데도 시청률은 10%를 넘겼고, 기사는 대부분이 칭찬이었다. 성공적인 출발이 아니라, 대박의 조짐이 보이는 작품의 영역에 들어선 거다.
그렇게 다음 날, 2화가 방영됐다.
1화와는 비슷하지만 달랐다.
2화는 생존이었다. 낯선 이족의 땅은 위험했다.
늪도 있고, 독충과 독사가 우글거렸다.
허기진 여주인공이 과실을 잘못 따먹고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굶주린 상태에서 맹수를 만나 대피했고, 그러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며칠을 앓아눕기도 했다.
제국은 번창했다.
그래서 제국의 통치가 닿는 곳에는 이 정도의 혹독한 지역은 거의 없었다. 영토 자체가 오랜 세월을 통해 대부분이 개척되었기 때문에 맹수는 우리 안에 가둬 놓고, 구경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제국의 한복판에서 살았던 여주인공의 비참함은, 신이 휙휙 바뀌면서 그 감정의 변화를 조절해 보여줬다.
분위기는 조금 느슨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는 장면이 연속되었다.
그러다 어느 이족의 여인을 구하게 되고, 2화가 끝났다.
전형적이지만, 전형적이지 않은 1화 2화.
2화 시청률은 12%였다.
2화 만에 12%. 고작 2%지만, 이는 엄청난 성과였다.
시청자가 이탈한 것보다, 유입된 게 훨씬 많다는 뜻이니까 이는 입소문이 하루 만에 제대로 터졌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 입소문은 하루만 불까? 아닐 거다. 드라마 자체가 대화거리다.
드라마를 본 사람들의 대화에 안 본 사람은 낄 수 없으니, 원활한 사회생활이나 교우 관계를 위해서라도 인기 드라마나 영화는 관계를 위해서 봐야 하는 시대였다. 그러니 앞으로 더 충분히 시청자들은 유입될 터였다.
이렇게 1, 2화 반응이 너무 좋다 보니, 현장의 분위기는 진짜…… 끝내줬다.
* * *
점심시간.
“에이! 여기! 마이!”
“와! 진짜 그걸! 그걸 못 넘기냐!”
“으하하! 야!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실수고 나발이고 발만 툭 대면 되는데!”
“흐흐, 넘어가, 넘어가.”
족구가 한창이었다.
선선한 날씨고, 오랜만에 세트장 촬영이다 보니 점심시간에 시간이 좀 남았고, 자기 차례가 좀 남은 배우들이 주차장에 네트를 설치하곤 족구판을 벌였다. 지영은 그걸 의자에 앉아 구경하고 있었다.
“한종수 배우님! 이제 준비할 시간!”
“어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아이고, 미안합니다! 제가 먼저 가서 준비했어야 했는데.”
“에이, 아니에요. 저도 바깥 공기 쐬고 좋죠. 30분쯤 여유 있으니까 준비 바로 하고 기다려 주세요.”
“네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신 준비는 배우가 직접 준비해야 할 일이었다.
아니면 매니저가 알려주거나. 그런데 스태프가 와서 얘기하자 한종수 배우가 미안한 얼굴로 사과하곤 곧장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자리가 비었고, 인원이 맞지 않았다.
“슬슬 그만할까?”
“에이, 승부는 봐야지? 저 우리 강 배우님 있네. 강 배우님! 한판 어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지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요? 저 진짜 개발이라서 저 들어가면 무조건 그 팀이 질 건데요?”
“에이, 또 겸손 떤다! 아니! 아시아 선수권 금메달리스트가 개발이 말이 돼?”
“하하, 진짜예요. 투기랑 구기랑 얼마나 다른데요.”
“그래도 헤딩은 하것지? 괜찮으니 들어와. 우리 점수 여유 있어!”
“나중에 후회하기 없기예요? 그리고 저한테 눈총 주거나 뭐라고 하기 없기입니다?”
“어허, 아닌 거 다 알어. 얼른 들어오라고?”
지영이 그렇게 말했지만, 배우들은 역시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지영은 구기 종목을 진짜 못했다.
잘 뛰는 거야 잘 뛰지만, 이상하게 공과는 친해지지 못했다.
농구, 야구, 축구, 배구, 그리고 족구까지. 지영은 구기 종목은 정말 보통의 수준도 되지 못했다. 남자 고등학생들이 점심시간만 되면 하는 게 축구고 농구다. 지영도 당연히 몇 번 끼어서 해봤었고, 몇 번 끼어보고 더는 하지 않았다.
공격은커녕 수비도 못 하고, 공에 발을 가져다 대는 수준밖에 안 돼서 다음부턴 같이하자는 제안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 솔직하게 얘기했으니까.”
“진짜 못해?”
같이 쉬던 이연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진짜 저 완전 개발이에요. 누나보다 못할걸요?”
“헐, 어떻게? 너 운동 완전 잘하잖아?”
“몸 쓰는 재능이 있긴 한데, 저는 투기 쪽 몰빵이라서요.”
“아 진짜?”
“네, 진짜.”
그렇게 답하며 웃은 지영은 신발을 갈아 신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희대의 몸 개그를 선보였다. 오는 족족, 그냥 이건 뭐…… 구멍의 수준을 확실히 뛰어넘었다.
“와…… 강 배우? 우리 장난 그만칠까? 벌써 점수 다 따라잡혔어?”
“저 장난 아닌데요? 저 진짜 못해요. 공으로 하는 건.”
“허……. 그럼, 음. 그래. 뒤로 가자. 가서 머리만 대. 그건 할 수 있지?”
“자신 없지만…… 해볼게요.”
어느새 5점이나 이기고 있던 점수가 1점으로 줄어들어 있었고, 지영의 포지션은 뒤로 쭉 밀려났다. 그런데 뒤로 간다고 잘 되겠나? 오히려 족구에서 수비가 차지하는 중요도는 상상을 초월하는데 그런 자리를 지영에게 맡겼으니, 결과는 빤했다.
“으아! 강 배우! 일부러 그런 거지!”
“화내기 없다고 약속했잖아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있잖아, 정도가?”
“하하, 그러니까 앞으로 저는 족구에 넣지 마세요. 저 진짜 엄청난 개발이니까요.”
지영은 그렇게 너스레를 떨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이연이 핸드폰을 슥 숨겼다.
“다 봤거든요?”
“흐흐, 흐흐흐.”
“우울하면 보게요?”
“응. 와, 이럴 수도 있구나? 보니까 진짜 공이랑 안 친하더라. 호호호!”
그럼 거짓말일까.
예전에 베이징 올림픽에 나갔던 66㎏ 국가대표 선배도 그랬다고 들었다. 유도는 진짜 천재였는데, 구기 종목은 그렇게 못했었다고. 지영이 딱 그랬다. 투기는 다 잘하는데, 구기는 아예 꽝이다.
지영은 이걸 굳이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난 구기가 아니라, 투기 종목 선수니까.’
투기 종목 선수.
그중 유도선수이니 유도만 잘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가끔 이런 상황을 겪겠지만 그땐 뭐 그냥, 현장 분위기나 살릴 겸 나가서 몸 개그 좀 해주면 되고. 땀을 좀 흘렸더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1시간쯤 기다려, 지영의 신이 시작됐다.
오늘 찍을 분량은, 회상 신의 한 장면으로 승상 후와 재의 대담에 관한 신이었다.
승상 후는 재를 탐냈다.
젊은 승상은 재가 가진 재능과 성품을 알아보았고 자신의 야망에 가장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후는, 재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다.
“재, 당신은 제국을 어떻게 봅니까?”
후의 물음에, 재는 말을 골랐다.
“제국으로 봅니다.”
재는 선문답 같은 답을 내놓았다.
그러자 후는 웃었다. 아주 날카롭게.
재는 그런 후의 미소에, 같이 미소로 답했다.
아주 무덤덤한.
“제국이지요. 북방에 이민족의 날 뛰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약탈이 일어나 백성은 신음하고 있고, 동쪽에는 메뚜기 떼가 창궐하여 곡식의 씨가 말랐으며, 남쪽엔 해적이 출몰하여 비명이 끊이지 않고, 서쪽에는 역병이 창궐하여 길마다 시체가 널려 있지만, 그래도 제국이겠지요?”
“네, 승상. 그 전부가 제국입니다.”
번쩍.
승상 후의 눈매가 쭉 찢어졌다.
그리고 비슷한 속도로 입꼬리도 찢어졌다.
“이런 제국도, 그대의 충성을 받을 가치가 있을까요?”
“고치면 됩니다.”
“누가요? 지금 앓아누워 계신 폐하께서요? 아니면 대리청정 중인 비덕 황자가요?”
후의 눈매가 강렬하게 빛났다.
재는, 그 강렬한 눈빛에서 제국에 대한 걱정도 엿보았고, 나아가…… 아주 은밀하게 숨어 있는 또 다른 야망 또한, 엿보았다.
‘승상…….’
위험하다.
늑대도 아니고 승냥이도 아니다.
지금 대답을 나누고 있는 승상 후는…….
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