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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99화 (199/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99화

199화. 나의 무사님(13)

아직 연습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은 양지원의 연기 연습이 한 번 끝난 거고, 지금 시간이 2시 반쯤 되니까 적어도 4시는 되어야 연습이 끝날 거다.

그래서 양유진은 손을 흔들었지만 지영에게 바로 오지 않았다.

곽현정 선배님과 안무가에게 몇 가지 코칭을 받은 양지원이 다시 연습을 시작했고, 지영은 그녀의 연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빙판 위를 한 마리 흑조가 노니는 것 같다.

검은색 훈련복으로 통일해서, 그런 느낌이 훨씬 강했다. 그녀의 연습 장면을 보고 블랙 스완이라는 타이틀이 많이 걸리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그렇게 그녀의 연습을 보고 있는데, 친구가 등장했다.

“오늘 데이트 있다더니, 일찍 왔네?”

강한결이었다.

요즘 지영과 더불어 가장 바쁜 3인 중 한 명이었다.

강한결은 영화 촬영에 들어갔고, 거기서도 엄친아의 재능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연기를 해본 적이 없는 강한결은 현장에서 모두가 놀랄 만한 연기력을 보여줬다. 연기로는 그래도 1년 정도 선배인 지영이 잠깐 현장에 가서 본적이 있었는데 얼마나 자연스럽던지, 청춘 로맨스의 주인공을 그냥 글이나 만화책 속에서 뽑아낸 것처럼 느껴졌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강한결에게 상대 배역의 여배우가 홀딱 반한 것까지 지영은 멀리서 보니까 전부 느꼈다.

“오늘만 오전만 있다고 했잖아. 넌?”

“나도 오늘 일찍 끝냈지. 지원이가 언니는 데이트하는데 자기는 집에 처박혀 있어야 한다고 해서.”

“하하.”

그 말에 지영은 낮게 웃었다.

대단하다, 진짜.

두 자매는 정말이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양유진은 용기를 한껏 내봐야 보고 싶어요…… 하고 속삭이는 게 전부인데 양지원은 대놓고 티를 냈다. 한창의 여고생들 있지 않나. 왜.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그리고 뻔뻔한. 양지원도 그랬다.

그녀는 강한결에게 푹 빠졌다.

그런데도 그걸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걸 지켜보고 있으면 괜히 웃음이 나올 정도로 귀여웠다. 정신연령을 굳이 매겨본다면 강한결은 30의 정신연령을 가진 자신과 비교해 전혀 떨어지지 않을 거다. 그런 강한결에게 떼를 쓰거나, 틱틱거리는 양지원을 보고 있자면 그냥 마냥 귀여웠다.

“촬영은 어때? 잘 되고 있어?”

“잘되고 있지. 연이 누나가 잘 이끌어주고 있고. 선배님들도 잘해주셔.”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였다.

이연은 촬영장의 기둥이었다.

그녀 또한 배우로 전향하고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영보다는 몇 배나 경험이 많았다. 그리고 연차가 10년, 20년 된 조연배우 중에는 안타깝게도 분위기메이커가 없었다. 선동일 배우님 같은 넉살을 가진 배우가 없어서 좀 경직이 된다 싶으면 어김없이 이연이 촬영장을 들쑤시고 다녔다.

이리저리 쏘다니면서 촬영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에너지를 마구 뿌리고 다녔다.

이연이 그렇게 촬영장의 활력소가 되어주다 보니 현장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덕분에 지영도 밝은 현장 분위기에 마음껏, 부담 없이 연기할 수 있었다.

“넌?”

“나도 잘되고 있지. 감독님이 벌써 다음 작품도 자기랑 하잖다.”

“역시 강한결.”

“뭐래. 역시 강지영이면서.”

“우리 서로 금칠은 그만합시다. 효중이는? 오늘 서울이라던데.”

“아마 쇼케이스 앞두고 최종 점검 중일걸?”

“잘되어야 할 텐데.”

지영은 좀 걱정이 됐다.

임효중은 지영이나 강한결과는 다르게, 그리고 성진이나 황석과는 다르게 음악계를 선택했다. 본래도 노래는 곧잘 했고, 좋아했다. 유도, 공부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학교 근처 아파트 상가 코인 노래방에서 풀 정도였다.

유일한 취미이자,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었다.

그래서인지 임효중은 아이돌 데뷔 제안이 왔을 때 정말 큰 흥미를 보였다. 평소에는 이성진의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가장 자기 의견이 크게 없었다. 무난하게 섞여서, 무난하게 흘러가는 걸 좋아했다. 황석처럼 말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해보고 싶단 말을 꺼냈고, 그 말로 아이돌 데뷔가 결정됐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준비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겨 중간에 계속 멈추고 하다가, 이제 쇼케이스를 앞두고 있었다. 그래서 불안했다. 친구를 못 믿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아이돌계의 현실을 알아서였다. 이연에게 들었었다.

아이돌이 되려고 노력하는 모든 얘들이, 자기 눈에는 화르르 불타고 있는 불덩이에 뛰어드는 불나방으로 보인다고.

방송에서나 화사하고 멋있어 보이지 그 이면에는 정말 힘든 일밖에 없는데, 그렇게 아이돌이 되어도 살아남는 건 한 해에 몇 팀 되지 않고, 그렇게 살아남아도 결국 몇 사람밖에 다시 못 살아남는 구조라고.

근본부터 뜯어고쳐야 하는 게, 아이돌이라고.

임효중은 단발성 프로젝트 그룹으로 데뷔하지만, 그래서 걱정이 됐다. 아이돌만큼 성공하기 힘든 것도 없기에. 친구의 첫 도전이, 부디 실패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잘할 거야. 효중이잖아.”

강한결의 말에 지영은 피식 웃었다.

“맞네, 임효중이지.”

“응. 우리 중에서 가장 안정적인 임효중.”

“하하.”

모두 위기가 있었다.

황석은 시합 내용 자체를 보면 위태위태할 때가 많았다. 먼저 점수를 빼앗길 때도 더러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경기를 보면 조마조마할 때가 많았다. 이성진은 이미 한방 깨진 적이 있었고, 강한결은 세계 청소년 선수권에서 크게 고생했었다.

지영은?

이번 아시아 선수권이나 쉬웠지, 그 이전 세계 대회 두 번은 연장 접전까지 피 터지게 해가며 이겼다. 그런데 임효중은? 모든 시합을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끝냈다. 가장 안정적이어서, 시합을 보는 내내 크게 걱정이 안 될 정도로 말이다.

그런 친구니까, 이번에도 잘해줄 거로 생각했다.

분명, 그래 줄 거였다.

앉아서 두런두런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1시간 넘게 훌쩍 지났고, 양지원의 연습이 끝났다.

“넌 오늘 어디로 가?”

“난 영화 보고, 밥 먹으려고. 넌?”

강한결의 대답에 지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강한결. 그런 친구에게 손을 흔들어준 지영은 일어나서 1층으로 내려왔다. 내려오자마자 쪼르르! 달려오는 양유진. 코끝이 빨갛다. 그리고 대조적으로 다른 곳은 전부 하얗다.

정말 희고, 고운 피부.

말랑말랑한…… 지영은 저도 모르고 양손을 양유진의 뺨에 댔다. 그러자 그녀의 눈이 토끼처럼 커졌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놀랐지만, 이내 푸근하게 웃었다. 눈꼬리가 쭉 처지면서 휘는데, 그 눈빛만 봤는데도 이 사람의 감정이 정말 고스란히 가슴으로 들어왔다.

아마, 아까 전 어머니와의 통화 때문인 것 같았다.

“차가워요.”

“추운 데 있었으니까요? 연예인님. 우리 오늘 뭐 해요?”

연예인님. 연예인님.

이 오그라드는 호칭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이제는 다른 호칭으로 부르면 뭔가 어색할 것 같을 정도였다.

“일단 밥 먹고, 음, 뭐 하죠?”

“시장! 시장 가요. 네?”

“시장이요?”

뜬금없이 시장?

그런데 양유진의 눈빛은 엄청 초롱초롱했다. 마치 그곳에 뭔가 있다는 것처럼.

“네!”

아이처럼 해맑은 이런 웃음도 너무 좋다.

“그래요, 그럼.”

시장 가는 게 뭔 어려운 일이라고.

밖으로 나온 곽현정 선배와 인사를 하고, 양지원의 외국인 안무가 코치와도 인사를 했다. 두 사람이 떠나고 나자 양지원이 나왔고, 비슷하게 강한결이 나왔다. 잠시 인사하고 커플끼리 흩어졌다.

지영은 양유진과 바로 그녀가 말한 집 근처 시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사실, 시장은 별것 없었다. 충주처럼 시장에 장이 서는 것도 아니었지만 양유진은 시장을 쏘다니면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사고 싶은 게 많은 것 같았지만, 그걸 사지는 않았다.

지영은 왜 시장에 오고 싶어 했는지 묻지 않았다.

사실 지영도 오랜만에 시장 특유의 정취와 냄새를 맡으니 기분이 좀 안정됐다. 지금도 어머니는 시장에서 채소를 파신다. 그리고 주말에 외박을 받아 갈 때면 항상 지영도 시장에 들러 어머니를 본다.

그래서 시장은 지영에겐 아주 익숙한 공간이었다.

양유진과 함께 늦은 점심을 시장에서 먹고, 시장 끝에 있는 작은 카페에 들렀다. 시장에서 오직 여기만 다른 감성을 가지고 있어서, 오히려 어색한 느낌이 났다.

“엄마랑 자주 연락한다면서요?”

“네? 아, 네. 혹시 싫어요?”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요.”

커피를 받아와서 자신을 지긋이 바라보며 웃는 양유진에게 그렇게 물었는데, 그녀는 오히려 걱정스러운 얼굴이 됐다. 그래서 지영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고마워서 그래요. 고마워서.”

“진짜요?”

“네, 정말요.”

지영도 최대한 자주 연락해야지, 하면서도 일주일에 많아야 두세 번이었다. 보통 한 번은 연락드렸었는데, 요즘엔 바쁘고 해서 한 번도 못 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사실 그건 핑계였다. 세상에서 가장 흔하고, 나쁜 핑계.

죄송해요, 바빴어요.

세상 모든 자식이 불효를 저지를 때 쓰는 마법의 단어와도 같았다.

죽을 만큼 바빠도 화장실 갈 시간은 있다. 할 생각이 있었다면, 분명 화장실에서라도 잠깐 짬을 내서 했을 거다. 그런데도 하지 않은 건, 머릿속에 없어서였다. 이걸 더 나쁘게 표현하면, 굳이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라고 할 수도 있었다.

과대 해석이라고?

바꿔서 생각하면 그런 말은 쏙 들어간다.

집에 필요한 게, 부모님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아무리 바빠도 연락을 하게 된다. 귀에 폰을 얹어놓고 타이핑을 하면서도 엄마, 김치 좀 보내줘. 이렇게 말이다.

이게 흔한 루틴이고, 지영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무려, 회귀까지 했는데…….’

그런데 그런 자신의 부족함을, 양유진이 채워주고 있었다.

“고마워요, 진짜.”

“에이…… 아니에요. 내가 좋아서 그런 건데…….”

“네?”

너무 작은 목소리라 제대로 못 들어 되묻자, 양유진이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눈빛에는 어떤 각오가 스며 있었다.

“저는요. 연예인님. 고아잖아요?”

“…….”

갑자기 이런 얘기를?

지영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대신 자세를 바로 하고,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마주 봤다.

“그래서 언제나 가족을 생각했어요. 음, 지원이 말고요. 엄마나 아빠요.”

“아…….”

절로 탄성이 나왔다.

그 말에서 얼추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떠올릴 수 있었지만, 지영은 그래도 가만히 있었다. 그녀의 고백 아닌 고백을 깨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그랬어요. 사실 저도 모르게요. 헤헤. 회사에도 좋은 분은 많으신데요. 엄마라는 느낌은 안 들거든요. 그런데…… 어머니는 막, 투정 부리고 싶고 그래요. 잘해주니까, 너무 따스한 눈빛으로 절 봐주니까 안겨서 막 애교부리고 싶고, 그러고 싶어져요.”

“…….”

“그러다가 막, 이런 생각도 들어요. 아, 이런 엄마 있으면 너무 좋겠다…….”

이건…… 그녀가 가진 아픔에 관한 얘기이고, 고백이다.

스스로 깨닫고 있는 것처럼 그녀는 부모의 정에는 애정 결핍 같은 게 있었다. 철이 들 무렵부터 혼자 동생을 책임져야 했었을 그녀다. 그러다 양지원에게 피겨에 관한 천재성이 툭 튀어나오며, 그녀는 자신의 일생 자체를 동생에게 바쳤다. 지금은 그때보다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지금도 그러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힘든 티를 내면, 동생이 힘들어할 것 같았을 테니. 아니, 실제로 그런 적도 있었을 테니 힘들어도 힘든 티를 내지 못했을 거다. 양지원도 그건 마찬가지였을 거다.

힘들다.

위로받고 싶다.

“으이구, 우리 딸 힘들었어? 이리 와, 엄마가 안아줄게.”

이런 말을 듣고 싶었을 거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이, 그녀의 곁에는 없었다. 동생의 곁에도 없었고. 그게 애정 결핍을 만들어낸 원인이었을 거다. 그런 감정이, 조금씩 어머니에게 연락하는 숫자를 늘리고, 의지하게 되는 빈도를 늘렸을 거다. 아마 자신도 모르게. 지금은 그 이유에 대해 자기 본인도 깨달은 거고.

지영은 안타까웠다.

아픈 얘기라서 가슴 한쪽이 꾹꾹, 저리기도 했다.

이런 사람이라서, 자신에게 왔었던 관심과 정이 멈췄던 게 무섭고 두렵기도 했을 거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한테도 그런 티를 냈고, 자신에게도 티를 냈었던 거고.

‘하아…….’

한숨이 나올 정도로, 자기 뺨을 한 대 쳐주고 싶을 정도로 못된 짓을 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바로 잡을 기회가 지금 당장도 있었으니까.

지영은 조금 애처롭게 웃는 양유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전화기를 꺼내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어! 아들! 하는 소리가 건너왔다. 지영은 양유진의 눈을 가만히 보면서,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엄마, 딸 같은 며느리로, 유진 누나는 어때요?”

놀라움에 점점 커지는 양유진의 눈을 보면서, 지영은 그녀를 향해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안다. 당장은 힘들다는 거. 이제 고작 자신은 고3이고, 아직 해야 할 일도 많다는 거. 친구들과의 약속도 있고, 그걸 이루기 전까지는 힘들다는 것 정도는 지영도 안다. 더불어 만약 지금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자신 말고, 양유진이 어마어마한 욕을 먹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지금은 아니다.

좀 더 나중.

적어도 몇 년 뒤.

하지만 이 말이, 지금 내민 손이 그녀에게 안정을 선사할 것이다.

강지영이란 남자가 양유진이란 여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함께하고 싶은지, 그 마음이 전달될 거고, 전달되면 그녀는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위한 어머니의 허락이고, 그걸 위해 내민 손이었다.

그 마음이 전달된 걸까?

양유진은 웃었다.

안심했다는 듯이.

그리고 지영처럼 천천히 손을 뻗어,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서로 잡은 맞잡은 두 손이 의미하는 건, 미래에는 반드시 지켜질 약속이었다. 그렇게 약속을 지켜, 지켜줄 거다.

나의 무사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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