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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87화 (187/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87화

187화. 나의 무사님(1)

인터뷰라…….

익숙한 게 인터뷰긴 하다.

하지만 지영은 물론, 황금세대는 공항 측의 협조를 받아 조용히 다른 길로 빠져나왔다. 기자들은 이번 대회를 석권한 황금세대에게 인터뷰를 꼭 따고 싶었겠지만, 당한 게 있는 황금세대는 애초에 모든 인터뷰를 거절하기로 했다.

이는 강한결이 내놓은 결론이고, 지영을 포함한 다른 친구들도 불만은 없었다.

“고생했다.”

뒷길로 빠져나와 미리 차를 대놓고 기다리던 임대성 코치의 말에, 다들 그제야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코치님 이거!”

“응? 이거 뭔데?”

“목에 한번 거셔야죠!”

“하하! 그래, 한번 걸어보자. 어이쿠, 다섯 개나 되니까 제법 무거운데?”

이성진이 거둬서, 금메달 다섯 개를 목에 걸어주자 너스레를 떨며 좋아했다.

아시아 선수권.

유럽이나 북미, 남미 쪽은 아니겠지만 아시아권에서 유도를 하는 선수들에게는 입상 자체가 영광인 대회였다.

비록 아시안 게임에는 밀려도, 그래도 이 대회에 출전하는 나라는 자국의 최고 선수를 내보낸다. 경험을 쌓는 대회가 아니라, 반드시 금메달을 딸 각오로 출전하는 대회였다. 그래서 그랜드 슬램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대회가 바로 아시아 선수권이었다.

그런 아시아 선수권에 제자 다섯이 출전해서, 금메달 다섯 개를 따왔다.

임대성 코치는 진심으로 즐거운 기분이었다.

아니, 좀 울컥한 표정이었다.

“어, 코치님 울어요?”

“야! 울기는 누가 울어. 고작 아시아 선수권 가지고!”

울컥한 것 맞네.

“평소에는 쓰지 않는 험한 말까지 쓰시는 거 보니, 울컥한 거 맞는 것 같은데요?”

지영도 그렇게 놀리자 임대성 코치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좀 울컥했다. 그동안 너희들 마음고생이 좀 있었냐. 그런데 이렇게 나가서 금메달을 따가지고 오니 기분이 참 좋다.”

“에이, 이걸로 그러시면 어떡해요? 내년에는 올림픽 금메달 목에 거셔야 할 건데.”

“하하, 그렇게 되냐?”

“네, 그렇게 되는 거죠!”

이성진의 말에 임대성 코치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반가운 해후는 이걸로 끝.

지영과 친구들은 트렁크에 짐을 싣고, 차에 올랐다. 안전띠를 매자 부드럽게 출발하는 차. 지영은 차가 출발하자 건너편을 보면서 이성진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올림픽이라…….’

올림픽은 당장 내년이다.

지영이 회귀했던 해에 올림픽이 열렸고, 작년에 아시안 게임이 열렸다. 그리고 내년에 올림픽이 다시 열린다.

2024년 파리 올림픽.

아직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딴 건 아니었다. 이번 대회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체급별로 확보한 건 맞지만, 아직 한국 내 경쟁이 남아 있었다. 출전권을 따고도 한국 내에서 경쟁에 밀리면 당연히 올림픽 출전은 물 건너간다.

하지만 한국에서 밀릴 것 같진 않았다.

다만, 올림픽이라는 단어는 유도 선수에게는 일종의 종착점이었다.

이상향이자, 환상향이었다.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선수들이 출전하길 소원하고, 메달을 목에 걸길 소망하지만 아무에게나 그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아직 지영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유도를 시작하면서 당연히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했던 옛날의 자신도 떠올랐다. 꿈 많은, 철없던 시절의 자신도 올림픽만 열리면 TV 앞에 앉아서 떠날 줄을 몰랐다.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보며 자신도 저 자리에 서기를 소망했었다.

또래보단 머리가 일찍 여문 지영이 그랬을 만큼, 올림픽은 스포츠인들에겐 축제이자 소망이고, 꿈 그 자체였다.

그런 올림픽이 이제 거의 1년 남았다.

출전권은 준비됐으니, 이제는 그걸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경쟁에 들어가야 할 때였다.

‘하지만 그전에…… 해야 할 게 있네.’

지영은 유도 선수지만, 또 다른 직업이 있었다.

바로 배우.

한 편의 드라마를 찍으면서 배우로 데뷔를 했고, 이미 차기작 계약이 끝나 있는 상태였다. 선발전과 아시아 선수권이 끝났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드라마 준비에 들어갈 때였다.

물론 당장은 아니다, 당장은.

며칠 휴식 뒤에, 그때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스케줄이 이미 잡혀 있었다. 그리고 이건 지영뿐만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 전부 마찬가지였다.

‘성진이는 이제 더 런닝 촬영 들어갈 거고, 효중이도 한 달 막바지 준비하고 데뷔, 한결이도 영화 촬영 바로 들어갈 거고, 석이는 차기작 준비한댔지.’

유도 선수이면서 예능인이자, 가수, 배우가 되기로 한 친구들은 자신만큼 앞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자신이 바랐던 대로 말이다.

‘다들…… 잘됐으면 좋겠다.’

고통은 없이, 이미 충분히 아픈 일을 겪었으니 이제는 꽃길만 걷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지영은 다른 친구들처럼 잠에 스르륵, 빠져들었다. 그리고 청주에 도착할 때까지, 죽은 듯이 잤다.

청주에 도착한 지영은 자신을 보자마자 눈물을 뚝뚝 흘리시는 어머니의 품에 안겼고, 금메달을 목에 걸어드렸다.

* * *

-황금세대 전원 금메달에 네티즌 환호!

-도쿄 올림픽 때 일본의 기분이 이랬을까?

-인터뷰조차 거부한 황금세대의 패기는, 정당한가? 정당하다!

-천재들이 써 내려간 드라마는 완벽했다!

-일본의 유도 성지에서, 일본의 유도 영웅이 지다!

-제왕 오노 쇼헤이를 반칙패로 꺾은 천재 강지영의 마지막 표정은, 복수를 뜻했다!

-통쾌하다! 열도를 메친 금빛 메치기가!

주르르!

첫날에도 꽤 많은 기사가 올라왔지만, 황금세대 전원이 금메달을 따고 난 뒤엔 더욱 많은 기사가 가히 폭포처럼 쏟아졌다.

기이한 현상이었다.

단언컨대, 유도라는 종목에서는 절대 벌어지지 않았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 물론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에서는 기사가 많이 올라오긴 한다. 하지만 이렇게 마치 신드롬처럼 올라오진 않았다.

왜?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이나 유도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다른 종목의 기사도 함께 올라와서, 이렇게 인터넷 자체를 덮진 못한다. 그런 경우가 있다면 아마 월드컵 하나뿐일 거다. 그런데 그런 불가능한 일을, 고작 아시아 선수권 대회 하나가 해냈다.

그것도 유도라는 비인기 종목과 평범한 종목의 중간쯤에 있는 스포츠가 말이다.

-대박이다…… ㄷㄷ

-전원 금메달 실화냐……?

-솔직히 다섯 중에 금 두 개만 나와도 성공이라고 봤는데…….

-미쳤다. 진짜…….

-한일전 전원 승리임. 심지어 일본 선수들 대부분이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임.

-폼이 좀 떨어지긴 했어도 그래도 금메달리스트들인데…… 그걸 다 깨버리네. 와…….

-중계 보면서 진짜 설마설마했는데…… 전원 금메달 ㅋㅋㅋㅋ

-진짜 미치긴 미친 거임. 와. 이게 아시아 선수권이긴 해도, 일본 애들이 전원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 내보냈다는 거에 더 의미를 둬야 함.

-그것도 일본 무도 성지에서 ㅋㅋㅋ

-일본 무사도 정신 뎅강!

-아니 근데, 한 대회에서 한 나라가 저렇게 쓸어가는 게 가능한가요?

-불가능할 건 뭐임? 도쿄 올림픽 유도 종목에서 일본이 따간 금메달이 우리나라 금메달 총개수보다 많은데?

-맞음. 진짜 그때 일본 성적 미쳤었지…….

-그리고 다음 해 아시안 게임도 싹 쓸어갔고, 세계 선수권도 싹싹 쓸어갔고.

-그런데 아시아 선수권서 싹 털림 ㅋㅋㅋㅋ

-왕조구축 2년 만에 와르르 ㅋㅋㅋ

-속이 다 시원ㅋㅋㅋㅋ

네티즌들의 반응도 굉장히 온화했다.

대체로는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일본의 유도는, 일본이란 나라의 스포츠 중 심장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축구나 야구에도 신경을 많이 쓰지만, 유도는 자기들이 종주국이라 지원 자체가 달랐다.

축구, 야구를 제외하면 일본의 학교에서 가장 많은 선수를 보유한 종목도 유도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본은 유도에 언제나 진심이었다.

너무 진심이어서,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일 정도였다. 결과 우선 주위. 결과가 금메달로 나올 수만 있다면 과정 따위는 진짜 그냥 어찌 되든 무시해 버리는 인간들이다. 그러나 결국엔 성공했다.

그게 도쿄 올림픽 결과고, 아시안 게임 결과고, 세계 선수권 결과로 나왔다.

그래서 요즘 일본은 아예 자신들이 유도 왕조를 세웠다며 떠들었다.

세계의 패자가 되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치켜세워 올렸는데.

이번엔 결과가 아주 처참했다.

그러니 미국, 중국, 러시아, 멕시코, 하다못해 중동의 이름 없는 나라한테는 져도 일본한테만 이기면 된다는 게 스포츠를 즐기는 모토인 대한민국 네티즌들은 당연히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야후 가서 아시아 선수권 기사 찾아봤거든? 리얼 한 개도 없음 ㅋㅋㅋㅋ

-몇 개 있는 것 같던데 그것도 다 내림 ㅋㅋㅋ

-쪽국이 쪽국했는데 뭐 새삼스럽게 ㅋㅋ

-진짜 치사한 새끼들 ㅋㅋㅋ

-근데 왜 없는 건데요?

-졌으니까 ㅋㅋ 그것도 그냥 진 게 아니라 처참하게 털렸으니까 자국민들 모르게 하려고 기사 다 내린 거임 ㅋㅋㅋ

-리얼 치사한 새끼들임 진짜 ㅋㅋㅋ

-하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지 ㅋㅋ 아 심심한데 일본 커뮤 가서 깽판 좀 치고 와야겠닼ㅋㅋㅋ

-적당히 치고 와ㅋㅋ 애들 칼 물고 달려 들라ㅋㅋㅋ

-총알은 충분함? 캡처한 거랑 짤 만든 거 꽤 되는데 좀 드림?

-ㅇㅇ 좀 부탁함 ㅋㅋ

한국은 축제였다.

비록 아시아 선수권이지만, 일본을 완벽하게 압도했다는 사실이 그들에겐 그냥 축제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정작 이런 축제를 선사한 장본인들은, 그냥 덤덤했다.

특히 지영은 좋기는커녕, 오히려 심각한 표정이었다.

나의 무사님 미팅 때문에 수업에 들어갔다가,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임은진이 한 말에 지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받았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어요?”

“응, 집 주소까지 알려져서 계란 던지고 쓰레기 던지고, 오물 같은 거 투척하고 난리도 아니야.”

“하…….”

미치겠다, 진짜.

그 나라 인간들은 대체 왜 그럴까?

지영은 일본의 이지메 문화가 매우 큰 문제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을 이지메 하기도 했을 정도로, 괴상한 민족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지영의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문화였다.

“사오리는요? 괜찮데요?”

“응, 강한 아이더라. 괜찮대. 자기가 잘못한 것도 알고 있고. 그 때문에 그냥 감수할 거래. 일단은.”

이시카와 사오리의 연락처는 임은진이 그날 하루 만에 알아냈다.

그리고는 따로 연락도 하는 것 같았다. 지영은 그래도 사오리의 멘탈이 튼튼한 것에 감사했다.

악플을 당해본 사람의 입장으로 보면, 이런 건 정말 쉽게 멘탈을 잡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나뿐만이 아니라 내 가족까지 악플에 시달리거나 괴롭힘을 당하면 진짜 사람 환장한다는 게 뭔지 알게 된다.

그런데 사오리는 잘 이겨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영아. 이번 문제 아무래도 좀 심상치 않아.”

“네, 왜요?”

“일본이란 나라가 너도 알다시피, 좀 그렇거든. 사오리는 괜찮을 수 있는데 그 왜 도복에 사인받으려고 온 동생 있잖아.”

“아, 문학소녀요?”

“문학소녀?”

“네. 딱 그런 이미지던데요? 유도소녀 동생 문학소녀.”

“풉, 어울리는 별명이네. 그런데 벌써 그 아이도 이지메 당하나 봐. 얘가 워낙에 강단이 있어서 괜찮기는 하겠지만…… 만일이라는 게 있잖아? 애들 문제에 어른이 끼는.”

“설마 그 어린 애한테 어른들이 해코지한다는 거예요?”

“굳이 어른까지 갈 필요도 없어. 고등학생. 아니, 중학생만 돼도 충분히 위험해. 특히 그 아이, 유리코는.”

유리코.

이시카와 유리코.

유도소녀 사오리의 동생이었다.

유리코는 초등학교 6학년이고, 사오리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한국 나이로 치면 11살, 그리고 16살이었다.

사오리야 유도를 배웠지만, 유리코는 완전 아이다.

태어나서 무거운 걸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 보이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겐 악한 마음을 품은 중학생, 고등학생은 매우 치명적인 짐승이었다.

“그런 조짐이 보여요?”

“응, 내가 알아봐 달라고 해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조사해 준 친구가 있는데 벌써 막 날 잡아서 찾아가자고 하는 애들도 있나 봐.”

“…….”

이거…… 심각한데?

그게 사실이라면, 결코 그냥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급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임은진이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친구에게 부탁해 사설 경호원 붙여뒀어.”

“하아…….”

다행이다.

혹시 모를 일을 임은진은 확실히 방비해 뒀다. 새삼 임은진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고, 고마운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알지? 이거 미봉책인 거. 언제까지 지켜줄 수는 없잖아.”

“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음……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쉽지는 않을 거야.”

“뭔데요?”

“귀화.”

“아…….”

귀화.

눈이 번쩍 뜨였다.

‘재일교포랬지?’

하지만 이건 지영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삶의 터전 자체가 다 그곳에 있을 사람들인데, 이런 문제 한 번 생겼다고 귀화를 하게 한다?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좀 더 알아보니까 이시카와 사오리 걔 있잖아. 유도 잘하더라.”

“네?”

“고1 때부터 전 일본 유도대회를 휩쓴 천재.”

“…….”

“안자이 히카리의 뒤를 잇는 천재! 대형신인 등등. 수식어가 좀 화려해. 그래서 사람들이 오히려 더 몰려가서 테러하는 거고. 한국으로 따지면 지영이 네가 고1 때 일본 만세! 이런 거나 같으니까.”

“아…….”

확 이해됐다.

하지만 이해는 됐어도, 자신이 이시카와 사오리의 귀화를 추진하는 건 아무래도 조심스러웠다.

‘문제가 하나둘도 아니고, 가장 큰 본인의 의사가 중요한데…….’

그런 생각을 막 하는데.

“그리고 본인도 원해.”

“네?”

“본인도 한국에서 유도할 수 있으면, 하고 싶대. 이번에 다친 것도, 속사정이 좀 있나 봐.”

“…….”

그래?

부상이 훈련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다고?

“이러면 또 얘기가 달라지네요.”

“그렇지?”

“네.”

지영은 안자이 히카리의 뒤를 잇는 대형 천재, 이시카와 사오리의 귀화 추진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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