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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86화 (186/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86화

186화. 아시아 선수권(13)

경기가 준결승을 남겨둔 시점까지 진행되면서, 많은 팀이 짐을 쌌다. 패자부활전에도 올라가지 않은 팀은 더는 이곳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팀이 가진 않았다.

지켜보는 것도 훈련의 일종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떠났다는 건, 지켜보고 싶지도 않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런 팀이 있었다.

음, 중국이 그랬다.

중국 팀은 전원 탈락했다.

그래도 아시아권에서는 일본, 한국에 이어 최소 3인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중국의 선수들은 전원 1, 2회전에서 탈락했다. 임효중과 황석, 그리고 강한결이 전부 쳐냈다. 그리고 +100은 홍콩 선수에게 떨어졌고.

여자부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동권 국가에 골고루 털렸다.

그 결과 중국은 4강은커녕 패자부활전에 한 선수도 걸쳐놓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나라는 제법 많았다. 그래서 다들 짐은 쌌지만, 경기장을 떠나지는 않았다. 지켜보는 훈련. 강자의 시합을 보는 것도 훈련이라는 생각으로 몇몇 나라를 제외하면 다들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중국은 떠났다.

자존심에 아주 깊은 상처를 입은 채.

그렇게 시작된 준결승.

두 개의 경기장에서 준결승이 진행되고, 준결승이 끝나고 나면 패자부활전이 진행되고, 잠시 휴식 뒤 다시 패자결승, 그리고 금메달 결정전이 시작된다.

준결승 첫 게임은 당연히 여자부였다.

그리고 여자부는 세 명의 선수가 그래도 전부 준결승에 올라갔다. 그리고 뭔, 누가 조작해서 짠 것처럼 전부 일본과 만났다.

그리고 전원, 아쉽게도 일본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일본 여자 유도는 세계최강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단순히 평가만 그런 게 아니라, 일본 여자 유도는 최강이었다. 지영이 보기에도 일본 여자 유도는, 한국보다 최소 한 단계 위였다. 강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특별함이 있는 유도.

도쿄 올림픽 당시 남자도 남자였지만, 여자 유도도 세계를 압도했었다.

남녀 통틀어서 금메달의 절반을 털어간 것도 우연이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벽을, 한국 여자 유도는 넘지 못했다. 안자이 히카리는 나오지도 않았는데도, 일본의 여자 유도 신성들은 나오지도 않았는데도, 벽은 높고 견고했다. 그 벽을 지켜보며, 지영도 그렇게 이성진도 그렇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굳히기, 진짜 장난 아니긴 하다.”

“그러게. 각이 안 나오는 것 같은데 저걸 돌려서 누르네.”

-57 체급에 나간 박지수가 일본의 선수에게 눌려서 결국 한판을 빼앗겼는데, 그 방법이 정말 기가 막혔다. 마치 주짓수를 보는 것 같은…….

아.

“주짓수네.”

“그치? 어째 그런 것 같더라.”

굉장히 독특하게 감아서 굴렸는데, 자세히 기억을 떠올려 보니 예전에 한 번 주짓수 여자 고수한테 당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 지영도 어? 하다가 넘어갔는데, 다시 당했을 때는 방어를 하긴 했지만, 예상 못 한순간에 확 들어가면 체급과 성별을 넘어서 상대를 누를 수 있는 기술이었다.

박지수는 거기에 제대로 당했다.

몸이 마치 새우처럼 말려서, 끙끙거리다가 결국 한판을 빼앗기고 말았다. 박지수는 일본 유도에 정말 익숙한 선수인데도 그렇게 졌다.

그렇게 어제 안승희 빼면, 결국 여자 유도는 일본을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지영은 실망하지 않았다.

‘괜찮아. 한 명이라도 넘어선 선수가 나왔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이제 이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세 명이 되게 하면 된다. 지영은 남자부처럼 여자부도 세대교체가 되고 있는데, 여자팀 선배들이 경험과 실력을 좀 더 쌓으면 일본과도 충분히 해볼 만할 것 같았다.

‘특히 굳히기 빼면, 서서 하는 건 거의 엇비슷해.’

참 안타깝게도 여자 선배들은 전부 굳히기에 당했다. 그런데 굳히기를 빼놓고 보면 서서는 거의 비슷했다. 잡기는 지영뿐만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이번 시합에 나오기 전에 중점을 두고 훈련했다.

그런 피나는 훈련 끝에, 남자팀도 그렇고 여자팀도 그렇고 잡기가 정말 많이 좋아졌다.

잡기에서 밀리지 않으니, 기술이 살아났다.

제대로 잡기만 하면 언제고 한판을 던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니 자연스레 자신감도 따라붙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자신감이 있고 없고는 시합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 차지하기 때문이었다.

“효중이 들어간다.”

“임효중 파이팅!”

파이팅!

지영의 생각은 임효중의 등장에 멈췄다.

“임효중 파이팅!”

지영은 크게 외쳐 친구를 응원하고는, 상대를 확인했다.

상대는 카자흐스탄의 랭커였다. 심지어 저번 대회 우승자였다.

졸로예프 블라디미르.

도쿄 올림픽은 자국 내 선수에게 밀려 출전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확실한 세계 랭커였다. 세계대회 성적도 만만치 않은. 일본 선수와 함께 이번 대회 우승 후보였다.

하지만 지영은 친구를 믿었다.

졸로예프는 분명 뛰어난 선수지만, 지영은 임효중이 졸로예프에게 질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가장 안정적인 경기력도 경기력이지만, 애초에 졸로예프와 임효중의 실력 자체를 비교한다면 지영이 봤을 땐 임효중이 분명 위였다. 아, 피지컬 하나는 졸로예프가 위지만, 유도는 피지컬로 승부가 나는 스포츠는 아니었다.

‘기술이 없지.’

피지컬에 더해, 실력이 뒷받침되어야만 승리를 따낼 수 있는 게 유도였다.

이런 것들을 면밀하게 따졌을 때 분명 임효중이 졸로예프보단 위였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지영은 부디, 임효중이 이번에도 최선의 경기력을 보여주길 바랐다.

시합이 시작됐다.

임효중은 오른쪽 자세였다.

하지만 임효중도 그렇고, 지영도 그렇고, 황금세대 전체가 그렇듯 자세는 사실 의미가 없었다. 오른쪽, 왼쪽 전부 시원시원하게 기술을 걸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졸로예프도 오른쪽이고, 허리기술이 그래도 베이스라 서로 맞잡은 상태가 됐다.

양쪽 다 불안한 자세. 그래서 현대 유도에서는 솔직히 잘 나오지 않는 자세였다. 이런 자세는 어느 한쪽이 제대로 찍거나 걸면 그냥 게임이 끝나기 때문에 마음이 약한 선수가 보통 자세를 바꾸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임효중은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졸로예프도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이 자세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러니 어느 쪽이 우위에 있다고 할 수도 없었다. 다만, 힘이 더 좋은 졸로예프가 조금은 더 유리하긴 했다.

이런 자세에서 힘이 좋다는 건 버티기에도 좀 더 유리하고, 기술을 걸기에도 좀 더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기술을 잘 걸 수 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시작은 탐색전인지 임효중도, 졸로예프도 서로 무리해서 기술을 걸진 않았다. 그래서 그쳐 후, 서로 지도를 하나씩 받았다.

이번 훈련 기간 동안 임효중을 전담으로 마크했던 장필재 수석코치가 손동작으로 코칭을 내렸다. 너무 거리를 주지 말고, 적당히 뜯어내면서 유지하라는 지시였다. 임효중은 고개를 끄덕이곤 곧장 하지메 사인에 맞춰 다시 졸로예프와 맞붙었다.

그리곤 지시대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소매 깃을 툭툭 뜯어낸 뒤에, 안뒤축을 툭 쳤다.

그런데 그 한 방에 자세가 확 무너졌다.

임효중이 소매 깃을 뜯어내자 더 깊숙이 잡으려고 들어오다가 제대로 안뒤축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는?

한판이었다.

비누를 밟은 것처럼 미끄러지는 졸로예프를 정석대로 찍어 눌러 그대로 등이 닿게 했고, 임효중은 딱 40초 만에 한판을 따냈다. 준결승치고 너무 허무한 결과였지만, 그건 졸로예프나 그 팀 사람들에게나 그렇고 지영은 그저 좋았다.

“와아아! 임효중 멋있다!”

“효중아 잘했어!”

짝짝짝!

지영도 친구의 결승 진출에 환히 웃으면서 박수를 보냈다. 정말 굿 타이밍이었다. 상대가 목을 보고 들어오느라 하체를 신경 쓰지 못한 그 짧은 틈을 노려서 낚시걸이처럼 깊게 친 안뒤축은 진짜 예술적으로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렸고, 지읏기가 더해지자 졸로예프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발라당 누워버렸다.

임효중이 팬서비스 차원으로 손을 흔들고는 밖으로 나왔고, 몇 분 뒤 강한결이 들어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판승의 행진.

강한결도 우즈벡 선수를 상대로 2분을 넘기지 않았고, 황석도 마찬가지로 호주 선수를 1분 만에 업어치기 되치기 한판을 날렸다.

황금세대.

전원 결승 진출.

최소 은메달 확보였다.

하지만 황금세대 중 그 누구도 은메달로 만족하는 성격들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다들 소탈하지만, 대회에 있어서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강하게 금메달을 욕심낸다. 지영은 조금 다르게 시합 그 자체에 욕심을 내지만, 그래도 금메달을 향한 열정만큼은 진심이었다.

그런 황금세대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전원 결승전에 올랐다.

쿠웅!

으아아!

아아…….

그리고 일본 선수를 무참히 짓밟고서 결승전에 진출한 장대호까지.

이튿날 남자부는 한 게임을 빼고, 전부 한일전이었다.

여자부는 비록 분전했으나 일본에게 덜미를 잡혀 결승 진출에 실패했지만, 그래도 남자부는 전원 결승에 진출했다.

그래서 무도관의 열기는, 기이하다 싶을 정도로 무거웠다.

아주 소수의 팬을 제외하곤, 당연히 자국 선수를 응원하는 일본 관중들이 전부였다. 그 관중들은 다시금 성사된 한일전이 기대되면서도, 어제의 참패 때문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장내의 분위기는 뜨겁기도 뜨거웠지만, 이러한 이유들로 무거웠다.

패자전이 진행됐다.

3위를 향한, 마지막 기회라 선수들은 더욱 이를 악물고 시합에 임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들이 이어졌다. 너무 압도적이었던 준결승보다, 더욱 박진감이 넘치는 시합이었다. 승자와 패자가 나뉘고,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었다. 그렇게 패자전이 끝나자 패자결승 뒤, 결승전이 시작됐다.

경기는 당연히 여자부부터였다.

가장 낮은 체급부터 패자결승, 결승전이 이어졌고 예상대로 여자부는 일본이 2경기를 금메달을 가져갔다. 한 경기는 몽골의 선수가 일본 선수를 이기면서, 금메달의 주인이 됐다.

이윽고 시작된 남자부 시합.

패자전이 시작되기 전 지영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친구들의 표정은 차분했다.

결승전을 앞뒀으면 좀 감정이 얼굴에 드러날 법도 한데, 임효중도 그렇고 강한결도 그렇고, 황석까지 전부 차분한 기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영은 그런 친구들에게 말을 걸까 하다가, 그냥 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충분히 준비가 끝난 친구들에게 시합 잘해라, 지면 안 된다. 이런 말을 하는 건 오히려 집중 깨는 효과를 가져올 것 같아서였다.

생각해 보면 어제 친구들도 그랬다.

짧게 점심을 먹을 때 잠깐 내려왔고, 그 이후에는 오지 않았다.

그건 선수의 마인드컨트롤을 깨지 않기 위한 배려였다.

‘믿는다.’

그래서 지영도 그냥 좀 떨어져서 친구들을 보기만 했다.

81체급 패자결승이 끝나고, 임효중이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 눈이 마주친 임효중은 지영에게 가볍게 웃어줬다. 마치 자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웃음 같아서 지영도 가만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줬다.

임효중의 결승전 상대는 나가세 타카노리,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다.

리우에서 동메달, 그리고 도쿄 올림픽에서 혼성 은메달까지 있는, 일본 유도의 영웅 중 한 명이었다. 비록 2연패를 달성한 오노 쇼헤이에게는 이름값이 좀 떨어지는 감이 있지만, 적어도 이 체급에서는 확실한 패자였다.

그런 나가세 타카노리지만.

쿠웅!

임효중은 짝 잡은 상태에서 딱 한 번 차올린 허벅다리 후리기로 나가세 타카노리를 한판으로 돌려세웠다. 지영도 제대로 못 봤을 정도로 벼락처럼 찬 허벅다리 후리기 한방이, 승패를 그냥 결정지어 버렸다.

그렇게 시작된, 일본 왕조의 몰락.

밭다리로 한판을 따낸 강한결은 1분 걸렸고, 황석은 4분 게임을 전부 했지만, 울프를 상대로 절반을 따내 승리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대호까지.

이튿날 남자부 경기도, 한국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남자부 금메달 6개, 동메달 1개.

여자부 금메달 1개, 동메달 3개.

근래에 들어 가장 화려한 성적표를 가진 유도 대표팀은, 이튿날 한국으로 입국했다. 그리고 입국한 그들의 앞에는 기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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