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77화 (177/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77화

177화. 아시아 선수권(4)

본래는 8강부터지만, 중계 준비가 너무 일찍 끝났다.

그리고 마침 강지영이 2회전 준비 중이기도 해서, MBS는 곧장 중계를 시작하기로 했다.

“네! 2년 만에 다시 이곳! 도쿄 무도관에서 인사드리게 된 배영웁니다! 그리고 옆에는 한국 유도의 또 다른 전설! 한국체대 교수이신 조인선 해설위원님이십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조인선입니다.”

“아, 정말 오랜만입니다. 후학 양성에 힘쓰신다고 해설 은퇴를 하셨는데, 이렇게 다시 봅니다. 하하.”

“전기정 교수님이 하도 부탁하셔서, 어쩔 수 없이 은퇴를 깨고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인선.

한국체대 교수이자, 한국 유도의 전설 중 한 사람이었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여자 유도의 몇 안 되는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하하, 다행이네요. 혼자 중계해야 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조인선 해설위원께서 나와주시니 마음이 아주 든든합니다.”

“제가 중계는 그렇게 소질이 없어서, 혹시 험한 말이 나가도 이해 부탁드립니다.”

“괜찮습니다. 개나 씨, 존으로 시작하는 단어만 조심해 주시면 됩니다.”

“어머, 저를 어떻게 보시고?”

“죄송합니다. 전기정 감독님께서 조심하라고 해서……. 하하.”

“…….”

시작부터 티키타카가 만만치 않았다.

배영우는 주르륵 올라가는 채팅을 보면서 시합 준비 중인 강지영도 한 번 보고, 멘트를 이어갔다.

“조인선 해설은 이곳 무도관에 와본 적이 있으십니까?”

“가노컵 당시에 일본에 오긴 했는데, 아쉽게도 그때는 당시 일본에서 유명했던 록 그룹이 공연을 해서요. 경기는 다른 곳에서 했었어요.”

“그렇군요. 부도칸. 한국어로는 무도관. 이곳, 일본의 성지이죠?”

“맞습니다. 일본 유도, 그리고 무도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죠.”

“그렇군요. 무도관. 아, 우리 선수들 잘…… 자! 강지영 선수가 지금 입장합니다. 2회전, 강지영! 2회전에서 강적을 만났어요. 오노 쇼헤이! 일본 유도의 영웅이죠?”

“일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평가받는 선수 중 한 사람입니다. 과하게 말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 정도의 업적을 세운 선수입니다.”

“네, 그런 오노 쇼헤이 선수와 무도관의 참사를 빚어낸 적수와 우리나라 강지영 선수가 드디어! 무도관에서 리벤지 메치를 갖게 됩니다. 선수 입장. 경기 시작…… 허벅다리!”

“꺅! 한판! 한파안!”

두 사람은 놀라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지만, 주심은 손을 들지 않았다.

“아! 앞으로 떨어졌습니다! 아깝습니다!”

“아…….”

시작하자마자 들어간 기술에 벌떡 일어났지만, 점수가 나지 않아 두 사람은 허탈한 표정으로 다시 의자에 앉았다.

“큼, 갑자기 크게 소리쳐서 죄송합니다. 기술이 워낙 크게 들어가…… 하하. 한판인 줄 알았는데 돌아도 너무 돌았군요.”

“네, 강지영 선수. 시작과 동시에 유효 포인트를 땄네요. 선발전에서 봤었지만, 이 선수 유도 참 잘해요. 호호.”

“하하, 그간 강지영 선수를 두고 말이 많지 않았습니까?”

“다른 걸 떠나서, 실력 하나는 진짜배기예요. 저는 이원일 용인대 교수 이후로 73에서 이 정도로 잘하는 선수를 본 적이 없거든요. 아마 오늘, 크게 사고를 쳐줄 것 같습니다.”

“네! 저도 꼭 그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시 경기 시작됩니다. 아, 양 선수. 잡기 싸움이 없어요. 서로 잡기 싸움 없이 바로 깃을 교환해 잡습니다. 올림픽부터 아시안 게임까지, 많은 경기를 중계했는데 또 경량급 경기에서 잡기 싸움이 없는 건 또 처음 봤습니다.”

배영우는 이에 대한 설명을 바란다는 눈빛을 조인선 교수에게 보냈고, 조인선 해설은 용케 그 뜻을 파악하고 바로 말을 이어갔다.

“강지영 선수는 원래도 잡기를 안 하는 선수 중 하나고요. 유명해요. 방어 유도를 하는 걸로. 그에 반해 오노 쇼헤이 선수도 상대를 압박하면서 구석에 몰아 잡는 스타일을 즐겨 사용하죠. 이걸 두고 어떤 이들은 오노의 사냥법이라고도 해요.”

“그렇군요. 자, 맞잡은 두 선수. 아, 밀리지 않네요. 강지영 선수. 여유도 있어 보입니다.”

“네, 차분함이 장점인 선수죠. 어떤 상황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아요.”

“그렇죠. 인터뷰할 때 옆에서 봤는데, 정말 차분하더라고요. 아! 허벅! 아, 모션입니다!”

“잡고 나와야죠! 네! 좋은 포지션을 잡았습니다!”

“오노 쇼헤이! 엎드리네요. 아, 이건 반칙 아닌가요?”

“네, 수세에 몰리긴 했는데 여기가 무도관이다 보니…… 호호,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

그걸 중계방송에 대놓고 얘기하는 조인선 교수.

그녀의 성정이 어떤지 딱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런데 지도가 들어갔다.

“어? 지도? 오노 쇼헤이 선수에게 지도를 주네요?”

“음, 저도 좀 의외네요. 아마 심판이 오노 선수에게 악감정이 있는 게 아닐까요? 호호! 잘하지만, 적이 많은 선수거든요!”

“아, 그렇군요. 경기 다시 시작됩니다! 강지영 선수가 우세한 상황인데요! 두 선수 이번에도 잡기 싸움 없이 서로 잡습니다. 아, 강지영 선수! 이번에도 페인트 동작을 넣어서 유리하게 잡…… 허벅다리!”

“허리후리기! 절반! 절반이에요!”

“강지영 선수! 일본의 무도의 성지에서 일본 유도의 영웅을 매칩니다!”

“아직! 2분 남았죠! 최선을 다해야 해요!”

배영우는 들떴다.

아시안 게임, 올림픽, 세계 선수권까지.

일본에게 박살 나는 우리나라 선수들을 연호했어야 했던 그때는 정말 너무 힘들었었다. 하지만 근 2년 만에 처음으로 시원하게 먼저 기술을 성공시키는, 우리나라 선수의 이름을 흥분해 부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그를 들뜨게 했다.

그렇게 막, 다시 멘트를 이어가려는 찰나 작가가 급히 스케치북에 뭔가를 적어 보여줬다.

[시청률 14%!]

허…….

그에 저도 모르게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낸 배영우.

그는 깨달았다.

지금 이 대회가, 올림픽도 아니고 아시안 게임도 아닌 아시아 선수권인 이 대회가,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음을. 그래서 그걸 깨닫게 된 순간, 그는 비장미가 넘치는 눈빛으로 돌변했고, 목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중계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잘하고 있습니다! 차분하게! 차분하게 풀어나가야 해요!”

“맞아요! 강지영 선수 조금만 더 힘내주세요!”

일본 무도의 성지.

적진에서 크게 소리치는 기분은…… 짜릿했다.

중계하는 맛.

그는 그 맛에 심취해, 신이 들렸다.

* * *

1분 20초.

지영은 허벅다리 모션에 가볍게 안뒤축을 때렸다. 그러자 오노 쇼헤이의 신형이 다시 주춤했다.

오노 쇼헤이는 한 방을 노리고 있었다.

무너져가는 자존심을 세울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는 것처럼 딱 한 방을 노리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줬다. 도복 깃을 우악스럽게 잡은 손과 자세를 보면 빗당겨치기나 허리채기, 허리껴치기를 노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지영은 철저하게 하체를 공략했고, 거리를 뒀다.

오노 쇼헤이의 신장은 170이다.

그에 비해 지영의 신장은 179다. 스트레칭까지 전부 끝내고 쟀을 땐 179, 8이니까, 거의 180이라고 봐도 됐다.

73체급에서 신장 180은 어마어마한 키였다.

보통 이렇게 신장이 큰 선수는 상, 하체 힘이 부족한데, 지영의 피지컬도 타고나서 힘도 어마어마했다. 거기다가 임대성 코치의 철저한 훈련 프로그램 아래, 근력을 체급에서 올릴 수 있는 한계치까지 올렸다.

그래서 지영은 진짜 ‘장사’급의 선수가 아닌 이상 힘으로는 밀려본 적이 없었다.

오노 쇼헤이도 마찬가지였다.

순발력, 힘, 그 어떤 것도 이 선수에게 밀린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이는 자신감으로 변했고, 이 자신감이 원천이 된 시합 운용이 오노 쇼헤이의 기술 자체를 시작도 하기 전에 끊어냈다.

지영의 시간.

지영이 절반을 먼저 땄을 때를 친구들이 일컫는 말.

철저한 운용을 통해 상대의 기술 자체를 봉쇄하고, 흐름 자체를 자신에게 끌고 오는 걸 보면서 친구들은 절반을 먼저 따면 그때부터는 지영의 시간이라고 했다.

뭐, 지영의 그날과 비슷한 느낌의 우스갯소리라고 보면 됐다.

하지만 상대에게는 전혀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을 거다.

오노 쇼헤이의 숨은 벌써 거칠어졌다.

어떻게든 안으로 파고들거나, 뒤로 감아오려고 했지만, 지영은 어깨 깃을 잡은 채로 철저하게 거리를 벌려놨다. 안으로 들어와 허리껴치기, 빗당겨치기를 걸 수 있어서였다.

처음에 제대로 잡고 느꼈던 직감은, 한 번 걸리면 무조건 한판으로 이어진다는 거였다.

오노 쇼헤이는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 선수였고, 지영은 이 직감을 절대 무시하지 않았다.

절반 우세.

시간은 이제 1분.

이걸 이용만 하면 된다.

자신은 아주 철저하게, 상대에겐 처절하게 느껴지도록.

오노 쇼헤이는 다급해졌다.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선수에게 절반을 빼앗긴 건 그렇다 쳐도, 자신의 움직임 전체가 봉쇄당하고 있었다. 안으로 파고들려고 밀고 들어가면 귀산 같이 앞으로 돌면서 모두걸기를 쳤다. 이 기술에 벌써 세 번이나 바닥에 엎어질 뻔했다. 만약 소매라도 제대로 잡고 있었으면 몸이 제대로 돌아갔을 거다.

그래서 밀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거리를 좁혀야 기술을 걸 텐데, 아무리 잡기 싸움을 시도해도 아귀힘이 얼마나 좋은지 어깨, 가슴 깃을 잡은 채 요지부동이었다. 뜯어내려면 뜯어낼 수 있지만 그렇게 해봐야 지도만 같이 받게 될 텐데, 그렇게 되면 이미 지도가 하나 있는 자신만 불리했다.

힘이 약한 것도 아니었고, 기술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벽에, 벽에 막힌 기분이었다.

정상에 오른 이후, 정말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늪에 빠진 기분,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기분이었다.

‘오니에 홀린 건가?’

모든 기술에는 타이밍이라는 게 있고, 준비 동작이라는 게 있었다. 어떤 업어치기도, 허리후리기도 기본적인 스텝을 무시한 채로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설령 들어간다고 쳐도 제대로 힘이 연결되지 않아 반쪽짜리도 못 되는 기술이 될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기술을 거는 건, 유도 선수로서는 자격 미달이다.

그런데 이놈은, 기술 스텝이 시작되는 타이밍을 노리고 상체를 흔들거나, 발기술을 걸거나, 아니면 갑자기 붙거나 해서 흐름 자체를 막아버렸다. 그렇다고 기술을 아예 안 걸고 수비적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수비로 들어선 선수는 티가 난다.

이기고 있어도, 오히려 더 다급해지고 절박해지는 게 수비로 돌아선 선수다. 이걸 지키지 못하면 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쫓아온다는 압박감. 그게 선수의 심리를 조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어린 선수에게서는, 그런 느낌이 조금도 없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차가운 눈매. 오노 쇼헤이는 오랜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조급하게 나오길 기다리나?’

건방진 조…….

힐끔.

40초. 승부를 뒤집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오노 쇼헤이는 슬금슬금, 먹이를 노리는 호랑이처럼 지영을 압박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세가 변한 걸 지영도 느꼈다.

‘그래, 벌써 포기하면 기대했던 내가 너무 서운하지.’

고작 절반 하나 빼앗겼다고, 지도 하나 있다고 경기를 포기하면, 근 한 달 가까이 영상을 돌려보며 철저하게 당신을 파악한 내 노력이, 너무 아깝잖아. 그러니 지영은 오노 쇼헤이의 지금 기세가, 오히려 반가웠다.

사냥하는 호랑이?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지영은 기다리고 있었다.

상대의 흐름을 철저하게 차단하면서, 기술의 맥을 커터로 잘라버리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기술 모션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에 여태까지 지도조차 하나 받지 않은 상황. 지영은 혹시나 상대가 포기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그러지 않아줬다.

‘어떻게든 파고들어 오겠지. 업어치기는 애초에 나한테는 안 된다는 걸 알 테니까 분명 허리기술이나 빗당겨치기고, 아니면 뒤, 그것도 아니면 모두걸기.’

방어해야 하는 게 너무 많지만, 그거야 당연하다.

유도에는 앞과 뒤, 발기술과 허리기술, 손기술까지 다양하니까. 그나마 업어치기 쪽은 뺐으니 더 범위를 크게 좁힐 수 있었다.

힐끔.

남은 시간 20초.

맛테!

흐름이 끊겼다.

시도! 시도!

지영과 오노 쇼헤이에게 나란히 지도가 들어갔다.

시간은 이제 20초.

오노 쇼헤이는 벼랑 끝이다.

반대로 지영은 폭신한 침대 위고. 물론 그 침대는 낭떠러지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곳에 설치한 침대였다.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는 게 또 유도다.

하지메!

지영은 자세를 바짝 낮췄다. 그러자 오노 쇼헤이는 성큼 다가와 곧장 지영의 등판으로 손을 뻗었다. 지영은 피하지 않았다. 차라리 맞서는 게 더 나으니까. 대신 자신도 아래로 손을 넣어 등판 깃을 잡았다. 잡는 순간 곧장 무릎을 허벅지 쪽으로 대며 어깨를 감아 죽여왔다.

뒤 덧걸이, 뒤까기, 뒤치기, 백드롭 등등 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기술이었고 오노 쇼헤이의 특기 중 하나였다. 순간적으로 역동작 타이밍을 잡아 뒤로 치고 들어가면 상대는 반드시 중심을 앞으로 둔다.

그리고 앞으로 중심을 두면, 그대로 발을 회전시켜 돌려 어깨로 메치기로 연결.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거의 2초 남짓이었다.

하지만…… 지영은 서 있었다.

중심을 앞으로 빼는 척하며 바로 세웠고, 지영이 코어 힘으로 상체를 세우는 순간 오노 쇼헤이는 빠지면서 어깨로 메치기를 걸었다. 위에서 아래로 당기는 힘과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힘. 두 힘이 순간적으로 부딪쳤고.

툭! 자연히 손이 뜯어지며 결혼을 막지 못해 망연자실한 느낌으로 주저앉는 시어머니처럼 오노 쇼헤이가 철퍽, 주저앉았다.

혼자서.

그런 오노 쇼헤이를 지영은 그냥 보고 있었고, 지영을 올려다보는 오노 쇼헤이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마 이 뒤에 벌어질 일을 직감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가 직감한 것처럼.

맛테!

심판은 곧장 그쳐 사인을 냈다. 이어지는 도복을 고치라는 신호. 그에 오노 쇼헤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직감한 거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둘이 도복을 고쳐매자, 심판은 오노 쇼헤이를 바라보며 두 손을 뻗어 아래로 내렸다.

위장 공격.

완벽한 위장 공격이었다.

자기 혼자 철퍼덕 주저앉는.

너무 확실하게 위장해서, 무도관임에도 부심들은 이 결과를 뒤집을 수 없었고.

오노 쇼헤이는 반칙패를 받았다.

‘원래는 반칙패를 노린 건 아니었는데, 뭐 이것도 나쁘진 않네.’

심판이 워낙, 지영에게 친화적이라 막판에 바꾼 전략이었다.

반칙패.

지영은 반칙패 승으로 일본의 성지에서, 일본의 유도 영웅에게 비수를 꽂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