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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76화 (176/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76화

176화. 아시아 선수권(3)

한국 MBS의 중계는 8강부터 시작이지만, 이미 인터넷으로 중계는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지영이 시작과 동시에 허벅다리를 강렬하게 차올렸을 때, 채팅창은 폭발하기 시작했다.

-와 씨, 진짜 미쳤네.

-아니, 하체 힘이 얼마나 좋으면 어깨 깃만 잡고 저렇게 차올리냐?

-카운터만 잘한다며? 저게 카운터만 잘하는 거냐?

-와 진짜 잘하긴 잘하네.

-강지영 쟤는 진짜 아우라가 죽이네.

-ㅋㅋㅋ 오노 쇼헤이 표정 봐라. 나 쟤 저렇게 표정 박살 난 거 처음 본다. 진짜 ㅋㅋㅋㅋㅋ

-강지영 표정 ㄷㄷ…… X라 오만해.

-오만한 게 아니라 오연한 거지.

-꺄아! 서건이다!

-엎드려서 뭐 하냐? 딱 그런 표정 아님?

-아 근데 속이 다 시원하다. 오노 쇼헤이 건방진 거 진짜 마음에 안 들었는데!

-동감임. 그런데 하필 실력도 있어서 욕도 못 했는데 씨X 새끼…….

-실력이 있는 정도겠음? 올림픽 2연패에 메이저 대회 입상이 어마어마함.

-그럼 뭐 함? 강지영한테 채여서 시원하게 하늘 날았는데 ㅋㅋ

-그럼 강지영이 이긴 거예요?

그건 아니다.

유도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누군가의 질문에 친절히 답변해 줬다.

-ㄴㄴ 앞으로 떨어져서 점수 아님

-너무 세게 돌렸네. 아까움. 기울이기 조금만 덜 하거나, 조금만 약하게 찼어도 무조건 한판인데!

-그럼 강지영 오빠가 더 잘하는 거죠?

-그것도 모름. 오노 쇼헤이 지금 저러고 있어도, 실력은 진짜임.

-ㅇㅇ 괜히 올림픽 2연패 한 게 아님. 저 체급에서는 왕이라고 해도 될 새끼임.

-맞아요. 오노 쇼헤이 실력은 찐땡임.

-그럼 지영 오빠가 져요?

-그것도 아님. 보니까 강지영 잘하긴 함.

-좀 더 봐야 알겠지만, 피지컬 상으로는 절대 안 밀릴 거고, 실력도 내가 봤을 땐 동급임.

-근데 일본 무도관에서 하는 거라서……. 절반 내주거나, 아니면 반칙 두 개 정도 뺏기고 하는 거라고 봐야 해서, 엄청 불리함.

-이번에 한판 던졌어야 하는데 너무 아쉬움

-경기 다시 시작함. 아 시작부터 개꿈잼이네 ㅋㅋ

-개꿀잼이어도 이겨줬음 좋겠음 ㅋㅋ 이제 일본한테 그만 좀 깨지자 하…….

-동감입니다. 저 현직 유도 선수인데, 일본한테 질 때마다 진짜 가슴 아프네요. 화도 나고.

-자 집중! 시작함!

누군가의 호통에 갑자기 조용해지는 채팅창.

그 말처럼 경기가 재시작됐다.

* * *

뭐 해? 안 일어나고.

지영은 고개를 좌우로 까닥까닥 흔들면서 뒤로 물러났다. 지영은 원래, 절대로 이런 스타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상대를 ‘먼저’ 자극하는 플레이는 정말 즐기지 않았다. 하지만 오노 쇼헤이에겐 이게 필요했다.

따지고 본다면 쇼헤이는 왕이다.

그리고 자신은 왕좌를 노리는 도전자고.

오노 쇼헤이는 왕좌에 오래 앉아 있었던 만큼, 선천적인 오만함에 후천적인 거만함이 더해져 진짜 오만의 끝을 달리는 인간이다.

지영은 오노 쇼헤이의 경기를 보며 철저히 분석한 끝에, 첫 번째로 뭘 해야 할지를 깨달았다.

‘멘탈 흔들기.’

오노 쇼헤이의 경기력은, 그 오만한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그게 마치 게임의 버프처럼 그의 경기력 자체를 향상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런 오노 쇼헤이의 경기력이 별로일 때는, 의외의 일격을 먼저 맞아서 자신이 왕답지 못하다고 스스로 느낄 때였다.

즉, 일격을 당하고 나서야 그의 시합 루틴이 깨진다.

멋진 모습.

완벽한 경기력.

이걸 보여줘야 하는데 먼저 점수를 뺏기거나 하면 이미 완벽함에서 멀어져 버리니, 그 자체가 경기력 하락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지영은 의도적으로 시작과 동시에 허벅다리를 강력하게 차올렸다. 그 틈 또한, 오노 쇼헤이가 초반 잡기 전에는 방심하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에 나온 전략이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아주 훌륭하게 먹혔다.

일그러진 오노 쇼헤이의 얼굴. 그리고 그런 오노 쇼헤이를 바라보는 자신의 표정. 이걸로 첫 번째 전략이 제대로 적중했음을 지영은 직감했다.

뚝, 뚝.

목을 풀고 자리에 서자 오노 쇼헤이는 부스스한 기색으로 일어났고, 심판은 그쳐 없이 둘에게 맞붙으라고 수신호를 보냈다.

오노 쇼헤이는 주둥이를 비틀면서 목을 뚝뚝 꺾은 채 다가오기 시작했다. 눈빛에 깃든 건 명백한 분노였다.

감히 날?

딱 이런 느낌의 분노.

하지만 지영은 그런 분노한 눈빛에도 지나칠 정도로 차분한 기색이었다.

뻗어오는 손은 이번에도 그냥 뒀다.

도사 유도?

카운터를 장착한 지영의 유도 스타일도 도사 유도의 일종이었다. 그래서 스타일이 둘이 엇비슷했다. 지영이 어깨 깃을 잡자 오노 쇼헤이는 바로 손을 넣어 지영의 등 깃을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지영도 상대의 등 깃을 잡았다.

지영은 위로.

오노 쇼헤이는 아래로.

둘 다 허리기술 베이스라서, 상대의 등 깃을 잡는 게 기술을 거는 것엔 더 유리했다. 하지만 둘 다 비슷하게 잡아서 어느 누가 유리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서로 엉덩이를 빼고 거리를 벌렸다.

맞붙어 있으면 정말 한방에 서로 날아갈 수 있어서였다.

시작과 동시에 기술을 한 번 걸긴 했지만, 아직 탐색전은 시작도 되지 않았다. 특히 서로는 서로를 처음 잡아본다.

지영은 일본 선수는 미야모토 신지를 비롯한 야나기 선수들만 잡아봤고, 오노 쇼헤이는 지영을 제외한 한국 대표들을 잡아봤겠지만 스타일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특히 오노 쇼헤이는 지영을 잡고, 좀 당황했다.

하지만 그런 내색은 조금도 하지 않는 상태였다. 여태껏 그 누구도 자신에게 이렇게 등 깃을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허리껴치기, 허리채기, 뒤 덧걸이 등등을 경계해서 웬만해선 이런 자세를 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꼬맹이는 뭔데, 대놓고 등을 줄까?

강지영의 시합을 안 본 건 아니지만 설마 자신을 상대하는데도 본래의 스타일을 고수할 줄은 예상도 못 한 오노 쇼헤이였다.

반대로, 지영도 좀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역시…….’

오노 쇼헤이는 올림픽 2연패를 할 만한 실력이 있었다.

유도 선수들은 보통 이렇게 한 번 딱 잡아보면,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상대가 강한지, 나보다 별로인지, 상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동시에 해볼 만하다. 와, 아 힘들겠는데? 이런 느낌이 딱 온다. 그런데 지금 지영이 딱 잡아보고 느낀 감정은, 잘못하면 진다. 바로 이거였다.

신지를 잡을 때와 아주 흡사한 느낌.

솜털이 쭈뼛 서는 이 느낌을 지영은 지금까진 미야모토 신지 외에는 느껴본 적이 없었다. 멘탈이 깨지기 전의 안호진도…… 이런 느낌을 주진 못했다.

그런데 오노 쇼헤이는 주고 있었다.

지영은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오노 쇼헤이가 느끼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하지만 시합 중이니 물어보고 싶진 않았고, 반응으로 보기로 했다.

툭, 침과 동시에 골반이 회전하니 거기에 맞춰 오노 쇼헤이의 자세가 급격하게 내려갔다.

반응속도가 엄청나다.

폼이 떨어질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툭!

지영은 엎어지는 오노 쇼헤이를 앞으로 돌아 나오면서 그대로 당겼다. 그러곤 동시에 가슴 깃을 잡아 정확하게 목을 조이면서 머리를 찍어 눌렀다.

왔다!

관중석에서 들려오는 큰 목소리.

우렁우렁한 저 목소리의 주인은 장대호였다. 처음으로 저렇게 큰 목소리를 내는 걸 들어봐서 지영은 좀 놀라는 한편, 오른발을 쭉 집어넣어 바닥을 찍었다. 그러자 오노 쇼헤이는 아예 바닥으로 엎드려 버렸다.

지영의 찍어 허벅다리 모션에 방어나 되치기보단, 아예 반칙을 받겠단 생각에 주저앉아 버린 거다.

맛테!

심판의 그쳐 사인에 지영은 도복을 놓고 일어섰다.

지도를 줄까?

‘줄 리가 없지.’

일본 유도의 영웅이다.

심판은 유럽 국적의 심판이지만, 이걸로 오노 쇼헤이에게 반칙이 들어갈 거라는 기대를 지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시도!

지도가 들어갔다.

그것도 오노 쇼헤이에게.

일본의 심장부에서, 이렇게 제대로 된 판정을? 지영은 그게 좀 놀라웠다.

“지영아! 지금처럼! 지금처럼만 해! 등 깃 너무 깊게 내주지 말고! 빗당겨치기 조심하고!”

“…….”

김재정 코치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곤 오노 쇼헤이를 다시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서는 이제 맹렬한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어찌나 거세게 타고 있는지, 저걸 형상화하면 아마 자신은 불에 화르르 타오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메!

그 생각이 끝남과 동시에 경기가 다시 시작됐다.

오노 쇼헤이는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바로 다가왔다. 그러곤 다시 손을 뻗어 지영의 가슴 깃을 잡았다. 지영은 그 깃을 그대로 뒀다. 대신 첫 번째와 똑같이 잡아가면서 몸을 쭉 집어넣었다.

그러자 똑같은 기술에 오노 쇼헤이는 바로 자세를 낮추고 방비를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지영은 다시 앞으로 돌아 나와 목깃을 잡고, 목을 아래로 조이듯이 잡아 죽였다. 그러자 오노 쇼헤이는 등 쪽 깊숙이 팔을 뻗어 넣으면서 지영의 뒤로 붙어왔다. 뒤 덧걸이나, 백드롭 비슷한 기술을 걸 생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지영은 오노 쇼헤이의 시합을 철저히 파악했다.

그래서 그가 이런 상태에 어떤 기술을 걸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안쪽 발목 받치기.’

보통 발목 받치기는 내 오른발이나 왼발로, 반대되는 발을 받쳐 돌리는 기술이다. 내가 오른발로 발목 받치기를 하면, 거의 99%는 상대의 왼발을 친다. 이는 서로 마주 보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바로 직선형에 있는 발을 노릴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짝잡이 상태에서는 정면 선상에 있는 발은 보통 같은 발이었다.

오른발이면, 오른발을 노리는 게 가장 가깝다는 소리였다.

그걸 툭 채서, 중심을 앞으로 쏠리게 만든 다음 소매 깃이나 가슴 깃을 쭉 잡아서 바깥쪽으로 회전해 상대를 던지는 기술.

툭 치고, 쭉 당기면, 제대로 걸렸을 땐 빗당겨치기만큼이나 기차게 넘어가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이 기술은 단점이 있었다.

바로 이걸 치는 순간 자신의 자세와 중심도 일정 부분 무너진다는 점이었다.

잘 치는 사람은 중심을 잘 유지하긴 하지만, 그래도 100%의 중심과 100%의 자기 자세를 유지할 순 없다.

몸을 숙이고, 허리와 발이 겹치는 방향으로 가기 때문이었다. 오노 쇼헤이는 이걸 아주 잘했다. 짝잡이와 만나면 한번은 반드시 걸 정도로 말이다. 기술이 걸리지 않아도 다시 뒤, 아니면 허리껴치기나 채기로 연결해서 한판으로 이어지는 연결 기술 루틴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영은 이걸 이미 파악했기에, 왼발을 쳐오는 오노 쇼헤이의 왼발을 슬쩍 피한 다음 상체만 틀어서 그대로 허리후리기를 찼다. 들어올 거라는 걸 알았기에, 아주 제대로 된 타이밍에 카운터가 들어갔다.

파앙!

제대로 들어간 카운터는 이번엔 오노 쇼헤이의 몸을 돌리는 게 아닌, 마치 모두걸기에 쓸린 것처럼 그 자세 그대로 뚝 매트에 처박히게 만들었다. 지영이 찰 때 가슴 깃을 놓고, 그 손으로 매트를 짚으며 뒤로 밀어내듯이 차버렸기 때문이었다.

퍽!

소리가 날 정도로 매트에 떨어진 오노 쇼헤이는 본능적으로 심판을 올려다봤다.

아주 요염하게 옆으로 누운 자세로.

반대로 지영은 그냥 도복을 놔버렸다.

한판까진 아닐 건데? 하는 생각에 심판을 봤는데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 표정에서 지영은 이 유럽 심판이 오노 쇼헤이란 선수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와자리!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본분을 다했다.

사심은 빼고, 제대로 심판을 내렸다. 확실히 절반 짜리 기술이었기 때문에 지영은 별로 불만이 없었다.

으득!

이를 간 오노 쇼헤이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다시 지영에게 다가왔다.

맛테!

하지만 심판은 거기서 시합을 잠시 멈추게 했다. 그러자 오노 쇼헤이는 분을 못 참아 심판을 홱 노려봤다. 그러나 심판은 엄한 눈빛으로 자리로 돌아가란 수신호를 보낼 뿐이었다.

설마 일본 무도의 심장부인 무도관에서, 심판 덕을 보게 될 줄은 몰라서 참 아이러니하단 생각을 하며 도복을 고쳤다.

띠를 풀러 느긋하게 매며 시간을 확인했다.

2분.

딱 두 차례의 접전으로 벌써 2분이 지나 있었다. 그러곤 고개를 돌려 다시 오노 쇼헤이를 보려던 그 짧은 순간, 지영은 관중석에서 굳은 얼굴을 한 미야모토 신지를 확인했다.

억울한 눈빛.

자신과 붙고 싶어서 안달 난 눈빛.

그런 신지의 불타는 눈빛에 지영은 다시 피식, 실소를 흘렸다.

‘기다려, 다음은 너니까.’

지영은 그렇게 중얼거린 후 고개를 돌려, 하지메! 빠르게 다가오는 오노 쇼헤이를 상대하러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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