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60화
160화. 추락한 에이스(1)
운동선수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오랫동안 몸을 쓰지 않으면 굳기 마련이었다.
지영도 회귀 전 수술을 받고,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있으면서 근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감각은 더욱더 뒤로 후퇴했다. 어느 정도냐면, 근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면 감각은 아예 땅을 뚫고 들어가는 수준이다.
센스, 혹은 감각.
피지컬이나 몸 관리는 너무나 당연한 거고, 운동선수에게 이걸 빼면 남는 게 있을까?
축구나 농구, 이런 구기 종목을 포함해 모든 스포츠 중에 나오는 창의적인 플레이, 허를 찌르는 패스, 슛, 기술 등은 보통 센스와 감각에 절반쯤은 의지한다.
평소 몸이 기억한 훈련과 순간의 판단이나 센스를 통해 나온다는 뜻이었다.
유도라고 다를 게 없었다.
하루에 몇백 번 이상 연마하는 업어치기, 허리후리기, 허벅다리.
하루에 적게는 몇 번, 많게는 수십 번씩 매트에 처박히며 몸에 체득시킨 방어.
이 전체가 합쳐져, 그 선수의 실력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몇 달이나 쉰 황금세대는?
오랫동안 도복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실력 저하는 피할 수 없어야 했다.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머리는 기억하지만, 몸이 기억을 잃으면 정상에서 내려와야만 하는 법이었다.
적어도 스포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이 말을 지지할 것이다.
쿠웅!
끔뻑끔뻑.
하지만 지영은 달랐다.
이우진을 허벅다리 한판으로 던지고 도복을 고치는 그를 보며, 그걸 지켜본 선수들은 질린 기색을 섞은 의심의 눈빛을 보냈다.
쟤들 저거 운동 안 쉰 거 아니냐?
와 씨, 우진이가 30초도 안 돼서 날아가네.
요즘은 호진이 형도 우진이 던지려면 애먹던데. 쟨 뭐냐, 대체?
도복을 고치는 와중에 들으라고 하는 건지,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가 전부 지영의 귀로 들어왔다. 지영은 그에 반응하진 않았지만 사실 속으로는 본인도 좀 신기하단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몸이 무겁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도 감각 자체는 확실히 전과 비교하면 살짝 부족한 느낌이었다. 감은 좋았지만, 멘탈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쉬었던 몸이라 완전히 예전과 같을 수는 없을 거라고 지영도 생각했다. 그런데 오래 쉬었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생각한 만큼 기술과 반응속도가 나쁘지 않았다.
기술의 조정은 이미 부딪치기로 끝냈고, 해서 시험 삼아 작정하고 허벅다리를 찍어 찼는데 이우진은 그 기술을 피하지 못했다.
이우진이 방심?
지영이 봤을 때 이우진은 결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자존심도 죽이고 지영의 몸이 풀리지 않았을 첫판에 잡자고 했을 만큼, 지영을 메치는 것에 대한 욕심이 강한 친구였다.
그러니 방심 따위는 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우연?
우연일 수는 있겠지만…….
‘제대로 걸린 느낌이었어.’
우연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지영은 생각했다.
매트에서 일어난 이우진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뭐야, 몇 달간 도복 안 입은 거 아니었어?”
“응, 몰래 웨이트만 했어.”
“그런데 뭐지? 실력이 하나도 안 죽은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봐. 도복 입었었지?”
어, 음.
안 입었다.
그래서 지영이 고개를 젓자, 이우진은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된 게, 더 잘해진 느낌이네.”
그러고 나서 한 말에 지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 자신도 신기한 기분이 드는 중이라, 뭐라 딱히 대답해 줄 말도 없었다. 자유 연습은 한판 했다고 끝이 아니기 때문에 준비를 하고 다시 맞붙었다.
이우진은 신중하면서도, 공격적인 스타일이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을 동시에 가졌다는 건 상대에 따라 공격적으로도, 수비적으로도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뭐, 모든 유도 선수들이 보통 그렇긴 하지만 이우진은 그중에서도 탑 랭킹에 오른 만큼 이 변환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공격적으로 나오다가 허벅다리에 한 방 날아갔기 때문인지, 이우진은 곧장 수비적으로 바꿨다. 넘어가지 않는 것에 목적을 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영도, 그런 이우진의 스타일에 방어적으로 맞섰다.
지영은 자신이 이미 유리한 상태임을 잘 알고 있었다.
메치지 못했다면 모를까, 이미 한판을 땄다.
여기에 의미 부여를 조금만 해도 이미 승기는 지영이 확실히 잡았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이건 충분히 이용해 먹어도 된다. 그리고 실제로 지영은 이걸 이용해 먹을 생각이었다.
자유 연습 시간은 5분.
실제 경기는 4분이지만, 예전부터 5분에 맞춰 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여전히 5분으로 하는 곳이 많았다.
3분쯤 지나자, 항상 잡던 상태로 잡고 움직이며 간을 보던 이우진이 타이머의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은 1분. 이렇게 잡고 있으면 1분은 순식간이다.
자유 연습에서 서로의 실력을 확인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넘겼는가, 넘기지 못했는가의 차이다.
A와 B.
5분의 시간이 다 지났을 때를 기점으로.
A가 절반이라도 던졌으면 A의 우세.
A와 B가 같이 절반을 던졌으면 동수.
A가 절반을 던지고 B가 한판을 던지면 B의 우세.
A와 B가 같이 한판을 던졌다면, 먼저 던진 쪽이 우세.
그리고 아주 당연히.
A가 한판을 던지고 시간이 다 지났으면, 당연히 A의 우세.
뭐, 이런 식이다.
지금 지영은 가장 마지막 예시에 속했다.
1분이 그대로 다 지난다면 말이다. 선수들은 보통 이런 식으로 상대와 나의 실력을 판가름했다. 지영도 마찬가지였고, 그렇기에 자유 연습에서도 절대 넘어가지 않으려고 용을 썼다.
무승부?
나쁘진 않지만…….
‘그것만큼 찝찝한 것도 없지.’
차라리 지는 게 낫다.
그럼 문제점을 고민하고, 고치면 되니까.
하지만 무승부는 애매하다.
신지라는 걸출한 선수와 붙을 때는 치고받고, 피 터지는 경기가 되기 때문에 무승부란 것 자체가 의미 없지만, 일반적인 연습이라면 지영은 당연히 승자가 되고 싶었다.
이는, 욕심이었다.
선천적이 아닌, 후천적으로 생겨난 욕구이기도 했다.
1분은 금방 30초가 되었다.
이우진은 역시 승부를 보려고 했다. 애초에 지영에게 이미 한판으로 날아갔을 때, 좀 더 공격적으로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버티면서 기회를 보자는 생각에서 수비적으로 나왔고, 그게 곧 그를 궁지에 몰았다.
20초.
버릇처럼 안뒤축을 툭, 치고 업어치기를 할 생각 같았지만 이미 지영은 그 속내를 파악했다. 그래서 안뒤축을 치는 발이 미처 땅에 닿기도 전에 슬쩍 발을 띄워, 반대쪽 발로 강하게 모두걸기를 쳤다.
퍽!
좀 강하게 맞았다.
하지만 발바닥으로 친 거니 뼈에 문제는 없을 거다.
붕 떴던 몸이 퍽! 소리가 나게 떨어졌다. 제대로 잡지 못한 상태로 어깨 쪽으로 떨어졌지만, 충분히 절반은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떨어졌다.
그리고 삐이이.
자유 연습 첫판이 끝났다.
한숨과 함께 일어난 이우진과 마주 보고 서서 꾸벅, 인사를 한 뒤 밖으로 나왔다. 나오면서 씩 웃고 있는 친구들과 교차한 지영은 후,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띠를 풀었다. 그리고 천천히 도복을 고쳐 입는데 이성진이 다가왔다.
땀으로 푹 젖은 머리카락. 볼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
이성진이, 가장 빛날 때의 모습이었다.
“컨디션 어때?”
지영이 그렇게 묻자, 이성진이 씩 웃었다.
“죽이던데? 신지혁 두 판이나 던졌다.”
“진짜?”
“응. 이상해. 몸이 막, 미친 것 같아. 부딪치기 할 때만 해도 좀 무겁다 싶었는데 자유 연습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 빡! 컨디션이 100%까지 찬 느낌이었어. 넌? 너도 이우진 상대 잘하던데.”
“나도 좋아. 네 말처럼 이상할 정도로 좋더라.”
“그치?”
“응.”
오랫동안 쉬었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었다.
지금은 이렇게 상태가 좋지만, 나중에 연습이 다 끝나고 과부하가 폭발적으로 몰려올 수도 있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약을 해서 고통에 둔감해지고, 약발이 떨어지면 미친 듯이 아픈 거. 아드레날린이 폭발적으로 분비되면 아마도 그런 상태에 들어선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상관없어.’
지금 당장은 그게 생각도 안 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지영은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하고, 친구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임효중, 강한결, 황석.
중량급, 혹은 헤비급에 뛰는 세 친구는 전부 국가대표 1선발 들을 잡고 있었다. 난다 긴다 하는 선수들이었다. 세계랭킹으로 따져도 전부 열 손가락에 들어갈 정도로 대단한 선수들이었다. 그래, 대단한 선수들이 맞았다.
하지만 한가지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피지컬이었다.
대한민국 남자 유도 국가대표는 사실 근 10년 정도 동안 고인물이었다. 81을 제외하고 90, -100, +100 선수들이 워낙에 출중했기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국가대표를 했다.
스물 초반부터. 그러니까 대학교 1, 2학년 때부터 이미 국내 정상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이들이 만만치 않았다.
다른 스포츠도 그렇긴 하지만, 유도도 서른이 넘어가면 중년을 넘어 장년기라 할 수 있었다. 서른셋 정도만 되면?
황혼이다.
그러니 피지컬의 하락은 막을 수가 없었다.
반대로 친구들은 이제 고3이다.
피지컬이 아직 완성도 안 된 상태지만, 그걸 빼고도 이미 90% 이상 올라 있는 피지컬이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비슷비슷했는데 2분쯤 지나자 피지컬에서 황금세대가 압도하기 시작했다.
기술은 국가대표인 만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다들 완성된 기술들을 가지고 있었고, 틈만 나면 바로 그 기술로 상대를 한판을 내던질 수 있는 실력자들이었다.
하지만 임효중과 강한결, 황석은 그런 틈 자체를 주지 않았다.
단단하게 서서, 애매한 기술은 아예 걸지도 않았다. 되치기를 주의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힘은 황금세대가 위, 체력도 황금세대가 위. 그렇다 보니 호각으로 보이기보단, 국가대표 1선발들이 여실히 밀리는 모양새가 나왔다.
“와, 이 정도였나?”
“아까 이성진? 걔한테 지혁이도 박살 나던데.”
“몇 달 쉬었다며? 그런데 뭔 애들이…….”
“야, 젊어서 그래. 우리였음 몇 달 쉬면 은퇴 각이지만, 쟤들은 오히려 더 여물 수도 있어. 아직 한창때잖아.”
“하긴…….”
주변 선배들의 말에 살짝 민망해졌지만, 지영은 친구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가장 먼저 승패가 나온 건, 임효중이었다.
현재 국가대표 선수 중에서도 가장 약한 체급이라 평가받는 81.
이쪽은 그냥 실력 차가…… 월등했다.
황금세대 중에서도 가장 기복 없는 경기력과 안정적인 시합을 하는 임효중은 상대의 업어치기를 막은 다음 발만 툭 걸어 넣은 허벅다리로 그대로 데굴, 굴려버렸다. 쿵! 소리가 날 정도로 크게 들어간 기술은 아니지만, 데굴 굴렀어도 등이 제대로 닿으면 그냥 한판이다.
그리고 거의 앞구르기처럼 굴렀기 때문에, 이건 정식시합이었다면 심판에게 돈을 먹이지 않는 이상 99%의 확률로 한판이었다.
후.
주먹을 불끈 쥐며 임효중이 일어나는 순간 황석이 안다리로 상대를 절반과 한판의 경계선에다가 찍어눌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한결도 소매꽂이로 상대를 던졌다.
소란이 일어났다.
그걸 지켜보던 선배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까지 실력 차이가 날 수 있나? 하며 한탄을 하는 선배도 있었다.
타고난 재능.
타고난 천재성.
그리고 그걸 뒷받침해 주는 노력.
그 모든 걸 갖춘 황금세대는 왜 자신들이 황금세대니, 천재니 불리는지를 여실히 증명했다.
타이머가 재차 울리고 지영은 부딪치기 때 예약을 해놨던 대로, 안호진 선배를 잡았다. 지영은 마주 보고 선 안호진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빛이…….’
없다.
유도 선수에게 꼭 필요한 투지, 투혼이 보이지 않았다.
느껴지지 않았다.
의지, 의욕이 없는 눈빛.
그냥 연습 시간이니까 어쩔 수 없이 훈련한다는 테가 너무 빤하게 났다.
안호진이? 왜?
지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미야모토 신지…….’
두 번에 걸친 신지와의 경기.
그 경기가…….
안호진이라는, 걸출한 선수의 투혼을 죽였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고, 처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