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61화
161화. 추락한 에이스(2)
투지가 있는지, 투혼이 살아 있는지, 그 정도는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겁을 먹은 눈빛, 대충하자는 눈빛, 귀찮은 눈빛 등등, 선수를 잡아보면 그런 건 금방 티가 났다.
게다가 지영은 이미 안호진과 연습이지만 한 번 붙어본 전적이 있었다.
‘그때 안호진 선배 눈빛은 이러지 않았어…….’
이건 시쳇말로 그냥 죽은 눈빛이었다.
일반적으로 흔히 썩은 동태눈깔이라고 하는, 그런 눈빛 말이다. 의지가 없었다. 그냥 시키니까 도복을 입었고, 이곳에서 나갈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있는. 그러다 보니 의지도 없고, 유도는 별로 하기도 싫고.
그러나 하긴 해야 하니까.
그러니까 나온 눈빛.
안호진이 저런 눈빛이 된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영은 역시 이 모든 게, 미야모토 신지의 탓이 아닐까 싶었다. 지영은 세간의 시선이 집중되어 한국에도 중계된 이번 세계선수권을 당연히 챙겨봤었다.
그리고 안호진이 어떻게 미야모토 신지라는 선수에게 깨졌는지, 그것도 지켜봤다.
신지는 안호진을 가지고 놀았다.
아주 철저하게, 넘길 수 있으면서도 넘기지 않았고, 넘어가려고 하면 오히려 잡아주기까지 했다. 안호진이 시합을 포기한 걸 알면서도 신지는 그를 던지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잡고, 그대로 있었다. 나중에는 10초나 남았는데 놓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도복을 고쳐 입기까지 했다.
그게 준결이었나, 결승이었나.
어쨌든 그랬다.
초반 1분까지는 안호진도 파이팅이 넘쳤다.
하지만 2분이 지나고 실의에 빠졌고, 3분이 지났을 땐 거의 포기했다.
그런 경기 결과가, 경기 내용이 안호진을 죽였다.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안호진은 근 10년이나 대한민국 남자 유도 -73체급을 지켜왔던 부동의 에이스였다. 한판승의 달인만큼은 아니었어도, 어디 가서 약하다는 소리는 절대 듣지 않게 해준 에이스였다. 게다가 그의 스토리까지 합쳐져, 올림픽만 우승했어도 유도영웅이란 타이틀이 붙었을 선수였다.
그런 그가, 새파랗게 어린 ‘천재’ 미야모토 신지에게 농락당하고 실의에 빠진 것을 넘어, 유도 자체를 놓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선배의 의지가 그렇다면…….’
지영은 그런 안호진을…… 깨부쉈다.
쿠웅!
고작 2분 만에 한판 세 개.
훈련장이 고요해졌다.
지영과 안호진이 시작할 땐, 이번에는 어떨까 하는 기대심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러나 타이머가 삐……! 소리를 내며 시작하고 나서 고작 20초 만에 지영은 업어치기로 한판을 던졌고, 1분 30초에 안 뒤축 되치기로 한판을 던졌고, 2분째 모두걸기로 한판을 날렸다.
이건 연습이 아니었다.
‘그냥 세워 놓고 던지는 메치기지.’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넘어간다고?
가능했다.
유도에서 의지가 없는 선수를 던지는 건 그 무엇보다도 쉬웠다. 안 그래도 오늘 지영의 컨디션은 이상할 정도로 좋은 편이었고, 반대로 세계선수권 이후 피지컬, 폼의 하락과 동시에 의지조차 죽은 안호진은 아무런 특색도 없는 그저 그런 선수였다.
그런 선수를 던지는 건 지영에게는 손바닥 뒤집는 것만큼이나 쉬웠다.
각성하게 도움을 주는 거냐고?
그것도 아니었다.
지영은, 이런 정신 상태라면 안호진이 그만…… 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박살 나고 다시 정신 차리고 노력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지만, 그러지 못하고 이대로 은퇴 수순을 밟는다고 해도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그래서 철저하게 깼다.
고작 5분 연습하는 동안, 무려 다섯 판.
마치 기계적으로 지영은 안호진을 던졌고, 타이머가 울리자 까닥, 고개만 살짝 숙여 인사한 뒤에 다시 밖으로 나왔다.
분위기는 묘해졌다.
고요함을 넘어서, 불편한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
지영을 보는 눈빛이 조금도 호의적이지 않기도 했다.
그런 상태에, 이성진이 피식 웃으며 조용히 말했다.
“야, 너무 던진 거 아니야?”
“어차피 연습할 생각도 없었어, 안호진 선배.”
“어? 왜?”
“세계선수권에서 신지한테 농락당하고, 멘탈 아예 깨지셨더라.”
“아……. 하긴, 그럴 만도 했지.”
그 경기는 모두가 같이 봤다.
지영에게는 아시안 게임 때처럼 화가 난 경기였지만, 이성진을 포함한 친구들은 안타까운 경기였다.
에이스의 몰락.
그렇게 불러도 조금의 부족함도 없는 경기였기 때문이었다.
10년을 넘게 에이스의 자리를 지켜온 선수. 그러니 존중받을 자격이 있었다.
안호진은 분명 그런 선수였지만, 지금은 존중해 줄 수 없었다.
이대로 끝내겠다면, 그래 그것도 좋겠지. 할 테고, 다시 일어난다면 잘 생각하셨어요, 웃으면서 그렇게 말해줄 수 있었다.
‘뭐, 본인이 알아서 선택하겠지.’
안타깝기는 하지만, 에이스의 몰락이 결국 그의 말로라면, 그 또한 그가 선택한 것이다. 지영은 그걸 이해해 주기로 했다. 지영은 거기까지 생각한 뒤에 안호진이란 사람에 대해서 신경을 껐다.
지금은 연습 중이고, 아직 자유 연습은 꽤 많이 남았다.
잡생각은 부상을 불러오는 주원인 중 하나니, 이제는 연습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제는, 에이스를 포기한 선수는 신경 쓰지 말고.
‘다시 붙어볼 날을 기대했는데.’
그게 조금 아쉽긴 했다.
* * *
4시 30분.
정규 운동 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시간이다. 그리고 선수들이 슬슬 지칠 시간이기도 했다. 물론 체력 좋은 선수들은 아직도 생생했다. 지영도 그 안에 끼어 있었지만, 지영은 밖에 나와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역시 문제가 있긴 있었다.
멘탈과는 별개로 지영은 어느 순간, 관절이 삐걱거리고, 시큰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과부하였다. 연습을 오버페이스로 쭉쭉 달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 오랜만에 입는 도복 운동인 탓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됐고, 그 때문에 미묘한 문제가 있던 걸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워낙에 자기 몸에 민감한 지영이라서 문제가 되기 전에 이상한 점을 캐치 했고, 임대성 코치에게 얘기하고 뒤로 빠졌다.
그리고 그땐 이미 강한결과 황석도 비슷한 통증을 느끼고는 빠져 있었다.
그런데 이성진과 임효중은 아주 생생했다. 스트레칭을 하며 날아다니는 둘을 계속해서 보던 지영은 확신했다.
“쟤네, 분명 쉬는 중에 도복 입었다.”
지영이 말하기 무섭게 황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100%지.”
“나도 동감. 쟤네 주말마다 가끔 조용할 때 있었잖아. 아마 그때 입었을걸.”
어디서?
아마도 백곰 체육관이다.
임효중의 집이 백곰 체육관 코앞이니, 아마 체육관 문 닫았을 시간에 조용히 가서 도복을 입었을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웨이트를 했다지만 몇 달간 쉰 몸으로 저렇게 생생하게 날아다니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특히 관절이 가장 취약한 건 이성진이었다.
업어치기가 특기다 보니 손목, 팔목, 그리고 무릎 쪽 관절이 가장 좋지 않았다. 그런데 몇 달간 쉬고도 저렇게 쌩쌩하다?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여기서 누구보다 조심해야 할 게 이성진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그런 친구에게 불만이 생기진 않았다.
반대로 누구보다 유도에 진심인 것도 이성진이었기 때문이었다. 지영이 연예계 쪽을 열지 않았다면 이성진의 생존 수단 자체는 유도밖에 없었을 거다. 지영은 회귀란 걸 통해 사고의 기억이 있어서 목을 매지만, 이성진은 그냥 생존 그 자체였다.
그런 마음으로 유도에 임하던 친구가, 갑자기 유도를 못 하게 됐으니 얼마나 애가 탔을까.
친구들. 그중 강한결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총대를 멨으니 믿고 따랐지만, 속에서 타고 올라오는 불안감 또한 어쩔 수 없었을 거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성진도 이제 고3. 결국엔 불안감이 이겼다.
“몰래 도복 입다가 아마 효중이한테 걸렸겠지.”
“마음씨 착한 효중이는 결국 한숨을 내쉬고 같이했을 거고.”
황석과 강한결의 말에 지영은 100% 동의했다.
지영의 생각도 그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친구들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둘은 철두철미하게 움직였는지 언론이 잡아내지 못했다. 만약 도복 입었던 걸 들켰으면 이미 기사로 몇십 개가 나가고도 남았을 거다.
‘연희고 황금세대의 영악한 쇼! 라는 타이틀로 말이지.’
하지만 그런 기사는 없었다.
그건 곧 걸리지 않았다는 뜻. 과정도 중요하긴 하나, 결과도 좋으니까 지영은 이해했다. 친구의 불안감도 이해했고.
5시.
정규 훈련 시간이 끝났다.
이제는 각 팀별로 흩어져 연습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황금세대는 여기서 끝. 누군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 누군가를 제외하곤 다 너무 오랜만에 도복을 입어서 추가 훈련은 오히려 몸을 망치는 역할만 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정리 운동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리고 버스로 가는데, 안호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딱 봐도 자신을 기다린 것처럼 보여서 지영은 코치에게 얘기하곤 안호진에게 갔다.
꾸벅.
지영이 인사하자.
안호진은 대뜸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어, 왜 이러세요?”
“나 때문에 괜히 너만 욕먹었어. 내가 잘못해서 진 건데, 너한테 욕을 하더라. 그런데 욕을 너무 먹어서 나도…… 좀 가만히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 그런 마음에 굴복했어.”
“…….”
지영은 그 말에 일단은 대답하지 않은 채 안호진의 어깨를 잡아 세웠다.
안호진의 표정은 엉망이었다.
울지는 않았지만, 이건 대체 뭔 표정이야? 싶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에이스.
그 무게는 무겁다.
그래서 그 무게에 짓눌려 결국에는 현실을 외면했다는 뜻이었다.
‘솔직히 협회도 아니고 선수 개인이 그걸 해명하는 건 한계가 있어. 한계가 있는데…….’
그렇다고 과연, 아무것도 못 할 정도였을까?
안호진은 팬이 많은 선수였다.
66의 안방현 선수와 함께 굉장히 호남형이라, SNS 팔로워 수가 만만치 않았다. 뭐 연예인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그래도 10만 명 이상을 보유한 선수였다. 그런 그가, SNS에서 한마디만 남겼어도 아마 지영이나 지영의 친구들이 먹었던 욕을 어느 정도는 상쇄시켰을 거다.
그러나 안호진은 그러지 않았다.
왜 그러지 않았을까?
욕.
당연히 누구도 먹기 싫은 비난.
그걸 피해서 그냥 조용히 침묵한 거였다.
그런데 그게, 안호진의 마음을 여태껏 괴롭혔던 것 같았다.
‘새파랗게 어린 후배 등 뒤에 숨어 안도하는 자신의 모습이, 정말 너무 꼴불견이었겠지.’
실제로 그러기도 했고.
마음에 꽉 박힌 돌.
지영은 그걸 빼기 위한 사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걸 받아줘야 하나?’
좋은 후배의 얼굴로?
싫었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이 사람도 이 사람 나름 힘들었겠지만, 그건 지영이 겪은 일에 비하면 진짜 새 발의 피였다. 과장 조금 보태면 안호진은 몇 달간이나 도복을 입지도 못하게 만든 원흉 중 하나였다. 그런 원흉에게 굳이 자비를?
자기만족일 게 빤한 이 사과를 굳이?
‘나한테 미안했다면, 정말 미안한 게 맞으면 우리가 은퇴를 가장했을 때 언제고 해도 할 수 있었어.’
하지만 안호진은 개인적인 연락처가 있음에도 한 번도 지영에게 연락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활동을 시작한 지금에서야?
지영은 이 사과 자체가 순수하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
“됐습니다.”
“어?”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굳이 안 하셔도 된다고요. 저한테 미안했으면 적어도 제가 쉬던 기간에 걱정하는 메시지 하나쯤은 보내는 게 정상이에요. 근데 선배님은, 안 그러셨잖아요?”
“아, 그건 괜히 내가…….”
“그만.”
지영은 차분한 시선으로 안호진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런 지영의 눈빛에 움찔하는 안호진. 그런 안호진에게 지영은 통보하듯 말했다.
“굳이 사과받을 만큼 친한 사이도 아니니까, 하지 마세요. 지금처럼 그냥 연습 때 보고, 시합 때 보고 하면 될 사이니까요.”
“그, 그래…….”
“하실 말 더 없으시면 가보겠습니다.”
“어……. 그래. 고생했다. 잘…….”
지영은 그 말을 끝까지 다 듣지도 않고 몸을 돌렸다.
기분 좋았는데, 막판에 기분이 더러워졌다. 지영은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저절로, 다짐했다. 다음에 시합에서 만나게 되면, 철저하게 짓밟아버리겠다고.
안호진에게는 이제, -73㎏ 에이스의 자격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