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59화
159화. 어린 독지가들(6)
강한결이 선택한 방법은 사실 무조건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한국 언론에 크게 데였다고, 다른 언론까지 무시하면 그 파장이 만만치 않게 나올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일단 여러 가지 문제에서 벗어난다는 점도 이점이지만, 가장 큰 건 황금세대란 어린 친구들이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지영을 포함한 친구들은 어렸다.
그래서 오히려 더욱 만만하게 보이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제멋대로, 입맛대로 황금세대를 굴리고 굴렸던 것도 아직 어린 친구들이 뭘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황금세대가 얼마나 만만치 않은지, 그리고 얼마나 뒤끝이 강한지를 알게 되면 앞으로는 결코 쉽게 보고 접근할 수는 없을 게 분명했다.
그런 철저한 계산 속에서 이틀 뒤, 지영과 강한결은 외신과 만나기로 했다.
오전, 오후, 그리고 저녁에 걸쳐서 세 번을 미국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에서 온 기자들과 만났고,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됐지만 크게 문제는 없었다.
질문은 대동소이했다.
운동, 연예계, 공부, 그리고 후원을 하게 된 계기와 힘들지 않냐는 질문, 그간 힘든 일이 있었는데 괴롭지 않냐는 질문, 뭐 이런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왜 한국 언론이 아니라, 외국 언론이냐는 질문에도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비판은 받아들입니다. 제대로 됐다는 전제하에 비판이나 비평은 우리가 고칠 게 있다는 뜻이니까요. 하지만 아예 새로운, 무에서 유를 창조해 던지는 비난은 받지 않을 생각입니다.”
강한결의 대답에 기자가 눈을 반짝였다.
딱 원했던 대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기자는 그 이면의 이유까지 눈치챘다.
“일종의 경고겠군요, 그럼?”
황금세대가 만만치 않다는 모습 말고 하나 더 있는 이유. 그게 바로 경고였다. 지영도 이건 많이 생각했던 문제였다. 이렇게 무시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받아주는 것도 능사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 강한결이 내놓은 대답에서 지영은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냈다. 일종의 경고. 고작 고등학생 따위가 감히 언론에 경고를? 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 괜찮았다. 애초에 유명해지고 싶어서 유도를 하는 것도 아니고, 방송계에 몸담은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후원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다른 친구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영에게 방송계는 언제고 떠날 수 있는 장소였다.
유도만큼은 욕을 먹어도 끝까지 노렸던 목표를 이루겠지만, 다른 건 아니었다. 목을 매달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행보 자체가 다른 공인들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걸리는 게 많을수록 언론에는 고개를 숙여야겠지만 적어도 지영은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고.
그러니 이런, 일반인의 기준에서는 미친 짓에 가까운 행보가 가능했다.
인터뷰는 거의 비슷한 느낌으로 끝났다.
시간을 맞춰 달라고 했기 때문에,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성실히 대답한 이 인터뷰는 한국이 아닌 미국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에서 먼저 올라가게 될 것이다.
기사가 아니라 아예 공영 방송에 다뤄질 거라고 하니, 아마 그게 나오고 나면 한국 언론은 둔기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멍할 게 분명했다.
이제야 관심을 보였던 메이저 언론이 또 황금세대를 까 내리겠지만, 이미 어린 독지가 기사 이후 여론은 완전히 황금세대의 편이라 기사를 올려봤자 뭇매만 맞게 될 거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날 인터뷰가 풀리고, 오만한 그들의 행보, 라는 기사를 메이저 언론사 한 곳에서 올렸다가 무시무시하게 까였다.
당신들 같으면 한국 언론을 믿겠냐고.
얼마나 귀찮게 했으면 얘들이 결국 해외 언론이랑 인터뷰를 하겠냐고.
자업자득이니까 애들 건드리지 말라는 협박과.
이제 겨우 마음 잡고 다시 활동하는 애들 자극하지 말아 달라는 호소까지.
별의별 글이 다 올라갔다.
하지만 결국엔, 건드리지 마라, 걔들은!
이런 내용으로 귀결됐다.
그 언론사가 폭격을 맞자 다른 언론사도 동참하려다가, 분위기를 읽고는 대번에 꼬리를 말았다.
이 인터뷰 이후 정문이 청소되기 시작했다.
이미 외국계 언론이 궁금증을 전부 풀어줘 버렸기 때문에 후속으로 얻을 만한 게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없기도 했다. 그렇게 정문이 조용해지자, 황금세대는 기다리고 기다렸던 훈련을 시작했다.
선수촌 당일치기 훈련.
지영이 정말 기다렸던 시간이었다.
새벽 운동을 끝내고 미리 짐을 싸놨고, 학교 측에 허가받고 점심을 먹은 뒤 곧장 차에 올랐다.
“짐 다 챙겼지? 출발한다?”
“네.”
강한결이 대표로 대답하자 임대성이 모는 중형버스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목적지는 진천 선수촌이었다. 다행히 청주에서는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1시간이 좀 안 되게 달려 선수촌에 도착하니 2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선수촌의 정문에서 방문증을 받고 안으로 들어가 유도 훈련장 앞에 차를 세웠을 때는 20분쯤이었다.
이미 선수촌에 있는 선수들이 각자 훈련 장소로 이동을 시작한 시간이었고, 그래서 짐을 챙겨 내리자 시선이 와다다 달려들었다. 애초에 버스 옆면에 연희고 유도부라고 적혀 있어서 이미 차가 올라올 때부터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었다.
연예인.
같이 운동하는 아주 어린 후배들이지만, 시선의 절반 이상이 후배가 아닌 연예인을 보는 느낌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또, 작년에 선수촌에 갔을 때처럼 아는 사람을 마주했다.
“어! 지영아!”
저 멀리서 훤칠한 선수들과 함께 이동 중이던 한유진이 이쪽을 보며 손을 마구 흔들고 있었다. 어떻게 된 게 저 사람은 선수촌에 올 때마다 보는 것 같아서 지영은 피식 웃고는 같이 손을 흔들어줬다.
큰 키로 한달음에 달려오는 한유진.
“누나! 안녕하세요!”
“어 성진아 안녕? 한결이도 오랜만이네? 석이도, 효중이도. 와, 1년 좀 더 됐나? 시간 참 빠르다, 그치?”
주절주절.
오자마자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한유진의 얼굴엔 반가움이 가득했다. 그리고 지영이나 친구들도 그런 한유진이 반가웠다. 아마 황금세대와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한 명이고, 요 몇 달 동안 계속해서 힘내! 파이팅! 해준 사람이기도 했다.
“너희 이제 도복 입는 거야? 다시 복귀?”
그런 한유진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오늘부터 이제 다시 연습하려고요.”
“와! 진짜 잘 됐다! 그동안 진짜 고생 많았다, 정말.”
“고생은요. 고마워요, 누나. 계속 응원해줘서.”
“에이, 그냥 톡만 한 거지. 나는 진짜 아무것도 한 게 없어. 세리 언니한테 들었는데 너희들이 다 고생하고 한 거라며? 진짜 대단하고, 대견하다. 잘했어. 멋있고!”
한없이 텐션이 올라간 표정의 한유진.
실제로 그녀는 정말 지영의 일이 잘 풀린 걸 누구보다 좋아하는 기색이었다. 좋은 사람. 그래서 이 사람의 미소를 보고 있자니 지영도 기분이 좋았다.
“아, 운동해야지? 얼른 가봐. 그리고 저녁들 먹지 말고! 누나가 가서 저녁 사줄게!”
“네, 잘 먹을게요.”
사준다는데, 거절할 리가 있나.
꾸벅 고개 숙여 미리 감사를 표하자 씩 웃은 한유진이 다시 일행에게 돌아갔다. 그녀가 돌아가자 지영은 친구들과 함께 훈련장에 입성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나온 선수들은 얼마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익숙한 선수는 한 명 보였다.
이우진.
올 초 2차 선발전에서 준수한 성적을 거둬 파트너가 아닌, 당당하게 국가대표 후보로 입촌한 이우진이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천재 장대호도 있었다.
이우진은 연희고 아이돌을 보더니 놀란 눈이 됐다.
아무래도 연희고가 오는 걸 몰랐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반가운 표정으로 환히 웃더니 일어나서 다가왔다.
지영은 다가오는 이우진을 향해 마주 웃어줬다.
이 친구도 좋은 친구였다.
회귀 이전엔 지영이 없던 73체급에서 승승장구해, 다음 올림픽에서 바로 2등을 하는 저력을 보이는 친구다. 기억이 잘 나는 건 아니지만 아마도 1등은 신지였을 거고. 어쨌든, 그만큼 치열하게 운동하는 친구다. 지영이 이런 이우진을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는 건 그런 본래의 궤도에서 벗어나 벌써 몇 번이나 지영에게 막히고 있었지만, 그래도 지영에 대한 나쁜 감정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시기와 질투.
몇 번이나 지영에게 막혔으니 충분히 그런 감정들을 가질 법도 한데, 이우진은 그게 없었다. 그저 겸손하고, 겸허하게 냉철한 승부의 세계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마음이 가는 친구였다.
“이제 도복 입는 거야?”
다가온 이우진의 물음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늘부터.”
“그래? 다행이다. 그런데 몇 달 쉬지 않았어? 컨디션은 어때?”
“마냥 놀고 있지는 않았어.”
“오호, 그럼 첫판 하자. 오늘은. 첫판에 해야 한 번이라도 넘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하하.”
그렇게 너스레를 떤 이우진이 돌아갔다.
하여간 말 하나하나가 밉지 않은 친구였다. 나름 준재벌가의 손자이기도 한데, 여러모로 대단하단 생각도 들었다.
시간이 됐다.
선수들이 한두 명씩 들어오면서, 다시 시선이 몰렸다.
적의, 호기심.
역시나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시선들이었다.
그렇게 시끄럽게 굴었고, 여기 있는 대표팀의 태반은 연희고 황금세대 때문에 욕을 거하게 퍼먹은 전적이 있는 선수들이었다. 특히 남자 대표팀의 절반 이상은 전부 욕을 먹었다. 그래서 바라보는 시선이 곱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영은 그런 시선을 아주 가볍게 무시했다.
솔직히 말하면.
‘억울한 건 우리가 더 억울하지.’
당신들이 져서, 우리가 욕을 먹은 건데.
당신들이 일본의 유망주들에게 지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은 겪지도 않았을 건데. 하는 마음이 팽배하게 들어찼다.
“우리도 도복 갈아입자.”
“오케이!”
그런 시선들을 받다가, 강한결의 말에 일어나서 탈의실로 갔다. 오랜만에 입는 도복. 도복을 입으니 역시 감회가 새로웠다. 회귀했을 때 입었던 것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어색하면서도 새로운 그런 기분이었다.
도복을 갈아입자 지영은 물론이고, 친구들의 표정이 대번에 변했다.
오랜만에 도복을 입어서 생긴 강한 고양감이 지영은 물론, 천하의 강한결의 얼굴에도 들어서 있었다.
그때부턴 따로 말들이 없었다.
그저 기분 좋은 고양감을 느끼며 대열에 합류해, 준비운동을 시작했을 뿐이었다.
지영은 준비운동을 끝내고 이우진과 부딪치기를 시작했다.
퍽, 퍼억! 퍽!
가슴에 강하게 부딪치는 기술을 받으면서, 그 충격에 그간 멈춰있던 혈액에 전신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하도 오랜만에 기술을 받아서 그냥 평범한 수준의 부딪치기인데도 가슴이 아팠지만, 그마저도 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그런 지영의 모습에 이우진이 이유를 단번에 깨닫고는 피식 웃었지만, 지영은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부딪치기 10분.
육체 예열이 단계별로 시작됐다.
트랙을 달릴 때와는 다르게 관절 부분은 따로 세팅이 필요할 정도로 삐걱거렸다. 그 자체가 부상의 전조라 할 수 있지만, 신기하게도 몇 분 정도가 지나자 어긋났던 톱니바퀴가 제 자리로 찾아 들어가 원활하게 돌아가듯이 조정이 딱 끝나는 기분이 들었다.
허벅다리를 몇 번 차보고 알았다.
조정이 끝났다는 것을.
잠시 뒤, 타이머가 세팅됐다.
첫판은 이우진.
이우진은 굳이 첫판에 잡자고 했다.
첫판이 아니라면 몸이 풀린 지영을 이길 자신이 없다면서.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냐.’
조정은 끝났다.
그건 곧, 몸이 다 풀렸다는 뜻.
100%의 베스트 컨디션은 아니더라도, 최소 90%는 올라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90%의 컨디션이면, 지영은 신지도 잡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 지영의 자신감은 삐이! 타이머가 작동하는 순간부터 폭발적으로 터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