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50화
150화.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2)
-예인 강지영! 운동은 돈이 안 돼 배우에 전념!
얼씨구?
그 밑으로 다시 올라오는 기사에 지영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웃음을 터뜨리긴 했어도,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저, 지영아?”
그의 표정을 본 임은진이 질린 눈빛으로 지영을 불렀고, 지영은 눈을 질끈 감고는 감정을 정리했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왜곡된 기사. 이건 확대해석이 아니라 그냥 새롭게 소설을 쓴 것과 마찬가지였다.
지영은 언론이라는 게, 창작의 영역이라고 했던 것을 이제야 다시 깨달았다.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지영은 일단 폰에 저장된 녹음 파일을 임은진에게 보냈다. 띵. 하는 메시지 소리에 그걸 확인한 임은진이 놀란 눈이 됐다.
“녹음 파일? 이거 설마 아까?”
“네. 대표님도 조심하라고 해서 아까 인터뷰 잠깐 할 때 녹음했어요. 제대로 들리는지 확인은 안 했는데, 그건 누나가 해주세요.”
“그래, 이거, 잘됐다. 진짜. 진짜 잘했어!”
“…….”
지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기자들에게 한차례 곤욕을 치렀던 지영이었다. 그때부터 황금세대는 혹시 모를 인터뷰 상황이 오면 무조건 음성을 녹음하기로 했다. 당연히 지영은 아까 그 인터뷰 당시를 녹음했다. 녹음기는 셔츠의 상단에 걸어둔 액세서리였고, 안쪽 버튼을 누르면 녹음 시작, 한 번 더 누르면 녹음 종료 후 블루투스가 연동된 기기로 자연스럽게 파일이 전송된다.
꽤 비싼, 고가의 녹음기였다.
어쨌든 그렇게 준비를 해놓긴 했지만, 솔직히 이 녹음 파일이 중요하게 되는 상황 자체가 없었으면 했다. 하지만 파일은 중요하게 됐다. 기자들은 작정하고 지영의 인터뷰를 곡해 수준이 아니라 날조했고, 이제 파일은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현실이 지영의 속을 쓰리게 했다.
“일단 전 들어가 있을게요.”
“어? 어어, 누나는 대표님이랑 통화 좀 하고 들어갈게.”
“네.”
지영은 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식당으로 들어왔다.
조용했다.
지영이 들어오자 다들 시선을 피하는 거로 보아 짧은 시간 동안 이들도 기사를 확인한 것 같았다. 자신을 향한 연민 가득한 눈빛. 그게 지영의 짜증을 대폭발시켰다. 저 눈빛, 절룩이던 자신에게 보내던 그 눈빛!
딱 그 눈빛이다.
지영이 정말이지, 너무 싫어하는 그 눈빛들이었다.
그게 지영의 짜증을 폭발시켰다.
하지만 지영은 그 짜증을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저 연민 가득한 눈빛은 이런 상황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눈빛이었다.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그런 눈빛. 그리고 자신을 생각해서 보내주는 눈빛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들에게 짜증을 낼 수는 없었다.
지금 시각은 9시 30분 정도.
이제 조금 있으면 예인의 마지막 화가 방영되니, 지영은 그때 조용히 빠져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 음…….
앞에 있던 이지연이 곤란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는 게 눈에 보였다.
자신 때문에 아무래도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미안.”
“응? 아냐. 지영이 네가 잘못한 게 뭐 있어. 기자님들이 이상한 거지!”
작게 말한다고 한 것 같은데, 워낙 분위기가 조용해서 이지연의 목소리는 식당 전체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에 흠칫 놀란 이지연이 얼른 고개를 푹 숙였다. 빌어먹을. 원했던 건 이런 상황이 아니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건데.
지금이라도 그냥 갈까?
마음 같아서는 정말 이대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영은 여기서도 막내였다. 모든 배우가 일단 다 지영보다 나이가 많았다.
몇몇 어른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 배우들은 마지막 종방연에 오지 않았다. 조연이라지만 단역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막내였고, 문제가 생겨 기분 나빠졌다고 저 그만 가보겠습니다. 할 위치는 아니었다.
그래서 지영은 마음을 바꿔 끝날 때까지는 그냥 참기로 했다.
그러던 차였는데, 전화가 왔다. 살금살금, 다가와서 앞에 앉은 이연에게 눈인사를 한 지영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 한결아.”
조용히 말한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귀를 쫑긋거리는 게 느껴졌다.
-기사 봤어.
“벌써? 빨리도 봤네.”
-그럼, 우리 일인데.
“우리? 아, 맞네. 우리 일.”
나한테도 이러는데, 내 친구들이라고 안 그럴까.
아마 어떻게든 물어뜯을 준비를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지영아.
“응.”
-우리가 너무 순진하게 굴었나 봐. 그치?
“응?”
이건 또 뭔 소리?
차분하게 가라앉은 강한결의 목소리에 지영은 그제야,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 지금 매우 화가 나 있었다. 평소에는 허허 웃는 부처님이지만, 자신의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걸 보는 순간부터 부처님 모드는 끝난다.
그리고 다른 모드로 들어선다.
일종의 전투 모드로, 강한결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주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왕따 사건이 그랬다.
폭력을 쓰진 않았지만 이미 강한결의 행동에 기가 질릴 대로 질렸던 일진이었다. 그런데 그걸 인정하기 싫어 강한결에게 주먹을 휘둘렀다가 이성진이 폭발한 거고.
“뭘 하려고?”
-아직은 생각 중. 그런데 지영아.
“응?”
-은퇴, 어떻게 생각해?
“…… 은퇴?”
은퇴?
지영은 단번에 강한결의 의중을 깨달았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더니. 역시 무서운 놈.’
어설프게 건드려 봐야, 어차피 언론이란 괴물은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건 은퇴라는 카드를 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그걸 강한결은 모를 리가 없을 터. 지영은 이 친구에게 또 다른 방법이 아직 더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쁘지 않네. 자세한 얘기는 내일 하자.”
-오케이. 그럼 종방연 잘하고.
“응.”
전화를 끊은 지영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자신에게 몰려있던 시선이 사사삭! 반대편에 있단 TV 쪽으로 돌아갔다. 다들 들었을 거다. 은퇴란 얘기를. 아마 속으로 엄청 놀라고 있을 거고, 오늘 얘기는 반드시 퍼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도 기사화되겠지. 아, 설마 여기까지 노린 건가?’
그렇다면 진짜, 무섭다는 걸 넘어서 소름이 끼치는 예측이었다. 이성진이나 황석, 임효중이라면 이런 생각을 안 했을 테지만 강한결이 한 말이라 더욱 의심됐다.
‘뭐, 그것도 내일 물어보면 알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은 생각을 정리하는데 앞에 앉아 있던 이연이 대번에 물어왔다.
“은퇴하게?”
“애들이 하자고 하면요.”
“진짜? 어떤 거? 연예계? 아니면 유도?”
“하게 되면, 아마 둘 다일 것 같은데요.”
“…… 진짜?”
“거짓말 같아요?”
지영이 그렇게 되묻자, 이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라면 그럴 것 같아. 넌 애초에 여기에 미련이 없잖아.”
“네.”
배우, 연예계.
연기, 드라마, 영화 등등을 제작하는 이 세계에 이연의 말처럼 미련이 없는 지영이었다. 남들이 들으면 욕하겠지만 이 바닥 자체를 하나의 선택지로 생각했다. 유도를 은퇴하고 났을 때, 평범하게 사회생활을 하냐 아니면 연예계 생활을 하냐. 적어도 이 두 가지의 선택지를 만들기 위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지영이었다.
최악의 경우라면, 다 때려치우고 그냥 공부만 해도 지영은 잘해낼 자신이 있었다.
물론 때려치우는 일은 없을 거다.
그랜드 슬램이라는 목표는 이미 세워졌고, 지영은 고작 이 정도의 저열한 수작에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근데, 은퇴는 곤란해.”
그때 다시 생각을 강제로 접게 만드는 이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나 너랑 찍고 싶은 작품 생겼단 말이야.”
“……저랑요?”
“응, 정은정 작가님 작품. 너한테도 시나리오 갔다고 들었는데?”
“저한테요? 아 맞다. 시합 끝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확인 못 했어요. 그런데 그건 둘째 치고. 왜 저랑?”
“왜기는. 호흡 맞춰보고 싶어서 그렇지.”
이연은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었다.
참으로 싱그러운 미소였다. 적어도 감이 좋은 지영이 보기에 따른 의도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순수하게 작품을 하고 싶은 배우의 눈빛과 느낌이었다.
하지만.
“확답은 못 드려요.”
지금은 언론 상대가 먼저다.
지잉.
단톡방에 올라온 메시지를 봤는데, 강한결은 벌써 조사에 착수한 것 같았다.
강한결: 기사 올린 언론사들 보니까 메이저는 아니야. 그쪽은 아예 우리한테 관심도 없는 것 같고. 상대하기 그나마 괜찮겠어.
그리고 그 뒤로 주르륵 올라오는 메시지.
‘다행히 메이저는 아니네.’
메이저가 나서면 솔직히 언론을 상대한다는 생각 자체를 접어야 했다.
황금세대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메이저 언론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황금세대에 불만을 품은 언론사는 중소언론사였다. 그때 황석과 강한결이 개쪽을 준 작은 찌라시 언론사 같은 곳 몇 개가 뭉쳐서 황금세대를 타깃으로 잡은 것 같았다.
그래서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하지만 무시할 수도 없지. 어차피 기사는 컨트롤 C와 V로도 엄청나게 재생산되니까.’
복잡했다.
앞에서 막 말문을 열기 시작한 이지연과 이연의 목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생각해보면, 지금 처한 위기는 결코 쉽게 생각할 게 아니었다. 이미 아시안 게임 때 여론이라는 것에 뭇매를 맞았으니, 이게 얼마나 위험한지 정도는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쉽게 보고 상대했다가는, 진짜 낭패를 당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걸 신중한 한결이가 모를 리는 없을 거고.’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지영은 괜히 내일이 기다려졌다.
“어, 시작한다. 자 다들 집중!”
조연출의 외침에 지영은 상념에서 깨서 TV로 시선을 돌렸다.
예인의 마지막 화가 시작됐다.
15화 마지막.
희수는 결국 도언을 떠났다.
그녀가 떠나는 걸 보면서 도언은 손을 내밀다가, 이내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다시금 악보로 향했다.
16화는 그런 도언의 집착을 다루면서 시작됐다.
힘을 빼고, 마지막이라는 생각 때문에 체념한 상태에서 쓴 곡이 인기를 얻었다. 하필이면 그게 말라가던 도언에게 생기를 넣었다. 아주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아르바이트로 도언의 뒷바라지를 하던 희수는 도언이 돈을 조금 벌자마자 악기를 사는 걸 보고, 결국 그를 향한 마음을 접었다.
희수도 여자.
그래도 좀 잘되어서 돈이 들어왔으면 자신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해주겠지. 하는 마음을 당연히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도언은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기고 모두 음악에 재투자했다.
그게 트리거가 되어 희수는 떠났다.
도언은 주인공이지만, 결코 좋은 주인공은 아니었다. 보통은 선한 역할을 하는 주인공의 특성상, 도언은 오히려 쓰레기에 가까웠다.
음악에 미친 인간.
그런데 하필이면 재능도 어중간했다.
자신이 천재인지 착각하는 설정에다가, 집착까지 더해진 거였다.
그런 캐릭터니 솔직히 도언에 대한 평은 결코 좋지 못했다.
하지만 어차피 상관없었다.
‘‘꿈’이라는 게 얼마나 위험한 건지, 맹목적인 전진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 그걸 자세하게 드러내는 게 이 드라마의 목적이니까.’
드라마와 현실은 다르다.
보통 이런 주인공이라면 나중에 성공하는 해피엔딩으로 가지만, 장민주 작가는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사람들은 성공의 달콤함은 보고 싶어 해도, 성공을 향해 질주하다 넘어졌을 때의 상황은 그리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지독한 현실.
연예계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성공하는 세계였다.
누구나 두드릴 순 있지만.
‘아무나 들어올 수 없고.’
들어온 사람 중에서도 다시 극소수만 살아남는 곳.
비단 연예계만 이러지는 않을 거다. 스포츠계도 그렇고, 문화예술, 클래식 등 거의 모든 곳이 성공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꿈과 희망이란 메시지보다.
절망과 집착에 더 중점을 둔 게 바로 이 작품이었다.
옛날이라면 망했을 드라마지만, 지금은 이런 ’현실적인‘ 드라마도 충분히 먹혔다.
극 중, 자신이 연기한 서건은 여전히 빛났다.
재능이란 괴물을 몸에 키우면서, 승승장구를 넘어 아득한 곳까지 너무나 쉽게 가버려 이제는 도언이 무슨 수를 써도, 서건의 그림자를 쫓을 수 없게 됐다. 아니, 아예 보이지도 않을 만큼 거리와 격차가 벌어졌다.
드라마는 종막으로 향했다.
서건은 빛나고.
희수는 삶을 되찾고.
도언은 망했다.
세 사람의 삶을 그렇게 교차해서 보여주며, 드라마는 끝났다.
꿈도 희망도 없는, 비정함으로 무장한 채로.
짝짝짝!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드라마가 끝나고 감독과 작가의 인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지영은 식당 안에 없었다. 드라마가 끝나는 그 순간, 박수가 나오는 순간 이미 식당을 나섰기 때문이었다.
“어떡할래? 청주로 갈래?”
“아니요. 숙소로 갈게요.”
원래는 바로 청주로 가려고 했는데, 기사 때문에 일정이 당연히 변했다.
오늘은 숙소에서 쉬고, 내일 장세리와 이 문제에 대해 상의를 한 다음, 그리고 내려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그녀가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