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51화
151화.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3)
그녀의 집 앞 공원.
지영은 임은진에게 부탁해 그곳으로 먼저 향했다.
도착해서 메시지를 보내자, 금방 나가겠다는 답장이 왔다.
늦은 저녁이지만 운동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지영은 그런 사람들을 가만히, 아무 생각 없이 눈에 담으며 그녀를 기다렸다.
벤치에 앉아 멍하니 잠시 기다리자 두툼한 패딩을 챙겨 입은 양유진이 도착했다.
그녀는 지영을 발견하곤 빠르게 달려와 일어난 지영의 가슴에 폭 안겼다.
“힝…….”
안기자마자 투정을 부리는 그녀.
아무래도 기사를 본 것 같았다. 하긴, 지영 때문에 인터넷을 자주 하게 됐으니 당연히 확인했을 수밖에 없었다.
“저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아요…….”
“…….”
그 말에, 음…… 치유된다는 게 뭔지 지영은 확실히 깨달았다.
별거 아닌 말 한마디였고, 연인끼리의 귀여운 투정에 가깝기도 했지만 그래도 듣고 나니 확실히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잠시 안고 있다가 둘은 벤치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양유진이 지영을 빤히 올려다봤다.
“정말 괜찮은 거 맞죠?”
“네. 정말요.”
“다행이다. 갑자기 찾아와서요. 힘들어서 찾아왔나 그런 생각 했거든요.”
양유진의 말에 지영은 가만히 웃었다.
솔직히, 짜증도 나고 해서 좀 지쳤었던 상태는 맞았다. 지영이 아무리 성인의 정신을 하고 있다고 해도, 이런 일에는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양유진이 보고 싶어졌던 것도 맞았다. 하지만 양유진에게 그걸 솔직하게 얘기하면 다시 걱정할 게 빤하니 그냥 말하지 않기로 했다.
“저녁은 먹었어요?”
“그럼요!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연예인님은요?”
“저는 좀 전까지 종방연에 있었잖아요. 고기 실컷 먹었어요.”
아니, 먹지 못했다.
좀 먹으려는 찰나에 기사가 올라오면서 고기 몇 점 먹은 게 전부였다. 그래서 솔직히 배가 고팠다. 그리고 배고픈 육체는 솔직했다.
꼬오오옥.
“…….”
“고기 실컷 먹었다면서요?”
이럴 땐, 이실직고가 답이다.
“음, 미안해요. 기사 때문에 거의 못 먹었어요. 사실.”
“아! 그럼, 음. 제가 밥 사줄게요!”
“하하, 안 그래도 돼요. 숙소 가서…….”
“에잇! 얼른 와요! 저 건너편에 포장마차 있거든요? 거기 가서 먹어요!”
양유진은 그렇게 지영을 끌고 가려 했지만, 지영은 고개를 저어 그녀의 행동을 막아야 했다. 지영은 이미 기자들의 표적이 된 상태. 지금은 마스크를 쓰고 있어 아무도 못 알아보고 있지만, 포차에서 뭘 먹다가 같이 사진이라도 찍히면…… 상황은 더욱 곤란해질 게 분명했다.
자신과는 다르게 양유진은 일반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정말 순수한 일반인. 그런 그녀가 괜히 곤란하게 되는 건 지영이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니 상황이 좀 잠잠해질 때까지 지영은 가능한 양유진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평소에는 맹하면서도, 양유진은 이런 쪽으로는 또 눈치가 좋았다.
“혹시 저 걱정해서 그래요? 제가 막 강지영 여친이다. 이렇게 밝혀질까 봐?”
“어, 음……. 조금?”
“혹시 나 부끄러워요? 그냥 바보 같고. 공장 다니고 그래서?”
그 말에 지영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절대, 절대로 그런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절대! 진짜 절대 그런 생각한 적 없어요!”
그래서 지영답지 않게 큰소리로 그렇게 항변하자, 양유진이 배시시 웃었다.
“그럼 가요. 아니면 우리 집에 가서 먹을래요? 제 동생 음식 진짜 잘하는데!”
“…….”
양유진의 집?
가보고야 싶었다.
하지만 이 시간에 여자 집에 갈 정도로, 그것도 양지원이 있을 집으로 가는 건 절대로 예의가 아니었다.
그래서 지영은 그냥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게 낫겠다 싶었다.
“음, 그냥 근처 식당으로 가요.”
“네! 잘 생각했어요!”
지영은 폰을 꺼내 임은진에게 저녁을 가볍게 먹겠다고 톡을 보내곤 그녀를 따라 공원을 빠져나갔다. 공원 건너편. 진짜 포장마차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이모! 저희 우동 두 그릇이랑, 김밥이랑! 떡볶이 주세요! 아! 튀김도 주세요!”
앉자마자 시원하게 음식을 시키는 양유진을 보며 지영은 헛웃음을 지었다.
“저녁 먹었다면서요?”
“괜찮아요! 원래 여자한테는 야식 배랑 디저트 배가 따로 있댔어요!”
“누가 그래요?”
“지원이가요! 헤헤. 근데 전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아직 잘 몰라요. 헤헤.”
그렇게 말하며 귀엽게 웃는 양유진.
확실히 양유진은 말랐다.
양지원은 비시즌에 봤을 땐 살이 좀 오른 느낌이 확실히 나는데, 양유진은 그때와 지금,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많이 먹는 편이 아니었지.’
항상 남기는 느낌.
특히 메인요리의 경우에는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었다. 지영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웃고 말았다.
이런 건 괜히 건드려 봐야, 좋을 게 없기 때문이었다.
김밥과 떡볶이, 튀김이 먼저 나왔다.
분식은 오랜만에 먹어 그런지 제법 맛있었다.
우동도 그렇고, 포차 사장님의 음식 솜씨가 좋아서 그런지 지영은 조금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낡은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계산하는 양유진과 함께 포차를 나온 지영은 공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히, 배부르다. 연예인님 저기 맛있죠? 회사 사람들이랑 가끔 오는 곳이에요! 근데 다 맛있어했거든요.”
“네, 맛있었어요. 잘 먹었어요, 진짜.”
“헤헤, 다행이다.”
나란히 걸어 다시 공원으로 돌아온 지영은 그녀와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냥 별거 아닌 대화를 나눴는데도 기분이 좋아졌다. 12시쯤 되어 지영은 그녀를 집 앞에 데려다주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짐을 푼 지영은 침대에 누웠다.
좋았던 일도, 나빴던 일도 있었던 만큼 하루가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하나는 정리할 수 있었다.
‘순탄치 않겠네.’
앞으로 자신들의 삶이, 이전처럼 순탄하게 흘러가진 않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솔직히 지금도 완전하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아시안 게임의 말도 안 되는 성적을 문제로 왜 자신들을 공격할까?
커뮤니티 중심으로 퍼지긴 했어도, 그걸 언론이 다루지만 않았어도 일이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랬다. 불은 이미 커뮤니티에서 지펴진 거고, 그 불길을 키운 건 조회 수에 목마른 언론사였다.
두 번째 스태프가 가만히 내버려 뒀다면 일주일도 안 가 꺼졌을 불을, 지금까지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다.
실력적인 문제야 전국체전에서 확실히 입증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커뮤니티에서도 황금세대의 문제를 다루며 찬반으로 싸우고 있었다.
둘 다 잘하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
하나만 해도 부족한데 뭐 하는 거냐.
항상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그 논란에 군불을 지피는 것도, 지영이 보기엔 언론사였다. 이 떡밥이 계속 불타줘야 자신들이 내는 기사의 조회 수가 나온다는 걸 아는 탓이었다. 단순한 예상도 아니었다. 실제로 임은진이 그런 것 같다고 숙소로 오는 길에 넌지시 얘기해주기도 했으니까.
그런 걸 상대해야 한다는 건데…….
“한결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일까?”
그래서 지영은 그게 더 궁금했다.
아까 종방연 때 메시지를 보낸 강한결은 이후 조용했다. 따로 전화해서 물어볼까 했지만, 지영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내일이면 알게 될 일이고, 시간이 시간인지라 자고 있을 가능성도 많았다.
그래서 지영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잡생각으로 복잡하던 머리가 자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맑게 개었다. 그리고 잠에 빠져들었다가, 오전 10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난 지영은 씻고 나와 임은진에게 전화했다.
-일어났어? 누나 지금 근처니까, 금방 가. 회사로 갈 거지?
“네. 대표님 좀 만나고 가려고요.”
-알았어. 30분 뒤에 준비해서 나와!
“네.”
전화를 끊은 지영은 양유진이 잘 잤어요? 하고 보낸 톡에 답장을 보냈다.
덕분에요, 하고 보내자 숫자 1이 금방 사라졌다.
그러곤 전화가 왔다.
“네, 누나.”
-아침은요? 먹었어요?
“아직이요. 애매해서 회사에 갔다가 점심 먹고 내려가려고요. 누나는요?”
-지원이 훈련 있어서 같이 먹었어요!
“아, 맞다. 오늘도 훈련 간다고 했죠?”
-네! 시합 얼마 안 남았거든요.
지영은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달력을 찾았다. TV 옆에 있던 달력을 살펴보니, 확실히 시합이 얼마 안 남긴 했다.
양지원.
안타까운 노망주 소리를 듣다가 지영과 강한결의 지원 이후, 이제는 피겨계의 에이스 자리를 빼앗은 천재. 그녀는 이제 국내대회가 아니라 세계대회에 나간다.
천재.
지금은 언론에서도 간혹 조명해주는 천재 피겨 여신 후보가 바로 양지원이었다.
특히 연아킴 이후 침묵했던 피겨계에, 활력소를 넘어 다시금 왕의 자리를 넘볼 수 있지 않겠나 싶어서 더욱 그랬다.
거기에 가정사까지 조명이 되며, 종종 방송에서도 연락이 온다고 들었다. 물론 본인은 절대 나가고 싶지 않아 했고. 그런 양지원은 연희 스포츠 소속이었다. 집중 케어 대상이라, 김지영 여사님이 따로 팀까지 만들 예정이기도 했다.
“잘할 거예요.”
-헤헤, 그렇겠죠?
“네, 누나 동생이잖아요?”
그 말에 바보처럼 웃는 양유진.
동생을 정말 끔찍하게 생각하는 양유진이라 아무리 힘들어도 동생 칭찬만 하면 헤벌쭉 웃는 여자였다.
“그럼 오늘은 지원이한테 집중해요. 저는 회사 갔다가, 청주에 내려갈 때 연락할게요.”
-네! 연예인님 파이팅!
“네, 파이팅.”
그렇게 서로 파이팅을 해주며 전화를 끊은 지영은 가방을 챙겨 아래로 내려갔다.
연희고 아이돌이 서울 스케줄이 있을 때면 다 같이 쓰는 숙소 건물 앞에 잠시 기다리자, 임은진이 도착했다.
“누나, 안녕하세요.”
“응, 지영이 안녕! 잘 잤지?”
“네.”
“아침은?”
“좀 전에 일어났어요. 이따가 대표님 만나고 점심 먹고 내려가려고요.”
“그래. 그럼 출발한다? 벨트 매.”
“네.”
벨트를 하자 부드럽게 출발하는 차량.
임은진은 경력이 상당한 것답게 운전을 아주 잘했다. 매니저가 되고 싶어 자격이 되자마자 면허를 땄고, 부모님 차량으로 매일 연습했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것 같았다. 준비된 매니저. 로드부터 시작해 지금은 프리로 아주 잘 나가는 매니저가 된 게 임은진이었다.
그런 임은진의 부드러운 주행으로 편하게 서울 숙소에 도착한 지영은 대표실로 가자, 친구들이 다 도착해 있었다.
어?
톡방은 조용했는데?
그래서 지영이 눈을 멀뚱히 뜨고 보자, 친구들은 그냥 씩 웃으며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지영은 그 모습에 그냥 피식 웃고는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러자 옆자리에는 친구들의 스케줄까지 전부 같이 봐주는 임은진이 자리를 잡았다.
그 외에도 회사의 간부분들도 전부 자리해 있었다.
“자, 다들 모였으니까 시작할까요? 일단 미안해요. 일요일인데 이렇게 다들 나오라고 해서. 알다시피 얘들이 지방에 있어서, 같이 회의하려면 오늘밖에 없었어요.”
“아닙니다. 이런 문제는 빨리빨리 해결해야죠. 하하.”
“그래도요. 대신 특근비 씨게 지급할 테니까 오늘은 좀 봐줘요. 그럼…… 녹음 파일은 다들 들었죠?”
간부 전원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영이 인터뷰 내용 봤는데,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걸 그냥 터뜨리기엔 좀 문제가 있습니다.”
“불법 녹음. 뭐 그런 거죠?”
“네. 아무래도 정정 기사 하나 내고, 다음에 더 악랄하게 들어올 가능성이 큽니다.”
“흠…… 언론, 참 진짜 이해가 안 간단 말이야.”
장세리 선배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해결책은요? 이대로 그냥 두면, 아주 지들 멋대로 얘들 물고 뜯을 것 같은데.”
“법적인 대응으로 가봐야 애들만 상처 입습니다. 아시잖습니까? 법적으로 대응하는 순간 알 권리니 언론 탄압이니 뭐니 해댈 게 분명하거든요.”
그건 지영도 동의했다.
지금 연희고 황금세대, 아이돌을 공격하는 이들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방법이 없다, 뭐 그런 건가요?”
“좀 더 신중하게 대응하는 게 일단 저희 의견입니다.”
“흠……. 그래요. 일단 그건 접수. 그렇게 할 건 아니고. 얘들 의견도 좀 들어보게요. 그럼 한결아. 할 말이란 건?”
모두의 시선이 강한결에게 향했다.
그렇게 시선을 받은 강한결은, 어제 지영에게 했던 얘기를 그대로 풀었다.
“황금세대. 은퇴하는 게 어떨까요?”
“…… 뭐?”
지영은 당연히 평온했다. 그리고 친구들도 알고 있었는지 평온했지만, 장세리 선배님이나 간부님들은 전혀 아니었다.
“은퇴요. 연예계, 유도계. 전부.”
쐐기를 박겠다는 듯이, 웃지만 단호하게 내던진 그 말에 회의실은 침묵이 진하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런 강한결을 보며 지영은 직감했다.
‘은퇴가 전부가 아니구나.’
분명, 다른 묘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지영의 생각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