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39화
139화. 몰려오는 비난(2)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자책골을 넣은 선수는 어떻게 될까?
아마 수명이 최소 20년은 늘어날 정도로 욕을 먹을 거다. 만약 그 자책골 때문에 메달이나 입상을 놓쳤다면?
역적이다.
단언컨대, 국민은 그 선수가 최소 비슷한 상황에서 영웅이 되지 않는 한 면죄부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실수한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비난은 상상을 초월한다. 실제로 남미였나, 그쪽의 한 축구선수는 실제로 중요한 경기에서 실책 하는 바람에 돌아오자마자 살해당하기까지 했다.
물론 한국은 그런 일은 없었다.
하지만 축구나 야구 경기를 봐도 선수들에게 도를 넘어선 비난이 쏟아지는 나라였다. 그리고 그 비난은, 인터넷이란 특수한 공간에서 더욱 거대해진다. 면전이 아니라, 비대면이기 때문이었다.
폭력이다.
손가락으로 치는 하나의 글자가, 조금 더 시간을 들여 만든 하나의 단어가, 그렇게 단어가 모여 만들어진 문장은 지극히 폭력적이었다.
연희고 아이돌. 혹은 연희고 황금세대는 기이할 정도로 넓게 폭력에 노출됐다.
애초에 이 친구들은 행보가 독특했다.
보통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는 두 가지를 병행하지 않았다. 연기와 노래를 시간의 차이를 두고 병행하는 경우는 있어도 연기하는 사람이 엘리트 운동을 하는 경우는 전무 했다. 당연히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연희고는 그 두 가지의 길을 동시에 걷고 있었다.
심지어 그 뒤에 공부라는 것까지 두고,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학교 성적은 유지했고, 운동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방송까지 손을 댔다. 그냥 발만 걸친 게 아니라 전문적으로 시작했다.
강지영의 드라마가 증거고, 이성진의 더 런닝 고정이 증거였다.
그 외에도 전원이 각자 비슷하지만 다른 영역에서 연예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게 문제가 됐다.
학생의 신분으로 운동을 하면서, 방송을 전문적으로 하는 연희고 황금세대. 방송에 욕심이 나서 ‘국가대표’란 명예로운 자리를 피한 것. 실력이 있음에도, 국가대표를 피해버렸기 때문에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몇 개나 놓친 것. 이걸 문제로 삼았다. 일견 타당해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실제로 파고들어 가 보면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학교도 학교지만 애초에 이제 고작 고2이고, 그들에게는 시간이 아주 충분히 있었다.
그렇기에 급하게 굳이 국가대표가 되지 않아도 되었다.
차근차근, 실력과 경험을 쌓아나가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런 이유 들은, 한일전 대참패의 앞에서 모조리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다른 종목은 그나마 선방했다.
야구도, 축구도 한일전은 다 승리했다. 배구도, 농구도 마찬가지였다. 유도를 제외한 투기 종목도, 탁구나 배드민턴, 테니스 같은 구기 종목도 다 한일전은 승리했다. 하지만 유도만 철저하게 박살이 나버렸다.
아시안 게임이 끝나고 순위가 발표됐을 때 한국의 종합성적은 일본의 밑이었다.
그런데 금메달이 딱 두 개만 더 있었어도, 한국이 일본을 누르고 종합성적 2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오자 여론은 더욱 폭발했다. 황금세대 중에, 세계 청소년 선수권에서 일본 선수를 잡은 셋만 나왔어도 종합 2위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분노를 더욱 키웠다.
대회가 끝날 때까지 그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진짜…….
“억울하다, 씨…….”
이성진이 풀이 잔뜩 죽은 얼굴로 밥을 깨작거리며 중얼거렸고, 다들 그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심정이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학교 친구들은 괜찮았다. 아직 나이가 어린 친구들이지만 강한결을 위시한 친구들이 연예인 활동에 빠져 대회를 차버린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위로를 해줬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면 판이 확 바뀌어버렸다.
당장 학교 앞 편의점 사장님만 해도 왜 대회에 안 나갔냐며 질책하곤 했다.
탁.
한숨과 함께 수저를 내려놓은 강한결이 지영을 향해 물었다.
“예인은 어떻게 한대?”
지영은 그 질문에 비슷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황석의 영화는 12월 개봉이고, 강한결은 아직 촬영도 들어가지 않았다. 임효중도 아직 연습 중이라 큰 문제는 없었다. 문제는 지영과 이성진이었다. 아시안 게임 기간 동안 방영을 쉬었던 예인으로 살어리랏다와 더 런닝은 축제가 끝났으니 정상적으로 방영해야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게시판에 몰려가 ‘의무를 버린’ 지영과 이성진의 성토를 아주 강하게 내비쳤다. 여기서 골 때리는 게, 바로 의무라는 점이었다.
‘도대체 나에게 어떤 의무가 있는 거지?’
연예인 강지영 말고, 운동선수 후원재단 연희 스포츠의 등기이사 강지영 말고, 학생 강지영이나 유도선수 강지영에게 대체 어떤 의무가 있는 걸까? 대체 언제 나도 모르는 사이 의무가 내 등에 올라탄 걸까?
지영은 솔직히 의무라는 게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영이 국가대표를 거절한 것도 아니다. 그냥 단지 아직은 선수촌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을 뿐이었다. 황금세대가 짠 로드맵은 올림픽까지 분명히 있는데, 왜 그걸 기다려 주지 않고 다들 욕을 할까?
“지영아.”
“아, 미안.”
지영은 상념에서 깼다.
그리곤 강한결의 질문에 답을 줬다.
“오늘 회의한다나 봐. 여론이 어쩌구저쩌구 문제라면서.”
“지랄하네.”
날 선 이성진의 반응이 이어졌지만 누구도 이성진을 나무라지 않았다. 솔직히 너무한 감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시합을 나가지 않은 게 지영의 잘못이라고? 황금세대의 잘못이라고? 지영은 조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황금세대가 방송에 빠져 운동선수의 직무, 의무를 저버렸단 여론이 너무 강하게 생성되어 있었고, 방송국 측은 이런 여론 자체를 당연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작가님이나 감독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긴 하셨어. 그냥 의례적인 거라고. 방송에 문제없이 나갈 거라고 그랬으니까 일단 기다려 봐야지.”
“만약 지영이 너 편집하면, 나 전부 관둘 거다.”
“어?”
지영의 말에 툭 하고 나온 임효중의 말에 다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반응에 임효중도 수저를 내려놓으며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사람들이랑은 일하고 싶지 않아.”
“너 혹시 뭔 말 들었어?”
이성진의 말에 임효중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이성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물었다.
“근데 왜?”
“뭔 말은 없었는데. 주말에 연습 갔는데 벌써 애들 표정이 심상치 않더라. 딱 봐도 뱉는 분위기더라고.”
“……진짜? 거기 대표? 그 사람도?”
“내색은 안 하려고 하는 것 같던데. 좀 불편해하는 정도?”
“와 진짜 개X끼들이네…….”
이성진의 입에서 거침없이 욕이 쏟아졌다.
그리고 지영도 솔직히 욕이 턱 끝까지 나왔었다.
“하! 가뜩이나 바쁜 사람들 불러서 사정사정한 게 누군데! 우리 잘못도 아닌데 욕 좀 먹는다고 그런다고? 와, 진짜 너무하네!”
“나야 다행이지. 어쨌든 난 데뷔하기 전이니까. 성진이 넌. 더 런닝 제작진 쪽에서 뭔 말 없어?”
“없어. 아무런 신경 쓰지 말고 멘탈 잘 수습해서 촬영 나오래.”
“그래도 거긴 정상적이네.”
“더 런닝이 원래 말도 많고 탈도 많았잖아. 그래서 웬만한 건 그냥 무시한대.”
“다행이다.”
그래, 다행이었다.
그런데, 이성진의 생각은 또 다른가 보다.
“근데 나도 지영이가 그런 대우 받으면 다 때려치울 거야.”
“넌 왜? 거긴 괜찮다며?”
임효중이 되묻자, 이성진이 흥! 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 솔직히 운동이랑 공부 빼고 방송은 여기까지 온 게 다 지영이 덕분이잖아. 그런데 지영이가 이렇게 대우받고 편집되는데, 내가 어떻게 방송 계속하냐? 양심이 있지.”
철없는 얘기였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한 울타리에 있지만, 그래도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골 때리게도 임효중은 물론이고 황석, 강한결까지 고개를 끄덕였다.
“반응 보자. 일단 반응 보고, 우리 진짜 쓰다고 뱉을 것 같으면 그냥 다 때려치우자.”
팀의 리더, 강한결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영은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방송 쪽 일이 아까워서 그런 게 아니라, 함께 가겠다는 친구들의 말이 고마워서였다.
“지영이 덕분에 편하게 갔는데 그건 좀 미안하네.”
이어진 강한결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어떻게 다 내 덕분이야? 너희들 스타성을 보고 그 사람들이 다 고민해서 연락한 건데. 그런 소리는 됐고. 일단 지켜보자. 지켜보면…… 아, 잠깐.”
전화가 왔다.
발신자가 박지상 감독이라 지영은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네, 감독님.”
-지영 배우, 내가 연락이 늦었지?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뭐 하고 있었어? 막 인터넷 보고 그런 건 아니지?
“아니요. 친구들이랑 저녁 먹고 있었어요. 회의 결과는 어떻게 됐어요?”
-뭐 별거 있겠어?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거라니까. 편집 없이 갈 거야. 솔직히 이번 참패가 지영 배우 탓도 아니잖아. 책임이 있다면 안일하게 준비한 협회와 상대를 이기지 못한 선수들 탓이지.
“…….”
박지상 감독의 말에 지영은 내 말이……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일본은 이번에 이를 갈고 나왔다. 이번 아시안 게임을 세대교체의 장으로 삼은 건 솔직히 도박 수였지만, 그 도박에 좋은 패를 쥐기 위해 정말 철저하게 한국 선수들을 분석해서 나왔다.
이는 결승전 경기를 전부 확인해 본 결과, 지영과 친구들이 종합적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안자이 히카리가 김성혜의 진을 굳히기로 빼놓은 것처럼, 모두 철저하게 준비하고, 또 준비해서 나왔기 때문에 나온 결과였다. 물론 그런다고 그 분석이 전부 맞아떨어진다고 참패를 당할 확률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 협회의 안일한 준비와 선수들의 정신이 문제가 됐다.
제대로 긴장하고 시합에 임한 선수? 지영이 봤을 때 셋에서 넷 정도였다. 특히 –60 선수는 시작과 동시에 모두걸기에 날아갔는데 그것도 정신만 바짝 차렸으면 넘어가지 않았을 거다. 그러니 방심이 불러온 결과였다.
이 방심은 세대교체라는 도박 수가 노린 한 부분이기도 했다.
세대교체를 하면, 연령이 확 낮아진다. 연령이 낮아진다는 건 그 자체로 방심을 불러일으킨다. 왜, 나이 많은 사람이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을 무시하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그 모든 것들이 맞물려, 대참패를 낳았다.
이 모든 게, 지영이나 지영의 친구들 탓은 절대 아니었다.
그걸 아는 사람은 전부 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는 지금은 문제였다.
이른바, 현대판 마녀사냥.
연희고 황금세대는 마녀사냥의 제물일 뿐이었다.
-지영 배우. 따로 대응 계획 같은 건 있어?
있다.
하지만 그건 알려줄 수 없으니 지영은 적당히 둘러댔다.
“아니요. 일단은 그냥 기다려보려고요.”
-잘 생각했어. 당장은 뭘 하는 것보다, 불이 꺼지기를 기다리는 게 더 좋은 방법일 거야. 이런 류의 비난은 또 한 번에 불탔다가, 한 번에 훅 꺼지니까 말이야.
“네.”
-그럼, 몸조리 잘하고. 종방연 때 보자고?
“네, 감독님.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지영 배우 때문에 좋은 드라마 만들 수 있어서 내가 고맙지. 하하. 그럼.
뚝.
그렇게 통화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와서 편집은 없을 거라는 얘기를 전해주니 친구들은 걱정하던 표정을 풀고, 마저 밥을 먹었다.
지영도 남은 밥을 먹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시간. 그래,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겠지.’
시간이 좀 지나고.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연희고의 대응 덕분에 재미가 없어진 네티즌들이 떨어져 나가면 다시 언제 뭔 일이 있었어? 이런 것처럼 잠잠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지영의 생각은 딱 하루가 지나서, 무참히 깨졌다.
새벽 운동을 끝내고, 아침을 먹고 수업에 들어가기 전, 지영은 굳은 얼굴로 다가온 강한결 때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지영아. 이것 좀 봐야겠다.”
“뭔데?”
“일단 봐.”
뭐지?
지영은 강한결이 건네준 노트북을 확인했다. 그리고 기사를 두 눈에 담는 순간, 저도 모르게 뿌득! 이를 갈았다.
[(속보) ‘아들 교육 똑바로 시켜!’ 유도선수 강지영 모친 폭행한 주취자 체포.]
지영은 곧장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