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40화
140화. 몰려오는 비난(3)
뚜루루, 뚜루루. 뚝.
-어, 아들!
세상 밝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지영은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겨우 참았다. 아무리 딸들에 비교하면 아들이 부모님께 무심하다고 하지만, 이 정도를 모를 지영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포장되어 있었다.
밝음에 포장된 어머니의 목소리.
지영은 아랫입술을 한차례 깨물고는, 말문을 열었다.
“어머니, 저예요.”
-응, 아들. 어쩐 일이니?
“그냥요. 어디세요?”
-어, 엄마? 집이지. 가게 문 열 준비하고 있어.
“…….”
정말 그럴까?
“어머니, 저 기사 봤어요. 솔직히 말해주세요. 지금 어디세요.”
-어, 그러니? 그게 있지. 엄마 진짜 집인데……. 엄마 진짜 괜찮아. 그냥 밀려서 넘어진 거야. 하나도 안 다쳤어.
“……지금 집으로 갈게요.”
-어? 어, 아들? 아니야! 엄마 진짜 괜…….
“갈게요. 지금.”
전화를 끊은 지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다 나와서 그런 지영을 지켜보던 친구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우물쭈물하고 있었고, 그런 친구들에게 지영은 수업을 좀 부탁했다.
“나 집에 갔다 올 테니까, 학교에는 나 대신 말 좀 잘해줘.”
“……그래, 알겠어.”
지영의 말에 강한결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편안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친구의 눈빛이 전이 없이 싸늘하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조용조용해도, 자신을 자극하는 일이 생기면 절대로 참지 않는 성격인 지영이 사고를 칠 것 같아 걱정이 된 강한결은 황석을 돌아봤다.
“석아. 같이 가.”
“……알았다.”
우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황석.
지영은 됐다고 하려다가 그냥 가만히 있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을 막아줄 친구가 필요했다. 설마 그런 일이 있겠어? 라고 생각하는 건 참 순진한 생각이다. 별일이야 있겠어, 하는 생각으로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금방 조용해질 거예요, 하고 넘어가려고 했던 게 엊그제니까 말이다.
그리고 어제 어머니는 주취자에게 사고를 당했다.
기사 제목을 보니까 노린 건 자신이었다. 자식 교육 똑바로 해! 굳이 의도를 캐보지 않아도 이해가 가는 제목이었다.
“어떻게 가려고? 버스?”
“응. 20분마다 한 대씩 있으니까.”
“알았어.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응.”
그렇게 대답한 지영은 가방을 내려놓고 지갑과 폰만 챙긴 다음 곧장 1층으로 내려가 임대성 코치에게 갔다. 그리고 사정을 설명했더니 임대성 코치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학교 같았으면 네가 가서 뭐 하게! 하고 호통만 들었을 테지만 여기는 엘리트 체육보단 방과 후 클럽에 가까운 분위기라 이런 쪽으로는 정말 관대했다.
임대성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나온 지영은 곧바로 택시를 불렀다.
그리고 북부 정류소로 가서, 잠시 기다리다가 다시 버스를 탔다. 버스에 올라탄 지영은 눈을 감았다.
겉으로야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솔직히 속은 지금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내가 잘못 선택한 걸까?’
지영은 이쪽으로 나가는 길을 열어두는 게 자신은 물론이고 친구들에게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단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 생각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의심해야 할 것 같았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 방송 쪽 일만 안 나갔어도 지영은 오늘 같은 일은 없었을 거다.
‘방송. 일반인들의 시선엔 그것도 일탈로 보이겠지.’
황금세대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거였지만, 일반 시민들의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아니,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 거다. 그냥 허파에 바람이 들어갔구나. 그렇게 생각할 게 분명했다. 실제로 방송에 자주 나가는 스포츠 스타들이 그런 욕을 정말 많이 먹기도 했다. 그래서 비시즌 때 잠깐 나가는 정도가 끝이었다. 하지만 지영과 친구들은 전문적으로 나가다 보니, 아예 진로를 바꾸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방송 활동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영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나? 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이야 괜찮다고 말하긴 하지만 지영이 괜찮지 않았다. 자신 때문에 친구들이 욕먹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
어머니가 다치셨다. 택시를 타고 오면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기사는 확인했다.
주취자. 그러니까 취객이 던진 뭔가에 이마를 맞으셔서 피가 났다. 그리고 뒤이어 그 사람이 어머니를 밀쳐 쓰러졌고, 시장 사람들이 그 사람을 잡고, 경찰을 불러 취객은 체포가 됐다. 그사이 어머니는 병원으로 가셨고.
이게 기사의 전말이다.
이걸 보니까 속이 진짜 쓰리다 못해 아렸다.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솔직히 떠올리지도 못했었다. 에이, 설마. 내 가족에게까지 그러겠어? 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지영이었다. 하지만 세상엔 상상도 못 할, 상종도 못 할 인간들이 널리고 널렸다는 걸 지영은 잊고 있었다.
‘술? 빌어먹을 그놈의 술은 진짜…….’
주취 감경?
이번에도 또 그런 걸로 별일 없이 넘어갈 거다. 예전에, 처음 사고를 냈던 그 음주운전 기사처럼 말이다. 그걸 생각하자 정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술, 그놈의 술!
술이란 빌어먹을게, 자신의 인생을 자꾸 망가뜨리려 하고 있었다.
정체가 모호한 감정들이 마치 정신 나간 미친 연놈이 널뛰기를 하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
그게 지영을 너무 짜증 나게 했다.
하지만 지영은 그 짜증을 차분히 내리눌렀다. 짜증이 난다고 그걸 온 사방에 퍼뜨리고 다닐 정도로 막 나가는 성격은 아니었다.
눈을 감고 있기를 한참, 어느 정도 다 왔을 거란 느낌에 눈을 뜨니 주덕을 막 지나고 있었다. 주덕에서 충주까지 20분이니, 이제 곧 도착한다. 교통대를 지나 다리를 건너, 터미널에 도착했다.
지영은 황석과 바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행했다.
원래는 시내에 살았었지만 거긴 세를 주고, 집은 따로 옮겼다. 자주는 못 오지만 당연히 주소는 알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가자, 어머니가 야윈 모습으로 반겼다.
“아들 진짜 왔네?”
“……후우.”
“미안해, 아들.”
“…….”
어머니를 보자 안도감과 함께, 분노가 동시에 들었다. 이마에 붙인 밴드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어머님, 안녕하십니까.”
“어머, 석아! 석이도 얼른 들어와.”
“네.”
황석도 있어서 지영은 화를 참을 수밖에 없었다. 물을 가져오려는 어머니를 말리고, 직접 주방에서 보리차를 따라온 지영은 조금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가 어머니 다친 얘기를 기사로 봐야 하겠어요?”
“어? 그게 기사로 나갔니?”
“네. 나갔어요. 안 나갔으면 제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어머니가 말도 안 해줬는데.”
“나는 그냥…… 지영아. 엄마 정말 괜찮아. 그냥 잠깐 놀란 거고, 이마에 밴드 이것도 그냥 조금 까져서 붙인 거야.”
“그래도요. 그런 건 저한테 말해주셨어야죠.”
솔직히 이 부분은 화를 내고 싶었다.
왜 자신에게 얘기하지 않았는지야 당연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서운하고 섭섭하고, 화도 났다.
그래서 목소리가 착 가라앉자, 어머니는 따스한 얼굴로 지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미안해, 아들. 근데 진짜 괜찮아서 그랬어.”
“후우, 네. 다음에는 너무 진짜 이러지 마세요. 무슨 일 생기면 꼭 연락해 주세요.”
“알았어. 미안해, 진짜. 아들 그것 때문에 학교도 안 가고 집에 온 거야?”
“……저 때문이니까요.”
지영의 말에 어머니는 웃는 낯 그대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들 때문 아니야. 공과 사도 구분 못 하는 그 사람이 나쁜 거지.”
오…….
어머니의 단호한 말에 지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 그래도 어제 선미가 아는 변호사 지인 소개시켜 줘서, 엄마가 잘 얘기했어.”
“네? 어떻게요?”
“합의에 최대한 시간을 끌어달라고. 그래서 자기가 잘못한 게 뭔지 계속 반성하게 해달라고.”
역시, 어머니다.
세상 순하게 사는 것 같으시지만, 그렇게 해서는 홀몸으로 자식 키우는 건 정말 힘들다는 걸 이미 알고 계셨다. 특히 시장통 장사가 그랬다. 얕보이면 밀려나는 곳이 바로 시장통 장사였다.
텃세도 텃세지만 조금만 얕보여도 사람을 농락하는 게 바로 이 바닥이었다.
어머니도 아버지 돌아가시고 혼자 홀로서기 하는 데 정말 힘들어하셨다. 억척스럽게를 넘어, 악착같이 해야 버티는 공간. 그런 곳이 또 시장통이다.
아버지를 보내고, 혼자가 된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악착같이 버텨내셨다.
그런 어머니는 항상 생글생글 웃으시지만 그렇다고 이런 일을 그냥 쉽게 넘어가시는 분은 절대 아니었다.
“후우, 잘 생각하셨어요.”
“아들은 시합 준비만 잘해. 이건 엄마가 잘 해결할 테니까.”
“네.”
“그래도 아들이 이렇게 엄마 걱정해서 날아와 주니 좋네. 아침은 먹었니? 석이는? 엄마가 얼른 밥 차려줄까?”
“먹고 싶긴 한데…….”
시합이 얼마 남지 않았다.
10월 초에 바로 전국체전이 있다. 그래서 지영은 물론 황금세대 전체가 다시 감량 중이었다.
“조금도 안 되니?”
어머니의 그 물음에 지영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시간이 좀 있긴 하다. 그러니 오늘 먹고, 저녁을 최대한 조금 먹고, 오후, 야간에 땀을 쭉 뽑아내면 된다. 본래 루틴에서 벗어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반경 안이었다.
“차려주세요. 가서 더 운동하면 될 것 같아요.”
“그래, 엄마가 얼른 장 봐와서 차려줄게!”
“같이 가요. 석아, 가자.”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황석이 일어나 식탁 옆에 있던 장바구니를 들어 팔에 꼈다. 그 모습에 어머니가 웃음을 흘리시며 물었다.
“어머, 석이 장바구니 자주 들어봤나 보네? 너무 자연스러운데?”
“네, 여자친구가 요리 쪽 공부를 하고 있다 보니까요.”
굵직한 석이의 대답에 어머니가 아 맞다, 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신발을 신고 근처 마트로 향하자, 시선이 대번에 날아들었다. 마스크를 쓴다고 쓰긴 썼지만, 이미 지영과 황석은 유명인이었다.
특히 요즘은, 대놓고 언론에서 씹어대는 스포츠 스타이자 연예인이었다.
그래서 시선이 안 몰릴 수가 없었다.
그런 시선이 조금은 불편했지만, 반대로 어머니는 신이 나셨다. 생각해 보니 정말 오랜만에. 아니, 거의 처음으로 이렇게 어머니와 장을 보는 것 같았다.
회귀 전엔 절룩이는 걸음걸이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걷는 때가 거의 없었다.
자신에게 날아드는 안쓰러운 시선이, 어머니한테도 가는 게 정말 싫었기 때문이었다. 회귀하고 나서는? 더럽게도 바빴던 지영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집에도 자주 오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아들과 장을 본다는 사실이 어머니를 정말 행복하게 하는 것 같았다.
“어머, 누구야? 아들?”
지나가는 분의 물음에 어머니는 기분 좋은 톤으로 아들이랑 아들 친구예요, 호호호! 하고 대답하고 그러셨다. 그렇게 장을 보고 나오는데, 쭈쭈바를 들고 있던 여중생 몇이 지영과 황석을 빤히 보더니 쪼르르 달려왔다. 교복을 보니 충주에 하나밖에 없는 예중 학생들이었다.
“와! 강지영! 예인 강지영 맞죠?”
마스크를 썼는데 알아본다고?
눈썰미가 진짜 제법이었다. 아니라고 할 수는 없어서 고개를 끄덕이자, 환하게 웃은 여중생이 가방을 뒤져 노트를 꺼냈다.
“사인 좀 해주세요!”
“그래. 근데 학교 안 갔어?”
“오늘 개교기념일! 오빠는요?”
“오빠는 잠깐 집에. 이제 다시 갈 거야. 이름이 어떻게 되니?”
지영의 물음에 여중생은 예나요! 강예나! 하고 대답했다. 친구 몇 명에게 그렇게 사인을 해줬더니, 예나는 또 황석을 빤히 본다. 그러다 아! 하고는 소리쳤다.
“황석!”
그러자 황석의 눈매가 부드럽게 초승달을 그렸다.
“알아 봐줘서 고마워.”
“히힛! 제가 눈썰미가 좋거든요! 사인해 주세요!”
“그래.”
황석도 그렇게 사인을 하자, 어머니는 그런 황석을 지영을 정말 대견하고, 뿌듯하게 바라보셨다. 황석이 사인을 다 해주자 강예나가 주먹을 쥐고 파이팅을 하며 지영과 황석에게 말했다.
“저는 유도선수 강지영보다 배우 강지영이 더 좋아요! 그러니까 오빠 파이팅!”
“……그래, 고마워.”
석이 오빠도 파이팅!
하고 떠나는 강예나.
지영은 다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 어머니가 요리를 하는 동안, 황석이 TV를 보다 말고 조용히 말했다.
“지영아, 나 아까 예나가 한 말에, 좀 치유 받았다.”
“너도?”
“응, 그게 뭐라고. 그냥 마음이 편해졌어.”
“팬이라는 게, 그런 건가 봐. 열심히 해야겠다, 우리. 팬분들 실망 안 하게.”
“…….”
우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황석.
잠시 뒤 지영은 어머니가 차려준 이른 점심을 먹었다.
전통의 강자 제육볶음과 소불고기가 등판한, 어마어마하게 헤비한 식단이었지만 지영과 황석은 조금도 남기지 않았다. 작정하고 그냥 다 먹어 치웠다. 맛도 있어서, 오랜만의 포식에 절로 웃음이 날 정도였다.
그렇게 이른 점심을 먹고.
“이제 가 볼게요. 오후에는 수업 들어가야 해서요.”
“그래, 아들 조심히 올라가. 석이도 조심히 가고.”
“네.”
“자, 이거. 차비 하고!”
어머니는 현관을 나서는 지영과 황석에게 5만 원 지폐를 쥐여주셨다. 엄마가 주는 거니까 지영은 그냥 얌전히 받았다. 그렇게 황석과 다시 버스와 택시를 타고 돌아온 지영과 황석을 맞이한 건, 한 무리의 기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