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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09화 (109/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09화

109화. 세계 청소년 유도 선수권(2)

세계대회.

지영은 TV로만 봤던 대회였다.

지영이 갈망하고, 갈증에 시달렸던 게 바로 세계대회였다.

회귀한 직후에도 이런 갈증은 풀리지 않았다.

와자리!

반대쪽 시드의 미야모토 신지가, 빗당겨치기로 아랍권 선수에게 절반을 따내는 걸 보며 지영은 자신의 갈증이 조금은 해소되는 걸 느꼈다. 아직 1회전만 통과한 상태지만, 지영은 시드의 거의 처음이었고, 반대로 신지는 가장 마지막 순번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시합이 끝나고 다른 73선수들의 시합을 확인하며 지영은 역시 세계는 세계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잘했다.

이런 말 하기에는 미안하지만, 지영이 회귀 이후 나간 그 어느 대회보다도 레벨이 높았다.

레벨이 높다는 건, 선수들의 실력이 전부 생각 이상이란 뜻이었다. 솔직히 지영은 세계 대회도 크게 문제가 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

가장 경계해야 할 건 지금 절반을 따 시합을 유리하게 풀어가고 있는 미야모토 신지 정도가 끝일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신지는 지금 3분째 시합을 하고 있었는데, 좀 전에 절반을 땄다. 이는 곧 신지가 시합 시간의 절반 이상을 쓰고 나서야 겨우 절반을 땃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건 곧 신지의 상대가 그만큼의 실력자라는 걸 의미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일정 레벨에 오른 선수들은 그냥 시합하는 걸 보면 실력이 딱 가늠이 된다.

그냥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전에 한 번 붙어본 신지만 봐도 딱 실력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신지와 비슷한 실력자가 상당히 많이 보였다.

당장, 지영과 다음에 붙는 프랑스 선수가 그랬다.

프랑스.

예전에는 한국과 일본의 황금기를 이어받은 나라.

기술 자체는 정말 투박하지만 엄청난 힘으로 일단 걸리면 얄짤 없이 한판을 내던지는 힘 유도 베이스의 강국이었다.

그런 프랑스 선수는 딱 30초 만에 이성진처럼 상대를 서서 업어치기로 뽑아서 한판을 던졌다.

제이미 로윈.

흑인 선수로, 제대로 걸리지도 않은 업어치기로 상대를 뽑아 던질 정도의 괴력을 가진 선수였다. 그리고 그런 제이미 같은 선수가 곳곳에서 보였다.

세계.

한국은 이제 보니까, 우물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지영은 오히려 더 승부욕을 불태웠다. 빨리, 다음 경기가 하고 싶어서 몸이 막 들썩거렸다.

삐!

4분이란 시간을 다 쓰고, 신지가 절반 승으로 승리하고 나오는 모습이 지영의 눈에 들어왔다.

지영과는 다르게 힘들게 1회전을 통과한 신지의 표정은 확실히 굳어 있었다. 이미 여러 번 세계대회 경험이 있는 신지지만, 사실은 그도 이런 메이저 대회는 처음이었다.

오픈 컵 정도는 나가봤지만 그런 대회에는 2, 3선발들이 나간다.

실제로 지금 신지의 위치도 2에서 3선발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대회에 나오는 성인 선수보다, 유망주들만 모인 이 대회가 더 빡세다는 느낌을 그는 받았을 거다. 실제로 지영도 그런 마음이 드는 중이었다.

땀에 젖은 채 걸어 나오는 신지와 시선이 마주친 지영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아는 척도, 고생했다는 위로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서로 친분은 있지만 오늘은 어쩌면 결승전에서 맞붙게 될 적이었다. 그러니 아는 척 같은 건 할 필요도 없었다.

시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성진과 지영의 한판으로 기세를 탄 한국 대표팀은 쭉쭉 올라가기 시작했다.

2회전 전원 통과.

여자부 선수들의 2회전이 먼저 끝나고 이성진이 들어갔다.

이성진도 지영처럼, 프랑스 선수였다.

“성진아. 파이팅.”

“후우…….”

지영의 파이팅을 받은 이성진이 심호흡을 크게 한 뒤에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악!

기합을 지른 이성진이 프랑스 선수와 격돌했다.

신장은 이성진이 더 낫다. 그래서 리치도 더 낫지만 프랑스 선수는 이성진과는 아예 정반대의 선수였다. 신장은 160 중반쯤이고, 완전 단단한 체구를 가졌다. 척 봐도 힘이 장사로 보였고 아니나 다를까 이성진을 끌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힘이 대단했다.

소매를 잡힌 이성진이 쭉 끌려갔다.

이성진은 자세가 이미 뭉개지자 버티지 않고 그냥 엎드렸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잡기 싸움에서 이미 졌는데 그걸 만회하려고 무리하다가 한 바퀴 날아가는 것보다 차라리 수세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이렇게 엎드리는 게 더 나았다.

하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프랑스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힘이 정말 좋다. 그래서 굳히기 상황에서도 강점을 보일 때가 많았다.

홱!

티를 잡고 옆으로 눕자 이성진의 몸이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그냥 뒤집혔다. 굳히기, 누르고 조르고, 꺾고. 유럽권이나 중동 선수들과 붙을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굳히기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대비해 굳히기도 철저하게 준비해왔다.

특히 장대호가 혼자 일주일간 훈련을 왔을 때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굳히기는 막는 게 어렵지만, 반대로 방어가 쉽기도 한 포지션이었다.

상대를 놓치면 안 된다.

상대와의 공간이 벌어지면 눌리고, 꽉 밀착되어 있으면 웬만해서는 눌리지 않는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다리였다. 제대로 상대를 눌러도 다리를 꼬고 있으면 누르기는 선언되지 않는다.

아무리 힘이 좋아도 공간을 만들어서 누르려는 시도를 하는 동안, 상대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프랑스 선수가 몸을 옆으로 빼면서 공간을 띄우는 순간, 그 공간 속으로 이성진은 다시 몸을 뒤집었다. 밖으로 도망가는 것보다, 안쪽으로 파고드는 게 오히려 방어에 용이할 때가 있었다.

그렇게 엎드린 포지션이 되자 심판은 그쳐를 선언했다.

“성진아! 소매! 소매 조심해라!”

전기정 교수의 말에 이성진은 그를 한 번 보더니, 다부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선수가 도복을 고쳐 입자, 다시 하지메!

악!

기합을 내지른 이성진이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이성진은 업어치기 선수다. 업어치기는 유리하게 잡을수록, 기술의 성공도가 올라가는 기술이었다. 아니, 애초에 유도의 모든 기술이 그랬다. 먼저 유리하게 잡을수록 상대를 넘길 확률 자체가 올라간다.

그런 잡기 싸움에서, 이성진은 황금세대 중에서도 최고였다.

지영도 한 잡기 싸움하고, 임효중이나 강한결, 황석도 잡기 싸움을 잘하지만 이성진만큼은 아니었다.

이성진은 작정하고 잡기 싸움에 돌입하면, 딱 이거 하나로도 상대를 터는 게 가능한 선수였다.

잡기 싸움으로 상대를 어떻게 터냐고?

간단하다.

안 잡히고, 먼저 잡은 다음 털면 된다. 여기서 턴다는 건 멘탈을 터는 게 아니라, 깃을 잡고 터는 걸 얘기했다.

이성진은 말했듯 리치가 길다.

그러니 먼저 잡고, 턴다. 위아래로 마구잡이가 아니라, 툭툭 끊어서 채준다. 이성진이 오른쪽 소매를 먼저 잡고 채기 시작하자, 상대인 마리앙이 팔을 거칠게 휘둘러 뜯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유도선수들이 악력은 생각보다 강하다. 마디로 정확하게 말아쥔 뜯어내려는 타이밍에 맞춰 앞으로 오히려 들어가면 웬만해서는 뜯어내기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쥐어도, 위로 추어올려 뜯는 건 방법이 없었다.

마리앙이 그렇게 소매를 뜯는 순간, 이성진의 손이 다시금 쑥 들어갔다. 이성진은 가슴 깃을 노리지 않았다. 가슴 깃을 잡는 순간 상대도 똑같이 깃을 잡게 된, 그렇게 해선 잡기 싸움을 하는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상대를 털려면, 오죽 소매 깃만 잡아서 털고, 밀어서 상대에게 압박을 가해야 했다.

잡고, 뿌리치고, 이성진이 다시 잡고, 마리앙이 다시 뿌리치고.

‘성진이에 대해 아는구나.’

소매를 이렇게까지 안 주는 건 역시 업어치기 때문이었다. 허리기술은 보통 목깃이나 등판을 잡아야 유리하지만, 업어치기는 소매 깃을 내주면 양 깃에 제대로 걸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마리앙은 이성진이 업어치기가 주특기고, 걸리면 진짜 어 하는 순간 날아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움직임을 보니 딱 업어치기를 경계하는 게 눈에 보였다.

하지만 이성진이 업어치기를 잘한다고 다른 기술을 못 하는 게 아니었다. 특히 지금처럼 무게중심을 뒤로 두고 잡기 싸움을 하고 있으면.

휘익!

뜯어내는 타이밍에 손을 놓고 빠르게 안쪽으로 파고든 이성진이 아주 정확하게 안다리를 걸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가슴 깃을 잡아 뒤로 젖히니, 마리앙의 중심이 한순간에 뒤로 밀려 나갔다.

안다리로 중심을 무너뜨리고, 무너진 중심을 가슴 깃을 접혀 제압하는 방식.

쿵!

제대로 걸렸다.

와자리!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몸을 틀어 결국 방어를 해내는 마리앙. 그러나 그래도 절반은 땄다. 한판이 아닌 게 아쉽지만 이성진의 시합 운용이면 굳이 기술을 걸지 않고도 이 점수를 끝까지 지켜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성진은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절반을 빼앗겼으니 상대는 당연히 전략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잡기 싸움은 리치 차이로 이미 불리한 걸 깨닫기에 충분했으니, 공격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자세를 말고 마치 복싱의 인파이터처럼 접근하기 시작하는 마리앙.

그리고 그건 이성진이 바라고, 또 바라던 상황이었다.

밀고 온다는 건 중심이 앞으로 나온다는 뜻이고, 그 말은 곧 업어치기를 업을 찬스가 제대로 왔다는 걸 뜻했다. 이성진은 1분 남기고, 마리앙이 다급하게 밀고 들어오면서 생긴 한 번의 놓치지 않았다.

쿠웅!

소매만 잡아당겨, 그대로 외깃 앉아 업어치기로 한판을 따냈다.

“으아!”

일어나서 짧게 포효한 이성진이 싱그러운 미소를 터뜨렸다.

8강 안착.

결승까지 이제, 두 게임 남았다.

* * *

그런 이성진의 경기는 현재, 한국에 인터넷으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그것도 tvM에서.

본래 스포츠 쪽은 잘 다루지 않지만, 강지영이란 선수가 드라마에 나오는 게 확정이 되어 이례적으로 협회 측의 지원을 받아 헝가리에서 한국으로 경기를 송출하고 있었다. 따로 캐스터나 해설은 없었지만, 그래도 경기를 보는 사람들은 꽤나 많았다.

물론 그중 절반이 좀 안 되게는 현역 유도선수들이었지만, 나머지는 연희고 아이돌의 팬이었다.

-한판!

-와 진짜 멋있다.

-지금 저 기술 이름이 뭐예요?

-업어치기입니다.

-정확히는 외깃 앉아 업어치기!

-와, 몰랐는데 나 유도 좋아했네…….

-성진이 얼굴 봐ㅠㅠ

-쟤는 진짜 연예인 해도 되겠다…….

-차라리 그냥 연예인 해줬으면…….

-윗분 선수시죠?

-……네.

-몇 번 짐?

-세 번…….

선수들의 대화도 있었고.

-아 울 성진이 이제 꽃길만 걷자ㅠㅠ

-더 런닝에 고정하자 성진아! 그럼 더 클 수 있어!

-근데 성진이는 유도가 좋대요.

-아 왜!

-저 얼굴에 뭐가 아쉬워서ㅠㅠ

-그냥 누나들 바람대로 방송만 하자ㅠㅠ

이런 누나 팬들의 대화도 있었다.

-어, 강지영 들어간다!

-얘는 대체 배우냐, 운동선수냐?

-운동선수 겸 배우지ㅋㅋㅋㅋ

-운동선수면 운동이나 할 것이지 아주 별 걸 다 하네 ㅋㅋㅋ

-이번 시합 성적 개판 난다에 내 오른쪽 손모가지의 털 한 가닥 건다.

-쫄았네ㅋㅋㅋ

-걸 거면 손모가지를 그냥 다 걸든가!

-쉿! 시합 시작한다!

-인터넷인데 뭔 쉿이야 ㅋㅋㅋㅋ

-아 그러네?

-ㅋㅋㅋㅋ

-파이팅!

-한판 가자!

한 공간에서 지영을 응원하고, 욕도 하는 순간, 지영은 시합장에 막 들어섰다.

* * *

제이미를 잡자마자 느낀 첫 느낌은, 역시 강하다였다.

이 선수에게서는 여유가 느껴졌다. 그런데 그게 실력도 없으면서 부리는 여유가 아니라 프랑스라는 유도 강국에서도 한 체급의 최고 유망주로 뽑힌 실력에 기반한 여유였다.

아쉽게도 협회에서 보내준 영상 중에 제이미는 없었다.

즉, 어떤 스타일의 선수인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지영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제이미는 지영의 가슴 깃을, 지영은 언제나처럼 상대의 어깨 깃을 잡은 상태로 툭툭, 몸 쓰기만 하면서 서로 간을 봤다.

맛테!

하지메!

아직 경기 초기라 바로 지도가 들어오진 않았다.

하지만 이제 한 번이라도 밀리면 반드시 지도가 들어올 타이밍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살짝 공격적으로 움직여 보기로 했다. 특기가 뭔지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술이 거는 건 되치기 당할 확률이 높았다.

상대가 공격형인지, 수비형인지.

업어치기가 주특기인지, 허리기술이 주특기인지.

체력을 바탕으로 한 시합 운용을 하는 편인지, 아니면 한판을 노리는 스타일인지, 일단 이것부터 파악해야 했다.

툭, 툭.

일단은 한 번 더 기다려 보자란 마음으로 모두걸기를 안과 밖으로 한차례씩 찬 순간이었다.

홰액!

갑자기 몸을 붕 띄워, 발로 지영의 팔을 휘감아오는 제이미.

어?

하는 순간 몸이 체중에 눌려 쭉 끌려갔다.

제이미의 첫 기술은, 플라잉암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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