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10화
110화. 세계 청소년 유도 선수권(3)
플라잉암바.
기술 이름 그대로, 몸을 공중으로 띄워 발로 팔과 목을 건 다음, 그대로 빙글 돌려 상대를 굴리는 기술이다. 주짓수 같은 경기에서는 꺾기까지 들어가는 게 목표지만, 유도에서는 이대로 끌려가서 구르는 순간 그대로 한판이 나올 수도 있었다.
실제로 이 기술은 국내대회에서도 종종 나오는 기술이었고, 걸리면 그대로 한판이 나올 확률이 높은 기술이었다.
그리고 지영은 이 기술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솔직히 이게 첫 기술일 거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사실 플라잉암바는 이렇게 의표를 찌르는 기술로도 악명이 높았다.
하지만 지영은 이미 상대의 몸이 뜨는 순간,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카운터가 주특기 중 하나인 지영이니, 반사신경은 뭐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플 경지에 올라 있었다.
턱, 터억.!
제이미의 한쪽 허벅지가 목을 감았다.
하지만 그때 이미 지영은 자세를 낮춘 뒤 발을 쭉 뻗어 매트를 강하게 디뎠고, 발에 걸린 팔을 끊어서 툭! 툭 뽑아 자신의 가슴 깃을 잡았다. 그러곤 그대로 상체를 숙여 제이미를 찍어 눌렀다.
방어 포지션의 완성.
제이미는 오히려 자신의 허벅지로 본인의 상체를 압박하는 꼴이 되어버려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했다. 물론 목을 감은 쪽에서는 압박감이 상당하게 느껴졌지만, 이 정도로 넘어갈 지영은 아니었다.
맛테!
그쳐가 선언됐다.
그 소리에 지영이 꽉 누르고 있던 힘을 풀었다.
그러자 거의 동시에 제이미도 허벅지에 주고 있던 힘을 풀었다. 도복을 놓고 일어선 지영은 후, 짧게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콩닥콩닥.
솔직히 이번 기술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세계는 세계. 역시 방심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영은 스탠스를 바꿨다.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기술을 거는 테크니션과 할 때는 많이 움직이지 않는 게 좋다. 스텝을 밟고 몸을 많이 쓰면, 분명 모두걸기부터 시작해 그에 맞는 카운터 기술이 들어올 거다. 그래서 지영은 잡기 싸움에 집중하며 많이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전에…….’
포인트 하나는 복구할 생각이었다.
좀 전의 기술은 넘어가지만 않았을 뿐, 제대로 기술이 들어가긴 했다. 그래서 지영은 방어를 했고. 이 상태에서 제이미가 공세로 나오고, 자신이 수세에 몰리면 분명 지도가 들어올 거다. 시합을 하다 보면 반칙 관리는 필수적이었다. 이는 어떠한 스포츠도 마찬가지였다.
축구만 해도 노란 카드 두 장이면 퇴장이지 않나.
그러니 지금은 포인트를 똑같이 쌓는 게 중요했다.
다행히 제이미도 잡기 싸움을 그리 선호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았다. 감사하게도 말이다. 소매 끝을 잡고, 툭 쳐올리자 제이미는 곧장 그걸 뿌리치려고 팔을 강하게 뒤로 당겼다. 그러면서 백스텝을 밟았고, 지영은 그걸 보면서 바로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소매를 제이미의 상체에 붙이며 모두걸기를 쓸었다.
스아악!
발바닥 옆면이 매트를 쓰는 소리가 귓가에 꽂히는 순간 제이미의 몸이 붕 떴다. 하지만 탄성이 좋은 제이미는 몸이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바로 상체를 뒤틀었다. 그걸 보며 요한은 저게 된다고? 하는 표정이 됐다.
흑인의 운동신경은 이미 인터넷에서도 아주 유명하다.
진짜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인종. 인종차별이 아니라, 그냥 대단하다는 감탄사만 나오는 모습들을 종종 보여준다.
그런데 제이미도 한쪽 발이 쓸려 상체가 뒤로 거의 기역 자로 누워졌는데, 거기서 상체를 틀어 기술을 피했다.
쿵.
앞으로 엎어지며 제이미가 굳히기 가드 상태로 들어갔고, 지영은 굳히기 할 생각이 없어서 아예 붙지도 않았다. 그러자 지영과 심판의 눈치를 본 제이미가 몸을 폴짝 접어 일어났다. 그 모습이 정말 경쾌해 보였다.
뭐랄까.
이 선수는 유도보다는 스트리트 댄스가 더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독특한 느낌이 있었다.
심판의 그쳐 없이, 다시 맞붙는 둘.
포인트는 서로 하나씩 주고받았으니 이제 반칙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이번엔 제이미가 먼저 팔을 뻗었다.
지영은 그걸 쳐내고, 가슴 깃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이번엔 그가 쳐내고, 다시 뻗기를 반복하다 보니 맛테! 소리가 들렸다.
지도, 지도.
나란히 반칙을 주고받았다.
후.
짧게 숨을 내쉰 지영은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2분이 지나 있었다.
아직 상대에 대해 제대로 파악도 못 했는데 2분이 지났으니, 이번 시합은 꽤 길게 갈 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
지도를 받고 난 뒤, 제이미의 스타일이 변했다.
통통, 마치 복싱선수처럼 스텝을 밟으면서 손을 쭉 뻗는데, 이건 또 겪어본 적 없는 스타일이라 지영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제이미의 전술을 살폈다. 사실 유도는 크게 독특할 수 없는 종목이었다.
개인의 성향과 피지컬에 따라 손기술과 허리기술로 나뉘고, 그리고 대부분이 공격적인 유도를 한다.
지영이 카운터 형의 방어유도를 하는데 그런 스타일의 선수는 사실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 방어유도라는 게, 그 한계가 명확한 스타일이었다. 애초에 현대유도는 방어에 중점을 둔 선수에게 즉각 지도를 주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기술을 두 번, 세 번만 받아도 그냥 바로 지도가 들어간다.
그리고 그 지도가 세 개가 쌓이면 반칙패다. 지도 두 개로 경기가 끝나지는 않지만, 불리하다는 건 분명했다. 그래서 지영은 카운터를 장착했고, 거기에 더해 상대가 똑같이 나오면 오히려 공격적으로 플레이해 한판을 따낼 기술도 갖췄다.
그래서 사실 지영에게는 고정된 스타일이란 게 없었다. 그리고 그게 강지영이란 선수의 실력의 원천이었다. 그런데 제이미도 그렇다. 아니, 비슷하지만 또 조금은 달랐다. 제이미는 마치 자유로운 영혼 같았다.
틀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왜 그런 자유로운 영혼 있지 않나.
종잡을 수 없어서, 상대하기 극히 꺼려지는.
축구로 따지면 마치 외계인으로 불리던 그런 선수 같았다.
‘예측이 쉽지 않네…….’
홰액!
통통 뛰다가 한 번에 안으로 파고들어 틀어잡기를 시도하는 제이미. 지영은 한 걸음 물러나며 목깃을 잡혀주고, 자신도 등 깃을 잡았다. 제이미에게는 끌어서 기술 걸기에 좋겠지만, 지영은 안으로 파고들어 기술을 걸기 좋은 자세.
툭, 툭툭.
발을 두어 차례 쓸더니 그대로 앞으로 돌아 나와 힘으로 지영의 목을 죽이는 제이미.
하지만 이건 예상했다.
지영은 그대로 소매를 잡아 도는 순간 끊어냈다. 그러곤 남은 손을 뻗어 가슴 깃을 잡았다. 전형적인 업어치기 자세.
자세가 왔으니, 지영은 그대로 업어버렸다. 보통은 잘 쓰지 않는 오른쪽 앉아 업어치기를 걸자 제이미의 얼굴에 당황이 어렸다.
자유로운 영혼?
‘좋지. 따로 스타일 없이 자유롭게 유도를 하는 것도.’
하지만 그런 스타일로 유도를 하려면 잘해야 한다.
외계인이라 불릴 선수처럼 위대해지진 못해도, 그래도 뚜렷한 족적을 남길 수 있는 선수는 되어야 한다.
그래야 까분다고 욕먹지 않는다.
지영이 이런 스타일의 유도를 하는데도 욕먹지 않은 건, 실력이 충분할 정도로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익!”
제대로 업혔다.
하지만 이 자유로운 영혼 제이미는 탄성이 진짜 죽여줬다.
휘익!
쿵!
분명 제대로 업혀서 당겨 던졌는데, 그 순간에서도 몸을 비틀어 요상한 형태로 매트에 떨어졌다. 메치기를 끝내고 심판을 올려다보자, 심판의 손이 올라와 가로로 쭉 펴졌다.
와자리!
절반.
한판은 아닐 거라는 생각은 했다. 그런데 진짜 한판을 못 따내자, 지영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소를 흘렸다.
‘이걸 피하네…….’
완벽한 타이밍이었고, 자신의 스타일이 약점이 되어 완전히 기술이 걸렸는데 그걸 넘어가는 와중에 몸을 비틀어 피했다. 지영은 아마 제이미가 이미 업혀서 답이 없다고 생각한 순간, 오히려 역으로 자신이 몸을 던졌을 거라 생각했다. 왜 그런 경우는 종종 있었다. 제대로 걸려서 못 버티겠을 때, 오히려 상대가 넘기려는 방향으로 몸을 더 강하게 날려 180도가 아닌 그 이상을 돌아버리는 상황. 유도는 등이 닿아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는 가끔 아예 점수가 안 나오기도 했다.
지금이 그와 비슷했다.
다만, 실제로 그걸 겪어보니 좀 어이가 없었다.
지영이 엎드린 제이미를 가만히 잡고만 있자 심판이 그쳐를 선언했다.
일어나서 다시 마주 보고 선 제이미는 여전히 즐거운 기색이었다. 절반을 빼앗겼는데도 여전히 즐거워 보였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이 아니라, 아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퍽, 부러웠다.
지영은 강자와의 시합을 늘 기대해왔다.
제이미는 그런 의미에서, 강한 선수인 건 맞았다. 하지만 신지와 비교하면? 역시 적어도 두 단계 정도는 떨어졌다.
사실 제이미가 지금까지 보여준 건 처음의 플라잉암바를 빼면 아무것도 없었다.
그 이후로는 솔직히 변변찮은 기술을 보여주지 못했다. 탄력이 엄청 좋고, 힘도 상당하고, 유연하고, 빠르기도 하면서 심지어 변칙적인 모습까지 갖췄지만, 그게 지영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제이미는 지영과의 경기가 즐거울지 몰라도, 지영은 아니었다.
초반에 좀 당황하긴 했어도 역시나 그뿐, 실력이 신지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지영은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시합하면서 얼추 스타일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하지메!
이미 절반을 빼앗긴 상태라 제이미는 당연히 공세로 나왔다. 그리고 상대의 공세는, 지영이 가장 선호하는 상황이었다. 안쪽으로 또 빠르게 파고들어 틀어잡아서, 지영은 손을 안쪽으로 감아 넣어 위쪽을 선점했다.
그러자 곧장 지영의 뒤로 들어오면서 덫걸이를 걸었다. 그러곤 왼손으로 목을 휘감아 뒤로 찍어누르려고 했다. 그러나 지영은 이미 한 번에 잡아 오는 순간부터 제이미가 이걸 노리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뒤로 돌아오는 순간, 등판을 잡은 깃을 강하게 당겨 겨드랑이에 붙인 다음, 그대로 몸을 틀어 숙이며 허리후리기를 차올렸다.
파앙!
휘릭!
쿠웅……!
잇폰!
제대로 떴고, 제대로 떨어졌다.
그러니 볼 것도 없이 한판이었다. 상대를 던진 자신의 힘으로 인해 같이 한 바퀴 구르며 일어난 지영은 눈만 끔뻑이는 제이미를 내려다보며, 역시 이곳의 경치가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직, 승자만이 볼 수 있는 경치.
그래서 중독되는 경치였다.
* * *
와아!
“지원아! 연예인님 이긴 거지? 그치?”
“어? 응, 그런 거 같은데?”
언니가 방방 뛰면서 묻는데, 사실 양지원도 잘 모르지만 보니까 이긴 것 같긴 했다. 강한결과 연락을 하게 되면서 유도 경기에 대해 좀 알아보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경기를 보는 눈은 아직 없었다.
“와! 와아! 이겼다!”
“언니, 근데 언제까지 연예인님이라고 부를 거야? 그냥 평범하게 부를 순 없어?”
자신의 언니지만 이런 모습을 보일 땐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귀엽게 보이려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이런 모습이라서 더욱 그랬다.
“응? 아 미안. 헤헤. 근데 연예인을 연예인이라고 안 부르면 뭐라고 불러?”
“그냥 지영이라든가. 아니면 그냥 지영 씨? 아, 이건 좀 그러네. 지영 학생? 이것도 좀 그렇고……. 어쨌든! 그냥 평범하게 부르자. 응? 어차피 언니보다 나이도 어린데.”
“에이, 어떻게 그래. 고마운 분인데.”
쭈글쭈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언니를 보며 양지원은 어휴, 한숨을 내쉬었다.
“지영 오빠 속 아주 다 닳겠네, 닳겠어. 알아줄 때까지 기다렸다간 아주 속 터지겠다.”
“언니도 알아.”
“뭘 아는데?”
“그냥…… 나도 안다 뭐.”
다시 쭈글쭈글.
양지원은 그런 언니를 가만히 바라봤다.
부끄러울 때 나오는 이 행동.
가만 보니 볼도 발그레하다.
“언니, 진짜 알아? 지영 오빠가 왜 매주 서울에 와서 언니 보고 가는지?”
“……응.”
“진?”
“나도 눈치 있어…….”
“오…….”
부끄러워하는 언니를 보며 양지원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 보니, 언니의 머리에 못 보던 머리핀이 꽂혀 있었다.
“언니 그 핀 뭐야? 언니 그런 핀 안 하잖아.”
“이거… 그게 있지. 그러니까…….”
“지영 오빠가 사줬구나.”
“응… 그냥 길 가다가 내가 잠깐 쳐다봤는데…… 사주셨어.”
“…….”
그 오빠는 센스가 있구나.
‘한결 오빠는 막 오면서 주웠다. 이러면서 노트북 안겨주고 그러는데…….’
잘생겼으니까 그냥 넘어가는 거지.
아니었으면 진짜 매력 꽝이었다. 어쨌든, 양지원은 강지영을 다시 보게 됐다. 잠깐 바라본 걸 기억하고 사다 줄 정도면 진짜 언니한테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위해 희생만 하던 언니가 행복을 찾아가는 것 같아서.
불현듯 찾아든 지금이, 꿈은 아닐까 무섭기도 했지만 꿈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언니도 그렇고, 자신도 그렇고,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이었다.
“어, 연예인님 또 시합 들어간다!”
“응?”
언니의 말에 상념에 깬 양지원.
부끄러운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두 손을 꼭 모으고 화면을 뚫고 들어갈 것처럼 반짝이는 눈빛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는 언니의 모습에 양지원은 누군가가 봤으면, 그 미소 저한테도 지어주면 안 돼요? 했을 미소로 언니를 바라봤다.
그렇게 언니를 보며 양지원은 생각했다.
‘꿈은 역시 싫어. 행복해도 이게 현실이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혹여나 이게 꿈이라면, 영원히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웃기지 말라는 것처럼, 어딜 감히 행복하려고! 누군가가 호통을 치는 것처럼.
“꺄악!”
화면 속 지영의 얼굴에서, 피가 꽃처럼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