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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08화 (108/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08화

108화. 세계 청소년 유도 선수권(1)

헝가리 부다페스트.

홍콩에 이은, 두 번째 세계대회가 열리는 도시. 첫날은 도착과 동시에 휴식이었다. 일단 시차 적응과 장거리 비행으로 인한 피로 때문에 괜한 부상을 입을까 봐 내린 결정이었다. 이튿날은 오전, 오후로 훈련이 잡혀 있었다.

주최국인 헝가리는 친절하게도 각 팀의 호텔 근처에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을 몇 군데나 만들어뒀고, 시간을 정해 각 나라 팀이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깔끔한 배려를 보여줬다. 그래서 오전, 오후로 몸을 풀었다.

하지만 당연히 관광은 없었다.

유럽이다.

아직도 테러가 존재하는.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사고라도 당하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도 없었다. 그래서 다들 얌전히 숙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사실 개인 시간을 줘도 나갈 생각은 없는 지영이었다.

-아들 몸은 괜찮아? 밥은 잘 챙겨 먹었고?

“네, 엄마.”

사실 잘 못 챙겨 먹었다.

물이나 죽을 협회에서 미리 보냈다고 들었는데 통관에서 뭐가 잘못된 건지 묶여 있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한국만 해도 타 지역에서 수돗물이나 음식을 잘못 먹으면 물갈이를 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중학생 때 부산에서 열린 시합에서 이성진과 강한결이 이 물갈이 때문에 진짜 정말 고생했던 적도 있었다. 하물며 이곳은 유럽이다.

괜히 뭘 잘못 먹었다가 탈이라도 나면, 시합은 그냥 끝이라고 보는 게 좋았다. 그래서 지영은 포트에 끓인 물이나 따로 파는 생수만 마셨고, 치즈나 고기 같은 게 들어가지 않은 음식 위주로만 먹었다.

그렇게 속이 예민한 편은 아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굳이 어머니께 말해주고 싶진 않았다. 아들 걱정이 한없이 크신 분이라, 밤잠도 제대로 못 주무실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다. 계체는 내일 하는 거지?

“네.”

-그래, 그럼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네. 내일 제가 개체 끝나고 다시 전화할게요. 참, 이사는 잘하셨어요?”

-이사 잘 끝났지. 엄마가 참, 아들 덕분에 이런 좋은 집에서도 살아보게 됐네. 고마워 아들.

“그게 왜 제 덕분이에요. 엄마 덕분이죠.”

-아니야. 엄마가 한 게 뭐 있다고.

이런 분이다.

지영은 그래도 이 모든 것은 어머니 덕분이라 생각했다.

어머니가 없었으면 애초에 지영도 없었고, 그리고 지금도, 회귀 전에도 어머니는 언제나 한결같으셨다. 마치 그렇게 해야 하는 숙명이라도 타고나신 것처럼. 그래서 지영은 가능한 어머니를 편하게 해드리고 싶지만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게 어머니가 쓴 돈의 전부였다.

가게는?

역시 접지 않으셨다.

오히려 옆을 터서, 규모를 더욱 늘리셨다. 그렇게 하고는 직원은 아무도 뽑지 않으셨고. 진짜 못 말리는 분이셨다.

이 부분은 지영도 이제 더 이상 터치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어머니와 통화를 끝낸 지영은 침대에 앉아서 스트레칭을 했다.

“지영아. 컨디션 어때?”

같은 방인 임효중의 물음에 지영은 피식 웃었다.

“아, 왜들 그러지? 오늘 너부터 황석까지. 한 스무 번은 들은 거 같은데 그 말?”

“그냥 너 요즘 바빴으니까. 컨디션에 마가 끼진 않았나 하는 거지.”

임효중이 씩 웃으며 한 말에 지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요즘 일이 많긴 했다. 그래서 감량도 상당히 힘들었었고. 하지만 감량도 드라마를 위해서 어차피 필요한 부분이라 힘들어도 참고 견뎌낼 만했다.

근데 그렇긴 했지만…….

“너는 뭐 안 바빴던 것처럼 말한다?”

“나? 나야 너보단 널널했지.”

“거짓말하시네.”

“거짓말 아닌데? 진짜 편했지, 너보단.”

“됐네요.”

황석은 영화, 지영은 드라마, 강한결과 이성진은 현재 더 런닝 측과 조율 중, 그럼 임효중은? 임효중은 유일하게 방송에 관심이 크게 없었다. 그런데, 그건 임효중의 생각이고, 방송가는 아니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아이돌 매니지먼트 쪽이다.

임효중은 이 중에서 가장 아이돌스럽게 생겼다.

특유의 선한 이미지가, 누나 팬들을 끌고 모을 인상이라며 한두 회사씩 문의를 넣던 게, 지금은 거의 국내의 기획사 반절 이상이 임효중을 캐스팅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특히 연희고 아이돌이 장세리 선배님의 회사와 방송 쪽 계약을 맺었다는 얘기가 돌고 나서는 더욱 많아졌다.

그리고 오랜 회의 끝에, 프로젝트 보이그룹을 제안한 한 회사와 미팅을 가졌다.

보통 아이돌들은 7년 계약이다.

하지만 그 회사는 앨범별 계약을 제시했다.

사실상, 말도 안 되는 딜이었다.

연희고 아이돌들은 일단 기본적으로 운동선수다 보니, 시간을 많이 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임효중이란 인물은 탐나고, 그래서 진짜 그 바닥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계약이 성사가 됐다.

그래서 임효중은 요즘 틈틈이 보컬과. 계약한 별 엔터에서 보내오는 영상을 참고로 춤 연습을 병행했다. 실제로 임효중이 친구들 중에서 노래도 가장 좋아하고, 잘 부르기도 했다.

모두가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그리고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어 지영은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뿌듯한 마음으로 가득 찬 하루가 또 지나고, 그다음 날도 빠르게 흘렀다.

이윽고 다가온 시합 당일.

시합 당일이 되자 선수단의 분위기는 180도 변했다.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웃으며 대화를 나눴는데, 오늘은 눈을 뜬 순간부터 잘 잤어? 컨디션 어때? 등의 대화를 빼면 거의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런 상태로 시합장에 도착한 지영은, 도복을 갈아입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참가국은 일일이 세는 게 그냥 피곤한 거고, 한 체급에 서른셋, 넷씩 나오다 보니 인원이 상당했다. 오늘 대회는 남자 여자 동시에 진행이 된다. 남자 경량급, 여자 중량급. 이렇게 경기가 진행된다.

경기장은 딱 네 개.

“시합 늦게까지 하겠다. 성진이랑 지영이 컨디션 조절 잘해야겠다.”

내일 시합인 강한결의 말에 지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다.

시합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는, 정말 마음이 평온하게 가라앉아 가는 게 스스로 느껴졌다.

“성진이는 컨디션 어때?”

“나? 죽이지!”

반대로 이성진은 텐션이 올랐다.

지영과는 반대로, 이성진은 살짝 눈빛이 돌아간 것처럼 느껴지는 지금 이 상태가 베스트였다. 두 사람의 컨디션을 체크한 강한결이 황석을 돌아보며 말했다.

“오케이. 내가 전담으로 이성진. 지영이는 효중이랑 석이가 보자.”

“알았어.”

후우…….

고개를 끄덕인 지영은 스트레칭을 마치고 매트에서 일어났다.

이제 본격적으로 몸을 풀 시간이다.

이성진은 강한결이 받아줬고, 지영은 임효중을 잡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딱 적당히 먹은 아침이 에너지로 변해 온몸에 힘을 충분히 전달해주는 게 느껴질 정도니, 이런 상태면 평상시의 90%에 가까운 컨디션이었다.

허벅다리, 업어치기, 발기술로 몸을 빠르게 풀고, 팔 벌려 뛰기, 밀어 올리기, 버피 등으로 호흡을 트이게 만들었다. 호흡이 트인다는 건, 한 번 숨이 턱 밑까지 올라오게 만드는 걸 말했다. 아무리 땀이 나도 이렇게 호흡이 트이지 않으면 첫판은 진짜 고문이 따로 없을 정도로 괴로울 수도 있었다.

그래서 지영이 반드시 넣는 루틴이 바로 호흡 트이기였다.

“헉! 헉!”

처음엔 이렇게 숨이 넘어갈 정도로 괴롭지만, 이 단계가 지나고 나면 이제 시합에 들어가도 100%에 가깝게 체력을 끌어 쓸 수 있었다. 그렇게 몸을 풀자, 이번에도 대표팀의 남자 감독으로 낙점된 전기정 교수님이 선수들을 소집했다.

대한민국 유도계의 전설.

존경할 부분이 넘치는 분이다.

그런 전설이 선수들을 한 번 훑어보고는, 말문을 뗐다.

“나는 이번 대회가 너희의 유도 인생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국내대회? 그래. 좋지. 국내에서 잘하면 좋지. 하지만 너희는 그걸로는 어차피 만족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어. 앞으로 이런 대회는 질리게 다니게 될 거고, 항상 승부에 연연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될 거다.”

“…….”

“…….”

전기정 교수의 말에, 지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승패에 연연하지 말라는 말은, 선수가 아니거나 선수의 마음을 모르니 하는 말이었다. 그저 그런 선수였다면 괜찮겠지만, 한 종목을 대표하는 선수 중의 하나가 되면 그럴 수 없게 된다. 대한민국만큼 성적에 연연하는 나라도 아마 드물 거다.

1등도 잘했다.

2등도 잘했다.

3등도 잘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사실 지극히 당연함에도, 이 나라는 그러지 않았다. 어느 자리든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성적, 승패에 연연하는 게 이쪽 세계였다. 전기정 교수는 그 부분을 꼬집고 있었다.

“이 말이 부담이 되리라는 건 안다. 하지만 나는 너희에게 잘해라, 져도 괜찮다 같은 입에 바른말은 하기 싫다.”

“…….”

“…….”

역시, 이게 더 현실적이라 확 와닿았다.

눈을 마주친 뒤 다시 말을 이어가는 전기정 교수.

“이겨라. 부담감을 감내하고. 반칙이 아닌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승리를 쟁취해라. 알았나?”

“네!”

“네!”

“네.”

전기정 교수의 말에 지영도 정신에 각오가 서는 걸 느꼈다. 이곳까지 왔다.

‘사고를 피하고, 미래를 바꾸고, 드디어 세계에 입성했어.’

국내에만 안주하는 유도선수?

그런 선수가 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지영은 정상에 서고 싶었다. 유도선수로 정상에 서고 싶으면, 세 개의 대회를 제패하면 된다.

아시안 게임, 세계선수권, 그리고 올림픽.

비록 청소년이란 말이 붙지만 오늘 나온 선수들은 큰 이변이 없으면 절반은 성인이 되어서 자기 나라를 대표할 선수 중 하나가 되어 있을 거다. 그러니 지금부터, 정상을 위한 레이스는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 그런 선수들이 언제고 넘어야 할 산이라면…….

‘그 산이 내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지영은 지금 자신이 도전자인 걸 잘 알지만, 도전자의 자리에 계속 있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9시.

시합이 시작됐다.

여자 두 체급, 남자 두 체급이 순서대로 들어갔다.

시작은 별로였다.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눠본 적 없는 60의 용인대 선배는 시작과 동시에 모두걸기에 쓸려 그대로 날아갔다. 상대는 러시아 선수였는데, 스타일이 어떤지 알기도 전에 그냥 게임이 끝나버렸다.

이후 여자 선배 한 명이 또 졌다.

-63체급의 한체대 선배는 일본의 선수와 붙어 연장 접전 끝에 절반을 뺏기며 결국 매트에 엎드려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패배. 그건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연장까지 간 접전 끝에 졌으니 그 울분이 이해가 갔다.

“흠…….”

시작부터 기운이 좋지 않다.

유도가 아무리 개인 스포츠라고 해도, 다른 체급의 선수들이 쭉쭉 치고 올라가면 그 기운을 당연히 받을 수밖에 없는 운동이었다. 패배는 선수단 자체의 사기를 쭉 떨어뜨리고, 심하면 패배의 기운이 가득한 구름을 선수단 머리 위로 드리우기도 했다.

그러니 첫출발은 분명 좋지 않았다.

그래서 지영은 이 기세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진아.”

“어? 어.”

“화려하게. 분위기 좀 가져오자.”

“흐흐, 알았어.”

같이 대기 중인 이성진은 지영의 말에 씩 웃더니 눈을 빛냈다. 이런 퍼포먼스는 또 이성진의 주특기였다. 주목받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지영의 요구가 충분히 충족되는 경기를 보여줄 거다.

다행히 이성진의 첫판 상대는 그리 강하지 않은 선수였다.

지영도 영상을 봤는데, 66에서 아마도 최약체라 생각되는 선수였다. 전에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결승 때처럼 방심만 하지 않으면 이성진이 아주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는 선수였다.

20분 뒤, 한판이 시원시원하게 터지면서 이성진이 먼저 시합에 들어갔다.

이성진의 상대는 벨기에 선수였다.

신장은 이성진과 비슷하지만, 중심이 확실히 가벼운 선수.

하체 힘, 코어 힘도 마찬가지로 가벼워서. 이성진은 1분 만에 소매꽂이를 서서 꽂아 넣어, 더 이상 화려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지게 한판을 뽑아냈다.

“아자!”

일어나서 바로 주먹을 쥐곤 승자의 기분을 만끽하는 이성진.

한쪽 스탠드에서 우와와! 하는 함성이 들렸다. 같은 대표팀 선수단과 오늘 시합장을 찾아준 벨기에 교민들의 함성이었다.

인사를 하고 나온 이성진이 지영에게 오며 씩 웃었다.

“이제 네 차례다?”

“오케이. 접수.”

분위기를 바꾸는 역할을, 지영은 이성진에게만 맡길 생각이 없었다.

기왕 하는 거, 지영도 분위기를 제대로 타게 만들고 싶었다.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과는 다르게 오늘은 패자부활전까지 있다.

그러니 이미 진 두 선수도, 동메달 결정전까지는 올라갈 수 있다는 뜻.

비록 이미 금은 물 건너갔지만, 부디 기운을 받아 좋은 성적을 냈으면 싶었다.

이윽고 지영의 차례가 왔다.

건너편에 서서 지영을 보며 씩 웃는 헝가리 선수.

지영은 그런 상대의 모습에 굳이 반응하지 않았다.

인사.

입장하고, 다시 인사. 하지메!

‘숨은 트였으니까, 굳이 몸을 풀 필요도 없고…….’

길게 끌지 말자.

지영은 거리가 좁혀지자 곧장 쭉 뻗어오는 손을 잡아 아래로 당긴 다음 같은 쪽의 가슴 깃을 잡아 툭 털었다. 그러자 팔을 크게 휘둘러 뿌리치려는 선수를 그대로 쫓아 들어가 외깃 앉아 업어치기로 업은 다음, 그대로 무릎을 세워 거의 서서 업어치기 각도에서 앞으로 부드럽게 굴렀다.

쿠웅!

시작과 동시에 나온 벼락같은 업어치기.

아무리 개최지가 헝가리라지만.

잇폰!

한판은 한판이었다.

산이 되고자 하는 도전자가,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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