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9화
59화.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4)
미야모토 신지.
일본 유도의 미래.
지영이 알아본 천재의 선제공격은 날카로웠다. 손가락을 가져다 대기만 했는데도 베일 정도로, 명검의 날카로움과 비교할 만했다.
하지만 미야모토 신지가 허벅다리를 쳐서 넘기려는 대상은 강지영이다.
미야모토 신지의 기술이 명검에 비교할 만큼 날카롭다면, 지영은 방어 유도의 정점에 있는 선수였다.
툭!
몸이 떠오르는 그 찰나, 지영은 이미 미야모토 신지가 잡은 가슴 깃을 툭 쳐서 반사적으로 끊어냈다. 몸이 공중에 떠 있는 상태라 힘이 전달이 잘 안 될 수도 있지만, 이미 어깨 깃을 노리기 전에 다른 손은 미야모토 신지의 손 위로 움직여 뒀다.
언제고 기술을 방어할 준비를 해두는 건 유도의 기본이고, 그래서 뜯어내는 건 문제가 없었다. 붕 떴던 몸이 그대로 천천히 내려섰다. 제대로 차올리긴 했지만 도복을 놓쳤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자세를 도로 풀고 지영을 향해 돌아서며 스윽 일어서는 신지.
지영은 그런 신지를 덤덤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놀랐냐고? 놀라긴 했다. 설마 잠깐 시선을 돌린 틈을 노려서 허벅다리를 차올릴 줄은 예상 못 했으니까.
하지만 그 짧은 틈에도 방어를 해냈다.
검은 날카로웠지만, 벽을 뚫지는 못했다.
그러나 검은 명검이고, 벽을 치긴 했지만 흠집 하나 없다. 반대로 벽도 명검에 공격당했지만 검과 마찬가지로 흠집 하나 없었다.
지금 딱 그런 상황이었다.
그쳐 없이 시합은 이어졌다.
지영은 표정 변화 없이 손을 뻗어 잡기 싸움을 시작했고, 신지는 이것 봐라? 하는 표정으로 마주 손을 뻗으며 지영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잡기 싸움.
뭐 말해 입 아픈, 시합의 승패를 판가름할 수도 있는 전초전.
하지만 결승에서 만난 두 천재는 잡기 싸움에 열을 조금도 올리지 않았다. 이번에도 신지는 지영의 가슴 깃을 잡았고, 지영은 어깨 깃을 잡았다. 그 상태에서 다시 허벅다리를 치려고 몸을 움찔하는 신지.
하지만 지영은 움직이지 않았다.
자세에서, 그리고 가슴 깃에서 느껴지는 힘으로 보아, 제대로 차고 싶은 마음은 없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자, 신지는 그런 지영을 보고 또 작게 웃었다. 지영도 그런 신지의 반응에 비슷하게 웃었다.
거의 모든 스포츠 선수들이 그렇겠지만 딱 잡아보면, 느낌이 오는 게 있다.
아 얘는 잘한다.
아 얘는 별로다.
이기겠다. 지겠다.
이런 것들은 잡아서 잠깐 해보면 딱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짧은 공방이지만 그걸 통해서도 상대와의 대결에서 승패를 어느 정도 점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지영은 지금 처음으로, 모호한 직감을 받았다. 그 말은 곧, 승패를 점치기 애매하다는 뜻이었다.
‘빈틈이 없어.’
자세가 완벽하다.
허벅다리, 업어치기, 발기술까지, 어느 쪽으로 순식간에 변형이 가능한 자세. 반대로 지영은 좀 더 상체를 숙여 중심을 앞으로 당겨서 기술을 방어하는 자세 쪽에 가까웠다. 지영은 이렇듯 방어에 좀 더 편향된 자세다.
하지만 이 자세는 반대로 자신이 방어할 기술들을 빠르게 걸 수 있는 포지션이었다.
예를 들어 허벅다리.
툭툭, 신지가 좀 전에 했던 찍어 허벅다리?
그거 지영도 잘한다.
다만 지영은 조금 독특하게 찼다.
몸을 돌려서 원심력을 얻었고,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화악! 무용수처럼 우아하게 차올리는.
걸리면 아주 짧게 몸이 뜨다가, 마치 손바닥 뒤집듯이 순간적으로 몸이 뒤집힌다.
하지만 신지는 이미 눈치챘는지 지영이 차기 전 자신도 바닥을 짚으며 지영이 허벅다리 차기 애매할 정도로 각을 좁혔다.
하지만 그렇게 나오면 후리기로 안 가도 된다. 허벅다리 걸기. 후리기가 시원하게 차올리는 거라면, 걸기는 한쪽 오금에 걸어 콩, 콩, 콩. 까치발로 상대를 들어 올려 뒤집어 던지는 기술.
걸긴 걸었다.
하지만 신지는 자세를 아예 엎드리듯이 극단적으로 낮춰 지영의 기술을 방어했다.
이건 아무리 용을 써도 어차피 안 되는 거라, 지영은 기술을 풀고 가슴 깃을 잡은 신지의 손을 손바닥으로 툭 쳐서 끊었다.
그리고 다시 거리를 벌렸다.
뭐, 벌려봐야 고작 몇 걸음이다. 하지만 이 짧은 공방으로 한 번씩 주고받았다. 서로 유효한 공격은 못 했지만, 이걸로 한쪽이 우세하다고 심판이 판단하진 못하리라. 그리고 애초에 그걸 노리고 건 기술이었다.
이런 게 바로, 시합 운용이다.
반칙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최소한 시합을 동수로 끌고 가는 것. 가능하면 유리하게 끌고 가는 것.
실패해도 무의미한 기술이 아닌 유의미한 기술을 펼치는 것.
이게, 지영의 특기 중 하나였다.
이게 아주 자연스럽게 부드러워 그에게 붙은 호칭이 천재라는 수식어다.
그런 운용의 묘.
그게 완벽한 게 바로 지영이다.
하지만 원래 이 시기에 지영은 이러지 않았다.
회귀 전, 이 시절의 지영은 극단적이란 말이 가까울 정도로 방어 유도를 구사했다. 기술은 최소화로 걸고, 지친 상대가 틈을 드러내면, 그 틈을 파고드는 한 방 기술을 자주 썼다. 그러나 회귀 후, 지영은 상대 자체를 흔들기 시작했다.
틈이 없다?
그럼 흔들면 된다.
흔들기란 잡기 싸움도 되고, 지금처럼 유의미한 기술도 된다.
그렇게 흔들어서 틈을 만들고, 그 틈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극단적인 방어도 가능하지만, 틈을 만들어 먼저 공격적인 포지션도 취한다는 뜻이었다. 이러한 변화가 온 건, 지영이 회귀 전 지도자였기 때문이었다.
지도자는 관찰자다. 필드가 아닌, 필드 밖에서 선수를 지켜보며 승리방정식을 찾아주는 게 지도자의 임무였다.
그런 지도자 생활은 지영에게 좀 더 내가, 혹은 내 선수가 상대를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지를 찾아내는 안목을 길러줬다.
그러한 안목은, 지영을 회귀 후 가장 효율적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방향으로 인도했다.
그래, 말 그대로, 인도했다.
또 다른 천재…… 미야모토 신지가 상대인데도.
아아…….
‘또 왔네.’
지금의 지영에게는 축복도, 저주도 아닌 게 다시 찾아왔다.
뭔가 느릿해지는 세계.
이걸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레이싱 애니메이션에 썼던 것처럼 제로의 영역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그냥 감속된 세계?
지영은 이러한 현상이 그리 반갑지는 않았다.
반칙. 그래, 반칙 같아서 반갑지 않았다. 아주 순수한 실력으로 이 친구와 즐기고 싶은데, 이 세계는 그걸 강제로 망가지게 만든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저 손을 안에서 밖으로 휘감아 잡아 어깨로 메치기를 걸면…….’
뻗어오는 손이 보인다.
그 손을 오른발이 앞으로 나가며 소매를 잡아챈 뒤, 그대로 앉으며 어깨로 메치기를 걸면? 제대로 카운터가 될 거다. 그리고 지영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흘러갔다.
‘아냐…….’
그러지 마.
홰액.
이미 소매 깃을 잡고, 몸은 앉고 있었다. 그 상태로 목은 상대의 겨드랑이 사이로. 착 달라붙는 순간 이미 허리를 튕기고 있었다.
‘아…….’
신지의 몸이 뜨는 게 느껴졌다.
으득!
지영은 그 순간 입술을 씹었다. 그러자 툭! 하고 터지는 통증 때문에 세계가 가속하기 시작했다.
쿵!
와자리!
그 짧은 틈에, 신지는 최대한 방어에 성공해 몸이 아예 날아가는 건 막은 것 같았다.
“아, 다행이네…….”
한판이 아니라서.
지영은 도복을 놓고 일어섰다.
그러자 심판의 그쳐에 일어난 신지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자신이 넘어갔는지 이해를 못 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지영은 신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이상함을 눈치챘다. 그것만 해도 정말 대단한 거였다.
지영은 그래서 고맙기도 했다. 시합에, 강자에 목말라 있는 지영에게, 이렇게 상대에게 카운터를 칠 수 있는 순간의 감속은, 결코 축복일 수가 없었다.
지영은 시합이 하고 싶었다. 더 철저하게, 처절하게, 호흡이 엉망이 되고 땀으로 범벅이 되는, 피가 터지는 그런 시합이 하고 싶었다.
그게 훨씬 더 크게 자신에게 충만한 감정을 선사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유도선수라면, 아니, 어떤 스포츠를 하는 선수라도 탐낼 만한 거긴 한데…….’
지금은 그냥.
‘내 즐거움을 방해하지 마…….’
이런 마음밖에는 들지 않았다.
누가 들었다면, 진짜 더럽게도 배부른 소리 하네! 하고 비난하겠지만 어쩌겠나. 지영의 마음이 당장 이런걸.
하지메!
다시 시작된 시합.
지영은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처음과 똑같이 신지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가슴 깃은 준다.
그리고 자신은 어깨 깃을 잡았다.
신지의 표정에는 다급함이 없었다.
절반 정도는 언제고 딸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고 지영은 이해했다. 이 친구에겐 그 정도의 능력이 실제로 있었으니까.
툭, 마치 낚시의 챔질처럼 손목을 툭툭 터는 신지.
고작 이 정도로 상체가 끌려가겠어? 이렇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보통 업어치기 전문가들은 딱 요 정도의 털기로 상체의 중심을 무너뜨리는 게 가능하다.
유도의 힘 쓰기는 일반적인 힘 쓰기와는 일단 기본적으로 다르다.
지긋이 으아아아! 하면서 힘을 쓰는 게 아니라, 진짜 순간적으로 훅! 힘을 쓴다.
쌀가마니를 이 악물고 들어 올리는 게 아닌, 역도선수가 역기를 들어 올릴 때처럼 순간적으로 힘을 모조리 끌어다 쓰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고작 툭, 툭 턴다고 무시하다간 어? 하는 사이 천장의 조명을 바라보고 있게 된다.
그게 유도다.
아니나 다를까, 신지의 몸이 털기와 동시에 역스텝 안뒤축이 들어왔다. 오른쪽 자세에서 순간적으로 왼쪽 자세로 갈아타며 안뒤축, 그렇게 자세를 바꾸는 사이 가슴 깃도 손을 바꿔 잡았다.
하지만 지영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고, 안뒤축을 노리는 발을 붕 띄웠다.
그러곤 그 발을 뒤로 빼며 반대 발로 모두걸기를 쓸었다. 이것도 카운터다. 안뒤축 되치기인데, 지영이 아주 좋아하는 기술이었다.
‘어?’
그런데 신지가 안뒤축 모션에서 멈췄다.
단순히 페이크가 아니라, 진짜 치는 줄 알았는데?
‘저기서 멈춘다고?’
이게 가능한 자세인가?
신지는 멈췄는데, 지영은 카운터를 이미 치고 있었다. 이건 수 싸움에서 완전히 졌다. 수 싸움에서 진 지영은 멈추지 못했다. 그리고 지영의 발이 본래 신지의 발이 나왔어야 할 부분을 쓸고 있을 때 앞으로 한발 나오며 밭다리를 건 뒤, 업어치기로 연결했다.
상체가 이미 틀어져 있던 상태에서 들어온 밭다리에 이은 업어치기.
역 카운터에 제대로 걸렸다.
지영은 선택해야 했다. 이대로 기술이 제대로 들어가면 이건 무조건 한판이다. 몸을 어느 쪽으로든 일단은 회전시켜야 했다. 그래야 빠져나갈 구멍이 조금이라도 생긴다.
지영은 급히 바닥에 발을 대면서, 축이 되었던 왼발을 회전시켰다.
이렇게 해서 안 넘어가면 좋겠다만, 신지는 밭다리에서 업어치기로 연결했다.
즉, 밭다리도 걸려 있단 소리였다. 지영이 몸을 돌리자 신지는 업어치기 말고, 그냥 밭다리로 지영을 찍으려고 했다. 하지만 지영은 이미 회전한 상태에서, 코어 힘으로 버텼다. 그러고는 더욱 거칠게 몸을 틀어 밭다리에 걸려 있는 상태인데도 중심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겨우 버텼다.
만약 조금이라도 방어하는 게 늦었다면, 지영은 그대로 말려서 데구르르 굴러버렸을 거다. 그럼 절반이 나올지 한판이 나올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결국 방어에 성공하자, 심판은 그쳐를 선언했다.
도복을 놓고 일어난 신지는 지영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마치 그걸 어떻게 버텼어? 이렇게 눈빛으로 물어보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떻게 버텼냐고?
억지로?
만약 유도가 말하는 게 가능했다면 지영은 이렇게 대답했을 거다.
하지메!
다시 시작된 시합.
이제 신지의 표정에서 여유는 사라졌다.
지영이 완벽하게 걸렸던 기술도 빠져나가자, 그를 넘기기 힘들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걸 지금 깨달았다는 건 사실상 시기가 늦었다.
지영은 이 절반을 완벽하게 지킬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영은 그러지 않았다.
시합. 이기는 건 중요했다.
‘하지만 이런 선수랑 또 언제 다시 붙어보겠어…….’
심지어 비슷한 나이였다.
다음 국제대회에나 아마 다시 맞붙게 될 건데, 그게 또 언제가 될지는 기약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이 기회를 고작 절반을 지키자고, 수비적으로만 풀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마음가짐이 서로 부딪쳐, 열기를 끌어냈다.
신지는 여유를 버렸고, 지영은 수비를 버렸다. 말 그대로 파이팅. 한번 제대로 걸리면 그대로 한판이 나는 그런 승부.
판은 만들어졌다.
신지는 가슴 깃을 잡자마자 빠르게 털었다. 그리고 정석적으로 안뒤축. 하지만 지영은 피해서 되치기를 쳤다. 신지의 신형이 비틀거리는 순간 지영은 땅을 찍어서, 그대로 허벅다리를 차올렸다.
하지만 그걸 또 피한 신지는 무너진 자세에서도 억지로 빗당겨치기를 욱여넣었다.
지영의 몸이 이번엔 떴다.
되치기 실패는, 절반을 뺏기는 결과는 낳았다.
쿵!
와자리!
억지로 넣은 기술이지만 절반은 절반.
그렇게 절반씩 나눠 갖고, 다시 시합은 시작됐다.
두 선수는, 주변을 잊었다.
지영이 먼저 잊고, 지영을 따라 신지도 이제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시합에 온전히 집중했다. 그렇게 마치, 무아지경에 빠진 것처럼 시합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삐이이!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나니 시간은 전부 지나 있었다.
절반, 그리고 절반.
승부는 나지 않았고, 연장전에 돌입했다.